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623
제623화 혹시 도련님께서 돌아오신 걸까?
얼마 후, 항소운은 동빙, 하화로부터 새로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제패천이 출관을 하지 않자, 민심이 동요한다는 소식이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그는 즉시 일행을 소집해 제종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다만 출발 전, 분신을 먼저 제종으로 보내 상황을 살피도록 했다.
분신은 현재 9품 혼태경으로, 중원 대륙의 고수들 중 중간 서열쯤 되었다.
전천 경지의 성인만 마주치지 않으면, 그의 앞을 가로막을 자는 없었다.
그런데 왜 혼자서 제종에 간 걸까?
바로 제종의 내부 사정을 파악하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제종의 방어진을 미리 깨뜨려 놔야 아군이 편히 들어오지 않겠는가.
물론 제종의 고수들을 무시할 만큼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근처에 도착한 그는 은신 능력으로 몸을 숨긴 뒤, 입구 쪽으로 성큼 걸어갔다.
은신 덕분에 제종의 진법을 깨뜨릴 자신도 있었다.
제종 앞에 이르러 그 웅장한 기세를 보고 있노라니, 새삼 감회가 새로웠다.
‘드디어 다시 돌아왔구나!’
그의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자신 때문에 이곳이 송두리째 넘어갔다는 생각에 한동안 많이 괴로웠다.
오늘 다시 이 땅에 발을 딛고 서자, 어쩐지 제패천에게 고맙다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제패천의 배반이 없었다면, 그는 아마도 아직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었다.
노력도, 목적도 없이 그저 시간만 축내는 망나니 말이다.
하나, 지금은 감상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는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 경비는 무척 삼엄했다.
다섯 걸음마다 작은 초소가 있고, 열 걸음마다 망루가 있어 개미 한 마리도 들어오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항소운이 바로 옆으로 지나가도 경비병들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득의양양해진 그는 아주 익숙한 걸음으로 산봉우리로 빠르게 향했다.
그곳은 그가 일찍이 머물던 곳으로, 소운봉(少雲峰)이라 불렀다.
과거 가장 즐거웠던 시절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하고 보니, 예전과 달리 스산한 기운만 감돌았다.
그가 살던 곳은 이미 황폐해졌고, 당시 시중을 들던 사람들도 아마 세상을 떠났으리라.
쓸쓸한 마음을 안고 돌아서려는데, 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은 한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소녀는 조용히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어쩐지 그 모습이 낯이 익어 천천히 다가갔다.
“도련님이 돌아오셨대. 꼭 승리하셔서 다시 가문을 되찾으셨으면 좋겠어.”
소녀의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가까이 다가가서야 겨우 들릴 정도였다.
“소천(小倩)아!”
항소운은 저도 모르게 말을 내뱉고 말았다.
다행히 재빨리 정신을 차려 음성을 아주 약하게 만든 덕분에 멀리서는 듣지 못했다.
“누구세요?”
소녀는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고개를 돌린 소녀는 둥그스름하고 예쁘장한 얼굴이었다.
보드랍고 반짝이는 피부와 초승달을 닮은 눈빛이 아련하게 느껴졌다.
어여쁜 몸매를 가지고 있으나, 바람이 불면 훅 날아갈 듯 가녀렸다.
누구든 이런 소녀 앞에서는 보호 본능이 일기 마련이었다.
소녀의 얼굴을 본 항소운의 마음은 왠지 복잡미묘해졌다.
그녀는 일찍이 그가 가장 아끼던 시녀 약천(藥倩)이었다.
어려서부터 함께 자란 소꿉친구기도 했는데, 당시에는 지금처럼 예쁘지 않아서 그는 하운석을 좋아했다.
그의 기억 속 약천은 코흘리개였다.
그와 함께 노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으나, 그는 정작 귀찮아했다.
그랬던 그녀를 이렇게 다시 만나다니, 마음이 뭉클해졌다.
약천은 약로의 손녀였다.
항양전은 약로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고, 덕분에 문중에서 그의 지위는 매우 높았다.
이후 제패천이 등극하고도 약로에 대해서만큼은 극진히 대우했다.
그만큼 그는 약을 다루는 분야에서 능력이 독보적이었다.
일찍이 약로는 약천이 명을 짧게 태어나 열여덟을 넘기기 힘들다고 했다.
그런데 벌써 스무 살을 넘겼으니, 약로가 손녀를 살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짐작이 갔다.
세월이 흐르며 그녀는 날로 예뻐졌지만, 연약한 체질만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다.
항소운은 약천이 안쓰러워 꼭 안아주고 싶었으나, 그럴 수는 없었다.
그녀가 그를 위해 기도한다는 건 아직도 자신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웠다.
약천은 아무도 보이질 않자, 고개를 갸웃하며 이만 돌아갈 준비를 했다.
지금은 민감한 시기였다.
할아버지가 연금된 상황에서 자신까지 문제를 일으킬 순 없었다.
소운봉을 내려가려는데, 몇 사람이 저 앞에 나타났다.
항소운은 그들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제패천의 다섯째 아들 제성공(帝成功)이었다.
패기 넘치는 이름이나, 실상은 실패한 인간이었다.
제패천의 아홉 아들 중 가장 뛰어난 자는 제림이요, 가장 형편없는 건 제성공이었다.
워낙 무공에 재능이 없는지라 형제들과의 간극을 줄일 수 없었고, 결국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종일 먹고 마시며 무의미한 시간을 보냈다.
당시 항소운이 허송세월을 보낸 것도 그의 영향이 컸다.
지금의 그는 주색에 완전히 빠진 모양새였다.
걸음걸이도 건들거리는 것이 무림인의 기개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뒤로 졸개들이 몇몇 따라오고 있었다.
자칭 수행원을 자처하는 자들로, 저들이 없었다면 호색한 기질 때문에라도 진작 목이 달아났을 것이었다.
그런 그의 시야에 약천의 가녀린 몸이 들어왔다.
그녀는 그의 음흉한 시선을 오래전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그녀는 ‘도련님’하고 가볍게 인사를 올리고는 서둘러 걸음을 뗐다.
하지만 제성공이 목표물을 고이 놓아줄 리 만무했다.
그는 재빨리 앞을 가로막으며 능글맞게 웃었다.
“약천아, 왜 그리 급히 가니? 이 오라버니와 얘기나 할까.”
이러면서 팔을 잡으려 하자, 약천이 재빨리 피했다.
그녀는 우선 여기서 벗어나자는 생각뿐이었다.
아니면 저자에게 무슨 일을 당할지 몰랐다.
예전 같으면 이렇게 하지도 못했을 놈이 할아버지에게 일이 생기자, 바로 본색을 드러냈다.
그녀가 잰걸음으로 달아나자, 그가 큰 소리로 말했다.
“잡아 와!”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졸개들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도련님 말씀 안 들려?”
그중 하나가 협박조로 말했다.
“가게 해주세요.”
그녀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이대로 빠져나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다급해졌다.
“오늘 넌 아무 데도 못 가. 그만 얌전히 이 도련님을 모시거라. 그렇지 않으면 네 할아비도 무사하지 못할걸.”
제성공은 히죽 웃었다.
그는 그녀의 가녀린 몸을 대놓고 훑었다.
욕정이 걷잡을 수 없이 타올라 그는 황급히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앞에서 그녀를 욕보이려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꺄악!”
본능에 가까운 비명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어디 계속 소리쳐 봐. 아무리 발버둥 쳐도 오늘 넌 이 몸의 여자야.”
싸늘한 시선으로 모든 과정을 지켜본 항소운은 속에서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이 짐승 같은 놈!’
그는 바로 주저 없이 명룡혼주를 읊기 시작했다.
그러자 무형의 고문자가 제성공을 향해 빠르게 내달렸다.
제성공은 문중 자원으로 어렵사리 비천경에 올랐으나, 이 정도는 항소운에게 우스웠다.
비천경을 제압하는 것 정도야 눈 깜빡일 시간이면 충분했다.
제성공이 약천에게 다가서는 순간, 그의 연약한 영혼은 항소운에게 완벽히 통제당하고 말았다.
“으아아악!”
갑자기 제성공이 머리를 감싸 쥐고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통증이 영혼 가장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다.
옆에 있던 졸개들은 화들짝 놀랐다.
“도, 도련님? 왜 그러세요?”
졸개들이 에워싸고 묻는데도 대답은커녕 연신 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고통스러워했다.
머리에선 피가 철철 흘렀고, 돼지 멱따는 비명이 메아리쳤다.
약천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계속 뒷걸음을 치며 어떻게든 이곳에서 빠져나가려 했다.
“분명 이년이 술법을 부린 걸 거야! 어딜 도망가려고? 여기 잠자코 있어!”
졸개 하나가 소리를 버럭 지르며 그녀를 잡으려 달려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제성공이 비명을 멈추더니, 큰소리로 욕을 퍼붓는 것이었다.
“야, 이놈아! 어서 이리 안 와? 이건 약천과 상관없는 일이란 말이다.”
졸개는 제성공의 호통에 얼른 제자리로 돌아갔다.
“약천아, 미안해. 내가 아까는 정신이 나갔나 봐. 제발 용서해주라.”
제성공은 자신의 뺨을 연신 때리며 그녀에게 사과했다.
당사자인 그녀는 물론이고, 옆에 있던 졸개들도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이 아는 제성공은 절대 이런 인물이 아니었다.
“다들 뭣들 하고 있냐? 어서 사과하지 않고! 다들 죽고 싶어 환장했냐?”
제성공의 욕지거리에 정신이 번쩍 든 졸개들은 황급히 용서를 빌었다.
“아가씨, 죄송합니다.”
“성의가 없잖냐! 어서 나처럼 뺨이라도 때려. 당장 무릎 꿇고, 약천이 용서해줄 때까지 계속 때려.”
그 말에 졸개들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하지만 주인도 하는데 자신들이라고 안 하고 배길 수 있겠는가.
그들은 하라는 대로 따랐다.
다 큰 남자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 연신 자기 뺨을 때리는 광경은 참 묘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항소운의 마음도 한결 후련해졌다.
약천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어서 여기서 빠져나가는 게 급했다.
그녀는 한참을 걸어가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아까 분명히 누가 부르는 소릴 들었는데. 제성공 목소리는 절대 아냐. 그럼 대체 누구지?’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불현듯 환히 웃는 소년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혹시 도련님께서 벌써 돌아오신 걸까?”
약천은 걸음을 재촉해 서둘러 그곳을 벗어났다.
항소운은 제성공 같은 한심한 놈을 계속 보고 있기도 언짢아서 조용히 약천의 뒤를 밟았다.
문득 약로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다.
약천의 가녀린 모습은 애처롭기 그지없었다.
처소로 돌아가는 길에 아는 얼굴을 만나 인사를 했으나, 상대는 역귀라도 본 듯 슬금슬금 피하며 은연중 그녀를 무시했다.
그녀는 크게 상심한 듯 얼굴의 그늘이 더욱 짙어졌다.
과거에는 모든 이가 그녀를 웃는 낯으로 대하며, 아첨하고 떠받들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감금되자, 지위는 예전만 못해졌고 오히려 모든 사람이 꺼리는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래, 다들 연루될까 봐 두려운 거겠지.’
그녀는 곧장 약전(藥殿)으로 돌아갔다.
예전에는 활기가 넘치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적막만이 감돌았다.
“세상인심이라는 게 참 야박하구나.”
그녀는 대전을 지나 후원으로 걸어갔다.
약로는 그곳에서 차를 마시고 계셨다.
“할아버지.”
그녀가 나지막한 소리로 불렀다.
“그래, 또 소운봉에 갔다 왔느냐?”
약로가 인자한 얼굴로 물었다.
구금되었다고는 하나, 실상은 연금일 뿐이었다.
다만 혈도를 막아놔서 무공은 전혀 쓸 수가 없고, 후원에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었다.
어기는 순간, 즉시 처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