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667
제667화 나만 돈이 없었네
“싸우지 마십시오. 이제 곧 경매가 시작될 텐데 여기서 싸우시면 안 됩니다.”
미사는 어찌할 바를 몰라 발만 동동 굴렀다.
“저놈 정도면 금방 죽일 텐데, 안 될 게 뭐 있어. 다들 싸워라!”
8품 제존의 명령이 떨어지자, 철익인들이 앞다퉈 달려 나갔다.
바로 그때 누군가의 호통이 들려왔다.
“감히 빛의 아들을 공격하려 하다니, 간덩이가 단단히 부었구나.”
목소리가 사라지고 몇 사람이 군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항소운이 있는 쪽으로 곧장 다가갔다.
항소운은 누군지 잠자코 살피더니 이내 얼굴에 반가운 미소가 걸렸다.
천사족이었다.
경매에 참가하기 위해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날아온 것이다.
항소운은 천사족에게 ‘광명사자’나 ‘빛의 아들’로 불리며 각별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
이런 그가 위험에 처하자, 그들이 돕기 위해 나섰다.
일행의 우두머리는 당시 광명탑을 지키던 날개 넷 달린 천사였다.
그 옆으로 날개 넷 달린 천사가 몇 명 더 있었는데, 딱히 기억 나는 얼굴들은 아니었다.
아마도 광명사자 의식을 행할 때, 오고 가며 마주쳤으리라.
여섯 명의 날개 넷 달린 천사들은 항소운에게 천사족 고유의 방식으로 예를 올렸고, 그도 같은 방식으로 답례했다.
“보체(普疐), 여긴 무슨 일이야?”
항소운은 철익족을 완전히 잊은 채 우두머리 천사에게 물었다.
천사족은 세상과 단절된 공간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그들이 갑자기 이곳에 나타나니 당연히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보체가 대답했다.
“빛의 아들이시여, 제사장께서 이제 세상에 나갈 때가 됐다며 저희를 밖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뵙게 되다니요.”
항소운이 막 입을 열려는데, 철익족의 8품 제존이 버럭 화를 냈다.
“저 날개 달린 놈들을 전부 없애버려라. 역겨워서 못 봐주겠군.”
항소운 등은 즉시 공격 태세를 갖추고 철익인들과 싸울 준비를 했다.
이때, 어디선가 아득한 음성이 들려왔다.
“경매 전에는 싸움을 금하며, 이를 어기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
압도적인 힘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그 기세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아무도 이 목소리의 출처를 알지 못했으나, 감히 이를 어길 자는 없었다.
이는 전천 성인의 의지였다.
순간, 철익족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비록 개천성의 기득 세력이기는 하나 영이족의 심기를 건드는 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좋다, 경매가 끝나면 너와 날개 달린 놈들의 목을 따러 오마.”
8품 제존은 말을 툭 뱉더니 무리를 이끌고 떠났다.
지금은 순순히 물러가도 아마 다음에는 더 많은 고수를 데리고 나타날 터.
어쨌든 항소운에게 조력자가 생긴 이상, 저들도 방심할 순 없을 것이다.
항소운의 표정이 다소 심각해졌다.
혼자 싸우다 안 될 것 같으면 도망이라도 치는데 천사족이 여섯이나 가담하니, 문제가 복잡해졌다.
비록 여섯 명 모두 제급 경지기는 하나, 철익족의 근거지에서 판을 뒤집기는 힘들 터였다.
“항 도련님, 이만 들어가시죠.”
생각에 빠져 있던 항소운은 미사의 말에 번쩍 정신이 들었다.
그는 호미혜와 천사족 여섯 명과 함께 경매장으로 들어갔다.
경매장은 생각보다 아주 컸다.
거대한 원형으로 이루어져 족히 수천 명은 수용할 수 있는 면적으로, 2층에는 특실 수십 개가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늦은 모양입니다. 자리가 하나도 없어요.”
보체는 아쉬운 얼굴이었다.
“미사, 내 특실에 몇 명이나 앉을 수 있지?”
항소운이 옆에 있던 미사에게 물었다.
“열 명 정도는 문제없습니다.”
“잘됐군. 나랑 같이 있으면 돼.”
항소운이 보체에게 말했다.
“그래도 왠지 죄송해서…….”
보체가 말끝을 흐렸다.
“한 식구끼리 미안할 게 뭐 있어. 그냥 편안히 있도록 해.”
이 말에 보체를 비롯한 천사족은 크게 감동했다.
항소운은 미사에게 길을 안내토록 했다.
잠시 후, 그들은 특실에 도착했다.
이곳은 시야가 매우 좋아서 경매장의 구석구석이 내려다보였다.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는 최상의 특실이었다.
이는 항소운과 같은 귀빈에게만 특별히 제공되는 공간이었다.
그는 품에서 수정을 꺼내 미사에게 건넸다.
“그동안 수고 많았네.”
“감사합니다, 항 도련님. 그리고 나가실 땐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철익족은 원한을 품으면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거든요.”
미사는 공손히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항소운은 고개를 돌려 보체 일행에게 말했다.
“여기 오기 전에 한바탕 소란이 있었거든. 다들 마음의 준비를 해두는 게 좋을 거야.”
“저희 천사족은 선량하지만, 그렇다고 남에게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보체가 낮은 소리로 힘을 담아 말했다.
다른 천사들도 맞장구를 치며 철익족이 두렵지 않다고 했다.
항소운은 이들의 태도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사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나쁜 일도 아니야. 결정적인 순간에 내 지휘에 따라 움직이면 돼. 내 반드시 자네들을 데리고 무사히 이곳을 떠나겠네.”
그는 화제를 돌려 물었다.
“그건 그렇고 정신수(淨神水)를 팔러 온 건가?”
정신수라면 그에게도 소량은 있었다.
이는 정신과 영혼을 깨끗이 만드는 효과가 있는데, 정신이 사악한 존재에게 공격을 당하지 않는 이상 그에게는 딱히 쓸모가 없었다.
그리고 정신수는 성혼을 깨끗이 씻기는데도 아주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따라서 전천 성인들은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정신수를 꼭 필요로 했다.
“네, 저희 천사족에게 가장 풍족한 건 정신수니까요.”
보체가 대답했다.
“그럼 거래할 물건은 생각해뒀고?”
“제사장께서 특별히 지시한 사항은 없습니다. 어쨌든 저희 종족에게 도움이 되는 물건이 있으면 입찰해볼 생각입니다.”
“그렇군. 그럼 뭐가 나올지 우선 지켜보자고.”
항소운은 경매장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경매장은 이미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이족들은 경매에 어떤 물건이 나올 지로 의견이 분분했다.
잠시 후, 영이족의 경매사가 등장했다.
그는 분위기를 진정시키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러분, 조용히 해주십시오. 지금부터 경매가 시작되겠습니다. 먼저 규칙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규칙은 간단했다.
경매에 오른 물건은 최고가를 낸 입찰자에게 낙찰되며, 터무니없이 값을 올려 부르는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최종 낙찰자가 돈을 지불하지 못할 경우, 가차 없이 사형에 처했다.
경매사가 주의사항을 간단히 설명한 뒤, 본격적으로 경매가 시작되었다.
이번 경매 행사는 이족의 진귀한 물건들을 선보이는 자리다 보니 경매 물품은 각 종족이 독자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귀한 물건들이었다.
첫 번째 매물은 사요족(獅妖族)의 반생이초(伴生異草)로, 사자후를 연마할 수 있는 귀한 약초였다.
꽤 값어치가 나가는 약초지만, 입찰자가 많지는 않았다.
대부분이 인간족이었고, 일부 연약한 이족이 경매에 참여했다.
다른 종족들은 이런 약초가 그다지 쓸모가 없다 보니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그들은 이후에 나올 최상급 물품을 기다리고 있었다.
항소운도 입찰을 서두르지 않았다.
조용히 때를 기다리다가 마음에 드는 물건이 나오면 바로 뛰어들 생각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마음을 흔들만한 물건이 등장했다.
세 번째 매물은 영문족의 문리석(紋理石)이었다.
문리석은 아주 희귀한 무기 제련 재료로, 무기의 내구성을 높이고 문양을 형성하여 힘을 증폭시켰다.
무기 제련사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물건으로, 수정 만 개로도 얻기 어려웠다.
현재 경매장에 나온 문리석은 최상급으로, 제급 병기는 물론 성급 병기를 만들 때도 요긴하게 쓰여 시작가가 상급 수정 일만 개에 달했다.
그런데도 금세 곱절로 오르면서 상급 수정 사만 오천 개로 훌쩍 뛰어올랐다.
각 종족마다 많은 무기 제련사가 있고, 이들 모두 문리석을 탐내다 보니 당연히 가격이 미친 듯이 오를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영문족과 가까이 지내는 종족도 드물어서 평소에는 문리석을 얻기가 영 쉽지 않았다.
항소운도 질세라 경매에 참여했다.
“상급 수정 오만 개!”
남들은 천 개씩 올려 부르는데, 항소운이 바로 오천 개를 올려 부르자 다른 입찰자들의 안색이 일순 어두워졌다.
그가 문리석을 원하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전천도를 복원하기 위해서였다.
가격이 높아지자, 입찰자 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결국 문리석은 상급 수정 팔만 개에 항소운이 낙찰받았다.
문리석 가격은 보통 상급 수정 이삼만 개 정도인데, 경쟁이 과열된 탓에 지금은 두세 배나 높은 가격에 팔렸다.
진기한 물건들이 잇달아 나오면서 경매장의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었다.
항소운도 말로만 듣던 진귀한 보물들을 보며 새삼 견문을 넓혔다.
가령 난쟁이족의 촌근자(寸根子)라든가, 수인족의 수변천(獸變泉), 어인족(魚人族)의 어린갑(魚鱗甲) 등 다양한 매물이 등장했다.
희귀할뿐더러 효과도 특별해서 각 종족은 쉬지 않고 경매에 참여했고, 덕분에 평소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팔렸다.
“자, 지금까지는 상등품이었고 이제부터는 최상품에 대한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경매사는 잠시 뜸을 들이다 경매 물건을 소개했다.
“철익족의 만년현철(萬年玄鐵)입니다.”
뒤이어 누군가 새카만 쇳덩이를 짊어지고 등장했다.
철익족의 만년현철로, 성급 재료였다.
경쟁은 뜨거웠다.
다들 값을 만 개씩 올리는 바람에 상급 수정 십오만 개에 불과하던 시작가가 금세 이십만 개를 돌파했다.
그 놀라운 속도에 항소운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쇳덩이 하나가 저렇게 비싸단 말이야? 이제 보니 나만 돈이 없었네…….’
그는 속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어쨌든 마음이 동할 정도의 물건은 아니라서 경매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뒤이어 최상품이 연이어 등장했다.
그중에는 광명기주(光明奇珠)도 있었는데, 어딘가 훼손됐는지 색이 어두웠다.
“빛의 아들이시여, 저희는 이번에 도전하겠습니다.”
보체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 하게.”
“네.”
보체는 바로 값을 외쳤다.
“상급 수정 삼십만 개!”
항소운은 깜짝 놀랐다.
광명기주의 시작가는 고작 십만 개로, 최고가라고 해봐야 십오만 개에 불과했다.
그런데 보체가 뜬금없이 곱절을 제시하자, 경매장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기세를 보아하니, 돈깨나 있는 모양이었다.
경매사가 금액을 세 번 불렀으나, 더는 호가를 외치는 자가 없었다.
이렇게 해서 훼손된 광명기주는 보체에게 넘어갔다.
보체와 천사들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이 구슬에 특별한 내력이라도 있나?”
항소운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성광주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큰돈을 번 셈이죠.”
보체가 대답했다.
“그럼 그 돈을 주고 산 가치가 있군.”
이름에 ‘성(聖)’자가 붙었다 하면 값이 말도 안 되게 비쌌다.
지금껏 경매에 나온 물건들은 진짜 성물(聖物)은 아니고, 그보다는 하등품이었다.
진정한 성물은 성급 수정, 즉 성정(聖晶)이 있어야 경매도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