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548
제548화 뜻밖의 수확
붉은 화염이 동굴 속에 있는 온갖 것들을 활활 태워버렸다.
온도가 무섭게 치솟아 숨도 쉴 수 없게 만들었다.
거대 원숭이는 이 일대의 왕 노릇을 하는 녀석이었으나, 한층 강해진 운지염을 상대하기엔 힘에 부쳤다.
단단하다고 자부했던 방어막도 곧 터져버릴 위기에 놓인 것이었다.
거대 원숭이는 쉴 새 없이 포효를 내지르며 화염을 제압하려 애썼으나, 전부 헛수고였다.
항소운이 불의 진의를 일으킨 탓에 화력은 한층 거세졌다.
불길이 세찬 파도처럼 몰아치자 결국 방어막은 무너지고 말았다.
녀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더 깊숙이 달아났다.
거대 원숭이의 행동에서 항소운은 본능적으로 이 동굴 속에 귀한 보물이 숨겨져 있음을 직감했다.
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셔 눈앞의 화염을 모조리 거둬들이고는 동굴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동굴 속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으나, 그는 가볍게 무시한 채 계속 걸음을 옮겼다.
비록 분신이기는 하나, 무공은 진신보다 높았다.
하물며 이 불길은 운지염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던가.
그는 속도에 박차를 가해 동굴 깊숙이 들어갔으나, 얼마나 깊던지 그의 속도로도 끝이 보이질 않았다.
얼마쯤 지나자, 거대 원숭이가 움츠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쩐 일인지 녀석은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제야 항소운도 걸음을 늦추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전방에서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원숭이 주변의 암벽에는 자그마치 상급 수정들이 대량 박혀 있었다.
그리고 뒤편에는 아주 깨끗한 노란빛의 힘이 떠다니고 있었는데, 그 양이 많지는 않아도 매우 공포스러운 살기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항소운은 그 힘이 단순한 살기가 아닐 거라 짐작했다.
어쩐지 그 힘은 매우 순수한 흙의 힘도 품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가 가진 어둠 본연의 힘과도 비슷한 면이 있었다.
거대 원숭이는 대단한 실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이 살기는 두려운 모양이었다.
겁을 잔뜩 먹고 움츠리고 있는 모습이 덩치와 영 어울리지 않았다.
“이봐, 이만 복종하지 그래? 안 그러면 네놈은 이 자리에서 죽는다!”
항소운은 상대에게 퇴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기세가 사납게 돌변했다.
물론 거대 원숭이도 순순히 복종할 녀석은 아니었다.
녀석은 괴성을 내지르며 낭아봉(狼牙棒: 방추형 머리에 무수한 가시가 있는 무기)을 꺼내 들었다.
이는 녀석이 직접 만든 무기로, 이번 승부에 마지막 사활을 걸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동굴 안은 거대 원숭이가 움직이기에는 턱없이 비좁았다.
그건 항소운도 마찬가지였으나, 그래도 움직임에서 훨씬 여유가 있었다.
항소운은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상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가 대비수를 펼치자, 사방에서 거대한 손바닥이 뻗어져 나와 원숭이를 연신 후려치기 시작했다.
거대 원숭이는 순식간에 살점이 뜯어져 나가고 피투성이가 되자 심장이 멎을 뻔했다.
“내가 졌다! 살려만 주십시오!”
거대 원숭이가 허겁지겁 말했다.
항소운은 영 뜻밖이라는 얼굴이었다.
그는 공격을 멈추고 물었다.
“진작 그럴 것이지. 처음부터 내 말 들었으면 이런 험한 꼴도 당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한데 저 살기는 뭐지?”
“저도 잘은 모르지만, 여하튼 아주 무서운 힘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절대 평범한 살기가 아니에요. 일전에 제급 재료를 실수로 떨어뜨렸는데 바로 가루가 돼버렸지 뭡니까.”
“여긴 네가 사는 곳이잖아. 한데 너도 이것의 정체를 모른단 말이야?”
항소운이 언짢은 투로 묻자, 거대 원숭이가 황급히 대답했다.
“아마도 지현정기(地玄精氣)일 겁니다.”
지현정기(地玄精氣)는 매우 보기 드문 귀한 힘이었다.
비록 본연의 힘은 아니나, 그에 버금가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대지 아래서 만 년의 세월을 거치며 형성된 정기(精氣)로, 만 년의 화염과 유사한 존재였다.
살기는 아니지만, 살기의 근본을 품고 있어 무엇이든 부패시켰다.
무엇보다 지현정기를 제련시켜 체내로 흡수하면 전투력이 강화될 뿐 아니라 파괴력이 증대되었으며, 또 혼태를 응집할 때 사용되는 최고의 재료로 뽑혔다.
항소운이 일전에 찾은 흑석현석보다도 훨씬 귀한 재료이니 그 가치는 상상을 초월했다.
지현정기가 진화를 거듭하면 최종적으로 지모지기(地母之氣)가 형성되는데, 이는 태초의 땅의 힘으로 만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할 정도로 아주 귀한 존재였다.
지모지기는 말할 것도 없고, 눈앞의 지현정기 역시 전천 경지의 성인이라 해도 탐낼 만한 것이었다.
용봉 산맥 변두리에 이런 귀한 영물이 있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거대 원숭이는 원래 황급 요수였으나 우연한 기회에 지현정기를 발견하고 이곳에서 수련에 매진한 결과, 무력이 급속도로 높아지면서 현재는 어엿한 제급 요수가 되었다.
그런데도 녀석은 아직도 지현정기에 닿는 것을 극도로 무서워했다.
그만큼 저 정기의 위력이 강하다는 뜻이리라.
항소운은 기운의 정체를 알고 나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여기서 지현정기를 발견하다니, 이게 웬 복이냐? 하하하!”
그는 혼태경에 오르기 위한 조건을 알게 된 뒤로 최상급 재료에 대해 더욱 관심을 두게 되었다.
반드시 좋은 재료를 찾아 혼태를 응집하고 마리라 다짐했는데, 지금 눈앞에 나타나다니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아직 기뻐하긴 이릅니다. 지현정기는 쉽게 거둘 수 있는 존재가 아니거든요. 성급 강자는 되어야 만질 수라도 있지, 그 외에는 닿는 순간 죽고 말 겁니다.”
거대 원숭이가 흥분한 투로 말했다.
그제야 항소운도 눈앞의 현실이 바로 보였다.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가 되겠구나 싶었다.
“그래도 시도는 해 봐야지. 넌 밖으로 나가 호법을 하고 있어.”
항소운의 말에 거대 원숭이는 하는 수 없이 동굴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실은 항소운이 지현정기에 먹히길 내심 바라고 있었다.
그는 거대 원숭이가 밖으로 나가기 전, 한발 앞서 은자에게 전음을 보냈다.
거대 원숭이가 이미 굴복했으니 앞으로는 싸우지 말라고 하면서 둘이 함께 동굴 밖을 지키며 지현정기에 대해 넌지시 알아보라고 했다.
뒤이어 그는 지현정기 쪽으로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았다.
양은 그다지 많지 않으나 기세가 대단하여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압박감이 느껴졌다.
짙은 흙의 힘에 촉촉이 적셔진 자리에는 상급 수정이 대량으로 자라나 있었는데, 이 정도면 어마어마한 가치였다.
섣불리 만질 수는 없어 우선 황급 병기를 하나 꺼내 던져보았다.
놀랍게도 황급 병기는 정기에 닿자마자 가루가 되어버렸다.
아무래도 강한 부식력 때문에 녹아버린 것 같았다.
거대 원숭이의 말을 듣기는 했으나, 막상 눈으로 확인하자 막막해졌다.
“정말 무서운 힘이다. 이 정기도 살기의 부식력을 갖고 있나 본데……. 대체 어떻게 해야 거둬들일 수 있지?”
황급 병기는 물론 제급 병기라 해도 꼼짝없이 가루가 될 게 분명했다.
그것보다 높은 등급의 병기도 없으니 지금으로서는 마땅한 방도가 없었다.
한참 고민한 결과, 아무래도 진신이 와야 정기를 거둬들일 수 있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진신은 만물을 담을 수 있는 성해건곤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여러 힘을 그 속에 담고 있으니 동굴 전체를 거둬들이는 것도 문제없을 터였다.
지현정기에 직접 닿지 않는 한, 큰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진신은 어느새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분신은 진신을 기다리면서 지현정기를 흡수할 수 있는지 확인해볼 요량으로 정기를 살짝 끌어당겼다.
극히 소량에 불과했으나, 정기에 닿자마자 엄청난 통증이 몰려왔다.
그는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물러났다.
“와, 하마터면 죽을 뻔했네.”
그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또 중얼거렸다.
“역시 분신은 한계가 있구나. 진신이 가진 모든 기술과 힘을 동일하게 쓸 순 있지만, 성진이 없다 보니 다른 힘을 흡수할 수는 없어. 분신이 강해지기 위해선 영혼력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겠군.”
그저 정기를 흡수할 수 있나 시험하려던 것뿐인데, 우연히 분신과 진신의 차이를 알게 됐으니 뜻밖의 수확이라 할 수 있었다.
결국 분신은 진신과 다를 수밖에 없었다.
진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분신이 꼭 해내리란 법은 없으나, 진신이 가진 기술이나 힘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분신의 전투력이 진신보다 한 수 위인 것도 극명한 차이점이었다.
얼마 후, 항소운의 진신이 애기를 데리고 동굴 앞에 나타나자 은자와 거대 원숭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누, 누구냐? 형님과 완전히 똑같이 생겼잖아.”
은자가 놀라서 멍하니 묻자, 항소운이 냅다 꾸짖었다.
“이 녀석 봐라. 내 속에서 아홉 빛깔 구름을 실컷 먹을 때는 언제고, 이젠 내가 누군지도 모른단 말이냐?”
“형님? 그럼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예요?”
흉대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자는 내 분신이야. 알았으면 썩 비켜. 난 지현정기를 거둬들이고 올 테니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해줄게.”
항소운은 이렇게 말하며 동굴 안으로 급히 들어갔다.
은자와 거대 원숭이는 두말하지 않고 길을 비켜주었으나, 여전히 어리둥절한 모양이었다.
잠시 후, 동굴의 최심부에 도착한 항소운의 진신은 분신과 다시 합일을 이루었다.
분신이 그랬던 것처럼 그 역시 지현정기를 한 줄기 끌어당겼다.
그는 이번에는 흙의 성진을 열어 진의를 일으키면서 성진 속으로 빨아들였다.
“으아아!”
한 줄기 정기가 그의 체내로 들어온 순간, 그는 온몸이 찢기고 부식된 듯한 엄청난 고통을 느꼈다.
천둥의 겁을 넘고 뜨거운 화염에 단련했을 때보다 고통이 몇 배는 더했다.
지현정기의 위력이 너무 강하고 등급이 지나치게 높은 탓에 상대적으로 무공이 약한 그는 끔찍한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최상급 제존이나 전천의 경지였다면, 이 정도로 고통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의지력은 대단해서 항소운은 고통을 억지로 참아내고 있었다.
그는 회천비술을 펼쳐 부식된 경맥과 오장육부를 치료했으며, 체내로 들어온 지현정기를 흙의 성진에 강제로 집어넣었다.
지현정기는 흙의 성진에 들어가서도 성미를 못 버리고 성진마저 부식시키려 했다.
마치 세상의 그 어떤 존재도 자신을 속박할 수 없다고 외치는 것 같았다.
항소운은 재빨리 전결을 운행하면서 지현정기의 힘을 끊임없이 분해했다.
쉴 틈 없이 제련하고 압박을 가해 자신의 힘과 완벽히 융화되도록 말이다.
항소운이 흡수한 것은 한 줄기뿐이었으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끔찍한 고통을 참아가며 온 힘을 다해 맞선 결과, 부식력이 차츰 약해지는가 싶더니 몸속 성진의 힘과 점점 조화를 이루면서 마침내 혼연일체를 이루었다.
달리 말하면 지현정기를 융합하는 데 성공했다는 뜻이었다.
그 순간, 흙의 성진의 힘이 급속도로 상승했다.
수개월, 심지어 일 년은 수련해야 가질 수 있는 힘이었다.
뿐만 아니라, 흙의 성진에서 발산된 정기는 금의 성진처럼 짙은 살기를 품고 있었다.
실제 대결에서 사용한다면, 대단한 파괴력을 발휘할 것임이 틀림없었다.
항소운은 계속해서 지현정기를 몇 줄기 더 빨아들였다.
수차례 고통을 겪으며 힘을 누르고 또 압축한 결과, 흙의 성진에는 더는 흡수하지 못할 정도로 힘이 끝까지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