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518
제518화 혈귀마등과 패왕군단
어느새 멀리 도망친 귀막수는 음험한 웃음을 띠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항소운, 기다려라. 조만간 내 꼭두각시로 만들고 말 테니. 하하하…….’
이런 음모 따위는 까맣게 모른 채 항소운은 멀어져가는 상대를 지켜보다가 한신비에게 다가갔다.
“혼자 힘으로 혈귀마등을 캐내는 건 무리야. 나도 도울 테니 함께 없애자고.”
“좋아요, 이렇게 큰 걸 보면 뿌리도 많이 자라나 있을 거예요. 나중에 반으로 나누면 되겠어요.”
한신비가 흔쾌히 대꾸했다.
항소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응수하고는 곧장 혈귀마등의 밑동으로 돌진했다.
밑동은 넝쿨이 조밀하고 독기가 무척 강해서 천재라 불리는 자들도 섣불리 접근했다가는 목이 졸리거나 독에 당해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뿌리 쪽으로 접근하는 것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난이도가 대단했다.
항소운은 불의 힘을 일으켜 온몸을 단단히 방어하면서 독 기운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불태워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빼곡히 자리 잡은 넝쿨뿐이었다.
이곳의 넝쿨은 무척 단단하고 질겨서 전천도로는 어림도 없고 광명성검은 돼야 베어버릴 수 있었다.
그는 일말의 지체도 없이 광명성검을 꺼내 들었다.
크게 힘들이지 않아도 넝쿨은 거침없이 잘려 나갔으며, 그것들을 모조리 모아 전부 성해건곤에 집어넣었다.
한편, 한신비는 극한의 힘으로 갑옷을 더욱 단단히 만들어 독기를 막아냈다.
그녀는 제급 검으로 넝쿨을 닥치는 대로 베었으나, 항소운처럼 수월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사방에서 내리뻗는 넝쿨을 뚫고 아래쪽으로 내려가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이런 환경을 헤쳐나가기엔 순발력이 부족한 탓이었다.
여지없이 빈틈을 노리고 덤비는 넝쿨 때문에 꼼짝없이 묶일 뻔한 순간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런 역경도 헤쳐나가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들과 경쟁할 수 있겠어? 어떻게 해서든 뚫고 내려가야 해!”
한신비는 의지를 다잡으며 다시 세차게 힘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주변 공기가 삽시간에 차가워지면서 살얼음이 어는가 싶더니 손에 들린 검에서 투명한 얼음 결정이 반짝였다.
그 순간, 그녀가 검을 힘껏 휘두르자 주변이 온통 얼음으로 뒤덮였다.
꽁꽁 얼어붙은 넝쿨은 힘없이 잘려 나갔고, 그녀는 이때를 틈타 아래로 빠르게 돌진했다.
한편, 한발 앞서 혈귀마등의 뿌리 부근에 도착한 항소운은 뜻밖의 광경과 마주쳤다.
뿌리 부분에는 거대한 붉은 고치가 있었다.
언뜻 봐선 혈귀마등의 심장처럼 보였는데, 절반은 밖으로 나오고 나머지 절반은 땅에 묻힌 채 짙은 독기와 수없이 많은 넝쿨이 귀한 보물을 지키듯 고치를 단단히 감싸고 있었다.
독기가 어찌나 자욱한지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이런 고치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였다.
필경 이 고치가 혈귀마등의 생명의 근원일 터였다.
“마등혈장(魔藤血臟)이다!”
항소운은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혈귀마등에 혈장이 자라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혈장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대량의 피가 있어야 가능한데, 이렇게 거대한 혈장이 만들어진 걸 보니 족히 만 년은 넘었음 직했다.
제급 약초는 될 듯했다.
혈장을 정제하여 몸속으로 흡수시키면 혈맥의 힘이 대폭 강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방대한 힘을 얻게 되어 경지를 더욱 높일 수 있었다.
특히 입룡경 정점의 인황의 경우, 한결 수월하게 혼태를 응집시킬 수 있었다.
‘비밀의 문에 숨겨져 있던 보물은 다섯 개의 옥합만이 아니었어. 이 혈장도 그 보물 중 하나였구나.’
항소운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검을 들고 아래로 계속 내려갔다.
이곳의 독기는 무척 강해서 불의 진의로 방어해도 겨우 버틸 정도였다.
이렇다 해도 소모되는 힘이 너무 커서 오랜 시간 버티는 것은 무리였다.
더군다나 넝쿨이 사방팔방 뻗어 나와 내리치고 묶는 바람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렸다.
성급 갑옷이 없었더라면 진작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어떻게든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닥치는 대로 검을 휘둘렀다.
전술이고 뭐고 중요하지 않았다.
목적은 단 하나, 지겹도록 뻗어 나오는 넝쿨을 잘라버리는 것이었다.
과연 성검은 그를 실망시키지 않고 무서운 위력을 발휘했다.
반면, 한신비는 좀처럼 깊숙이 내려오질 못하고 그저 가장자리에 있는 가느다란 뿌리를 몇 가닥 수확했을 뿐이었다.
독기가 무척 강하고 넝쿨도 많다 보니 그녀가 버티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어느 틈엔가 항소운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그녀는 한숨을 푹 쉬며 중얼거렸다.
“언제 이렇게 강해졌지? 용봉방 일인자 자리도 조만간 그에게 넘어가겠어…….”
한신비는 어려서부터 자부심이 대단하여 웬만한 사람은 눈에 차질 않았다.
황천극처럼 뛰어난 인재도 그저 부모를 잘 만난 덕이라 여길 뿐이었다.
그러나 항소운은 달랐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밟아 지금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더욱 마음이 끌렸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생각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렇게 딴생각을 하는 사이 갑자기 넝쿨이 달려드는 바람에 깜짝 놀라 황급히 뒤로 피했다.
뒤이어 다른 자들도 혈귀마등과 불후고목에 차츰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밀실의 보물에 정신이 팔려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으나, 이제 보물도 웬만큼 챙기다 보니 괴식물을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 것이다.
넝쿨이나 마른 나뭇가지만 잘라도 점수가 쌓이는 판이니, 괴식물을 없앨 수만 있다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점수를 얻을 터였다.
괴식물에는 넝쿨과 나뭇가지 외에 훨씬 진귀한 부위도 있어서 무인에게 매우 유용하게 쓰였다.
한편, 불후고목 쪽에는 남색 장포를 입은 젊은이가 나타나 정신없이 뒤엉킨 나뭇가지를 가볍게 헤치고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아무래도 고목이 갖고 있던 진귀한 보물은 그자의 차지가 될 것 같았다.
항소운은 바깥 상황에 대해 까맣게 모른 채 어떻게 하면 마등혈장을 손에 넣을지 고심했다.
혈장까지의 거리가 가까운 듯 보여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게다가 여러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어서 한참 고생한 끝에야 겨우 뚫고 들어갈 수 있었다.
눈앞에는 바위 크기의 혈장이 넝쿨 뿌리에 단단히 싸여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심장에 연결된 경맥처럼 보였는데, 붉은 혈장은 심장처럼 이따금 들썩이기도 했다.
그 주위로 혈기가 충만하여 사람을 잡아끄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어느새 항소운의 눈빛도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이제 혼태경에 오를 날도 머지않았구나.”
혈장을 손에 넣기만 하면 가까운 미래에 입룡경 정점에 오른 뒤, 혈장의 힘을 이용해 혼태경에도 수월하게 오를 수 있을 터였다.
현재 7품 입룡경인 그는 영혼력에선 남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경지에 올라섰다.
육신의 힘이 따라줬더라면 진작 혼태경의 올랐을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한가하게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상상할 때가 아니었다.
혈장 주위의 넝쿨이 쉴 새 없이 공격하는 바람에 정신없이 검을 휘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넝쿨을 제거하고 나서야 뿌리도 공략할 수 있었다.
혈장이 사라지면, 이 혈귀마등도 생명을 상실하리라.
혈귀마등도 어느 정도 지능은 있는지라 이런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녀석은 위협을 감지했는지 바깥으로 뻗어냈던 넝쿨과 독기를 전부 불러들여 본격적으로 항소운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혈장을 뺏기지 않기 위한 최후의 방어였다.
반면, 바깥쪽에 있던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방금까지 죽일 기세로 덤벼들던 넝쿨과 독기가 별안간 공격을 멈추더니 뿌리 쪽으로 빨려가듯 내려가는 것이었다.
한편, 어중간한 위치에 있던 한신비는 아래로 되돌아오던 넝쿨과 독기 때문에 밖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흠칫 놀라 중얼거렸다.
“전부 패왕에게 몰려가는 모양인데…….”
심상치 않은 상황을 눈치챈 그녀는 전력을 다해 넝쿨을 공격하면서 다른 자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들 뭐 하고 있어? 어서 힘을 합쳐 넝쿨을 없애자고!”
다행히 사람들은 그녀의 의견에 기꺼이 동참하여 넝쿨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달리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넝쿨을 많이 벨수록 점수가 쌓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야 전장을 떠날 때 순위가 조금이라도 높아지지 않겠는가.
그러나 혈귀마등은 순순히 제 몸을 내어줄 생각이 없었다.
넝쿨과 독기가 움츠러든 후, 강력한 방어력이 형성되면서 사람들의 공격을 고스란히 막아내는 것이었다.
단단한 철옹성이 된 듯 어떤 공격에도 뚫림이 없어서 적어도 제존은 되어야 싸워볼 만하지 않을까 싶었다.
막상 제존에 육박하는 무공을 지닌 천재들은 이쪽 일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이미 불후고목에 관한 비밀이 쫙 퍼진 터라 더러는 그쪽으로 달려간 후였다.
불후고목을 정제하면 불후(不朽)의 힘을 얻는 것이 가능하다고 알려져 나무의 힘을 단련하는 무인들이 특히 눈독을 들였다.
사람들은 불후고목의 가치가 더 높다고 생각하고 그쪽으로 달려갔다.
이쯤 되자 한신비도 패왕군단 단원들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당용비와 헌원천을 비롯한 단원들은 항소운의 도움으로 갈라진 틈 사이로 들어가긴 했으나, 마수의 공격을 견디다 못해 결국 뛰쳐나오고 말았다.
더러는 넝쿨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위기에 처하는 바람에 호신옥을 깨뜨려 전장을 떠났다.
다행히 아직 남아있는 단원들이 훨씬 많아서 그녀와 힘을 합쳐 혈귀마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방대한 힘이 수차례 몰아치자, 혈귀마등도 버티기 힘든 모양이었다.
무엇보다 항소운이 혈장을 감싸고 있던 뿌리를 쉴 틈 없이 베어버리는 바람에 힘이 점점 고갈되고 있었다.
생명의 근원인 뿌리가 잘려 나가는데 혈귀마등이라고 별수 있겠는가.
그 과정에서 넝쿨과 독기가 매섭게 저항하여 항소운도 목이 졸릴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더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그는 빛의 고리를 꺼내 서둘러 머리에 썼다.
이렇게 하면 적어도 넝쿨에 당할 염려는 줄어들었다.
그렇게 방어 태세를 갖춘 그는 요천검결을 펼치며 넝쿨의 뿌리를 닥치는 대로 베어버렸다.
바깥에서 패왕군단까지 협공을 가하자, 혈귀마등이 빠르게 힘을 상실하면서 위축되었다.
마침내 혈장 앞에 도착한 그는 주변의 뿌리를 남김없이 제거하고는 성해건곤 속으로 혈장을 거둬들였다.
혈귀마등은 혈장을 잃자, 힘이 급속도로 사그라지면서 넝쿨마저 맥을 못 췄다.
항소운은 이때를 틈타 재빨리 주변의 뿌리를 거둬들이고는 바깥 상황을 살폈다.
단원들이 반대편에서 여전히 맹공격을 퍼붓고 있자, 그가 다급히 소리쳤다.
“다들 공격을 멈춰! 지금 나가겠다!”
이 소리에 사람들은 서둘러 공격을 멈추었고, 항소운도 무사히 빠져나왔다.
그 무렵, 혈귀마등은 완전히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생명의 정수가 들어 있던 혈장이 소실돼도 어떻게 명맥은 유지할 수 있으나 뿌리마저 잘려 나갔으니 더는 맥을 이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억겁의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자라날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항소운은 그런 여지마저 주지 않았다.
“안쪽에 뿌리가 많이 있으니, 최대한 챙기도록 해라. 아직 독기가 남아있으니 조심하도록.”
이 말에 단원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너도나도 혈귀마등을 베어 품에 넣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