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598
제598화 설마, 청귀를 아는 것이냐?
서귀는 원래 고루방에 머물고 있었으나, 적화행군 때문에 귀면교로 거처를 옮긴 상태였다.
아무래도 적화행군이 몸을 추스르기에는 자원이 훨씬 풍부한 귀면교에 머무는 편이 나았기 때문이다.
서귀는 항소운을 보자, 반가워서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반면, 항소운은 적화행군의 상태가 몹시 궁금한지라 다른 화제는 제쳐두고 적화행군의 상황부터 물었다.
“서귀, 적화의 상태는 어떤가?”
“좋아지고는 있는데, 완전히 회복되려면 시일이 걸릴 것 같습니다. 워낙 내상이 심해서 성급 약이 없으면 치료가 힘듭니다.”
서귀는 한숨을 푹 쉬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도 둘째 형님께서 다시 바깥세상에 나오신 것만 해도 감사할 따름이지요. 분명 어딘가에 치료법이 있을 겁니다.”
“그래, 살아있으면 희망도 있는 법이니까. 분명 다 잘 될 거야.”
항소운은 머리를 끄덕이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제 자릉종을 되찾으러 갈 거네. 그래서 자네들의 도움이 필요해.”
“전 준비됐습니다.”
서귀는 이런 얘기가 나올 줄 짐작했다는 듯 침착했다.
이미 물밑 작업을 해둔 터라 항소운이 원하기만 하면 청귀를 동원해 귀면교를 움직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청귀는 전천 경지의 성인이라서 자릉종 탈환에 큰 도움이 될 터였다.
그리고 적화행군도 몸에 좋은 영약을 지속적으로 흡수하면서 몸이 제법 회복된 상태였다.
비록 원래 무공을 회복하지는 못했어도 전천 성인과 충분히 싸울 순 있었다.
이 두 사람이면, 제씨 일가가 어떤 비장의 수단을 가지고 있다 해도 두렵지 않았다.
물론 서귀도 빼놓을 수 없었다.
서귀의 무공이야 말할 것도 없이 강해서 이미 4품 혼태경 정점이었다.
거기다 그가 직접 기른 혈요도 한몫하는 녀석이라 설령 후기 제존과 맞붙는다 해도 끝까지 겨룰 자신이 있었다.
도황 두훤호는 제존의 경지에 올라 이제는 도제(刀帝)라 불리고 있었다.
어느덧 그의 실력은 2품 제존과 싸워도 밀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고루방의 3대 방주도 전부 제존의 경지에 올랐다.
특히 천고루는 2품 제존에 오르며 무서운 전투력을 발휘했고, 고루방의 전반적인 실력도 향상되었다.
새로운 인재들을 꾸준히 영입하여 서귀의 특훈을 거친 결과, 항소운을 위해 싸울 이백 명의 정예 병사를 길러냈다.
이들 중 오십 명 정도는 인황이고, 나머지는 모두 소왕급 무인이나 하나같이 일당백의 용사였다.
그들은 마연의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자들로, 여느 동급 무인보다 훨씬 강했다.
물론 7급 세력인 자릉종에 비하면 부족한 것이 사실이나, 그래도 꽤 훌륭한 군대였다.
거기다 금갑 용귀와 두꺼비, 거대 원숭이, 애기, 은자 등 강력한 요수들이 든든하게 받치고 있었다.
항소운이 아는 바로 제패천은 전천 경지의 성인이었다.
벌써 몇 해가 흘러 그 후로 얼마나 높아졌을지는 알 수 없으나 아직 중급에 이르지는 못했으리라.
당시 아버지 항양전이 4품 전천 경지였는데 제패천은 늘 아버지의 무공에 못 미쳤으니 지금쯤 어느 정도일지 대략 짐작이 갔다.
하지만 아무래도 사도명우가 마음에 걸렸다.
항소운은 본래 죄혈성에서 인원을 정비한 뒤 곧장 자릉종으로 쳐들어갈 생각이었으나, 제낙양이 용봉성에서 사도명우와 접촉한 것을 본 뒤로 더는 적을 얕잡아볼 수 없었다.
다시 진지하게 계획을 수정해서 필승의 전략을 세워야 했다.
“적화는 언제쯤 출관할 수 있나?”
항소운이 물었다.
“아직 회복 중이라 대략 보름 후쯤 나오실 겁니다.”
서귀가 대답했다.
“그럼 그동안 준비를 하며 기다리도록 하세. 귀면교로 돌아가거든 청귀에게 혼태를 만들 때 쓰이는 최상급 재료가 있는지 물어봐 주게. 다른 건 안 되고 꼭 최상급이어야 하네. 그리고 성급 요핵도 가져다주게. 금의 힘을 지닌 걸로 말이지. 그리고…….”
항소운은 이것저것 분부를 내리더니, 이내 생각이 바뀌었는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 아무래도 내가 직접 청귀를 만나보는 게 좋겠어. 성의도 보일 겸.”
“그러실 필요까진 없습니다. 청귀 녀석, 이 스승의 명령이면 바로 복종할 겁니다.”
서귀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과연 허풍이 아니라서 청귀는 스승인 서귀를 부모처럼 극진히 섬기고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사제 간의 정을 잊지 않고, 이 인연을 소중히 여겨서 덕분에 서귀도 늦게나마 제자 덕을 톡톡히 보고 있었다.
항소운도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지만, 청귀를 만나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런 일일수록 분명히 얘기해둬야 후일에 서로 얼굴을 붉힐 일이 없을 터였다.
따지고 보면 청귀는 아직 한 식구라 할 수 없었다.
자신의 실력이 청귀보다 강하면 또 모를까, 그러기 전에는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야 했다.
다만 청귀를 만나기 전, 우선 당 백부부터 찾아뵐 생각이었다.
죄혈성까지 왔는데 백부를 찾아뵙지 않는다는 건 큰 실례였다.
이튿날, 그는 인고루에게 사람들을 전부 소집해서 자신의 지시가 떨어질 때까지 대기하도록 한 뒤, 자신은 백부를 찾아뵙기 위해 척발완아와 나섰다.
마차에 올라탄 그녀가 살짝 긴장된 얼굴로 물었다.
“부마, 제 복장이 이상하진 않죠? 혹시 예의에 어긋나면 어쩌죠?”
“완아, 이미 선녀처럼 아름다운데 뭘 더 바꾸려고 하오.”
그랬다.
그녀는 빼어난 미모에 범접할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를 타고난 여인이었다.
두 사람은 동 노인의 나귀 마차가 아니라, 고루방에서 마련한 호화로운 마차를 타고 있었다.
특별히 서귀가 마부 역할을 자처했고, 동 노인이 몰래 뒤따를 뿐 따로 수하를 대동하지는 않았다.
도중에 세상 물정 모르는 녀석이 척발완아에게 반해 집적대자, 서귀가 일장을 날려 뭉개버렸고 그 후로 아무도 접근하는 사람이 없었다.
죄혈성은 법이나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으로, 힘이 곧 정의였다.
얼마 후, 성주부 앞에 이르렀다.
항소운은 문지기에게 이름을 알린 뒤 조용히 기다렸다.
잠시 후, 집사 장승이 종종걸음으로 나와 일행을 맞이했다.
“역시 항 도련님이셨군요. 성주께서는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장승은 항소운과 당전의 사이를 잘 아는지라 유달리 깍듯이 대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장승을 따라 대전 앞에 이르자, 당전이 친히 나와 활짝 웃으며 맞이했다.
“이 녀석, 무슨 바람이 불어 갑자기 찾아온 게냐? 설마 몰래 놀러 나온 건 아니겠지?”
“백부님께 인사 올립니다.”
항소운은 척발완아의 손을 잡아당기며 당전에게 인사를 드렸다.
“근데 이 낭자는……?”
이러면서 당전의 시선이 척발완아를 향했다.
“제 약혼녀인 척발완아예요. 백부님께 인사드리려고 함께 왔어요.”
항소운의 소개에 뒤이어 그녀가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당전은 거듭 잘했다고 하면서, 얼굴에서 즐거운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그는 항소운에게 좋은 부인이 생겼음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벌써 이런 날이 오다니, 그는 감개무량했다.
‘녀석, 이제 다 컸구나!’
당전은 두 사람에게 어서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고는 하인을 시켜 차와 간식을 내오도록 했다.
“소운아, 못 본 새 무공이 많이 늘었구나. 몇 년 만에 벌써 입룡경에 오르다니. 용비 그 녀석은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걱정 마세요. 형님도 벌써 6품 입룡경에 올라 학당 서열 100위에 드셨어요.”
항소운의 말에 당전이 크게 기뻐하며 되물었다.
“그게 정말이냐?”
“당연하죠. 이런 얘기를 함부로 지어낼 수 있나요. 나중에 직접 보시면, 그동안 형님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실 거예요.”
“하하. 그 녀석이 너 반만 닮아도 만족한단다.”
당전은 기분이 좋은지 연신 껄껄 웃었다.
당전은 오랜만에 만난 조카가 무척 반가웠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안부를 물으며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차츰 본론으로 들어갔다.
항소운은 자릉종을 되찾기 위해 죄혈성에 왔으며, 백부에게 병사를 빌리고 싶다고 정중히 부탁했다.
자신의 병력만으로 자릉종을 탈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하진 않았다.
그렇기에 아직 더 많은 조력자가 필요했다.
아울러 패왕군단을 다시 만들까 하는 고민도 있었다.
자신의 세력도 없이 계속 남에게 신세만 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당전은 죄혈성의 성주로, 이 지역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으며 대규모의 병사를 거느리고 있었다.
당전은 그 자리에서 바로 군대를 빌려주겠노라 약속했다.
“소운아, 예전에도 말했다시피 제패천은 수완이 좋은 자다. 과거 네 아버지가 그자를 신임했던 건 무공도 뛰어나지만, 머리가 아주 비상했기 때문이란다. 그 후로 벌써 몇 년이 흘렀으니 자릉종도 체계가 단단히 잡혔겠지. 널 소주로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할 게다.”
당전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당부의 말을 건넸다.
“각오는 돼 있어요. 누구든 반기를 드는 자는 바로 죽일 겁니다.”
이렇게 말하는 항소운의 눈빛이 싸늘했다.
지난 십 년간 온갖 시련과 고초를 겪으면서 당시 천진난만했던 소년은 사라지고 이제는 결단력을 갖춘 용자의 모습이었다.
“그래, 그런 각오라면 충분하다. 문제는 제패천 배후의 제씨 일가인데,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막강한 세력이지.”
당전은 잠시 멈추었다가 말을 이었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제패천은 은둔 세가 제족(帝族) 사람이더구나. 아마도 사생아였던 모양이야. 가문에서 별다른 지위가 없었던 탓에 어릴 적 집을 떠나 강호를 떠돌아다녔더군. 그러다 훗날 다시 제족과 연이 이어진 게다.
현재 자릉종이 표면상으로는 제패천의 소유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제족의 통제를 받는 세력이란 거지. 그러니 각별히 조심해야 할 거다.”
“제족은 어떤 가문입니까?”
항소운이 물었다.
“제족은 은둔 세가로, 역사가 아주 깊지. 옛 황조의 후예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더군. 한때는 천하를 주름잡던 막강한 세력이었으나, 차츰 몰락하면서 세상으로부터 모습을 감추고 힘을 키우는 데 집중했단다. 그리하여 지금은 강력한 8품 세력이 되었고, 전천 경지의 고수도 아주 많다 들었다.”
이런 얘기까지 듣고 나니 항소운으로서는 부담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런 거대 세력을 상대로 어떻게 맞서 싸운단 말인가.
“하나, 크게 걱정할 건 없다. 제족의 근거지가 천왕주는 아니니까. 하지만 정확히 어딘지는 아직 알 수 없단다.”
당전은 항소운을 물끄러미 보며 말을 이었다.
“넌 아직 젊고 무공도 뛰어나지. 하나, 그것만으로 제패천과 싸워 이길 수 있을까? 물론 나도 힘을 보탤 테지만, 이 백부 생각에는 우선 네가 전천 경지에 오르고 나서 후일을 도모하는 편이 나을 것 같구나.”
조카에게 어떤 비장의 수단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당전은 영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이렇게 긴말을 늘어놓은 것도 조카가 심사숙고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이에 항소운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으시다면 백부님께서 귀면교로 같이 가주셨으면 합니다.”
깊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청귀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스승인 서귀뿐만 아니라 다른 자를 통해 압박을 가해야 했다.
항소운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인맥을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이란 것을 청귀에게 보여줘야 했다.
순간, 당전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설마 청귀란 자를 아는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