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587
제587화 색마! 죽어라!
구천은 분하고 원통했다.
하나, 상대는 그를 죽일 수 있는 상황인데도 살려주었다.
상대가 독한 마음을 먹고 유극금척의 힘으로 머리를 관통했다면, 구천은 그 자리에서 꼼짝없이 죽었을 것이다.
구천은 비록 패했으나, 그렇다고 약자는 아니었다.
패인은 항소운의 속도를 얕잡아 봤기 때문이었다.
구천은 바람의 힘을 연마한 터라 속도에선 누구보다 빠르다고 자부했다.
그런 자만심이 항소운이 자염풍 못지않은 강한 힘을 지녔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하게 했다.
때문에, 기선을 제압당하면서 제대로 능력을 펼칠 기회조차 상실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가장 먼저 패할 줄은 정녕 상상도 못 했다.
결국 구천은 환생자로, 누구보다 꾀가 많고 지략이 뛰어났으나, 지혜의 빛을 가진 항소운에게는 끝내 밀리고 말았다.
항소운이 마희 쪽으로 구천을 내던지자, 그녀도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여기서 공격을 멈추지 않으면, 구천을 죽이게 될 터.
다만, 구천도 이대로 죽을 생각 따위는 없었다.
아홉 개의 검이 일순 방어태세를 갖추며 철옹성같이 그를 단단히 보호했다.
마희도 재빨리 방향을 틀어 연무대 아래로 힘을 내던졌다.
쿵, 하는 굉음과 함께 땅에 깊은 구멍이 생겨났다.
항소운은 그녀를 공격하지 않고, 다시 백리일소 쪽으로 향했다.
그는 백리일소를 구천 다음으로 제거해야 할 상대로 꼽았다.
항신희는 항소운에게 밟힌 뒤로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자, 질질 끌 것 없이 한 수로 승부를 내자!”
백리일소는 항소운의 칼에 당한 뒤로 상대의 무공이 얼마나 강한지 뼈저리게 느꼈다.
이제 힘을 감출 필요 없이 비장의 절기로 단판 승부를 보려 했다.
항소운이 다가오자, 백리일소도 일 보 전진했다.
그의 얼굴에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온화한 미소가 걸렸으나, 몸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기운이 흘러나오면서 검을 천천히 휘둘렀다.
수십 년 검도 인생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인자무적이었다.
세상 만물을 품는 제왕의 마음이 있어야 인자무적의 오묘한 이치를 깨달을 수 있었다.
백리일소는 이 검술의 요체를 속속들이 깨우쳤으니, 세상을 다스리는 제왕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백리일소가 펼친 무수한 검기가 사방을 휩쓸며 점점 세력을 넓혀갔다.
검기는 화살처럼 빠르게 날아가 끝도 없이 펼쳐진 망망대해를 이루었다.
거대한 검기의 바다에 휩쓸려 천지마저 뒤집힐 것 같았다.
이것이 바로 무적의 인자지검(仁者之劍)이었다.
언뜻 보면 파괴력이 느껴지지 않으나, 검에 닿기만 해도 상대는 바스러졌다.
백리일소가 비장의 기술을 펼쳤다는 것은 항소운과 이번 수에 끝장을 보겠다는 뜻이었다.
지금 상태에서 무수한 검기를 뚫고 백리일소를 공격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이에 맞선 항소운은 그 자리에 멈춰선 채 검은 문을 만들어냈다.
마치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새까만 구멍이 나타나더니 엄청난 힘으로 검기를 모조리 빨아들였다.
덕분에 항소운은 상처 하나 입지 않고 무사했다.
명황족의 3대 능력 중 하나인 명음지문이었다.
갑작스러운 광경에 사람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들은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항소운이 펼친 게 도통 무슨 기술인지 알 수 없었다.
‘저 많은 양의 검기를 모조리 빨아들이다니, 혹 탄천수(呑天獸)처럼 모든 것을 집어삼킬 수 있는 걸까?’
하나, 그렇다기엔 고서에 나온 것과는 모습이 달랐다.
이때, 풍혹색의 놀란 외침이 들려왔다.
“저건 명황족의 능력입니다. 저 녀석 마족이에요! 그 때문에 우리 학당도 녀석을 쫓아낸 겁니다. 우리 인간족에게 큰 화를 입힐 녀석입니다.”
그는 남들이 항소운의 정체를 모를까 싶어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장로들로부터 공감을 얻어 항소운의 승리를 전부 부정할 심산이었다.
그러나 웬걸,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항소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몸에 마족의 피가 흐른들 어떤가.
넓은 세상으로 나가면 마혈을 흡수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들은 마족의 천부적 능력을 수련하길 원했고, 이를 위해서는 마혈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그런 자들은 여느 무인보다 타고난 재능이 뛰어났다.
항소운이 마족 최고의 능력을 구사할 수 있다는 건 장로들에게 오히려 반가운 소식이었다.
이런 천재라면 두 팔 벌려 환영이었다.
그들은 항소운이 마족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추호도 갖지 않았다.
이래 봬도 전천 경지에 오른 성인들인데, 항소운이 인간인지 마족인지조차 구분 못 하겠는가.
하물며 수호 장로가 어떤 인물인데, 일개 마족 첩자를 제자로 두겠냔 말이다.
그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여, 그들은 풍혹색의 말을 귓등으로 흘렸고, 또 동시에 용봉 학당이 저런 천재를 내쳤음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경쟁전의 일등은 단연코 용봉 학당에게 돌아갔을 터였다.
그런 상황을 다른 세 학당이 반길 리 없었다.
현재 항소운은 수호 대인에게 소속될 뿐이라서, 설령 일등을 거머쥔다 해도 그들로서는 딱히 손해랄 게 없었다.
섬영은 옆에서 한숨만 지을 뿐, 풍혹색을 두둔하지도 않았다.
당시 풍혹색의 부추김에 넘어가 저런 대단한 녀석에게 밉보인 것이 잘못이었다.
항소운이 저대로 자라면 필경 초절정 고수가 될 터, 그때가 되면 학당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숨어 지내는 수밖에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죽여야 해.’
섬영은 이를 부득 갈며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이거 꿈인가? 인자무적검이 막히다니!”
“저 정도 검기면 7품 제존도 조심할 텐데, 항소운은 대체 무슨 술법으로 전부 없애버린 거지? 아무래도 이치에 안 맞잖아.”
“진정한 천재는 다르구나.”
“전설에 등장하는 명음지문 같은데? 명황족의 비술이라던데, 항소운은 어떻게 쓸 줄 아는 거지?”
“그러게, 명음지문이 맞아. 저걸 보게 될 줄이야.”
“…….”
사람들의 얼굴에는 놀란 빛이 가득했다.
그동안 화려한 대결을 많이 보긴 했지만, 방금 비무는 그중에서도 압권이었다.
항소운이 백리일소의 공격을 날려 보낸 뒤, 마무리를 지으려는 찰나 마희와 소패왕이 연합해 들어왔다.
“색마! 죽어라!”
마희는 고함을 지르며 음양 두 기운을 펼쳤다.
칠흑의 극이 음양도를 이끌고 돌진하자, 육중하고 거대한 존재가 마수를 뻗는 것 같았다.
“네가 누군지는 모르나, 우리 가문의 비급을 훔쳤으니 죽어 마땅하다!”
그러면서 항신희가 단창을 휘두르자, 이내 자줏빛 천둥이 터져 나왔다.
마치 격노한 천둥의 신이 세상을 파멸시키려 나타난 것 같았다.
좌우 양쪽에서 엄청난 힘이 달려들며 항소운을 죽이려 압박했다.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명혼공간이나 분신을 불러내는 수밖에 없으나, 아직은 스스로의 능력만으로 당당히 이기고 싶었다.
그것들은 죽을 고비가 아닌 이상, 결코 공개하고 싶지 않은 비장의 수단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고 있었다. 덤벼라!”
벼락같은 외침과 함께 항소운이 천둥과 바람, 불 세 힘을 동시에 폭발시켰다.
풍뢰교가에 뇌겁성화를 가미한 것으로, 아직 완벽한 수준이 아니라서 이름도 못 붙인 초식이었다.
그는 동시에 여러 힘을 쓸 때 위력이 얼마나 거세질지 눈앞의 두 사람을 상대로 시험해보고 싶었다.
천둥과 불의 힘이 주공이라면, 바람의 힘은 두 힘의 위력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다.
콰과광-!
세 무인의 공격이 맞부딪힌 순간,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성인의 힘으로 섬을 지탱하고 있어서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고혼도는 내려앉고 말았을 것이었다.
사람들은 혹여나 불똥이 튈까 싶어 정신없이 뒤로 물러났다.
현재 항소운은 입룡경 정점에 원만히 오른 상태였다.
지금은 혼태를 응집시킬 방도가 없어서 그렇지, 석관에서 찾은 본연의 힘이 있어서 훗날 혼태경에 오르는 것도 문제없었다.
끝내 흡수 못 한 본연의 힘은 성해건곤으로 들어가 태초의 시기가 되었다.
태초의 시기로 저 둘을 쉽게 제압할 수 있을 테지만, 아직 쓸 때가 아니었다.
고독한 강자 고독구패를 위해 끝까지 남겨둬야 했다.
고독구패는 그저 남 일 보듯 지켜보고 있었지만, 마치 제 세상인 양 폭주하는 항소운을 보고 있자니, 가슴속에서 호승심이 꿈틀댔다.
그러나 남들과 손을 잡고 항소운을 공격하는 건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그는 상대와 공정하게 겨뤄보고 싶었다.
항소운은 세 성진의 힘만으로 마희, 항신희의 협공과 균형을 이루었다.
홀로 두 천재의 공격에 맞서고도 밀리지 않았다는 건 그가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었다.
백리일소는 본래 항복할 생각이었으나, 아직 아쉬움이 남았는지 세 사람의 싸움에 합류했다.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지. 네놈의 한계를 드러내라!’
백리일소는 속으로 부르짖으며 인자무적검을 재차 펼쳤다.
이렇게 해서 세 사람이 항소운을 공격하는 형세가 되면서, 항소운의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대결이 길어질수록 마희의 무공은 더욱 빛을 발했다.
음양도는 시간마저 왜곡시키는 것 같았다.
어느새 항소운은 극에 두 차례나 찔렸고, 쉴 새 없이 퍼붓는 공격에 금갑마저 갈라지면서 사방으로 붉은 피가 흩날렸다.
항신희의 공격도 가차 없었다.
단창이 끝까지 쫓아와 연신 찔러대는 바람에 허벅지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그리고 백리일소도 검기로 숱한 상처를 안겼다.
항소운은 세 사람의 협공에도 끝까지 무너지지 않고 버텼다.
극한격활술로 몸을 단련한 노력이 지금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항소운은 방어를 하는 와중에도 적재적소에 공격을 날렸다.
마희는 각법에 어깨를 맞고, 항신희는 칼에 아랫배를 베였으며, 백리일소는 천둥 번개에 당해 만신창이가 되었다.
현재 항소운의 머릿속에서는 지혜의 빛이 끊임없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는 전신에서 온화한 빛을 내뿜으며 저도 모르게 기묘한 상태에 빠져들었다.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린 그는 9대 성진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갔다.
금의 진의는 단단하고 견고했으며, 나무의 진의는 생명력을 꽃피웠고, 물의 진의는 끝도 없이 펼쳐졌다. 그리고…….
진의의 힘이 서로 교차하는 가운데, 항소운은 그 속에서 진의의 참뜻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불현듯 자신에게 무한한 가능성이 있음을 느낀 것이다.
빛의 진의!
그는 지혜의 빛으로부터 빛의 진의를 일으켰다.
그저 무의식에 따랐을 뿐, 이유 따위는 없었다.
빛의 진의가 발현한 순간, 하늘에 눈부시도록 새하얀 빛이 등장했다.
강렬한 빛에 사람들은 눈조차 뜰 수 없었다.
마치 시간이 그대로 멈춰버린 것 같았다.
마희와 항신희, 백리일소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빛의 힘이 품고 있는 신묘한 위력이 그들의 움직임마저 멈추게 했다.
그러나 실은 이 모든 것이 착각에 불과했다.
빛이 너무 강렬한 나머지 갑자기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면서 시간이 멈췄다는 착각이 든 것이다.
지혜의 빛과 빛의 진의가 이루어낸 합작품이었다.
모처럼 온 기회를 날려버릴 수는 없었다.
항소운은 가장 가까이 있던 마희에게 잽싸게 다가가 용린비를 사정없이 휘둘렀다.
퍽-!
그녀는 넋을 놓고 있다가 연신 얻어맞고는 피를 토하며 날아가 버렸다.
뒤이어 그는 항신희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새 정신을 차린 항신희는 바로 방어태세에 돌입하여 일말의 틈도 허용치 않았다.
“은자야, 어서 나와!”
항소운이 용린비를 휘두르는 사이, 기다란 그림자가 쏜살같이 나타났다.
은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