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507
제507화 공평하게 나누다
황천극은 상대가 단호하게 나오자,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수백 명에 달하는 황가군을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수하들에게 허리를 굽혀 청했다.
“소월이의 목숨을 구할 기회를 주신다면, 훗날 크게 보답하겠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수하들에게 명령이 아닌 간청을 하다니, 확실히 황천극은 대단한 인물이었다.
그의 태도에 수하들이 크게 감동했다.
“전하, 그런 말씀 마십시오. 어차피 저는 남아봤자 도움도 안 되니 먼저 떠나겠습니다. 공주 전하,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누군가 이렇게 말하더니 호신옥을 깨뜨리고 전장에서 사라졌다.
“전 부상을 당한 몸이라 여기 남아봤자 짐이 될 뿐입니다. 훗날 저 항소운을 베어 우리 형제들의 한을 풀어주십시오.”
그러면서 또 다른 자가 사라졌다.
이어서 수하들이 하나둘 호신옥을 깨뜨리고 모습을 감췄다.
그렇게 사람 수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황천극이 허리를 굽히면서까지 보인 성의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사람이 3분의 2가량 남았을 무렵, 황천극이 물었다.
“항소운, 이 정도면 되겠지?”
“그걸 왜 네가 정해? 그건 내가 정하는 거야.”
항소운이 거만한 표정으로 말을 툭 뱉더니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누굴 속이려고? 어림도 없지.’
그가 이렇게 한 데는 깊은 뜻이 있었다.
황가군의 머릿수를 줄이면 앞으로 저들이 염양과 협공을 한다 해도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황천극은 상대의 단호한 말투에 하는 수 없이 수하들에게 계속 전장을 떠나도록 했다.
어느덧 사람 수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어서 풀어줘라!”
황천극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소리쳤다.
항소운은 즉시 황소월의 목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으나, 그녀를 바로 넘기지는 않았다.
“앞으로 우리 패왕군단에서 멀리 떨어지는 게 좋을 거다. 다음번에는 이렇게 좋게 넘어가지 않을 거야.”
그러고는 그녀를 황천극에게 돌려보냈다.
황가군은 이미 절반으로 줄어들어 패왕군단과 맞설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황천극도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는 않을 터였다.
황천극은 항소운을 붙잡아서 당장이라도 찢어 죽이고 싶었지만, 자신의 처지를 잘 아는 터라 가까스로 화를 참으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앞으로 내 손에 걸리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그랬다가는……. 흥! 이만 가자.”
그는 분에 못 이겨 험한 말을 뱉고는 수하들을 데리고 서둘러 떠났다.
황소월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복잡한 시선으로 항소운을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가고 나자, 패왕군단이 일제히 환호성이 질렀다.
“패왕, 대단하세요! 패왕, 만세!”
진법 덕분에 황가군에 우세한 상황이었지만, 저들을 전부 쫓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패왕이 혼자 힘으로 전세를 뒤바꿔 패왕군단의 손실을 최소화하고 비석이 있는 곳까지 차지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다들 기뻐하는 가운데, 한신비와 한씨 자매만은 항소운이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예전의 그는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선비인 양 강직하고 올곧은 성품이었다.
그런데 아까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소녀를 인질로 삼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는 사내대장부가 할 만한 행동이 아니었다.
어쩐지 그는 교활하고 악기가 감돌아 좀처럼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녀들은 변해버린 그를 보며 더욱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왠지 항소운이 자신들 때문에 저렇게 변한 것만 같았다.
항소운은 그녀들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하들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자, 시간이 없으니 전방의 넝쿨부터 깨끗이 정리하자. 독 장벽이 있으니 각별히 주의하도록 하고, 해독약이 있는 자는 미리 복용하도록 해라. 그럼 우선 비석부터 손에 넣도록 하자.”
패왕군단은 항소운의 명령에 따라 넝쿨을 태우기 시작했다.
수백 명이 협공을 펼치자, 주변에 산적했던 넝쿨과 독 장벽이 하루 이틀 만에 깨끗이 제거되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뜻밖에도 아주 오래된 등이 비석 앞을 지키고 있었다.
넝쿨은 비석을 칭칭 감싸고 있었는데, 우뚝 솟아오른 넝쿨은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쉴 새 없이 움직이며 강력한 힘으로 비석을 단단히 지키고 있었다.
게다가 근처에는 독사도 가득해서 떼를 지어 공격을 퍼부었다.
사람 수가 많아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비석 앞까지 왔어도 되돌아갈 판이었다.
사람들의 협공 속에 마침내 비석 앞을 가로막고 있던 모든 장애물이 깨끗이 정리되었다.
이제 곧 비석에 숨겨진 비밀이 사람들 앞에 드러날 터였다.
사람들은 잔뜩 상기된 얼굴로 비석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비석에는 전결이나 전투기술도, 돌로 만든 열쇠도 없었고, 뜻밖에도 제급 병기 세 개와 황급 영액이 있었다.
비석에 제급 병기 세 개와 황급 영액이 박혀 있을 줄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사람들은 놀라서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들은 각 지역에서 유명한 인재들로 용봉 학당에 입학하기 전에도 황급 병기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하나, 제급 병기를 가진 자는 극소수에 불과해서 그나마 비장의 무기로 사용할 뿐 쉽게 내보이지도 않았다.
한편, 황급 영액은 목숨을 살리거나 무공을 높일 때 요긴하게 쓰이는데, 워낙 귀하다 보니 이들 중에도 가진 사람이 몇 없었다.
그런데 눈앞에 이렇게 귀한 물건들이 나타났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그런데 사람은 많은 반면, 물건은 적어서 항소운이 어떻게 처리할지가 관건이었다.
제급 병기는 금검(金劍)과 금갑(金甲), 금테로 세 가지가 한 벌을 이루고 있었다.
언뜻 봐도 아주 귀해 보이는 물건들이었다.
금의 힘을 수련하는 무인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당용비의 눈빛도 벌게진 것을 보니 무척 탐이 나는 모양이었다.
마음은 이래도 항소운이 있어 다들 섣불리 행동하지 못했다.
어쨌든 이곳에서는 패왕의 명에 따라야 했다.
그리고 황급 영액이 들어 있는 통에는 용의 액체가 가득 들어 있었는데, 적어도 수천 방울은 되어 보였다.
이 정도면 많은 수의 인황이 경지를 높이는 데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학당 측이 제자들을 위해 얼마나 세심하게 신경을 썼는지 알 수 있었다.
항소운은 그 물건들을 손에 올리고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단원들에게 말했다.
“이 제급 병기는 전장이 끝난 후, 용봉방에 오른 형제에게 상으로 하사하겠다. 그리고 용의 액체는 지금 다 같이 나눠 갖도록 하겠다.”
그의 결정에 반대하는 이는 없었다.
용의 액체를 공평하게 나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도량을 베푼 것이었다.
제급 병기도 패왕 자신이 차지하지 않고 용봉방에 오른 사람한테 하사한다고 했으니, 확실히 그릇이 큰 인물이었다.
그런데도 불만을 품는 사람이 있다면, 욕심이 너무 과한 게 아닐까.
‘반드시 용봉방에 들어가고 말겠어!’
금의 힘을 수련하는 무인들은 가슴속으로 이렇게 다짐했다.
지금 상황에서 용봉방에 들어갈 만한 실력을 갖춘 자로는 항소운과 한신비를 제외하고 당용비와 헌원천(軒轅天), 목청욱, 왕흠, 원설분 그리고 5품 입룡경에 오른 몇 명 정도였다.
이들 중, 헌원천이 오를 가능성이 가장 높았는데, 그는 당용비보다 두 살 정도 어리지만 벌써 5품 입룡경에 올랐고, 그만큼 야망도 컸다.
그는 일찍이 부단장 자리를 탐내기도 했는데, 훗날 항소운이 돌아와서 가까스로 마음을 접긴 했지만 안 그랬다면 당용비한테 도전했을 것이었다.
사실 그는 구양전기를 대단히 선망하여 패왕군단에 들어오게 되었다.
항소운의 무공도 나름 괜찮긴 하지만, 구양전기가 더 강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따라서 패왕의 자리는 마땅히 구양전기가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전에 그는 이런 생각을 구양전기에게 넌지시 전했다가 도리어 된통 꾸지람만 들었다.
그는 눈앞의 제급 병기들이 무척 탐이 나서 속으로 다짐했다.
‘반드시 용봉방에 들어가고 말겠어. 그때 가서 항소운이 제대로 약속을 지킬지 똑똑히 지켜볼 거야.’
그는 항소운의 결정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장은 듣기 좋은 소리를 할지 몰라도 막상 때가 되면 당용비한테 모조리 줄지도 몰랐다.
항소운은 당용비와 가장 사이가 좋지 않던가.
항소운은 헌원천이 이런 생각을 하는 줄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오히려 그는 상대를 괜찮은 인재로 점찍고 있었다.
헌원천은 중급 8성 지체로 당용비보다 체질도 뛰어나서 장래가 무척 촉망되는 젊은이였다.
헌원천이 부단히 노력하여 두각을 나타낸다면, 항소운에게도 기쁜 일이었다.
패왕군단은 용의 액체를 한 사람당 열 방울 정도 나눠 가졌다.
그들은 서둘러 식물마류를 잡으러 가지 않고 먼저 무공을 높이기 위해 다들 수련에 집중했다.
지난 반년 동안 정신없이 사냥하며 전투 경험도 쌓고 실력도 부쩍 늘었지만, 이걸로는 아직 부족했다.
지금은 한창 정진할 때라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수련에 매진하여 무공을 높여야 했다.
남들에게 뒤처진 순간, 격차가 벌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항소운은 홀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는 바로 수련에 들어가지 않고 주변을 샅샅이 살폈다.
만에 하나 다른 세력이 매복해 있다가 갑자기 습격을 가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신비는 다가가서 얘기라도 나누고 싶었지만, 고민 끝에 관두었다.
함께 지낸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관계가 지금보다 누그러지면 그때 가서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지난 반년 동안, 항소운의 경지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6할 2푼이던 용의 기운은 현재 6할 6푼으로 상승하여 6품 초기에서 중기로 올랐을 뿐이다.
힘을 흡수하는 속도가 느린 것은 아니었다.
속도보다는 기초를 단단히 다져야 한다는 원칙을 따르고 있을 뿐이었다.
일전에 혈용지에서 품급이 세 단계나 올라 경지는 높아졌지만, 기초가 단단하지 않은 느낌이었는데, 반년간 숱한 전투를 거치며 단련하다 보니 어느새 현 경지도 한결 굳건해졌다.
이제는 굳이 수련하지 않아도 오로지 생각만으로 주변의 힘을 흡수하여 실력을 높이는 것이 가능해졌다.
진의를 깨달으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장점이었다.
그 후로 대략 보름이 흘렀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다들 무공이 높아져서 기력이 충만하고 활기가 넘쳤다.
사람들은 다시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식물마류를 닥치는 대로 죽이면서 열심히 점수를 쌓아나갔다.
물론 강한 녀석의 공격에 부딪혀 목숨을 지키기 위해 전장을 빠져나가는 자도 적지 않았다.
항소운도 신은 아니다 보니 단원들을 일일이 보살필 수는 없었다.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거나 실력이 부족해서 탈락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다만 지금껏 구양전기를 만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구양전기는 패왕군단의 부단장이자, 학당의 8대 요물 중 한 사람이라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와 합류한다면 패왕군단의 전반적인 실력이 크게 강해질 터였다.
그리고 구양전기뿐만 아니라 나찰녀도 아직까지 소식이 없었다.
어쩌면 그녀는 이미 탈락했을지도 모른다.
항소운이 두 사람을 걱정하고 있을 때, 갑자기 강력한 무리가 그들 앞에 나타났다.
우두머리는 그와 일면식이 있는 사람이었고, 무리 중에는 그를 무척이나 미워하는 사람도 섞여 있었다.
“항소운, 이 쳐죽일 놈! 네놈을 죽이고 말겠다!”
분노에 가득 찬 음성이 귓가에 들려왔다.
분노에 차 고함을 지른 사람은 제림을 좋아하던 사도염이었다.
현재 그녀는 5품 입룡경으로, 당시 제림 역시 같은 경지였으나, 2품 입룡경이던 항소운에게 목이 달아나고 말았다.
그런데도 그녀가 큰소리를 떵떵 칠 수 있었던 것은 함께 나타난 동료들 때문이었다.
그녀 곁에 있는 동료는 항소운과도 일면식이 있는 뇌폭(雷爆)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백여 명은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