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602
제602화 어떻게 해야 이기지?
몸속의 변화를 느낀 순간, 항소운은 강력한 의지로 억제했다.
“저 여자 요술을 부린 거예요.”
척발완아가 그의 손을 꽉 잡으며 전음을 보냈다.
“알고 있소. 저런 여자는 얼굴에 분이나 바를 줄 알지, 당신과는 비교도 안 되오.”
유엽자의 자색이 뛰어나다고는 하나, 세상의 흔한 미녀들처럼 겉만 화려하게 꾸밀 뿐이라서 어려서부터 미녀를 많이 접한 항소운에게는 별다른 자극이 되지 못했다.
척발완아는 달달한 감정에 젖어 들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그저 운명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함께하게 됐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그녀는 그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었다.
“그럼 어떤 내기를 하고 싶으냐? 주사위, 야바위? 아니면 생각해 둔 거라도 있느냐?”
도귀가 물었다.
“그런 건 너무 쉬우니 물건 맞추기로 하죠.”
항소운이 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물건 맞추기?”
도귀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이내 호탕하게 웃었다.
“그것 또한 아이들 놀이가 아니더냐? 그리고 한판은 양에 안 차니, 세 판을 겨루자. 첫판은 네가 종목을 정하고, 다음 판은 내가, 마지막 판은 이 아름다운 부당주에게 맡기면 되겠군. 어떠냐?”
도귀는 항소운에게 주도권을 넘기고 싶지 않았다.
물론 당연히 자신이 이기겠지만, 판의 흐름을 손에 쥐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였다.
기선을 제압하는 것이야말로 내기에서 이기는 비결이었다.
항소운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대인, 설마 겁이 나서 그러시는 겁니까? 한판으로 승부를 보면 되지, 복잡하게 세 판이나 할 필요가 있습니까?”
“아니다. 모름지기 도신이란 내기에서 즐거움을 찾는 법. 간단히 끝나버리면 재미도 흥분도 없지 않으냐. 세 판으로 승부를 내자.”
도귀는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애송아, 이건 목숨을 건 내기란 말이다. 장난이 아니야. 난 할 말 끝났으니 더는 바꿀 생각 말거라.”
도귀가 완강히 나오자, 항소운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암, 그래야지. 첫판은 네가 문제를 내거라.”
도귀가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잘생긴 동생은 무슨 문제를 낼 거야?”
유엽자의 살짝 치켜 올라간 눈매가 항소운을 지그시 응시했다.
그녀는 척발완아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그에게 뜨거운 눈빛을 보냈다.
요 몇 년간 이렇게 잘생기고 패기 넘치는 청년은 본 적이 없었다.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남자를 발견해서인지 욕망이 들끓었다.
항소운은 유엽자를 슬쩍 보더니 장난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부당주의 속옷 색을 맞추기로 하죠.”
순간, 유엽자의 뺨이 발그레해지며 ‘아휴, 못 됐어.’하고 아양을 떨었다.
부당주를 끌어들일 생각을 하다니 항소운의 배짱에 구경꾼들은 감탄했다.
운이 좋으면 그녀의 속옷도 볼 수 있으니, 꽤 좋은 내기 아닌가.
도귀가 물었다.
“정말 그걸로 할 테냐? 설마 둘이 한패는 아니지?”
“호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전 대인이 훨씬 마음에 드는걸요.”
유엽자가 간드러지게 웃었다.
“너만 좋다면, 오늘 밤 뜨겁게 안아주마.”
도귀도 성인군자는 아닌지라 대놓고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아휴, 농담도 잘하셔.”
유엽자는 은근슬쩍 미소로 무마했으나, 속은 편하지 않았다.
‘차라리 거지를 만나지, 너처럼 못생긴 놈은 금은보화를 갖다줘도 싫다, 싫어.’
“대인,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항소운이 진지하게 묻자, 도귀가 영 못 믿겠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정말 이 여자와 한패 아니야? 아니면 어떻게 그런 내기를 생각해내지?”
“하하. 정 그러시면 다른 사람으로 바꾸시죠.”
항소운이 상관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도귀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아니다, 이번 판은 네가 정하기로 했으니 네 말대로 하마.”
“좋습니다. 문제는 제가 냈으니, 대인께서 먼저 맞추시죠.”
“그건 불공평해. 내가 말을 하고, 네가 그대로 따라 하면 언제 승부가 난단 말이냐. 그러지 말고 각자 종이에 답을 써서 부당주에게 보여주는 게 어떠냐?”
“좋습니다.”
항소운이 흔쾌히 응했다.
유엽자는 두 사람에게 붓과 종이를 나눠주고 답을 쓰도록 했다.
항소운이 고민도 않고 시원스럽게 쓴 반면, 도귀는 유엽자를 이리저리 훑어본 후에야 한 글자를 써냈다.
“다 쓰셨으면 종이를 들어주세요. 다 같이 확인해보죠.”
유엽자가 말했다.
항소운의 종이에는 ‘청(靑)’, 도귀의 종이에는 ‘홍(紅)’이라는 글자가 써 있었다. 청과 홍, 확연히 다른 답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유엽자에게 향했다.
그들은 침을 꼴깍 삼키며 그녀가 무슨 색 속옷을 입었을지 궁금해했다.
제아무리 색을 좋아하는 그녀라 할지라도 이렇게 많은 남자가 한꺼번에 쳐다보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녀는 항소운을 보며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내가 목욕하고 옷 갈아입을 때 훔쳐본 거 아니지? 어떻게 맞췄대.”
이 말은 항소운이 맞혔다는 뜻이었다.
순간, 항소운은 허리가 꼬집히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내가 훔쳐볼 리 있나. 그냥 우연히 맞춘 거지.”
그러자 옆에서 도귀가 대꾸했다.
“부당주, 옷이나 벗어봐. 직접 보지 않는 한, 못 믿겠어.”
“벗으면 벗는 거지, 그런 게 겁나겠어요?”
유엽자는 시원스럽게 말하며 옷을 아래로 내렸다.
물론 대놓고 벗을 리는 없고, 어깨 부분만 아래로 잡아당겼을 뿐이다.
새하얀 어깨와 뽀얀 가슴이 반 정도 드러나자, 남자들은 흥분을 참지 못하고 코피를 뿜었다.
‘아이고, 왜 이리 날씨가 더울까나!’
다들 민망한지 이런 생각을 하며 그녀를 힐끔 쳐다보았다.
옷을 내리자, 청색 속옷이 모습을 드러냈다.
“과연 둘이 어제 함께 잤구먼.”
도귀는 틀림없다는 표정이었다.
“동생, 오늘 밤 진짜 같이 잘까?”
유엽자가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요염한 눈빛으로 말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항소운의 허리를 꼬집는 손이 한층 매워졌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화제를 바꿨다.
“어쨌든 이번 판은 제가 이긴 겁니다. 다음 판은 대인께서 문제를 내시죠.”
도귀는 군소리 없이 말을 받았다.
“좋다, 이번 판은 네가 이겼다. 두 번째 판은 골패로 하자. 이번에야말로 이 도신의 솜씨를 제대로 보여주마.”
도귀가 신이 나서 판을 벌리려는데, 항소운이 생각지도 못한 말을 내뱉었다.
“이번 판은 제가 졌습니다.”
도귀는 놀라서 입을 쩍 벌렸고, 구경꾼들도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봐, 이건 목숨이 걸린 내기란 말이다!’
어떻게 졌다는 말이 이리 쉽게 나온단 말인가.
물론 기술이 뛰어나면 당연히 이기겠지만, 운이 좋으면 좋은 패가 걸려서 이길 수도 있었다.
도귀는 워낙 내기를 좋아해서 간단히 이기는 것보다 그 과정을 즐기는 자인데, 항소운이 갑자기 졌다고 해버리자 환장할 노릇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상대가 졌다는데, 다시 하자고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애송아, 잘 생각해야 할 거다. 또 지면 네 목숨은 내 것이 될 텐데?”
도귀가 으름장을 놓자, 항소운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알고 있어요. 제가 골패는 못 해서요. 그러니 괜히 시간 낭비할 것 없죠. 자, 부당주, 세 번째 문제를 내주시오.”
유엽자가 문제를 내려는데 도귀가 가로막았다.
“잠깐. 너희 둘이 한패일지 모르니 저 여자는 안 돼. 다른 사람에게 문제를 맡기자.”
“그럼 숫자 맞추기는 어떻습니까. 가장 흔하니, 그만큼 대인께서도 자신이 있으시겠죠?”
항소운의 제안에 도귀가 코웃음을 쳤다.
“아까 맞추기로 이겨놓고, 또 같은 걸 하자는 거냐? 날 만만하게 보는군. 이번에는 주사위 던지기로 하자.”
주사위 던지기는 아주 흔한 내기로, 보통은 주사위의 합계가 큰 쪽이 이기는데 도귀는 합계가 낮은 쪽이 이기는 것으로 하잔다.
항소운은 석연찮았으나, 이내 응했다.
오늘 도박장을 찾은 건 도귀를 복종시키기 위해서였다.
명혼공간의 감응력을 통해 단판으로 제압하려 했건만, 도귀가 워낙 영악해서 예상과 달리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항소운도 이번 판은 이길 자신이 있었다.
“부당주, 가서 주사위를 가져오게. 가짜 주사위로 속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랬다가는 여길 전부 부숴버릴 테니까.”
도귀의 으름장에 유엽자는 아무 소리도 못 하고 황급히 안으로 들어가 제일 좋은 주사위를 들고나왔다.
도귀는 주사위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항소운에게 건넸다.
항소운은 볼 필요도 없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전 대인의 인품을 믿습니다. 먼저 던지시죠.”
“좋다, 잘 보고 있거라.”
도귀는 주사위를 허공으로 던져올렸다.
그러고는 번개 같은 속도로 떨어지는 주사위를 죽통으로 받고선 탁자에 탁 내려놓았다.
화려하진 않아도 동작이 막힘이 없고 자연스러워 과연 고수란 생각이 들었다.
구경꾼들은 도귀가 움켜쥐고 있는 죽통에 시선을 고정했다.
죽통을 들어 올리자, 여섯 개의 붉은 점이 사람들 앞에 펼쳐졌다.
여섯 개의 주사위를 모두 ‘1’로 만든 것이다!
사람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워낙 도박에 환장한 자들이라서 굉장한 솜씨를 보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도귀는 주사위를 쓱 보더니, 얼굴을 괴상하게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하하, 애송아, 이제 네 차례다.”
옆에서 척발완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부마, 정말 가능하겠어요? 이제라도 그만두는 게 어때요?”
항소운은 그녀의 손을 가만히 다독였다.
“여기 왔다는 건 이길 자신이 있다는 뜻이오. 날 믿으시오.”
그는 죽통에 주사위를 넣어 가볍게 흔들기 시작했다.
딱 봐도 주사위로 놀아본 적이 없는 사람의 움직임이었다.
저런 솜씨로 어찌 도귀를 이긴단 말인가.
이때, 누군가 어이없다는 투로 외쳤다.
“저자가 도귀 대인처럼 주사위를 전부 ‘1’로 만들면, 내 저 주사위와 죽통을 삼키겠네.”
“그러다 대인보다 작은 수가 나오면 어쩌려고 그래?”
“이미 ‘1’이 여섯 개가 나왔는데, 이보다 작은 수가 어딨단 말인가? 혹 저자가 대인을 이긴다면, 내 이 탁자도 먹어 보이겠네.”
때맞춰 항소운이 탁 소리와 함께 죽통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하지만 죽통을 바로 열지는 않았다.
“어차피 질 텐데, 뭐하러 시간을 끄느냐? 어서 열어보거라.”
도귀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그는 상대방의 주사위 소리를 주의 깊게 들었다.
과연 항소운은 도박이라곤 모르는 평범한 사람들처럼 주사위를 마구 휘둘렀다.
그렇게 해서는 각 주사위를 동일한 숫자로 만드는 것조차 어려우니 하물며 전부 ‘1’로 만드는 건 어림도 없었다.
따라서 이번 판은 그가 이길 수밖에 없었다.
항소운은 그저 묵묵히 감응력으로 죽통 안의 상황을 살폈다.
예상대로 주사위 숫자는 제멋대로였다.
숫자를 합하니 족히 이십 점은 넘어서 이대로면 영락없이 패배였다.
‘어떻게 해야 이기지?’
고민에 빠져있는데 구경꾼들이 어서 죽통을 열라며 재촉했다.
항소운은 주변에서 뭐라 떠들어대든 꼼짝도 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유엽자가 한마디 거들었다.
“어서 죽통을 열어. 안 그러면 실격패야.”
항소운은 잠자코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주사위에 의념을 불어넣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혼태경 후기의 영혼력으로 죽통 속 주사위를 움직이는 것쯤은 문제도 아니었다.
‘쌓아 올려라!’
여섯 개의 주사위는 의념에 따라 탑처럼 차곡차곡 쌓아 올라가 하나의 기둥이 되었다.
그리고 맨 위쪽 주사위에는 놀랍게도 붉은 점이 하나 있었다. ‘1’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