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510
제510화 백리일소
마치 거대한 용이 내뻗듯 전무쌍의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항소운 앞에 도달한 그는 항소운의 손에 들린 열쇠를 뺏으려 했다.
그러나 항소운은 생각만큼 약하지 않았고, 특히 속도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가 손을 내뻗었을 때, 항소운은 이미 뒤로 물러난 상황이었다.
“그래, 무공이라면 네가 나보다 강하지. 하나, 날 잡기는 힘들 거다!”
항소운이 냉소를 띠며 말했다.
뇌폭은 항소운의 의도를 눈치챘는지 한마디 거들었다.
“그래, 맞는 말이야. 협력할 수 없다면 이깟 열쇠쯤 없애는 게 낫지.”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전무쌍도 난처해졌다.
비밀의 문 안쪽에는 혼태경을 돌파할 수 있는 영물이 있다는 얘기가 있었다.
한데, 열쇠가 없으면 제아무리 대단한 영물이 있다 해도 문을 열 수 없었다.
전무쌍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한결 누그러진 말투로 물었다.
“어떻게 협력하자는 거냐?”
항소운이야 금방 붙잡을 자신이 있지만, 아무래도 같은 경지의 뇌폭은 상대하기가 까다로웠다.
혹 뇌폭이 열쇠를 깨뜨리기라도 하면 모든 희망은 물거품이 돼버린다.
항소운과 뇌폭이 꾀를 부리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만에 하나 진짜로 저지르면 어쩐단 말인가.
계속 몰아붙였다가 상대가 홧김에 일을 저질러버리면 결국 손해 보는 것은 자신이었다.
이런 생각 때문에 전무쌍은 한발 물러서기로 했다.
비밀의 문만 열면 저들을 제치고 혼자 독차지할 자신은 충분했다.
“형님이 말씀하세요.”
항소운이 뇌폭을 보며 말했다.
어차피 전무쌍은 자신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데 굳이 입 아프게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뇌폭은 항소운에게 했던 말을 다시 전무쌍에게 들려주었다.
상대는 잠자코 듣더니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했다.
결국 세 무리는 잠시 적대적인 감정을 내려놓고 다른 두 열쇠의 행방을 쫓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괴식물을 죽이며 차곡차곡 점수를 높여갔고, 이곳에서만 자라는 희귀한 약초나 재료들도 수집했다.
워낙 규모가 방대하다 보니 세 무리가 한꺼번에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해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움직였다.
세력 간에 혹여 발생할지 모를 마찰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뜻도 있었다.
며칠 후, 마침내 네 번째 열쇠의 행방을 찾아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상대도 열쇠의 행방을 쫓고 있어서 생각보다 빨리 마주쳤다.
네 번째 열쇠의 주인은 염양의 성자 우자양이었다.
염양은 사람 수가 꽤 많아서 굉천 못지않은 기세를 발산했다.
우자양은 눈앞의 세 무리를 보고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뇌폭은 협력을 처음으로 제안한 사람으로서 중재자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었다.
그는 우자양에게 같이 손을 잡자는 제안을 했고, 설명을 듣고 난 우자양은 흔쾌히 동의했다.
그 후, 우자양의 시선은 자연스레 항소운을 향했다.
“비밀의 문을 연 뒤에 네놈을 직접 꾸짖어주마.”
그러자 항소운이 담담히 웃으며 대꾸했다.
“기다리고 있을게.”
그제야 항소운은 염양 쪽에 우채접이 없음을 발견했다.
아마도 홀로 떨어져 아직 무리와 합류를 못 한 모양이었다.
불현듯 전생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우채접의 모습은 그가 전생에 가장 사랑했던 여인과 똑 닮아있었다.
그래서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첫눈에 반한 모양이다.
전생의 그 여인은 그를 무척 사랑했다.
전쟁이 벌어졌을 때, 그녀는 그와 함께 용감히 싸웠고 결국 전장에서 같이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마지막 순간, 두 사람은 다음 생애에도 함께 하자고 약속했다.
‘그런데 정말 같은 사람일까?’
문득 이런 의문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항소운과 뇌폭, 전무쌍, 우자양이 동행하기로 결정하면서 네 개의 열쇠가 한곳에 모이게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마지막 열쇠였다.
다섯 번째 열쇠의 행방을 찾기 위해 다들 열쇠를 꺼내 힘을 불어넣었으나, 열쇠들은 이전처럼 길을 안내하지 않고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다들 영문을 몰라 하고 있을 때, 뇌폭이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마지막 열쇠는 훼손된 게 아니면 누군가 술법을 부려 감춘 모양인데……. 이렇게 되면 쉽지 않겠어.”
“그렇다면 열쇠를 다 모을 수 없다는 건가?”
전무쌍이 물었다.
“계속 이런 식이면 다섯 번째 열쇠를 찾는 건 무리지.”
뇌폭의 말에 사람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열쇠를 네 개나 모았으니 마지막 열쇠만 찾으면 비밀의 문도 순조롭게 열겠구나 싶었는데 뜻밖의 장애물에 봉착한 것이다.
뾰족한 수가 없어 망연자실하고 있는데, 한 무리가 그들 앞에 나타났다.
무리는 이십여 명 정도로 규모는 작으나, 유달리 시선을 사로잡았다.
바로 학당에서 유일한 쌍둥이 자매인 하우연(何雨鳶)과 하자연(何紫鳶)이 무리의 우두머리였던 것이었다.
두 여인은 자색이 무척 뛰어났지만, 우채접이나 한신비와 견줄 정도는 아니었다.
하나, 자매는 육감적인 몸매마저도 닮아서 남자들은 두 여인이 나란히 있는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다.
얇고 부드러운 비단옷이 몸매를 부드럽게 감싸면서 그들의 관능미를 한층 부각했고, 그들의 등 뒤에는 검을 한 자루씩 메고 있어 멋스러운 매력마저 자아냈다.
두 사람은 학당에서 체질을 측정할 타고난 재능도 남달랐다.
그러나 화려한 외모와 재능에 걸맞지 않게 좀처럼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이렇다 할 소문에 휘말리지도 않았다.
사실 이들은 백리일소가 문주로 있는 검문에 일찌감치 소속되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는지라 검문이라는 배경 때문에라도 이들을 섣불리 건드리는 자는 없었다.
형세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항소운을 비롯한 네 사람을 찾아온 모양이었다.
“하우연, 하자연, 사형들께 인사드립니다.”
자매가 네 사람에게 예를 갖춰 인사했다.
“백리일소는 어딨지? 왜 너희들만 보낸 거냐?”
전무쌍이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가 학당에서 관심을 갖는 사람은 백리일소가 유일했다.
두 사람은 용봉 학당에 들어오기 전부터 오랜 숙적 관계였으나,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의 얼굴에 생긴 흉터도 백리일소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그날은 그가 무학을 배운 뒤로 유일하게 패한 날이었다.
그는 오래전 진무 학당의 특별 제자로 뽑혔으나, 백리일소가 용봉 학당을 택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서슴없이 용봉을 택했다.
지난날의 치욕을 씻고 명예를 되찾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백리일소는 검술에 심취하여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성장 속도도 무척이나 빨라 선뜻 도전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다시 맞닥뜨린다면, 필연적으로 승부를 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는 직감하고 있었다.
“문주께서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모셔오라 하셨습니다.”
하우연이 대답했다.
“그게 무슨 뜻이지?”
뇌폭이 되물었다.
“다섯 번째 열쇠는 저희 문주께서 가지고 계십니다.”
이번에는 하자연이 대답했다.
사람들의 표정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방금까지 마지막 열쇠의 행방을 놓고 고심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열쇠를 가진 이가 직접 찾아온 것이다.
다만 이들은 거만하고 자존심이 무척 강한 인물들이었다.
하우연 자매를 따라 백리일소를 만나러 가는 것이 별일 아닌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백리일소가 윗사람이 되어 아랫사람을 맞이하는 형세니 당연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그러나 상대가 마지막 열쇠를 감응조차 할 수 없도록 감췄다는 것은 그만큼 수단이 비상하다는 뜻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다섯 개의 열쇠를 전부 모으려면 두 여인을 따라가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자매는 이들의 불편한 심정을 눈치챘으나, 자신들도 명령에 따라 움직일 뿐이라서 그저 조용히 대답을 기다렸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군. 그럼 두 분이 앞장서시오.”
항소운이 침묵을 깨며 입을 열었다.
다른 자들은 좀처럼 고개를 숙일 줄 모르는 사람들이라 자존심 때문에라도 이런 말을 선뜻 하지 못했다.
그러나 항소운은 달랐다.
물론 그도 자존심이 강한 인물이지만, 명예보다는 실리를 추구했다.
지금은 기 싸움할 때가 아니라 비밀의 문을 여는 것이 시급했다.
항소운이 먼저 말문을 튼 덕분에 다른 자들은 마지못해 따라가는 격이 돼서 체면을 살릴 수 있었다.
“좋네, 이렇게 된 이상 소검객(笑劍客)이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지녔는지 직접 만나봐야겠군.”
뇌폭이 가라앉은 소리로 말했다.
전무쌍과 우자양은 별다른 발언을 하지 않았으나 딱히 반대도 하지 않아서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두 여인을 따라 백리일소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러다 뜻하지 않게 황가군과 마주치게 되었다.
황천극은 여러 무리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무언가 일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적극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그럴듯한 이유는 미리 생각해두었다.
“항소운, 내 동생을 괴롭힌 일은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 오늘 이 자리에서 끝장을 보자!”
황천극은 위엄 있는 걸음걸이로 곧장 항소운을 향해 걸어왔다.
항소운은 그런 상대를 보며 어이없다는 듯 대꾸했다.
“배짱은 대단하네. 겨우 그 정도 숫자로 우리 패왕군단에게 도전하겠다는 건가?”
그러자 황천극은 항소운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우자양에게 말했다.
“자양 형, 우리 협력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절 대신해 항소운을 처리해주신다면, 크게 후사하겠습니다.”
우자양이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황자 전하, 그 일은 잠시 접어두고 나중에 다시 상의하시죠.”
황천극은 못 이기는 체 하며 자연스럽게 말을 받았다.
“정 그렇다면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일이 끝나고 나면 저놈을 함께 처리하시죠.”
“하하, 그래도 명색이 황자 전하란 사람이 이런 꼼수를 부리다니 우습군, 우스워.”
항소운이 배를 잡고 정신없이 웃어댔다.
“흥, 지금 실컷 웃어둬라!”
황천극은 얼굴이 화끈해져서 툭 쏘아붙였다.
우자양은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끝내 입을 다물었다.
황천극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싶은지라 당분간은 함께 다녀도 별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나중에 사람들이 이의를 제기하면 그때 가서 물리면 될 일이었다.
어쨌든 지금은 뇌폭이나 전무쌍도 딱히 반대 의사를 펴지 않았다.
황가군까지 가세하자, 일행의 숫자는 더욱 늘어나서 식물마류와 같은 괴식물도 더는 위협이 되지 못했다.
반나절 후,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동안 소문만 무성했던 용봉 학당의 일인자 백리일소를 마침내 대면하는 자리였다.
커다란 나무 아래 회색 무복을 입은 소년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의 검은 머리는 단정하게 올려 묶여 있었고, 이목구비가 보기 좋게 조화를 이룬 수려한 외모를 하고 있었다.
피부도 맑고 깨끗해서 겉모습만 보면 열대여섯 살 정도로 보였다.
그는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 있었다.
두 다리 사이에는 고풍스러운 장검이 놓여 있었으나, 기세가 전혀 느껴지질 않아 검을 막 배우기 시작한 평범한 소년처럼 보일 뿐이었다.
단정한 용모의 이 소년이 바로 용봉방 일인자로 불리는 소검객 백리일소였다.
그는 학당에서 평판이 좋았다.
예의 바르고 성품이 온화하며 사람들을 두루 아우르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검문은 설립 초기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으며, 지금은 학당에서 가장 큰 세력으로 발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