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535
제535화 꼭 나쁘지만은 않다
“다들 조용히 하게. 무경, 자네가 말해보게.”
학장이 장무경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장무경이 과장이나 축소 없이 사건의 경과를 차분히 설명했다.
“항소운, 네가 말해보거라.”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학장이 이번에는 항소운에게 물었다.
그러나 항소운은 아직도 피가 새어 나오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쓴웃음만 지었다.
“할 말 없습니다.”
확실히 그랬다.
실력이 한참 모자라 상대에게 완전히 제압당했었다.
때문에, 설령 이성적으로 논리를 폈어도 결국 죽임을 당했을 것이었다.
소위도 그를 구하기엔 역부족이지 않았던가.
늑대인간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는 꼼짝없이 죽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니 학장 앞에서 시시비비를 가려봤자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다.
“어쨌든 도련님은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주인님께서 노하시면 어찌 될지 잘 아실 테지요?”
늑대인간이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무경, 사건 현장으로 안내하게.”
학장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사도 장로의 수련 장소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장무경이 대답했다.
순간, 사도명우와 막라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학장, 내 손녀는 정말 억울하게 죽었네. 내가 그동안 학당을 위해 일해 온 세월만 해도 몇 년인가. 아들은 전사하고 하나 남은 손녀마저 죽임을 당했네. 그런데도 저런 살인자를 계속 감싸고 돌 텐가?”
사도명우가 울먹이자, 늑대인간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자업자득이지. 그러길래 주인님의 제자는 왜 건드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학장도 별수 없었다.
다른 제자라면 사도명우의 말대로 벌을 내렸을 테지만, 항소운은 달랐다.
대인의 제자를 벌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학장 자리마저 내놓아야 할지 모른다.
“그래도 직접 보는 게 좋겠습니다. 사건 현장을 둘러보고 공정히 처리하겠습니다.”
학장이 답답한 마음을 삼키며 말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사건 현장으로 향했다.
하늘은 이내 평온함을 되찾았고 학당 전체를 둘러쌌던 방어막도 사라졌다.
그러나 제자들은 여전히 의문이 가득한 눈길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밀실에 도착하자, 사도염과 집사들의 시체가 제자리에 놓여 있었다.
사도명우는 손녀의 시체와 다시 마주하자, 눈물을 펑펑 쏟았다.
안쓰러운 마음에 학장이 말을 건넸다.
“금방 끝날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그러면서 양손으로 수인을 맺자 알 수 없는 힘이 밀실에 가득 퍼지더니 별안간 어떤 장면이 사람들 앞에 펼쳐졌다.
흐릿하긴 해도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무공과 안력(眼力)이면 당시 상황을 대강 살필 수 있었다.
눈 앞에 펼쳐진 장면은 이러했다.
항소운은 묶여있고 사도염이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이런 행위는 항소운이 명혼공간을 펼칠 때까지 지속되었는데, 명혼공간을 펼치자 별안간 눈앞의 장면이 새까맣게 변하더니 마지막에는 시체 몇 구만 보일 뿐이었다.
명혼공간에서 발생한 일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
명혼공간은 독립된 특수한 공간이기 때문에 학장도 그것을 구현하는 것은 능력 밖의 일이었다.
“명황 마족의 명혼공간이 사건의 재현을 막은 거로군. 살인범은 저놈이 틀림없네!”
막라가 항소운을 가리키며 큰소리로 외쳤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잘잘못을 떠나 마족은 죽어 마땅합니다.”
풍혹색이 이를 부득 갈며 말했다.
성인의 무공이면 팔이 잘려 나갔어도 다시 찾아와 붙이면 원상복구가 가능한데, 늑대인간이 팔을 먹어버렸으니 상황이 골치 아프게 됐다.
피와 살을 다시 자라게 하는 성급 약초를 구하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이 상태로 평생을 지내야 했다.
그는 이 모든 불행이 항소운 때문이란 생각이 들자, 당장이라도 항소운을 찢어 죽이고 싶었다.
평소 이들과 가깝게 지냈던 장로들은 막라와 풍혹색의 말에 동조하고 나섰다.
어쨌든 항소운의 몸에 마족의 피가 흐르는 건 엄연한 사실이 아니던가.
그러자 소위가 반박했다.
“항소운은 제가 마연에서 직접 뽑은 특별 제자입니다. 마연에서 마수를 죽이다가 우연히 마혈을 얻어 몸속에 흡수한 것뿐인데 뭐 그리 이상하다는 겁니까?
우리 인간족 중에는 마족의 능력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이가 적지 않은데, 그렇다면 그들도 전부 인간의 적이란 말입니까?”
소위의 말에 많은 장로들이 동의를 표했다.
사건 현장을 재현한 것만 보더라도 항소운은 분명 피해자였고, 사도염과 집사들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 터라 남을 탓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이들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았다.
결국 관건은 학장의 결정이었다.
학장이 항소운을 보며 물었다.
“네 몸속에 마혈이 있는 게 사실이냐?”
“예.”
항소운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명확한 어조로 대답했다.
“스스로 인정했으니, 죽여 마땅하네!”
사도명우가 살기등등해서 말했다.
학장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항소운을 보며 입을 열었다.
“넌 천사족의 정화형을 받고도 살아남았지. 달리 말하면 네게 마족의 사악한 본성은 없다는 뜻이다. 천사족은 마족을 극도로 증오하는 종족이니, 만일 네게 그런 조짐이 보였다면 살아나오지 못했을 거다.
하여 설령 네 몸속에 마족의 피가 흐른다 하여도 그 일에 관해서는 더 이상 추궁하지 않으마. 그러나 사도 장로의 손녀와 집사들을 죽인 일은 사안이 심각하니 태상 장로들께 판결을 맡기는 편이 좋겠구나. 어쨌든 넌 수릉 장로님의 하나뿐인 제자이니 말이다.”
학장의 발언은 어려운 문제에서 손을 떼겠다는 듯 보여도 실은 항소운의 신분을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분명히 밝히고 있었다.
수릉 장로의 하나뿐인 제자란 말을 듣고도 자신의 의견을 계속 우길 사람은 없을 터였다.
이곳에 모인 장로들 중 수릉 장로를 모르는 자는 없었다.
수릉 장로는 오래전 눈이 먼 노인으로 한결같이 후릉 금지를 지키고 있었다.
그의 겉모습은 그저 평범한 노인이지만, 수만 년을 넘게 살았으며 심지어 용봉 학당의 설립 초기부터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그런 분의 제자를 감히 죽일 수 있겠는가?
사도명우 등은 속이 답답해졌다.
재차 항변이라도 하고 싶었으나, 학장의 결정에 따르지 않을 수도 없었다.
“자, 그럼 시신부터 수습하고, 태상 장로의 결정을 조용히 기다리도록 합시다.”
학장의 말에 따라 이번 일은 잠시 일단락되었다.
이제 앞으로의 판단은 태상 장로들의 몫이었다.
항소운의 얼굴이 망가지고 이로 인해 발생된 사건들은 학장의 명령에 따라 비밀리에 부쳐졌다.
내부에서 발생한 추잡한 일을 굳이 떠벌릴 필요는 없었다.
늑대인간이 항소운을 데려가겠다고 하자, 더는 아무도 막지 않았다.
학장은 장로들과 함께 의사당으로 돌아가서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
사도명우를 비롯한 막라, 섬영, 풍혹색은 당사자이다 보니 회의에 참석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들은 가만히 앉아 결과나 기다릴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각자 믿을만한 조력자를 찾아가 상부에 압력을 행사할 작정이었다.
항소운에게 엄한 처벌을 내리도록 종용하거나 적어도 학당에서 내쫓을 심산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항소운을 죽이기란 손바닥 뒤집듯 쉬운 일일 터였다.
얼마 후, 항소운은 늑대인간을 따라 후릉 금지(禁地)에 도착했다. 수릉 장로는 예의 그 허름한 집 앞에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노인의 공허한 눈동자는 여전히 세상 만물을 꿰뚫고 있는 듯했다.
노인 앞에 이르자, 늑대인간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주인님.”
항소운도 예를 갖춰 인사를 드렸다.
“스승님께 인사 올립니다.”
자신을 제자로 인정조차 안 하는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스승은 계속 관심을 두고 지켜보고 있었다.
수릉 장로가 물러가라고 손짓하자, 늑대인간은 할 일이 끝난 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남에게 맞아서 이렇게 된 것이 억울하고 괴롭더냐?”
수릉 장로는 제자 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고 담담히 질문만 던졌다.
“예, 억울하고 괴롭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생기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스승의 물음에 항소운이 주먹을 불끈 쥐며 대답했다.
“충분한 실력이 없으면 죽고 말 테지만, 충분한 실력이 갖춰진 상태라면 아무도 겁낼 자가 없습니다. 괴롭힘을 당하면, 열 배로 갚아주고 말 겁니다.”
“그래, 결국 이 모든 게 네 실력이 부족해서 생긴 일이다. 네 무공이 그들보다 강했다면 어찌 널 공격할 생각을 했겠느냐. 오히려 겁을 먹고 피해 다녔을 테지. 이곳은 결국 힘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수릉 장로는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직 젊은 나이니 이런 일을 겪은 것이 꼭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지. 몸소 겪어봐야 그 마음을 오래도록 새길 수 있는 법.
앞으로 무예에 더욱 열중하여 천하를 주름잡는 맹주가 되면 아무도 널 함부로 대하진 못할 거다.”
항소운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한동안 실력이 급상승해서 내심 자만하던 와중에 벌어진 일이었다.
무공은 하루가 다르게 높아졌으나 뒷받침해 줄 변변한 세력마저 없는지라 적과 싸우기 위해서는 자신의 힘을 더 키우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래, 실력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근본이지. 오늘 네가 겪은 일도 지나고 보면 삶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될 거다. 부단히 노력하다 보면 이 치욕을 씻을 날이 반드시 올 게다.”
뒤이어 수릉 장로는 병을 하나 건넸다.
“이건 정흔수(淨痕水)라는 것인데, 얼굴의 상처를 깨끗이 없애줄 거다.”
항소운은 두 손으로 병을 공손히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우선 스스로 치료해보겠습니다.”
그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스스로 치료에 들어갔다.
나무의 진의를 일으키며 회천비술을 펼치자 순수한 힘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생명의 힘을 만들어냈다.
그러자 그 힘이 상처 부위로 스며들자 상처가 차츰 아물면서 통증도 완화되는 것이었다.
그제야 수릉 장로도 제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공허하지만 세상 만물을 꿰뚫어 보듯 묘한 힘을 가진 눈동자가 항소운을 향하고 있었다.
“나무의 진의와 생명의 정화라, 꽤 훌륭하구나. 그래도 흉내 낼 수 있는 수준은 되었어.”
수릉 장로는 모처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조언은 해도 칭찬에는 인색한 그였다.
항소운은 그 한마디로 그동안의 노력이 보상받는 것만 같았다.
생명의 힘이 상처로 스며들면서 깊은 상처는 대강 아물었으나, 여전히 얼굴에는 자잘한 상처가 지네처럼 그물거려 예전의 잘생긴 용모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항소운은 포기하지 않고 생명의 힘을 쉴 새 없이 불어넣어 상처를 함빡 적셨다.
그 노력에 하늘도 감복했는지 마침내 원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항소운은 얼음으로 거울을 만들어 얼굴을 비춰보았다.
어느새 상처는 깨끗이 사라져 있었다.
“다행히 얼굴은 지켰네.”
“우쭐할 것 없다. 그래봤자 기초적인 치료술에 불과하니까. 특수한 병기나 독에 부식이 되어 생긴 상처라면, 네 치료술로는 어림도 없다.
하지만 생명의 힘에 대한 깨달음을 깊이 하여 그 근원을 깨우친다면 극히 짧은 시간에도 부상을 치료할 수 있고, 심지어 피 한 방울로도 생명을 되살릴 수 있지.
당분간 이곳에 머물며 나와 이야기나 하자꾸나. 경지가 높아진 것 외에 또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 어디 봐야겠다.”
수릉 장로는 항소운의 몸속에 마족의 피가 흐르는지 따져 묻지 않았다.
사도명우와 막라에 관한 일도 묻지 않고, 그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히 항소운을 대했다.
그는 자신을 평범한 능지기로 여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