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588
제588화 마지막 싸움의 시작
상대가 요수를 불러낼 줄 꿈에도 몰랐던 항신희는 그만 은자에게 덥석 물리고 말았다.
무인과 그의 탈것이 연무대에서 함께 싸우는 것은 규정상 허용되고 있었다.
어느 전투에서건 요수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역할을 담당했다.
항소운과 은자는 호흡이 잘 맞는 한 쌍이었다.
그가 은자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면, 녀석은 언제고 달려 나와 싸웠다.
게다가 은자에게는 다른 물체에 달라붙어 은신하는 능력이 있었다.
일전에 항소운이 싸웠던 화염 사자도 그러했는데, 은자는 그보다도 훨씬 속도가 빨랐다.
공격을 시작할 새도 없이 항신희는 은자에게 허리를 물리고 말았다.
은자의 입이 안쪽으로 더 들어갔으면 허리가 잘려 죽었을 것이었다.
물론 항신희도 호락호락한 자는 아니었다.
그가 자줏빛 천둥의 힘을 일으키자, 엄청난 힘이 터져 나오는 바람에 은자도 그를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아주 순수한 천둥의 힘이군. 입이 다 얼얼하네. 하지만 맘에 들어.”
은자는 재차 항신희에게 달려들며 꼬리를 힘껏 휘둘렀다.
자세도 제대로 못 갖춘 상태에서 얻어맞자, 항신희는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지고 말았다.
은자가 후속 공격을 날리려는데 자전마가 달려들더니, 천둥의 힘이 실린 발굽으로 연신 내리치는 것이었다.
요황급 정점인 자전마의 전투력은 예사롭지 않았다.
강력한 자줏빛 천둥의 힘을 지니고 있어 두 요수의 싸움은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항소운은 은자에게 그쪽을 맡긴 채 자신은 백리일소에게 향했다.
용린비를 잇달아 휘두르자, 그때마다 금빛 용이 머리를 치켜올리며 맹렬한 기세로 돌진했다.
압도적인 제존의 기세가 상대를 짓눌렀다.
백리일소의 영혼력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항소운만 못했다.
무수한 검기가 용린비에 뿔뿔이 흩어졌고, 항소운은 여세를 몰아 더욱 바짝 접근했다.
그가 양팔을 동시에 휘두르자 백리일소는 연신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백리일소는 항소운이 끝끝내 태초의 시기를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 달갑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절기를 펼칠 준비를 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상대가 비장의 절초를 꺼내도록 하리라.
하나, 동작을 취하기가 무섭게 항소운이 초식을 봉쇄하는 것이었다.
바로 ‘봉적’이었다.
항소운은 상대가 절기를 펼치려는 찰나, 바람의 힘을 최대로 끌어올림과 동시에 용린비로 손목을 내리쳐 공격을 저지했다.
뒤이어 범의 세찬 포효가 목구멍을 뚫고 나왔다.
갑작스러운 음파 공격에 백리일소는 정신이 아찔했다.
항소운이 여세를 몰아 백호살강을 펼치자, 상대는 끝내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나뒹굴고 말았다.
이제 유극금지로 마무리 지을 차례였다.
한데, 공격을 시작하기도 전에 백리일소가 먼저 항복했다.
“네가 이겼다. 정말 대단한 의지로군.”
항소운에 대한 백리일소의 평가였다.
항소운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고독구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고독구패가 비무에 응하려는데, 예상치 못하게 마희가 다시 공격해 들어왔다.
“이번 공격을 막아내면 너와 나 사이의 원한도 잊어버리마!”
그녀는 이렇게 소리치며, 극을 들고 달려들었다.
“음양상격(陰陽相隔)!”
순간, ‘음’과 ‘양’이라는 확연히 다른 두 기운이 사방에 가득 퍼졌다.
음양도가 다시 등장하자, 시간이 멈추면서 서로 분리된 두 세계가 눈 앞에 펼쳐진 것 같았다.
흑과 백, 생과 사…….
항소운은 마치 귀신에 홀린 듯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항간에서는 음양의 기운을 건곤을 뒤바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대단한 힘이라 평했다.
마희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얕게나마 흉내는 낼 수 있어서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이때, 칠흑의 극이 머리를 향해 거칠게 날아왔다.
그녀는 항소운을 죽일 심산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혼란스러웠다.
항소운도 얼이 빠지기는 했으나, 다행히 찰나에 불과했다.
그의 영혼은 괴상한 감각에서 빠져나와 서둘러 육신을 깨웠다.
정신이 든 찰나, 어느새 상대의 공격이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넋 놓고 있는 사이 죽음이 눈앞까지 들이닥친 것이다.
이형환영술.
항소운이 위험에 몰릴 때마다, 굉장한 능력을 발휘하는 기술이었다.
이형환영술은 지금도 치명적인 일격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었으나, 어깨의 부상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어찌나 타격이 거셌던지 항소운은 어깨가 부서질 듯 아팠다.
억지로 통증을 참으며 마희를 향해 반격을 날렸다.
연신 구풍퇴를 날리자, 공격에 급급했던 그녀는 막을 새도 없이 멀찍이 날아가 버렸다.
이로써 항소운과 마희의 대결은 끝을 맺었다.
둘의 실력을 굳이 놓고 따지자면 엇비슷했다.
다만 사람들의 평가는 이러했다.
항소운은 벌써 여러 명을 물리친 상태로 체력 소모가 큰 상황인데, 만약 처음부터 일대일로 맞붙었다면 그가 이길 확률이 훨씬 높다고 말이다.
태초의 시기도 고독구패를 상대로 한 차례 썼을 뿐이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무력으로 맞선 그였다.
구천 역시 굉장한 무인이지만, 자만심 때문에 가장 먼저 패하고 말았다.
한편, 항신희는 다시 싸우자니 영 체면이 살지 않았다.
항소운에게 얼굴이 밟힌 것도 모자라 요수에게 물리기까지 해서 부상이 이만한 것도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그리고 백리일소는 패배를 인정했다.
스스로도 용맹함에선 항소운만 못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확실히 전쟁터에서 싸워본 자와 그렇지 않은 자는 승리를 향한 집념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항소운은 비록 꿈이라 해도 치열한 전쟁의 한복판에서 생사를 걸고 싸우면서 강인한 정신력과 집념이 생겨났고, 덕분에 비무가 길어질수록 더욱 악착같이 달려들었다.
그리고 마희는 항소운에게 부상을 입히기는 했어도 결국 나가떨어지지 않았는가.
항소운은 홀로 네 명을 상대하면서도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다.
4대 학당의 사서에 기록될 만한 놀라운 전적이었다.
“항소운, 정말 대단하네. 이렇게 되면 4대 태양 중 한 사람은 결정됐군. 근데 고독구패를 이기고 일등을 차지할 수도 있을까?”
“진짜 대단한 대결이었다. 저 녀석 그야말로 인황지존이잖아.”
“아닌 게 아니라 진짜 패기 넘치더라. 근데 어떻게 아홉 가지 힘을 전부 극강으로 발휘할 수 있는 거지? 설마 뱃속에서부터 수련한 건 아니겠지?”
“그래도 파문 제자라서 다행이지 뭐야. 안 그랬으면 우리 진무 학당의 체면도 말이 아니었을 텐데. 그건 그렇고, 용봉 학당도 참 어리석지. 저런 대단한 자를 마다하다니 말이야.”
“…….”
항소운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에는 경외심마저 깃들어 있었다.
장차 그가 얼마나 성장할지는 알 수 없으나, 지금 여기서 가장 강한 것만은 분명했다.
“그만 올라오지 그래?”
상공의 항소운이 고독구패를 아득히 내려다보며 외쳤다.
혼돈전체, 음양지체 같은 최강의 체질이 전부 진무 학당이라니, 과연 오랫동안 정상을 지킨 무술 학당다웠다.
구궁 학당에는 환생자가 있고 용봉 학당에도 남다른 재능을 지닌 무공 천재들이 있었으나, 저들과는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
항소운의 출현은 이들 4대 학당의 교만한 콧대를 꺾어 놓았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더니 그 말이 딱 들어맞았다.
한편, 용봉 학당의 집사와 제자들은 속이 말이 아니었다.
연무대 위를 활보하는 항소운을 보며 아직 용봉의 제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랬다면 일등의 영예를 용봉 학당이 가져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나, 시간을 어찌 되돌릴 수 있겠는가.
지금으로서는 돌아가서 학당에 항의하는 수밖에 없었다.
섬영과 풍혹색은 가시방석에 앉은 듯 얼굴이 갈수록 창백해졌다.
당시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던가.
학당에 돌아가면 얼마나 많은 비난이 쏟아질지 벌써 걱정이 되었다.
지금으로서는 고독구패가 항소운의 기를 꺾어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고독구패는 성큼 위로 올라가 항소운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정말 강하군. 내 상대가 될 자격이 있어. 반 시진을 줄 테니, 그동안 상처를 치료해라. 안 그러면 내가 이겨도 영 찝찝해서 말이야.”
적에게 부상부터 치료하라니,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항소운은 의아하다는 눈길로 상대를 봤다가 다시 자신의 상처를 내려다보더니 시원스레 대답했다.
“좋다.”
물론 지금 상태로도 고독구패와 싸울 수 있었다.
한데 상대방이 저런 제안을 했다는 건 그만큼 이번 싸움을 중시한다는 뜻일 터, 여기서 거절하면 오히려 상대를 무시하는 꼴이 돼서 구태여 거절하지 않았다.
치료는 반 시진이면 충분했다.
회천비술을 펼치자 무수한 나무의 힘이 그를 향해 모여들더니 그 힘이 생명력으로 변화하며 상처를 촉촉이 적셨다.
동시에 체내의 수정을 제련시켜 흡수하자, 수많은 힘이 비워진 성진을 채우면서 체력을 빠르게 회복시켰다.
물론 태초의 시기도 빼놓을 수 없었다.
태초의 시기 없이는 고독구패와의 싸움에서 이길 확률이 희박했다.
상처를 치료하는 동안, 영혼은 직전까지 벌였던 호쾌한 대결 장면을 끊임없이 떠올렸다.
그중 가장 놀라웠던 것은 지혜의 빛의 재발견이다.
그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지혜의 빛 속에 자신이 모르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마희의 음양 기운도 상당히 놀라운 경험이었다.
어쩌면 그 속에서 무언가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천둥과 바람, 불의 힘을 융합하는 데 성공했으니, 어둠과 빛 두 힘을 결합하면 음양의 기운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생각이 이에 미치자, 마희의 공격을 전부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싸우느라 정신이 없어서 몇몇 동작만 기억날 뿐, 그 속의 오묘한 이치까지 살피기에는 무리였다.
금세 반 시진이 흘렀다.
항소운은 몸도 거의 회복했고, 전투 장면을 되돌아보며 많은 것을 배운 상태였다.
영혼이 여러 역할을 해주니 이럴 때는 참 편했다.
“됐다, 이제 시작하자.”
항소운이 차분한 눈길로 입을 열었다.
반드시 일등 자리를 차지하고 말겠다며 굳게 다짐한 그였다.
스승님과의 약조도 있으니 죽을힘을 다해 기필코 해내고 말리라.
고독구패가 최강의 체질이라 해도 달라질 건 없었다.
이제 그의 독주를 막을 자는 없었다.
고독구패는 그런 항소운을 보며 전의를 불태웠다.
“우선 맨손 박투를 하고, 다음으로 무기, 마지막으로 최종 승부를 가리는 게 어떠냐?”
고독구패는 무술에 미치고 심취한 사내로, 마음에 드는 기술을 찾았다 하면 금세 배우고 익혀서 초식의 위력을 완벽히 구현해냈다.
그런 그였기에 이런 요구도 그리 이상할 게 없었다.
“좋다.”
“하하, 시원시원해서 좋군. 드디어 만족스러운 상대를 만났어.”
고독구패는 호쾌하게 웃더니 매우 신묘한 보법으로 다가섰다.
종운보(縱雲步)였다.
오랜 역사를 지닌 보법으로, 구름 위를 걷듯 가벼운 발놀림으로 천하를 누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고독구패는 눈 깜짝할 새 항소운의 앞에 이르더니 평범해 보이는 주먹을 날렸다.
아주 평범한 무술인이 할법한 권법으로,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 속도만은 놀라워서 순식간에 항소운의 몸에 부딪혔다.
퍽-!
항소운은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 가슴팍을 얻어맞았다.
극심한 통증이 훅 밀려오며 항소운은 순식간에 벌러덩 넘어지고 말았다.
고독구패는 계속해서 묵묵히 주먹을 날렸다.
상대와 꽤 거리가 있었는데, 아무런 힘도 발산하지 않으면서 연거푸 항소운을 맞추자 다들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