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665
제665화 후회할 거라 했지?
“항소운……. 좋은 이름이네요. 구름처럼 높이 날아올라 무한히 나아간다는 뜻이겠죠. 더욱이 인물까지 수려하시니 누구라도 설렐 수밖에요.”
호미혜가 빠져들 듯 깊고 고운 눈동자를 하고선 나지막이 말했다.
호미혜의 나긋나긋한 음성은 가슴 깊숙이 파고들어 사람의 마음을 아주 편안하게 했다.
눈빛과 목소리, 몸짓 하나에도 상대를 홀리는 마력이 있어 누구든 무방비 상태가 되어버렸다.
자제력이 대단한 항소운조차도 청심주를 읊고서야 마음이 차분해졌다.
어쨌든 한창 혈기 왕성한 젊은이가 아니던가.
이런 욕정조차 없으면, 되려 그를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칭찬 감사합니다. 낭자야말로 자색이 무척 뛰어나시군요. 보세요, 다들 절 잡아먹을 듯 노려보고 있지 않습니까.”
항소운이 미소를 띠며 화답했다.
“호호, 재밌는 분이시군요. 제가 그렇게 예쁠 리가 있나요?”
그녀가 곱게 눈을 흘기며 생긋 웃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매혹적이던지 주변에 있던 사내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호족 공주의 매력에 꼼짝없이 넘어간 것이다.
이에 항소운이 담담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호족 여인이 꽃처럼 아름답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얘기 아닙니까. 저는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모처럼 절세의 미인이 술을 권하며 이야기를 하자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호미혜는 항소운에게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
그동안 숱한 남성을 봤지만, 이렇게 넘어오질 않는 남자는 난생처음이었다.
다만, 이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못마땅했는지 누군가 우악스럽게 대화를 끊었다.
“이봐, 여우 아가씨. 이리 와서 이 어르신의 술 시중이나 들지.”
거친 목소리의 사내는 기골이 장대하고 생김새는 추했다.
철탑처럼 단단한 몸에 안으로 접은 철익(鐵翼), 돌처럼 네모 난 머리가 전반적으로 딱딱한 인상을 주었다.
외양적으로 부드러운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이 납작하고 평평해서 썩 보기 좋은 외모는 아니었다.
워낙 신체적 특징이 뚜렷한지라 누구든 이자를 보면 철익족임을 단번에 알아차릴 것이다.
이들은 개천성에서 가장 강한 종족이었다.
철익족과 영이족은 서로 선을 지키며 분란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써왔다.
이 철익인도 소란을 피우기 위해 이곳에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모처럼 경매 행사가 열린다고 하니 각 종족에서 누가 오고 어떤 진귀한 물건을 팔지 살펴보러 왔을 따름이다.
물론 운이 좋으면 좋은 물건을 싼값에 구매할 수도 있을 터였다.
사내의 이름은 철알탑(鐵嘎塔).
일찌감치 이 주루에 자리를 잡고 앉아 방문객을 훑어보다가 호미혜에게 한눈에 반해버렸다.
보통 철익족 사내들은 인간 모습을 한 여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약해 빠진 데다 성격도 나긋나긋한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체격 좋고 다부진 여성을 훨씬 선호했다.
그러나 호미혜의 아름다움은 이런 미적 조건을 완전히 초월했다.
그녀의 매력에 송두리째 마음을 뺏겨버린 그는 급기야 환각이 일어났다.
그의 눈에 비친 그녀는 키가 크고 체격이 다부진 여성으로 변해 있었고, 꿈에 그리던 이상형을 만났다는 생각에 그는 뛰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래서 호미혜에게 술을 마시자고 했던 것이었다.
그녀는 철알탑이 싫었으나, 차분히 대처했다.
“미안하지만, 전 이 공자님과 술을 마실 뿐입니다. 물론 공자께서 당신을 모시라 한다면 저도 어쩔 수 없지만요.”
그녀는 꽤나 영리했다.
완곡히 거절함과 동시에 항소운이 자신을 위해 나설 의사가 있는지 떠보고 있었다.
그런데 항소운의 입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 흘러나왔다.
그가 씩 웃으며 철알탑에게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이 여인과 정 술을 마시고 싶다면, 내가 양보하겠소.”
그러고는 선뜻 일어나 제 자리를 철알탑에게 내어주는 것이었다.
주변의 구경꾼들은 저것도 남자냐 싶어 한심하단 눈초리로 혀를 끌끌 찼다.
철알탑에게 맞설 것을 기대했건만 실상은 저런 찌질이였다니.
참으로 실망스러웠다.
호미혜도 크게 당황했다.
눈앞의 청년이 낯부끄러운 줄 모르고 곤경에 빠진 여자를 나 몰라라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자 철알탑이 귀에 거슬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그래야지. 녀석, 앞으로 크게 되겠어.”
철알탑은 자리에 앉더니 그녀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마치 당장이라도 그녀를 덮칠 듯 탐욕스러운 눈빛을 숨기지 않았다.
호미혜는 역겨움을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래 자신의 탁자로 돌아가려 했다.
물론 철알탑이 순순히 놓아줄 리 없었다.
손을 뻗어 그녀를 잡으려 했으나, 정작 손에 잡힌 건 술잔이었다.
술잔은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그 바람에 담겨 있던 술이 튀면서 탁자는 술로 흥건해졌다.
소란이 벌어지자, 술집 점원이 바로 주의를 주었다.
“주루에선 싸움을 일절 금하니, 다들 자중하십시오.”
제아무리 철익족이라 해도 영이족의 영역에선 함부로 행동할 수 없었다.
이 소리에 번뜩 정신이 든 철알탑은 더는 경솔하게 행동하지 못했다.
다만 호미혜에게 앙심을 품었는지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이봐, 여우. 평생 여기서 숨어있는 게 좋을 거다. 여기서 한 발자국이라도 나가는 순간, 넌 이 어르신 것이 될 테니까.”
그러고는 몸을 홱 돌려 밖으로 성큼 걸어 나갔다.
한편, 방으로 돌아온 항소운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족 중에 선한 부류는 없는 모양이군. 하나같이 대단한 재능에 신통한 재주까지 지녔으니, 역시 미리 조심하는 게 좋겠어.’
이후 며칠간 항소운은 방에 틀어박혀 수련에 집중했다.
매일 저녁 무렵이면, 구중천에서 아홉 가지 성진의 힘이 무형의 형태로 몸속에 흡수되어 체내 성진의 힘을 가득 차오르게 했다.
덕분에 무공이 꾸준히 상승했다.
제패천이 살아있는 한, 한시도 경계를 늦출 순 없었다.
무공 단련에 매진하여 하루빨리 전천 경지에 올라야 비로소 자릉종도 지켜낼 수 있을 터.
그날이 오기 전에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눈 깜짝할 새 며칠이 흘렀다.
항소운은 방에서 걸어 나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맞은편 방에서 호미혜가 걸어 나오는 것이었다.
그녀는 당황한 듯 멍하니 있다가 이내 옥구슬 같은 웃음소리를 냈다.
“어머, 항 공자, 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 당신이 내 맞은편에 묵은 줄 전혀 몰랐어요.”
항소운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받았다.
“정말 우연이군요.”
“우리 같이 나가요. 경매장에 가려는 거 맞죠?”
그녀가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특별히 요술을 쓰지 않아도 그것보다 훨씬 매력적인 웃음이었다.
항소운도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는지라 그녀와 동행하기로 했다.
이때, 여러 방에서 호족 여인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왔다.
여인들은 호미혜를 보자,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공주 전하.”
“그래, 이분은 항 공자시다. 전에 뵌 적이 있지?”
호미혜가 이렇게 말하자, 여인들이 환히 웃으며 그에게 예를 갖춰 인사했다.
“항 공자께 인사 올립니다.”
이에 항소운이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이런 깍듯한 인사는 받을 수 없소.”
“당연히 받으셔야죠. 우리 공주께서 맘에 들어 한 남자는 손에 꼽을 정도니, 공자께서도 큰 영광으로 아셔야 합니다.”
여인 하나가 넌지시 말했다.
“그렇소? 그럼 아주 영광스러운 일이군요.”
그는 멋쩍어서 코를 문질렀다.
“인사는 그쯤하고, 어서 경매장에 가요. 이러다간 자리도 없겠어요.”
이러면서 그녀는 항소운에게 자연스레 팔짱을 꼈다.
하지만 그는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팔을 빼며 단호히 말했다.
“남녀는 유별하니, 자중하시죠. 공주 전하.”
이런 말을 듣고 상처받지 않을 여인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호미혜는 정색하는 항소운이 되려 재밌다는 듯 싱긋 웃었다.
“날 아무렇지 않게 거절하다니, 정말 당신은 특별한 남자네요.”
“호족의 매력이 천하제일인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딨습니까. 난 당신의 애완동물이 되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그는 생각하는 바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호미혜에게 더는 귀찮게 하지 말라는 경고를 날린 셈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결국 상호 간에 불쾌한 일만 벌어질 뿐이다.
“이봐요, 항소운 공자. 정말 장난이라곤 모르는 분이네. 우리 공주께서 남자한테 이 정도로 관심을 보인 건 처음이라고요.”
호족 여인 하나가 보다못해 볼멘소리를 했다.
“맞아요. 다들 우리 호족을 아주 몹쓸 종족으로 모함하는데. 당신네 사내들이 음흉한 마음을 품다가 망신을 당한 거지, 그게 어디 우리 잘못이에요? 우리는 그런 자들과 상종도 하기 싫다고요.”
다른 여인도 울분을 토했다.
“됐다, 그만들 해. 항 공자가 저런 걱정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이만 가자.”
호미혜는 씁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항소운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바로 여인들과 떠났다.
멀어져가는 그녀들의 뒷모습을 보며, 그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내가 쉽게 넘어갈 리 없지.”
이렇게 호미혜와의 인연이 끝난 줄 알았건만,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 * *
진귀한 보물이 가득한 이족 경매 행사가 드디어 막이 올랐다.
항소운이 애꾸눈과 주루에서 나오자, 미사가 기다렸다는 듯 공손히 맞이했다.
“항 도련님, 제가 직접 경매장으로 모시겠습니다.”
금진액 한 병이면 극진히 대접할 가치가 있었다.
항소운도 마다하지 않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하네.”
이렇게 해서 그는 미사가 준비한 마차를 타고 경매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앞쪽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앞쪽에 문제가 생긴 모양입니다. 다른 길로 돌아가겠습니다.”
미사가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항소운도 딱히 문제 삼지 않았다.
바로 그때, 전방에서 귀에 익은 여인의 외침이 들려왔다.
왠지 석연치 않아 미사를 불러세웠다.
“잠깐. 무슨 일인지 알아봐야겠네.”
그러자 미사가 대답했다.
“철익족이 호족을 공격하는 모양입니다. 도련님, 그냥 모른 척 넘어가시죠.”
철익족은 자타공인 개천성 최강의 종족으로, 많은 이들이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추었다.
이런 그들이 호족을 혼내기로 작정한 이상, 쉽게 끝내지는 않을 터였다.
항소운도 그들의 포악함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결국 상황을 살피기 위해 마차에서 내렸다.
알고 보니 며칠 전 마주쳤던 철알탑이 철익족 무리를 이끌고 호미혜 일행을 괴롭히고 있었다.
호미혜의 무공은 상당했으나, 공격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미혹하는데 능했다.
그런데 하필 철익족은 여자라고 봐주는 법이 없어서 매혹술이 통하질 않았다.
그들은 매우 난폭한 방법으로 호족 여인들을 잔인하게 짓밟았다.
“여우야, 그러게 내가 후회할 거라 했지? 이젠 천신이 아니라 그 할아비가 온다 해도 너희를 구하진 못할 거다!”
철알탑이 기세등등해서 소리쳤다.
철익족은 기세를 쫙 펼쳐 호미혜 등을 꼼짝 못 하게 압박했다. 그 강력한 힘에 연약한 호족 여인들은 저항도 못 하고 막무가내로 당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