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522
제522화 홀로 설 때다
한신비와 구양전기도 용봉 학당에서 손꼽히는 인재들이지만, 지금은 항소운 때문에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이틀 전만 해도 부상이 심해서 걱정스러운 상황이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회복된 것은 물론, 그 사이에 권의까지 깨달았다고 하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정말 대단한 녀석이라니까.”
구양전기는 기가 차서 혀를 내둘렀다.
앞으로 9품 입룡경에 오르면 전무쌍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 예상하던 그였다.
그런데 자신도 이기지 못한 전무쌍을 상대로 항소운이 대등한 대결을 펼쳤다는 사실에 자신감이 꺾이고 만 것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재능이 뛰어나 누구에게도 뒤지는 법이 없었는데, 지금은 항소운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항소운을 보는 한신비의 눈빛은 한층 뜨거워졌다.
보는 눈이 없다면, 당장이라도 품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꼭 내 남자로 만들고 말겠어.’
한신비는 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항소운이 알 리는 없었다.
그는 단원들을 향해 힘차게 소리쳤다.
“이제 남은 시간 동안 열심히 사냥해서 순위를 높이기 위해 힘쓰자!”
“예, 패왕!”
단원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좋다, 부상자는 전부 앞으로 나오도록. 치료를 해줄 테니 어서 몸부터 회복하도록 해라.”
“패왕, 몸이 회복된 지 얼마 안 되셔서 지금은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한신비가 걱정스럽게 말을 건네자, 그가 손을 내저었다.
“난 이제 괜찮대도 그러네. 우선 부상자들부터 모으도록 해.”
그에게 회천비술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적지 않았으나, 이 비술로 다른 사람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항소운이 직접 나서서 치료해주겠다고 하자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만 지을 뿐, 기껏해야 치료약을 주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패왕이 회천비술을 펼치자, 다들 놀란 나머지 멍하니 쳐다만 보았다.
신묘한 치료술 덕분에 생명의 힘이 상처 부위로 빠르게 스며들었다.
다친 이들은 편안하고 쾌적한 기분이 들었다.
“다들 마음을 가다듬고 힘을 최대한 받아들이도록 해라.”
회천비술을 펼치자, 연한 초록빛 힘이 수십 명을 따스하게 감싸면서 눈부신 광채를 드러냈다.
그의 몸속에 있던 나무의 힘과 주변에 산적한 나무의 힘 그리고 나무의 진의가 한데 어우러지면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생명력을 만들어냈다.
수십 명에 이르는 사람을 단번에 치료할 수 있는 건 환경적인 요소 때문이었다.
이곳은 나무의 힘이 가득하여 가능하지만, 다른 곳이라면 한 번에 십여 명을 치료하는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물론 혼태경에 오르면 훨씬 강한 힘을 발휘하게 될 터여서 속도나 치료 범위도 뚜렷이 증가할 것이다.
그렇게 반 시진이 흐른 후, 부상자들도 홀로 몸을 추스를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사람들은 다시 한 번 항소운의 능력에 감탄해마지않았다.
그제야 짬이 난 항소운이 나찰녀를 보러 갔다.
그녀는 어느새 깨어나 있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항소운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다정하게 물었다.
다른 여자들과 달리 나찰녀에게만은 변함없이 따스한 그였다.
묵묵히 그의 곁을 지키며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하는 그녀가 당연히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전장에 들어온 후, 염양에게 쫓기다가 운 좋게 단원들과 만나게 되었어요. 그 후로 함께 다녔는데 다들 공격을 견디다 못해 하나둘 전장을 떠나고 저만 남게 되었지요.
그러다 귀막수와 맞닥뜨렸는데, 상대가 되질 못 해서 결국 기절하고 말았어요. 그리고 깨어나 보니 단원들이 곁에 있었고요.”
그녀의 멍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기절 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항소운은 그런 그녀를 가만히 품에 안으며 부드럽게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어쨌든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귀막수는 꼭 잡아서 당신 앞에 데려다 놓을게요.”
순간, 나찰녀의 눈빛이 매서워졌으나 이내 사라졌다.
두 사람을 지켜보던 한신비와 한씨 자매는 항소운의 다정한 모습을 보며 못내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 후로 항소운은 단원들을 이끌고 도처를 다니면서 식물마류를 닥치는 대로 사냥했다.
현재 무리에는 천재라 불리는 자들이 세 명이나 있어서 단원들의 안전이 기본적으로 보장되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강력한 식물마류와 맞닥뜨려도 별달리 위협이 되진 않았다.
어느덧 두 달이 훌쩍 흘렀다.
단원들의 점수는 차곡차곡 쌓였고, 그중에서도 특히 세 천재의 점수가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무공이 높은 만큼 상급 식물마류를 주로 죽이다 보니 그만큼 많은 점수를 획득하게 된 것이다.
지난 2개월 동안, 항소운은 밀실에서 얻은 옥합을 열어보지도 않았다.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만 7품 입룡경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경지를 다지는 데 집중하다 보니 다른 건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이미 손안에 쥔 보물인데 언제 열어보든 상관은 없었다.
앞으로 전장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3개월 정도 남자, 항소운은 단원들에게 각자 흩어져 수련하도록 명했다.
단원들은 이런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였다.
함께 움직여야 더 안전 하거늘 어찌 흩어져 행동하자는 것일까.
단원들의 표정을 읽은 그가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잘 들어라. 너희는 모두 정정당당하게 시험을 치르고 학당에 들어온 사람들이다. 그만큼 탁월한 재능을 지닌 뛰어난 인재들이란 뜻이지. 그런 너희가 패왕군단에 들어온 것이 난 무척 자랑스럽다.
이제 초급 전장을 떠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동안 다들 열심히 점수를 쌓은 덕분에 전장이 끝나면, 서열도 적잖이 오르게 될 것이다.
하나, 이런 순위는 헛된 것일 뿐, 진짜 실력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지금보다 더 강해지고 싶다면, 스스로 노력해서 증명해 보이는 방법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잠재력을 끌어올려야 하지. 이렇게 해야 실력도 비로소 더 단단해지고 견고해질 테니 말이야.
설령 어쩔 수 없이 전장을 떠나야 하는 순간이 온다 해도 그동안의 땀과 노력이 모든 것을 증명해줄 거다.”
그랬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은 자들로, 자부심도 대단했다.
그런데 최근 몇 달간 다른 사람의 지휘하에 점수를 쌓는 데만 열중하다 보니 홀로 싸우는 법도 잊고 있었다.
이젠 이런 생활에 익숙해져서 무덤덤하게 지냈는데, 막상 항소운의 말을 듣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공을 현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고된 수련을 거쳤던가.
이제는 다시 홀로서기를 할 때였다.
항소운은 단원들에게 각자 흩어져 행동하도록 지시했다.
명령에 따라 어떤 자는 홀로 떠나고, 또 어떤 자는 짝을 이뤄서 동료와 함께 각기 다른 방향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중 누군가 옛 비석과 같은 기연을 찾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복이리라.
한신비는 항소운과 함께 떠나고 싶었으나, 그는 나찰녀만을 곁에 둘 뿐 다른 자들은 전부 떠나도록 해서 이내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매달리는 성격은 또 아닌지라 자매를 데리고 곧장 길을 떠났다.
그렇게 전부 떠나고 난 뒤에도 항소운은 어째 출발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용의 기운을 한 가닥 뽑아내 나찰녀에게 주었다.
일전에 그는 밀실에서 용의 기운을 대거 흡수한 덕분에 7품 입룡경에 단박에 올랐었다.
그 후, 용의 기운을 여섯 가닥 정도 따로 보관해두었는데 그중 하나를 그녀에게 준 것이다.
용의 기운은 무척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4품 입룡경인 그녀가 경지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터였다.
효과를 잘 아는지라 나찰녀도 사양하지 않고 선뜻 용의 기운을 흡수했다.
태생적으로 나찰의 육신을 타고나서 속도만 느릴 뿐이지 용살의 기운을 정제시키는 것도 문제없었다.
항소운과 은자는 그녀가 어떤 방해도 받지 않도록 주변을 지켰다.
“은자야, 나중에 시간 나면 나와 겨뤄보자.”
인간의 모습으로 바뀐 은자를 보며 항소운이 말했다.
은자는 잘생기고 건장한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몸에 걸친 은빛 갑옷이 그의 용모를 한층 돋보이게 했다.
“얼마든지요. 한데, 아홉 빛깔 구름은 절대 쓰면 안 돼요. 그건 저도 감당 못 해요.”
“너 맷집 좋잖아. 왜 그건 또 겁내고 그래?”
항소운이 웃으며 물었다.
“맷집이야 좋죠. 한데 아홉 빛깔 구름은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고요. 그건 아홉 가지 힘이 전부 합쳐진 궁극의 힘이잖아요.”
은자가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뭐, 궁극의 힘? 허허, 재밌네.”
“내가 뭐 틀린 말 했어요? 천지가 개벽해서 만물이 생겨나기도 전부터 그 힘은 존재했다고요.”
은자가 감탄 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음, 제법 아는 게 많은 모양이네. 계속 얘기해 봐.”
그러자 은자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실은 저도 아는 건 별로 없어요. 혈맥이 강해지면서 그 속에 있던 부분적인 기억이 떠오른 것뿐이에요.
아마도 혈맥의 힘이 지금보다 강해지면 그게 무슨 힘인지 알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럼 진룡의 힘이 더 필요한 거야?”
“사실 전 뇌룡과 천각사(天角蛇)의 후손이에요. 천각사의 혈통은 어느 용족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죠. 앞으로 천각사의 힘이 각성되기만 한다면, 성장 속도도 훨씬 빨라질 거예요.
그러니 절 천각용사(天角龍蛇)라고 부르셔도 돼요. 물론 천각사의 혈통을 포기한다면 뇌룡도 될 수 있을 테지만 그러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은자가 자신의 혈통을 얘기한 것은 처음이었다.
“천각사라면 이미 종적을 감춘 최상급 뱀족 아니야?”
항소운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
오래전 읽은 고서에는 천각사에 관한 내용이 쓰여 있었다.
그것은 상고시대에나 존재하던 공포스러운 뱀족으로, 독보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어 최상급 요수 중 하나로 여겨졌다.
그런데 은자가 천각사의 후손이었다니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제야 진룡이 되지 않겠다던 은자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천각사는 진룡 못지않게 강한 종족으로, 심지어 일부 능력에서는 진룡보다도 강했다.
은자는 두 종족의 후손이니 태생적 장점을 전부 누리는 셈이었다.
“전 천각사족이 아직 멸망하진 않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렇게 말하는 은자의 눈빛에선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그래, 네 종족을 꼭 만나면 좋겠구나.”
이들이 대화에 빠져 있는 사이, 나찰녀는 용의 기운을 정제시키는 데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녀는 용의 기운으로 5품 입룡경의 문턱을 넘는 데 성공했다.
불현듯 그녀의 머릿속으로 알 수 없는 신호가 전해졌다.
순간, 뭔가에 홀린 듯 그녀의 표정이 기괴하게 바뀌었으나 금세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찰나에 벌어진 일이라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 무렵,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선 검은 형체가 차갑게 웃고 있었다.
“항소운을 이쪽으로 유인해라. 내 친히 놈을 잡아서 가장 강력한 괴뢰로 만들고 말겠다.”
그러더니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이내 사라지는 것이었다.
나찰녀가 경지를 돌파하자, 항소운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잘했어요. 단번에 5품 입룡경 후기에 오르다니, 용의 기운을 조금도 낭비하지 않았군요.”
“괜히 시간을 뺏은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이제 식물마류를 사냥하러 가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전방을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