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577
제577화 줏대 없기는
항소운은 왠지 온몸에서 힘이 불끈 솟는 기분이었다.
저축계 안에는 고서가 몇 권 들어있었다.
한 권은 라는 진법서이고, 또 다른 책은 으로, 병법의 요체가 담겨있었다.
항소운은 이런 류의 책에 별달리 흥미가 없어서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오색 빛을 내뿜는 돌이었다.
그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서, 설마 그 귀하다는 혼돈신석(混沌神石)?”
혼돈신석.
천지가 생겨나고 만물이 진화할 무렵 탄생한 전설적인 신물(神物)이다.
혼돈의 힘에 함빡 적셔져 만들어진 것으로, 힘의 흡수 속도를 높일 뿐 아니라 체질을 개선할 수도 있었다.
고서에서는 혼태를 만들 때 쓰이는 최고급 재료라 소개하기도 했다.
이는 신성한 돌로, 일부 종족에서는 진귀한 보물로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했고, 신급 병기를 만들 때 사용하기도 했다.
다만, 실제로 혼태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사람은 없어서 고서에 적힌 내용은 그저 전설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항소운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누가 뭐래도 혼돈신석은 이번 여정 최고의 수확이었다.
혼돈신석은 전천 경지의 성인이라 해도 탐낼 만한 물건이었다.
“이렇게 귀한 보물을 얻다니, 역시 전쟁의 신은 다르다니까. 좋았어!”
그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 남은 물건을 살폈다.
보물 지도처럼 보이는 찢어진 지도였다.
지도에는 뜻을 알 수 없는 표식들이 있었고, 뒷면에는 ‘옛 황조의 비밀’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무래도 전쟁의 신이 적어놓은 것 같았다.
언뜻 봐도 예사롭지 않은 지도였다.
다만, 일부분만 남아있어서 지금으로서는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다.
“뭐 됐어, 이 정도로 만족해야지. 그리고 유서에 보면 후원에 망가진 호각이 있고, 우물에는 빙백지심, 그리고 무기고에도 무기가 꽤 있다고 했어……. 이런 것까지 전부 챙기고 나면, 그래도 만족스러운 수준은 되겠는걸.”
그는 석관 뚜껑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석관을 지탱하던 힘이 전부 사라졌는지 크게 힘들이지 않고 열렸다.
석관 앞에 무릎을 꿇고 있던 시체는 처음 모습 그대로였다.
항소운은 시체를 지나치더니 텅 빈 석관을 향해 조용히 합장했다.
“아미타불. 이젠 당신이 제 전생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앞으로 당신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살겠습니다.”
석관은 그에게 진귀한 보물을 안겨 주었다.
하나, 그런 것들보다 수만 적군을 뚫고 적군 대장군의 목을 베었던 그 전쟁은 훨씬 값진 경험이었다.
전장 한복판에서 전쟁의 무자비한 살육을 직접 목격했고 또 그 행위자가 되어 싸웠다.
그리고 ‘난무’에 이어 ‘봉적’이라는 새로운 초식을 만들었으며, 세 가지 성진의 힘을 한데 융합시켜 싸움에 적용하기도 했다.
앞으로 계속 연마하다 보면 여러 성진의 힘을 결합한 기술을 창조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과정은 진의의 힘을 결합하고 깨달음을 얻는 데도 큰 도움이 될 터였다.
그리고 그 전쟁은 자신의 한계와 약점이 무엇인지 깨닫는 기회였다.
부족한 점을 보완하며 열심히 무공을 갈고 닦는다면 훗날 그의 앞을 막을 자는 없을 것이다.
밖으로 나와 보니 천왕전은 공중에 떠 있었다.
무언가로 가리어진 탓에 바깥에서는 이런 건물이 있다는 것조차 알 수 없었다.
이곳에서 나가기 위해서는 전각을 둘러싼 진법을 풀어야 했다.
물론 천왕전은 이제 그의 소유라서, 평범한 전각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여기서 나가려면 쉽지 않겠는데.”
항소운은 쓴웃음을 지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는 만진도해를 펼쳐 놓고 이곳의 진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지혜의 빛이 있으니 진법의 진형에 대해서도 금방 파악이 가능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지혜의 빛을 쓰지 않고 만진도해만 펼쳤을 뿐인데 별안간 알 수 없는 기억이 머릿속 저편에서 떠오르면서 진법서 속 내용이 낯익게 느껴졌다.
만진도해 속 전술도는 마치 예전부터 봐온 듯 눈에 익었고, 단박에 이해가 되었다.
“설마…….”
책을 넘기는 그의 손길이 빨라졌다.
전술도를 보기만 해도 머릿속으로 관련된 정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는 책 속의 진법을 이미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진법의 원리뿐만 아니라 어떻게 배치하고 파훼하는지도 상세히 알고 있었다.
일순 진법 대사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 이것도 내 전생이 남겨놓은 거였어. 무공만 센 게 아니라 대단한 진법 대사셨구나. 이제 그분의 전승을 받은 거야.”
이렇게 중얼거리는 그의 얼굴에서 어째 기쁜 내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막중한 책임이 생겼다는 부담에 마음이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부터 알 수 없는 미래를 걱정해서 무엇 하겠는가.
지금은 훌훌 털어버리고 계속 전진해야 했다.
이젠 진법을 풀고 이곳을 떠나는 일만 남았다.
진법을 풀기 위해 진형 가장자리로 다가서자, 천왕전 밖에서 금갑 용귀와 금색 무늬 두꺼비가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저 두 녀석 혈통이 보통이 아니겠지. 그러니까 봉인을 당했어도 지금까지 살아남은 거겠지. 아무래도 저 둘을 제압해서 데려가는 게 좋겠어. 분명 자릉종에서 쓸모가 있을 거야.”
항소운은 입구 반대편에 서서 유유히 입을 열었다.
“금갑 용귀와 금색 두꺼비는 들어라. 본 대인이 돌아왔으니, 앞으로 충심을 다해 보필하도록 하라. 알겠느냐?”
진형 건너편의 두 요수는 그 소리에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영감, 그놈 목소리 맞지?”
두꺼비가 물었다.
“응, 나도 들었어. 어디서 되먹지도 않은 술수야. 넌 잡히면 그때부터 내 노예다.”
“오, 좋은 생각인데.”
두꺼비가 맞장구를 쳤다.
“수만 년 동안 봉인을 당해놓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느냐?”
항소운이 목소리를 낮추며 꾸짖었다.
“이놈아, 헛소리 말고 썩 나와. 그전에 우리 손에 잡히면 아주 혼쭐이 날 줄 알아.”
금갑 용귀의 코웃음이 들려왔다.
“허허, 본 대인이 남긴 유언을 그새 잊은 모양이군. 그렇다면 생각나게 해주는 수밖에.”
항소운은 냉소를 지으며 진법의 핵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가 흙의 진의를 일으키며 그 지점에 힘껏 발을 내딛자 사그라들던 아래쪽의 진법이 되살아 나는 것이었다.
순간, 천왕전 주변에 안개가 자욱해지면서 금갑 용귀과 금색 무늬 두꺼비를 갈라놓았다.
뒤이어 그는 진법의 힘을 일으켜 괴뢰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목표물은 두 요수였다.
괴뢰들은 미환진을 구성하는 일부분이다 보니 진법 속에서 더 큰 위력을 발휘했다.
금갑 용귀와 두꺼비는 힘에 제약을 받기는 해도 워낙 무력이 뛰어나다 보니 괴뢰들도 선뜻 제압하지 못했다.
“저 고얀 놈, 감히 대인을 사칭해? 어디 자신 있으면 썩 나와 보거라. 너 같은 놈은 손가락 하나로도 죽일 수 있어!”
노인으로 둔갑한 금갑 용귀가 입에 거품을 물며 소리쳤다.
미환진은 실로 대단해서 최상급 요제도 가둬버릴 정도였다.
게다가 시체들은 죽음의 기운을 내뿜고 있어서 두 요수에게도 지금의 상황은 버거웠다.
두꺼비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놈아, 썩 나오지 못해. 확 잡아먹어 버릴까 보다!”
“이거 영 말을 못 알아먹는군. 이럴 땐 매운맛을 보여줘야 정신을 차리지.”
항소운은 이렇게 말하며 진법의 무서운 살상력을 가동했다.
순간, 엄청난 힘이 두 요수를 향해 날아갔다.
그것은 성급 경지에 이른 절세의 진법이었다.
항소운의 무공으로는 진법의 위력을 십 분의 일도 발휘하기 힘들지만, 저들에게 쓴맛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했다.
쾅 하는 굉음을 내며 진법의 힘이 두 요수 위로 사정없이 떨어졌다.
두 요수는 방어를 했다가 힘껏 반격도 해보았으나, 진법 너머 항소운을 공격할 수는 없었다.
진법에 정신없이 들볶이던 그들은 결국 본래 모습을 드러냈다.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오자, 이들의 위력은 한층 거세졌다.
금갑 용귀의 권법은 실로 대단해서, 그가 주먹을 내뻗자, 산천이 흔들리면서 엄청난 기세를 내뿜었다.
두꺼비의 합마공은 가히 절세의 무공이라 할 만했다.
두꺼비가 힘을 모은 뒤 훅 내뱉자, 모래와 돌이 마구 날리면서 대혼란이 벌어졌다.
안개에 가려져서 그렇지, 사실 이 둘은 꽤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항소운은 꾀를 부려 이 둘을 유인해 서로를 공격하게 만들었다.
기껏 공격한 대상이 서로라는 것을 알자, 두 요수는 짜증이 버럭 났다.
“영감, 왜 날 때리고 난리야?”
두꺼비가 벌컥 성을 냈다.
“그러길래 누가 거기 있으래?”
금갑 용귀도 발끈해서 대꾸했다.
“빌어먹을. 우선 이 진법부터 깨뜨려야겠군. 안 그랬다간 저놈한테 계속 놀아날 거야.”
“좋은 생각이야. 흥, 우리가 이깟 진법 하나 못 뚫을까. 어서 힘을 합쳐 여길 부숴버리자고.”
두꺼비의 제안에 금갑 용귀가 찬성을 하고 나섰다.
“요놈들 봐라. 이제 좀 컸다고 눈에 뵈는 게 없나 보지? 이제부터 진짜 고통이 무엇인지 똑똑히 느끼게 해주마.”
항소운은 여전히 자신만만했다.
그는 성령기를 진법의 중심을 향해 내던졌다.
성령기가 중심에 꽂히자, 본래 성급에 달했던 진법의 힘이 한층 거세지면서 무수한 악령이 괴성을 지르며 쏟아져 나왔다.
거센 충돌에 두 요수는 비명을 지르며 나동그라졌다.
두꺼비의 방어력은 금갑 용귀만도 못해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얼마 못 가 죽을 판이었다.
반면, 금갑 용귀는 등껍질 속에 몸을 웅크린 채 묵묵히 고통을 견디고 있었다.
그런데도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결국 온몸이 터져 죽고 말 터였다.
그 후로 진법의 공격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견디다 못한 두꺼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대인,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앞으로 충심을 다해 보필하겠습니다. 대인의 말씀에 무조건 복종할게요.”
지금 항복하지 않으면, 목숨도 부지하기 힘들었다.
어렵사리 지금의 무공에 이른 그였다.
아직 살날도 창창한데 이렇게 죽을 수는 없었다.
“그 말 믿어도 되겠느냐?”
“예, 당연하지요. 제 종족의 명예를 걸고 맹세합니다. 만약 어긴다면, 거북이로 변하고 말 겁니다.”
잠자코 듣고 있던 금갑 용귀가 발끈 성을 냈다.
“저런 겁쟁이를 봤나. 왜 우리 거북족을 들먹이고 난리야? 넌 금방 죽을 테니, 거북이 될 생각은 꿈도 꾸지 말아라.”
두꺼비는 금갑 용귀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조용히 항소운의 대답을 기다렸다.
“좋다. 넌 저기서 기다리고 있거라.”
항소운은 진법의 힘을 조절해 금갑 용귀를 집중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금갑 용귀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대인, 살려주십시오. 신하가 되겠습니다.”
“흥! 줏대 없기는.”
두꺼비가 비아냥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위대한 대인을 위해 이 한 몸 바칠 수만 있다면 이 늙은이의 영광이지요. 요수라면 모름지기 줏대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위대한 대인이시여, 부디 윤허해주시옵소서.”
금갑 용귀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낯간지러운 말을 늘어놓았다.
옆에서 듣고 있던 두꺼비는 ‘저런 뻔뻔한 놈!’ 하며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좋다, 다짐도 받았으니 이 일은 이쯤에서 끝내도록 하지. 나도 환생을 하긴 했으나, 아직 무공은 예전만 못하다. 하나, 얼마 후면 다시 예전 실력을 되찾게 되겠지. 물론 너희도 지금보다 훨씬 성장하게 될 거다.”
항소운은 아주 태연한 어투로 저 둘이 절대 의심할 수 없게 만들었다.
뒤이어 진법의 힘과 성령기를 거둬들인 그는 진법을 조절해 작은 길을 만들고는 그 위로 사뿐히 걸어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