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642
제642화 정명대회
항소운은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옥통을 품에 넣었다.
아버지가 살아계신 걸 확인하자, 마음이 놀라우리만치 차분해졌다.
이제 할 일이라고는 아버지가 오실 날을 마음 편히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래, 이 일은 네가 알아서 결정하려무나. 내가 알고 있는 건 전부 말해서 더는 도와줄 게 없구나.”
방통원의 얼굴은 쓸쓸해 보였다.
“고맙습니다, 삼숙.”
항소운은 머뭇거리다 조심스레 물었다.
“그리고 삼숙께서 계속 자릉종의 참모를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이 조카에게 힘을 보태주실 수 있는지요?”
방통원은 당황한 표정을 하더니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
“이미 폐인이 됐는데 무슨 보탬이 되겠느냐. 동정할 것 없다. 아직 마음만은 무너지지 않았어.”
“동정이 아니에요. 예전에도 아버지의 유능한 참모로 크게 활약하셨잖아요. 비록 지금 무공은 잃으셨지만, 지모에서 삼숙을 따를 자는 없는걸요. 이제 곧 정명대회라 관리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닌데, 이런 때 삼숙이 나서주시면 큰 힘이 될 거예요.”
항소운의 태도는 간절했다.
방통원은 그 간절함에 감복했는지 표정이 흔들렸다.
폐인이 된 후로 어찌 열등감이나 우울감이 없었겠는가.
자신이 아직 쓸모 있다는 것을 세상에 증명할 수만 있다면, 그 기회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방통원의 표정 변화를 눈치챈 그가 더욱 힘을 주어 말했다.
“삼숙, 무공은 되찾을 수 있어요. 성진을 응집하고 무공을 회복할 방법이 틀림없이 있을 거예요. 우선 그전에 몸부터 추스르시고, 틈날 때 문중의 소소한 일도 도와주세요. 삼숙도 아시겠지만, 지금 전 수련에 힘써야 할 때에요. 제패천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니, 미리 대비해야죠.”
방통원은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그래, 네가 이렇게까지 믿어주니 설령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자릉종을 위해 일하마.”
“삼숙, 말씀이 지나치세요. 그럼 정명대회에 관해 얘기를 나눠볼까요?”
“그래, 그러자꾸나.”
그 후로 두 사람의 대화는 반나절이나 이어졌다.
방통원이 피로를 느껴 처소로 돌아갈 때까지 회의는 쭉 계속되었다.
과연 방통원은 아버지가 인정한 모사다웠다.
운영 관리 쪽으로는 훤히 꿰뚫고 있어서 핵심만 짚어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그가 말한 대로만 하면 문파 내 사무를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항소운은 고심 끝에 방통원을 곁에서 보살필 사람을 마련키로 했다.
아무래도 방통원이 무공을 회복하기 전까지는 누군가 필요할 터.
신중하게 사람을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무공을 상실한 다른 충신들도 각별히 보살펴야 했다.
다만, 현재로서는 쓸만한 인재가 몇 없는지라 인원 확충도 시급했다.
다만 정명대회가 끝나야 이런 일들을 처리할 여유도 생길 터였다.
후원으로 돌아오자, 야조모와 척발완아가 나란히 앉아있었다.
항소운이 물었다.
“정명대회가 끝나면 어떻게 할 계획이야?”
두 여인은 각자 돌아갈 곳이 있었다.
그걸 잘 알기에 그녀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당연히 여기 있어야지.”
두 여인의 입에서 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난 진지하게 물어보는 거야. 모모야, 무사 대인이 네가 여기 오래 있는 걸 허락하실 리 없잖아. 그리고 완아, 당신은 여기 남아도 상관없지만 그래도 대장로께 서신은 보내야 하지 않겠소. 대인께서 걱정이 크실 거요.”
“네, 전 여기 남아서 당신과 함께 있을게요. 우린 부부잖아요.”
척발완아는 무척 기뻐했다.
“나도 남을래. 여긴 오라버니만이 아니라, 내 집이기도 하다고.”
야조모는 허리에 손을 얹고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네 집도 맞지. 그럼 무사 대인부터 먼저 설득하던가. 물론 대인을 아예 모시고 와서 이곳에 사시게 하면 제일 좋지.”
항소운이 말했다.
“알았어. 꼭 스승님을 무사곡에서 나오게 할 거야. 대체 그런 곳이 뭐가 좋다고 계속 거기에 눌러 계신 건지……. 자릉종하고 별 차이도 없구만.”
야조모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확실히 자릉종 정도면 훌륭했다.
배산임수의 형세로 풍경이 수려하고 천지의 기운이 강하여 7품 문파로서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건 너 하기에 달렸지. 어쨌든 정명대회가 끝나면 무사곡으로 돌아가서 대인께 말씀드려. 뭐, 대인께서 오기 싫다 하셔도 어쩔 수 없지. 중요한 건 네가 집에 오도록 허락하시느냐 야. 어쨌든 난 언제든 환영이야.”
항소운이 장난스레 웃었다.
“좋았어.”
야조모는 기분이 좋아져서 한달음에 달려가 그에게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
항소운은 난처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척발완아도 민망하긴 마찬가지였다.
온화하고 고상한 그녀에게 야조모의 열정적인 성격은 쉽게 적응되지 않았다.
“모모야, 그만해. 완아도 있잖아.”
항소운은 야조모의 등을 두드리며 그녀를 떼어놓았다.
뒤이어 그는 사람을 모집하는 일과 관련해 두 여인과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소 급한 일이라서 그녀들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그래도 얘기를 하다 보면 무언가 얻는 게 있지 않을까.
비록 지혜의 빛이 있다고는 하나, 이런 쪽으로는 경험이 없다 보니 서툰 편이었다.
두 여인은 각기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우선 야조모는 공개 모집을 주장했다.
좋은 대우와 지위를 보장하면 무림 고수들이 자연히 찾아올 거라고 했다.
이는 가장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척발완아는 정명대회에 참석한 자릉종의 휘하 세력에서 인재를 선발하자고 했다.
휘하 세력이 자릉종에 합류하면, 자릉종의 전반적인 세력이 강화될 뿐 아니라 이들과의 관계가 한층 긴밀해지고 휘하 세력 간에 경쟁 구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었다.
다소 식상한 방법이지만, 항소운의 구미에는 딱 들어맞았다.
과거 자릉종에는 휘하 세력에서 들어온 자들이 더러 있었다.
아마 지금도 있으리라.
다시 같은 방법으로 휘하 세력에서 사람을 들여온다면, 쌍방에게 서로 좋은 일일 것이었다.
자릉종은 사람이 필요하고, 하부 세력은 든든한 배경이 필요하니 이만한 상부상조가 또 어디 있겠는가.
다만, 어떻게 해야 충직한 사람을 들일 수 있는지는 고심해 봐야 할 문제였다.
그는 이 일을 두훤호와 한파군에게 맡기기로 했다.
두 사람은 바늘과 실에 비유될 정도로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다.
어디를 가든 함께 가고 수련도 같이하며 끈끈한 우정을 나누었는데, 다만 함께 익힐 협공 기술이 없음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한파군을 떠올리자, 아예 한가(韓家)를 자릉종으로 끌어들여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가는 5품 세력이니, 그만하면 저력도 있었다.
한가가 자릉종에 들어오기만 한다면, 반드시 집중지원 할 텐데 말이다.
며칠이 지나고 마침내 정명대회가 열리는 날이 되었다.
정명대회란 자릉종의 관할에 있는 크고 작은 세력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아 제종의 몰락을 알리고 다시 자릉종으로 명명되었음을 선포하는 자리였다.
물론, 실제로는 세력들의 반응을 살피기 위함이었다.
불복종하는 세력은 무력으로 제압하고, 순응하는 세력은 계속 관할에 두기 위해선 필요한 관찰이었다.
자릉종 관내에는 열여덟 개의 성과 도시가 있다.
거기에 속한 세력만도 자그마치 서른세 곳이나 돼서 그중 6품 세력이 두 곳, 5품 세력이 여섯 곳, 그리고 나머지는 3, 4품 세력이었다.
물론 1, 2품 세력은 셈에 끼울 필요도 없었다.
이들 세력은 독립적으로 생존하면서 또 동시에 자릉종이란 7품 세력에 의지했다.
그래서 매년 자릉종에 공물을 바치는 방식으로 양측의 관계를 유지했다.
이들 세력 간에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자릉종은 관리자의 신분으로 관여할 수 있지만, 반대로 자릉종에 아무리 심각한 문제가 생겨도 이들이 관여할 권리는 없었다.
주종 관계에 따른 극명한 차이였다.
앞서 말한 6품 세력은 주마성(駐馬城)의 마가(馬家)와 청수성(靑秀城)의 청수장(靑秀庄)이다.
비록 이들은 전천 경지의 성인은 없지만, 수많은 제존과 인황을 거느리고 있어 인적 자원이 풍부했다.
따라서 앞으로 전천 성인을 두세 명만 배출해도 자릉종을 겁낼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5품 세력 여섯 곳은 큰 성의 중요한 관리자이며, 그 외의 작은 세력들은 소도시 출신으로 지리적 한계로 인해 성장이 어려웠다.
자릉종은 미리 초대장을 보내 각 세력의 지도자들을 정명대회에 초대했다.
이런 상황에서 참석하지 않는 것은 자릉종에 대한 불경이요 불복종을 뜻하는 바, 각 측은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정명대회가 시작되었다.
자릉종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손님맞이에 들어갔다.
어쨌든 오늘만은 7품 세력의 위세를 만방에 펼쳐야 했다.
저들에게 자릉종의 저력을 확실히 각인시켜 계속 충성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광활한 연무장에는 수백 명에 이르는 자릉종의 사람들이 대열을 갖추고 질서정연하게 서 있었다.
큰북을 치기도 하고 기다란 나팔을 불며, 무예도 선보였다.
속사정이야 어떻건 외견만은 완벽해야 했다.
서툰 실수로 저들에게 얕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자릉종의 집사가 명단을 확인하며 방문객의 도착을 큰소리로 알렸다.
“백석성(白石城) 석가(石家) 가주께서 오셨습니다.”
“수하동(水河洞) 부동주께서 오셨습니다.”
“강품성(剛品城) 강가(剛家) 대장로와 삼품(三品) 학당 학장께서 오셨습니다.”
“…….”
방문객은 탈것을 타거나 날아서 들어갈 수 없고 오직 걸어서 들어가야 했다.
이를 어기는 것은 자릉종에 대한 도발이었다.
대부분의 세력은 본분을 지키며, 자릉종의 권위에 함부로 맞서지 않았다.
썩어도 준치라고, 비록 자릉종이 진통을 겪은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어쨌든 자신들보다는 훨씬 강한 세력이었다.
심사가 뒤틀리면 전천 성인을 불러내 세력 하나쯤 없애는 건 일도 아닐 터였다.
각 세력이 속속들이 도착하면서 연무장의 열기도 후끈 달아올랐다.
항소운은 멀리 주봉에서 연무장의 상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소종주는 사람들이 전부 도착한 후 가장 마지막에 등장해야 했다.
그것이 자릉종의 위엄을 세우는 길이었다.
“소운아, 사람들이 거의 도착했다. 이제 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
약로가 옆으로 다가와 작은 소리로 알렸다.
“네, 알았어요.”
이미 앞에는 여덟 명의 인황이 이끄는 큰 가마가 준비되어 있었다.
가마에 타려다 무언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뜻밖에도 낯선 무리가 창공을 가로질러 날아오고 있었다.
거침없는 기세로 보아 아무래도 평범한 방문객은 아닌 듯했다.
“할아버지, 저들은 누굽니까? 대체 누구길래 저리 겁도 없이 날뛰는 거예요?”
항소운이 낯선 무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약로가 대답할 새도 없이 방통원이 질문을 받았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아마 주마성의 무리일 게다. 그들처럼 강한 말 요수를 많이 거느린 세력은 보기 힘들지. 그들은 말 요수를 최고의 동료로 삼고, 탈것도 전부 말로 통일했어. 저들이 사는 주마성은 천왕주 최대의 말 집산지란다.”
“과연 주마성에서 온 자들이 확실하군. 말에서 내리지도 않고 저리 오만하게 굴다니. 소란을 피우러 온 게 분명해.”
약로가 가라앉은 소리로 말했다.
“우선 저들이 어떻게 나오나 지켜보죠. ”
항소운은 잠자코 상황을 주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