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608
제608화 설마 부러운 거예요?
획쟁을 발견한 두훤호의 눈가에 따스한 빛이 어렸다.
그는 획쟁이 있는 쪽으로 빠르게 내려갔다.
“쟁아.”
가까이 다가선 그가 나지막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대답 대신 그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그를 마음에 품고 있었다.
수차례 고백도 해보았으나, 그는 매번 밀어냈고 그럴 때마다 그녀는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
그런데 지금 두훤호는 그녀를 뜨거운 눈빛으로 대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 눈빛을 통해 상대도 자신을 좋아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간 두훤호도 나름대로 속사정이 있었다.
과거 사랑하는 여인이 자신 때문에 목숨을 잃고 아직 그 원수도 갚지 못한 상황에서 획쟁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마연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며 죽을 위기를 숱하게 넘기면서 매번 생각났던 사람은 획쟁이었다.
그는 그제야 자신도 그녀를 좋아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제 혼태경에 올라 복수도 더는 먼 얘기가 아니었다.
가슴속에 맺힌 죄책감도 차츰 옅어지고 있었다.
항소운은 임합과 서자양을 밟고 있자니 어쩐지 제 발바닥이 더러워지는 느낌이었다.
“금음아, 사형. 이들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궁금음이 그들을 날카롭게 쏘아보며 말했다.
“이런 자들은 죽여야지.”
그러자 자장하가 한숨을 푹 쉬었다.
“풀어주자. 용문에서 알면 골치 아파질 거야.”
자장하는 보다 이성적이었다.
임합은 얼씨구나 싶어 맞장구를 쳤다.
“그렇지. 우릴 죽이면 운애각도 무사하지 못할걸.”
“허허, 넌 참 자신을 과대평가한단 말이야.”
항소운은 냉소를 짓더니 임합의 목을 발로 힘껏 밟았다.
뚝.
외마디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임합은 목이 부러져 죽고 말았다.
사람들은 자신의 목덜미도 덩달아 서늘해진 것 같아 목을 잔뜩 움츠렸다.
서자양은 깜짝 놀라 몸을 덜덜 떨었다.
이대로 죽을 순 없다는 생각에 상대의 발아래서 벗어나려 갖은 애를 썼으나, 항소운이 태산과도 같은 힘으로 짓누르는 바람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스물 남짓으로 보이는 자가 이런 엄청난 능력을 지니고 있다니. 설마 제존이라도 된다는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리 쉽게 제압될 리 없었다.
“걱정 마, 죽이진 않을 테니. 넌 용문으로 가서 그자들의 입을 막아야 하거든.”
항소운이 한쪽 입가를 올리며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뒤이어 작은 소리로 주문을 외자, 무형의 고문자가 서자양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그를 완벽히 통제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의 눈에 고문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항소운이 서자양을 잠시 응시하는가 싶더니 불현듯 풀어주었을 뿐이다.
“돌아가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잘 알겠지?”
항소운이 서자양을 보며 태연히 물었다.
“예, 주인님. 임합은 도적 떼에 당했고, 이 일은 운애각과 무관하며 주인님과는 더욱 상관없는 일입니다.”
서자양이 얌전히 대답했다.
과거에는 누군가를 통제하고 괴뢰로 만드는 데 많은 힘과 노력이 필요했으나, 이번에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영혼력에서 서자양보다 훨씬 앞서다 보니 크게 힘들이지 않고 통제가 가능했다.
압도적인 영혼력의 차이 때문에 서자양은 저항이란 걸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래, 목숨은 살려줄 테니 얌전히 돌아가거라.”
이러면서 아랫사람 대하듯 어깨를 두드리자, 서자양은 항소운에게 큰절을 올리고 바로 운애각을 떠났다.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까만 해도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던 서자양이 왜 갑자기 고분고분해진 걸까.
설마 항소운의 무공에 겁을 먹은 걸까.
하지만 아무래도 이상했다.
서자양이 갑자기 달라진 것도 이상하지만, 항소운이 쉽게 놔준 것도 영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만 다들 생각하는 게 고만고만하다 보니, 그 속에 감춰진 비밀을 알 턱이 없었다.
이런 와중에도 항소운을 향한 사람들의 존경심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특히 나이 어린 제자들은 그를 우상 보듯 했다.
그들은 하루빨리 항소운처럼 강해져서 천하를 휘어잡고 미인의 마음을 얻고 싶었다.
과연 운애각의 여제자들도 이미 그에게 마음을 홀딱 뺏겨버렸다.
“저 사람 너무 멋있지 않아? 두꺼비처럼 생긴 임합보다 열 배 백 배는 잘생겼어. 그래서 금음 사저가 계속 기다렸던 거구나. 저렇게 완벽한 남자라니, 나 완전히 반해 버렸어.”
“나도 그래. 근데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 사람이잖아. 우리 같은 사람은 그저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어떡해. 나 저 사람한테 푹 빠졌나 봐. 이제 다른 남자는 눈에 안 들어올 거 같아. 다시 못 보면 어쩌지?”
“저분은 신이야. 우리 같은 평범한 여자는 넘볼 수가 없다고. 금음 사저처럼 뛰어난 여인만이 저분과 함께 있을 수 있어. 다들 괜한 생각 말고, 두 사람을 위해 축복을 빌자.”
“…….”
눈에 띄지 않는 어느 모퉁이에 궁금음만큼 아름다운 여인이 서 있었다.
눈앞의 광경을 보며 조용히 눈물을 흘리던 그녀는 매몰차게 돌아서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행복하길 바랄게.”
사람들은 항소운에게 온통 관심이 쏠려 있어서 아무도 그 여인이 사라진 것을 알지 못했다.
상황이 정리되자, 모용경, 악우택, 진가혁은 항소운에게 다가갔다.
다들 그와는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당시 원수에게 쫓겨 목숨도 부지하기 힘들던 소년이 어느새 어엿한 청년이 되어 그들 앞에 서 있었다.
그 초라하고 미약하던 존재가 단 몇 년 만에 동경의 대상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들은 연회라도 열어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항소운은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사양하려다가 획쟁과 자장하, 궁금음의 얼굴을 봐서 남기로 했다.
다만, 금갑 용귀와 두꺼비는 오지 않고, 하류휘만 거들먹거리며 내려왔다.
“형님, 서운하네요. 그 두 녀석은 저한테 넘겼어야죠.”
녀석은 이러면서 인황의 기세를 쫙 펼쳤다.
마치 7품 입룡경인 그를 사람들이 몰라볼까 싶어 위세를 떠는 것 같았다.
운애각 사람들은 또 깜짝 놀랐다.
과거 운애각 제자였던 게 분명한데, 십 년도 안 돼서 자신들을 전부 뛰어넘다니 정녕 이게 사실이란 말인가?
녀석은 일부러 운애각 제자들 사이를 어슬렁거리며 아는 얼굴을 찾았다.
젠체하며 거드름을 피우는 꼴이 영 밉살스러웠다.
그런데 웬걸, 적잖은 여제자들이 그에게 추파를 던지기 시작했다.
누가 보더라도 그에게 호감이 있는 눈치였다.
그제야 그는 마음이 편안해져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다들 내 매력을 알아보는군.’
하류휘가 저러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항소운도 포기했는지 그쪽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운애각의 고위층과 술잔을 기울였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와중에도 그의 머릿속에는 ‘화홍루’에 대한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솔직히 이번에 운애각에 온 건 획쟁과 자장하, 궁금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솔직한 성격의 화홍루도 만나고 싶었다.
그는 그녀를 여자로서, 친구로서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궁금음을 옆에 두고 다른 여자를 찾을 수는 없는지라 하류휘에게 대신 찾아보라고 슬쩍 전음을 보냈다.
하류휘가 한 바퀴를 둘러봤으나, 화홍루는 아무 데도 없었다.
그 후, 화홍루가 운애각에 없다는 것을 알았는데, 이것도 항소운이 떠난 뒤에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술잔이 석 잔째 돌자, 그는 잔을 비운 뒤 각주와 장로들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야 궁금음과 단둘이 보낼 시간이 주어졌다.
획쟁은 두훤호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러 갔고, 자장하는 눈치껏 자리를 피해주었다.
궁금음의 처소에서는 그녀가 금을 튕기며 부드러운 곡조를 연주했다.
가만히 연주를 듣고 있노라니 항소운은 저도 모르게 감상에 빠져들었다.
불현듯 무당전에 있던 때가 떠오르면서 그녀와의 첫 만남부터 친구가 되기까지 일련의 과정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모든 것이 생생하건만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니 새삼 감회가 새로웠다.
금 소리가 그치자, 항소운의 감탄이 이어졌다.
“네가 이렇게 많이 성장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 남들은 비천경에 오르는 것도 힘든데, 넌 입룡경에 올랐잖아. 정말 굉장해.”
“이게 다 네가 주고 간 칠절음 덕분이야. 음공을 연마하는 데 큰 도움이 됐거든. 그게 없었다면 지금에 이르지도 못했을 거야. 그리고 너랑 약속했잖아. 반드시 십 년 안에 인황이 되겠다고. 너랑 한 약속인데 꼭 지켜야지.”
궁금음이 커다란 눈망울을 깜빡이며 말했다.
못 본 사이, 그녀에게서도 획쟁과 같은 고귀한 기품이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예전보다 훨씬 아름다워 보였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
그간 그녀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가기에 그는 내심 감동이 컸다.
“네가 그랬지. 인황이 되면, 네 여인이 될 수 있다고. 설마 잊은 건 아니지?”
그녀의 뺨이 붉게 물들었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그는 그녀를 와락 품에 안았다.
“너한테 내 여자가 되라고 하기에도 미안하다. 내 곁에 다른 여자들이 생겼거든.”
거짓말은 아니었다.
지금 밖에선 척발완아가 기다리고 있었고, 우채접과 한신비도 그러했다.
그녀들이 마음에 걸리긴 해도 지금 흔들리는 마음을 어쩔 수는 없었다.
그는 궁금음의 일편단심에 깊이 감동했고, 더욱이 이런 여자에게 상처를 줄 수는 없었다.
“알아. 네가 이렇게 강해져서 돌아온 걸 보니까 나 혼자 독차지할 수는 없겠더라. 그저 네 마음속에 나란 사람이 있으면 충분해.”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그녀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녀의 무공이 크게 진일보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항소운과의 격차는 극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의 사랑을 홀로 독차지할 자신은 없었다.
그래서 그를 독차지하기 위해 애쓰느니 차라리 자유를 주는 편이 낫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만약 다른 여자들과 사랑을 나눠 갖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녀가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미 그에 대한 마음이 깊어질 대로 깊어졌는데, 어찌 또 냉정히 떠날 수 있겠는가.
“네 사랑을 얻은 건, 나 항소운의 복이야.”
진심 어린 말이었다.
자신을 위해 수년을 기다린 이 여인을 더는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밤새 이야기꽃을 피웠다.
항소운은 그녀가 더욱 빨리 경지를 높일 수 있도록 황급 물건을 여러 개 선물로 주었다.
이튿날, 운애각의 선대 각주와 현 각주가 아침 댓바람부터 찾아왔다.
그들의 목적은 단순했다.
항소운에게 잘 보이면 뜻하지 않은 좋은 일이 생길까 싶어서였다.
항소운은 한가하게 그들을 상대하고 있을 시간이 없어서 몇 마디 나눈 뒤, 바로 자장하를 찾아갔다.
자장하는 항소운이 오길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그가 찾아오자, 자장하가 싱글벙글 웃으며 물었다.
“금음 여황과는 잘 된 모양이지?”
“사형, 설마 부러운 거예요?”
“당연하지. 금음이는 얼굴도 예쁘고 능력도 뛰어나잖아. 획쟁도 청출어람이라고 칭찬이 자자하던걸. 얼마나 많은 공자들이 금음이를 보려고 줄을 선 줄 아니? 그런데도 너만 기다린 아이야. 그러니 잘해줘야 한다.”
“네, 저도 잘 알고 있어요.”
항소운은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다시 물었다.
“근데 사형, 혼인은 언제 하실 거예요? 이제 사형도 적은 나이는 아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