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528
제528화 책 보다가 죽을 뻔
그는 닷새 동안 대략 백여 가지의 전투 기술을 살펴보았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었다.
그 방대한 양을 전부 기억하다니.
실로 대단한 두뇌였다.
학당에는 천재라 불리는 자가 여럿 있었으나 그처럼 책을 빨리 이해하고 전부 기억하는 자는 드물었다.
물론 그에게 지혜의 빛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것이다.
장서각을 지키며 줄곧 항소운을 관찰하던 장로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정말 괴물 같은 녀석이군.’
다른 사람의 눈에는 항소운이 허세를 부리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장로는 그가 누구보다 독서에 집중하고 있으며 그 안의 내용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있다고 믿었다.
장로는 오랜 세월 장서각을 지키면서 수많은 제자를 지켜본 산증인이었다.
지금 항소운만큼은 아니어도 비슷한 쾌거를 거둔 제자가 예전에도 있어서 그의 재능을 금세 꿰뚫어 본 것이다.
이 무렵 항소운은 한쪽 구석에서 책을 한 권 발견하고 꺼내 들었다.
책은 표지도 없을뿐더러 중간에 몇 장이 비어있는 잔결본이었다.
게다가 서체 역시 상당히 오래돼서 내용조차 파악하기 힘들었다.
그런데도 예스럽고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져 왠지 모를 호기심이 일었다.
그는 잔결본을 가만히 훑어보았다.
책에는 옛 글자가 어수선하게 쓰여 있고 앞뒤 문맥도 맞지 않아서 아무리 봐도 전투 기술이나 비술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정말 이상한 책이네.”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책의 종이를 가만히 잡아당겼다.
생각보다 무척 단단하고 질긴 것이 아무래도 이 속에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고민 끝에 책에다 힘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책 속의 글자들이 저절로 움직이면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글자들은 마치 생명을 부여받은 듯 항소운의 손바닥을 이리저리 노닐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글자들이 차츰 사라지기 시작했고 잔결본도 모습을 감추려 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그가 재빨리 의념으로 글자들을 감싸자 이에 응답이라도 하듯 글자들이 하나둘 그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순간, 그는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으윽!”
마치 불바다가 펼쳐진 듯 글자들이 머리 구석구석을 세차게 공격했다.
그 위력은 실로 대단해서 무구의 혼도 버티지 못했다.
만약 명룡혼고마저 없었더라면 그는 진작 목숨이 끊어졌을지도 모른다.
이때 장로가 불쑥 나타나 그를 부축하며 물었다.
“어찌 된 일이냐?”
방금 항소운이 어떤 힘을 일으키는 것 같았는데, 불현듯 비명이 들려오자 무슨 일인가 싶어 서둘러 달려왔던 것이었다.
그래서 장로도 항소운에게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알지 못했다.
항소운이 휘청이는 몸을 바로 세우며 대답했다.
“아무 일도 아니에요. 지금은 좀 앉아있어야겠어요.”
그러고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옛 글자들이 자신에게 가져온 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힘은 고의로 그를 공격하려던 것이 아니라 위력이 지나치게 강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약한 항소운이 버티지를 못했던 것뿐이었다.
다행히 명룡혼고가 막아준 덕분에 그는 차츰 안정을 되찾았다.
그는 자신의 머릿속에 거대한 불바다가 펼쳐졌으며, 천둥의 힘과 불의 힘이 쉴 새 없이 뒤엉켜 정체 모를 반응이 일어나고 있다고 느꼈다.
어떤 특별한 규칙에 의해 형성된 힘인지 아니면 어떤 전투 기술에 의해 이루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재앙이 벌어진 것만은 분명했다.
성진조차 그 힘을 당해내지 못하고 터져 버릴 위기에 놓였다.
그 힘은 한동안 지속되다가 차츰 사라졌다.
불현듯 묵직한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뇌겁성화(雷劫星火), 훼멸천창(毁滅天蒼), 추성성화(墜星成火), 요마막당(妖魔莫擋), 신위호탕(神威浩蕩)!”
항소운은 마치 눈앞에서 성진이 폭발하는 것만 같았다.
천둥의 겁과 화염이 사방에 일면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파괴력을 발산했다.
천하에 이토록 공포스러운 힘을 막아낼 자가 누가 있단 말인가.
이는 뇌겁성화(雷劫星火)라고 불리는 힘이었다.
이런 잔결본에 무서운 절세의 기술이 숨겨져 있을 줄이야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 정도면 성급 기술을 뛰어넘어 신(神)급 기술이라 할만했다.
단지 힘만으로 성진을 파괴할 수 있을 정도이니 이게 신급 기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는 방금 느꼈던 감각을 재차 떠올렸다.
그것은 천둥의 성진과 불의 성진이 한데 결합된 무서운 힘으로, 일전에 바람과 천둥의 힘을 융합시켰을 때처럼 두 성진의 힘이 결합된 것이었다.
이 잔결본은 장서각 2층에 줄곧 소장되어 있으면서도 누구에게도 그 비밀이 발각되지 않았다.
달리 말하면 천둥과 불의 힘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무인만이 이 기술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항소운은 9대 성진의 힘을 동시에 수련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천둥과 불의 힘을 가지고 있어서 마침 그 자격에 부합한 것이다.
물론 그는 자신에게 이런 행운이 찾아왔음을 알지 못했다.
그저 천둥과 불의 힘이 어떻게 융합되었는지 궁금할 뿐이었다.
그 이치를 깨닫게 된다면 건곤멸도권 못지않은 기술이 될 것임이 틀림없었다.
그는 천둥과 불의 힘이 융합되는 과정을 수천 번, 수만 번 살펴보면서 마침내 그 감각을 마음속에 새긴 후에야 비로소 눈을 떴다.
어느새 그의 한쪽 눈동자에는 천둥의 빛이, 그리고 반대쪽에는 화염이 어려있어 기괴한 모습이었다.
줄곧 그의 곁을 지키고 있던 장로가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 녀석, 안법(眼法)을 연마했던 건가?”
그제야 기운을 거둬들인 항소운이 자리에서 일어나 장로에게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장로님, 호법을 서주셔서 감사합니다.”
“얘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여기 있던 잔결본은 어디로 갔고?”
장로는 장서각을 천 년 동안 지키면서 이곳에 있는 모든 책과 그 속의 내용을 속속들이 꿰뚫고 있었다.
분명 이 책장에는 잔결본이 한 권 있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장로는 항소운이 그 비밀을 찾아낸 것은 아닌지 조심스레 추측했다.
항소운은 자신이 귀한 무공을 얻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사실대로 말했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갑자기 울먹이며 애원했다.
“장로님,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책에 무슨 귀신이 쓰였는지 책을 집자마자 갑자기 무서운 힘이 제 머릿속으로 불어닥쳤어요. 다행히 제게 수완이 있어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그 힘에 영혼이 폭발해서 죽었을지도 몰라요.”
그러자 장로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그 말이 사실이냐?”
“정말입니다. 혹시 누가 절 죽이려고 수를 쓴 게 아닐까요? 아직도 머리가 아파 미칠 거 같아요. 무엇이든 영혼을 치료할 수 있는 약초나 영액을 먹어야지 이대로 뒀다가는 영영 고통받을지도 모른다고요. 장로님, 제발 도와주세요.”
항소운은 어린아이처럼 울며불며 애원했다.
그러자 장로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럼 어떻게 된 상황인지 내가 살펴보마.”
그러고는 항소운이 미처 피할 새도 없이 곧장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지그시 누르는 것이었다.
‘큰일인걸.’
이 방법을 쓰면 장로를 속여 약초든 영액이든 얻어낼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상대는 속아 넘어가질 않고, 되려 그의 상황을 알아내려 했다.
항소운은 죽을상을 하고 그저 속으로 애원할 뿐이었다.
‘제발 발견되지 않아야 할 텐데.’
사실 장로도 항소운의 영혼을 깊숙이 살펴볼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 혹여 다치기라도 하면 그로서도 골치 아픈 일이었다.
그래서 감응력을 통해 머릿속의 상황이 어떤지 느낄 뿐이었다. 잠시 후 그가 머리에서 손을 떼었다.
“영혼력이 다소 약해지긴 했다만 이상할 정도로 아주 방대하구나. 게다가 머릿속에 또 다른 세상이 생겨난 거 같은데, 설마 그 잔결본 때문인가?”
장로가 의아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항소운은 여전히 불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장로는 한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얘야, 내 제자가 되는 게 어떠냐?”
갑작스러운 말에 항소운은 당황했다.
그는 장로가 이런 말을 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것이다.
때마침 장서각에 들른 사람들이 장로의 말을 듣고 하나같이 놀란 얼굴이 되었다.
외양은 늙고 볼품없어도 이런 장로일수록 대단한 연륜을 지니고 있어서 적어도 몇 대에 걸쳐 장로를 해오던 자였다.
능력만 놓고 보자면 태상 장로와도 견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랬으니 학당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장서각을 줄곧 책임지고 있을 터였다.
“대체 누구길래 장서각 장로께서 제자로 삼겠다고 하신 거지? 정말 운 좋은 녀석이군.”
집사 하나가 감탄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잠시 후면 알게 되겠지. 어쩌면 용봉방의 어느 뛰어난 인재가 아닐까?”
또 다른 자가 대꾸했다.
이때 장서각 장로가 항소운에게 재차 물었다.
“왜, 내 제자가 되기 싫은 것이냐?”
그러자 항소운이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다만 전 이미 스승님이 계셔서 다른 분을 모시기 힘듭니다. 장로님, 이해해주십시오.”
“스승이 있다고? 내가 왜 그걸 몰랐지? 설마 지금 거짓을 고하는 것이냐?”
장로가 의심의 눈초리로 물었다.
“절대 아닙니다. 학장 대인과 다른 분들도 알고 계십니다.”
항소운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흠,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장로는 못내 아쉽다는 표정을 하더니 이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장로님, 이대로 가버리시면 어떻게 합니까? 제 영혼이 상처를 입었다니까요. 치료할 수 있게 뭐라도 주셔야죠.”
“욘석아, 너는 되려 복을 받은 꼴이니 그걸로 만족하거라. 아직 난 네게 책을 망가뜨린 죄도 묻지 않았어.”
장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상을 당한 것도 억울한데 장로가 적반하장으로 나오자, 속에서 울분이 차올랐다.
‘아니, 책 보다가 죽을 뻔한 게 말이 돼?’
다른 사람들이 이 상황을 안다면, 그렇게 엄청난 수확을 얻고도 만족할 줄 모르고 도리어 남 탓이나 한다며 혀를 끌끌 찼을 것이다.
장서각 밖의 집사는 장로가 마음에 들어 한 제자가 항소운이란 걸 알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장서각 장로님은 다른 선대 장로들보다 훨씬 대단한 인물인데, 저 녀석 굴러온 복을 걷어 차버렸군.”
이 소식이 집사들 사이에서 알려지면서, 소식은 소문이 되어 학당 전체로 퍼져나갔다.
“그 이야기 들었어? 장서각 장로가 항소운을 제자로 삼으려 했는데, 글쎄 거절을 당했대.”
“정말이야? 항소운 그 녀석 돌아버린 거 아냐? 그런 좋은 일을 마다하다니. 그런 분을 스승으로 두면 학당에서 두려울 게 없을 텐데 말이야.”
“그게 아니고, 항소운이 제 입으로 스승이 있다고 말했대. 한데 지금껏 그 스승이 누군지 알려진 바도 없잖아. 혹시 제자가 되기 싫어서 거짓말을 한 건 아니겠지?”
“혹시 소위 장로가 스승 아냐? 일전에 1호 용원을 찾아가셨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거든.”
“듣자 하니 항소운의 스승은 굉장한 분이래. 적어도 태상 장로급은 된다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