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571
제571화 꿈이 아니었어
은자가 화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은자는 그렇게 소패왕 무리와 맞붙어 싸웠으나, 상대가 워낙 강하다 보니 호각은 되찾지도 못하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재빨리 도망가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소패왕에게 포로로 잡혀갈 뻔했다.
“감히 내 보물을 뺏었다 이거지? 두고 봐, 우리 형님한테 전부 일러바칠 테니까!”
은자는 분해서 소리를 빽 지르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은자는 눈앞에서 호각을 놓치자 속이 무척 상했다.
항소운부터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그 길로 정신없이 내달렸는데, 뜻밖에도 길에 쓰러져있던 당용비를 발견했다.
당용비는 곧 숨이 넘어갈 듯 위독한 상태였다.
깜짝 놀란 은자는 당용비를 얼른 등에 싣고 서둘러 성을 빠져나갔다.
안전한 곳에 도착하자, 은자는 당용비에게 은광뇌액부터 먹였다.
덕분에 사경을 헤매던 당용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차렸다.
“은자야, 고맙다.”
당용비가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고맙긴요. 소운 형님한테 형님이시면, 저한테도 형님이나 마찬가지죠. 다른 생각 마시고 얼른 몸부터 추스르세요.”
당용비는 머리를 살짝 끄덕이고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는 그동안 아껴두었던 보물로 육신에 침투한 죽음의 기운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이래 봬도 그는 죄혈성 성주의 아들이었다.
집을 떠날 무렵, 위급한 순간에 쓰라며 특별히 주신 물건도 아직 품에 간직하고 있었다.
한편, 미환진을 빠져나온 구양전기는 보물을 찾기 위해 성 이곳저곳을 뒤졌다.
얼마 후, 그는 돌무더기 속에서 낡은 화로를 발견했다.
워낙 낡은 탓에 주변 사람들은 별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는데 구양전기가 불의 힘을 불어넣자, 화로에서 광채가 번뜩이며 불길이 화르륵 일어나는 것이었다.
아주 강력하면서도 특별한 화염이었다.
그걸 보고 누군가 큰소리로 외쳤다.
“연천로(煉天爐)다!”
이 말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구양전기 쪽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구양전기는 연천로를 뺏기지 않기 위해 불의 창을 닥치는 대로 휘둘렀다.
용봉 학당에서 무공 천재로 불리는 그는 4대 학당의 제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이곳에서도 최상위에 속했다.
그렇다 보니 적수가 될 만한 상대는 몇 되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전무한 것은 아니었다.
때마침 진무 학당의 천재가 진심으로 달려들었다.
항소운과도 안면이 있는 고봉이었다.
그녀의 무공도 상당해서 구양전기와 맞붙자 곧장 치열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두 사람 모두 오랜 명문가의 자손들이다 보니 각자 대단한 무공을 여럿 가지고 있었다.
어찌나 격렬하게 싸우던지 다른 사람들은 끼어들 틈도 없었다.
“연천로를 내놔라. 그건 네가 가질 만한 물건이 아냐!”
“그럴 능력이 있으면 뺏어보든가.”
고봉의 호통에 구양전기가 맞받아쳤다.
그는 한 손에 화로를, 반대편 손에는 불의 창을 쥔 채 연신 창을 찔러댔다.
시간이 지날수록 힘이 빠지기는커녕 오히려 강해져만 갔다.
“죽고 싶어 환장한 모양이군. 그렇다면 당장 지옥으로 보내주마!”
고봉은 고함을 지르며 공중으로 훌쩍 날아올랐다.
마치 봉황이 날아오르듯 우아한 자태였다.
뒤이어 그녀가 연검을 잇달아 내찌르자, 무수한 검광이 날카로운 깃털이 되어 일제히 떨어졌다.
역시 진무 학당 7위의 실력은 남달랐다.
그녀의 무공은 구양전기보다도 한 수 위로, 그를 전방위에서 압박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호락호락 당하고 있을 구양전기가 아니었다.
그는 다년간 홀로 무공을 연마한 터라 특히 실전에 강했다.
공격에 집중하는 듯하면서도 퇴로를 확보해 뒤로 빠지는 통에 고봉은 차츰 조바심이 났다.
이쯤 되자, 그녀의 동료들도 가만있을 수가 없어서 사방에서 포위를 하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구양전기는 또 기가 막히게 퇴로를 확보해서 그 길로 냅다 도망쳤다.
하지만 어렵사리 찾은 보물을 고봉이 쉽게 포기할 리는 없었다.
그녀는 전속력을 다해 그 뒤를 쫓았다.
한편, 한신비는 운 좋게 만년한철을 손에 넣었다.
만년한철은 성급 무기를 만드는 데 쓰이는 재료로, 무척 귀했다.
그리고 그녀는 빙한의 기운을 내뿜는 우물을 발견했다.
빙한의 기운이 짙은 걸 보니 극한의 성질을 가진 보물이 숨겨져 있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직접 들어가서 확인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녀가 채 뛰어들기도 전에 구궁 학당과 신록 학당의 제자들이 앞다퉈 달려드는 것이었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물로 뛰어들려 했다.
한신비의 무공은 9품 입룡경이었으나, 그렇다고 저들을 전부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구궁 학당에는 그녀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도 있었는데, 그자는 다짜고짜 우물 입구를 틀어막고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남자의 이름은 냉강(冷江).
구궁 학당 무공 서열 5위로, 얼음의 힘을 연마했다.
“어이 아가씨, 우물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내 연인이 돼준다면 데리고 들어갈 수도 있는데 말이야.”
한신비를 위아래로 훑으며 냉강이 음흉한 웃음을 날렸다.
“좋아요. 그럼 같이 들어가요.”
그녀는 싱긋 미소를 짓더니 매력적인 몸짓으로 사뿐히 다가갔다.
냉강은 홀딱 반한 것처럼 보였으나, 내심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한신비는 냉강과 거리가 가까워지자, 갑자기 정체 모를 물체를 휙 던졌다.
냉강은 거의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무기를 휘둘러 그 물체를 베어버렸다.
순간,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아주 강력한 힘이 폭발하면서 그는 그 충격으로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이때, 미향이 훅 풍겨왔다.
그는 집중력이 흐트러진 나머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들이키고 말았다.
일순 머리가 핑 돌면서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한신비는 이때를 틈타 그를 가볍게 제치고는 우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못된 년, 거기 안 서!”
뒤늦게 정신을 차린 냉강이 냅다 고함을 지르며 우물로 뛰어들었다.
이쯤 되자 다른 사람들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나둘 우물로 뛰어들었다.
“으악!”
날카로운 비명이 들리더니 뒤이어 몇 사람이 밖으로 후다닥 튀어나왔다.
그들은 온몸이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우물 속 빙한의 기운이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한신비와 냉강만은 끝끝내 올라오지 않았다.
둘 중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지 다들 궁금하단 표정이었다.
한편, 헌원천도 괜찮은 보물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의 무공은 전체 제자 가운데 중간 정도에 불과해서 이들을 제치고 보물을 손에 넣기란 하늘에 별 따기나 마찬가지였다.
다른 자들과 싸워 이길 자신이 없을 바에야 차라리 과감하게 포기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행선지를 바꾼 그는 다른 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러다 보면 우연히 보물을 찾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과연 오늘은 운수가 대통했는지 생각지도 못한 보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정신없이 성을 뒤지며 보물을 찾는 사이, 천왕전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시공간으로 사라져버렸다.
석관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온했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던 시체도 그대로였다.
다만 석관 위 성급 수정만은 어슴푸레 빛을 발하고 있었다.
강한 빛은 아니어도 어딘가 모르게 범상치 않았다.
그런데 항소운은 어쩌다가 석관에 빨려 들어간 걸까?
그리고 관 속에 무엇이 들어있길래 그토록 놀랐던 것일까?
석관 뚜껑이 열렸을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건 누군가의 시체였다.
시체는 그와 놀라우리만치 닮아있었다.
굳이 다른 점을 꼽자면 항소운보다 성숙해 보인다는 것.
그리고 고대에나 입었을 법한 갑옷을 걸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미 생명의 기운이 사그라들었는데도 위풍당당한 모습은 전혀 퇴색되지 않았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석관에는 시체가 있었으나 정체 모를 힘이 터져 나와 그를 빨아들였다.
관 속 시체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더니 그가 시체를 대신해 석관에 누워있었다.
관 속에 누워있는 그를 다른 사람들이 봤다면 너무 놀라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슬피 애도했을 것이다.
관이라 하면 죽은 사람이 영면을 취하는 곳인데, 어찌 산 사람이 송장을 대신해 누워있단 말인가.
아무래도 썩 좋은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자신의 처지를 까맣게 모른 채 아득한 망망대해로 빠져들고 있었다.
얼마 후, 항소운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전쟁터의 한복판이었다.
사방에서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서로 죽고 죽이는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는 여섯 마리의 용이 끄는 병거(兵車)를 타고 있었다.
바람에 휘날리는 피풍의 위로 두꺼운 갑옷을 걸친 채 위풍당당한 모습이었다.
문득 그의 시야에 엄청난 수의 대군이 들어왔다.
순간, 그의 눈빛이 놀라움과 당혹감으로 변했다.
‘여긴 어디지?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야?’
끝도 없는 의문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왜 여기에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한가하게 생각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었다.
화살이 포물선을 그리며 그가 있는 쪽으로 곧장 날아오고 있었다.
그 엄청난 기세를 보니 아무래도 제존이 쏜 화살인 듯했다.
번쩍 정신을 차리고 아슬아슬하게 피하기는 했으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는지 화끈거렸다.
“꿈이 아니었어.”
너무 놀란 나머지 머릿속이 멍해졌다.
“왕상, 왜 그러십니까. 설마 이대로 전쟁을 포기하실 겁니까?”
옆에 있던 장군이 조용히 물었다.
항소운은 장군을 물끄러미 봤다가 고개를 돌려 점차 포위를 좁혀오는 대군을 바라보았다.
순간, 그의 눈빛이 또렷해지는가 싶더니 힘차게 외쳤다.
“돌격!”
꿈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곳을 뚫고 나가야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을 터였다.
손에 든 무기를 힘차게 휘두르자, 기세가 되살아나면서 강력한 지도자의 면모가 사방에 떨쳤다.
“돌격!”
병사들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비록 숫자는 적으나 대규모로 밀어닥치는 적군을 앞에 두고도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이들은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자세로 적군을 향해 돌진했다.
지금은 반란군이지만, 과거에는 나라를 위해 목숨도 마다하지 않던 충신이었다.
이들은 억울하게 모함을 받은 피해자이자, 역적 논란으로 가족을 잃은 희생자였다.
그동안 참고 참았던 울분과 서러움이 봇물 터지듯 폭발하였으니 이들의 기세를 어찌 꺾을 수 있겠는가.
이들의 비통한 심정은 항소운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는 최고 통솔자이자, 이들이 반역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면서도 끝까지 따르고 있는 정신적 지주였다.
자신을 믿고 따라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그는 힘을 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찌 군대를 통솔하고 적을 무찌르겠는가.
항소운은 사일궁을 꺼내 화살에 힘을 집중시켰다.
활은 적군의 대장군을 겨누고 있었다.
사일전법. 태양도 떨어뜨린다는 절세의 궁술이었다.
항소운은 태초의 시기를 불러일으켜 화살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그가 팽팽하게 잡아 당겨진 활시위를 놓자, 강한 빛이 일순간 터져 나오면서 화살이 눈 깜짝할 사이에 적진을 가로질렀다.
화살은 대장군을 향해 무서운 기세로 날아들었다.
“대체 무슨 힘이길래 아홉 가지 광채를 내뿜는단 말이냐!”
적의 대장군의 놀란 외침이 들려왔다.
그러나 당황한 것도 잠시였고,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칼을 휘둘러 화살을 베어버렸다.
쿵, 하는 굉음이 사방에 울려 퍼지며 육중한 힘이 휘몰아쳤다.
대장군은 아무런 타격도 없었는지 미동도 하지 않았으나, 별안간 그가 쓰고 있던 투구가 쩍 하고 갈라졌다.
그는 치욕에 몸을 떨며 병사들에게 호통을 쳤다.
“반란군을 모조리 쓸어버려라.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