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690
제690화 그럼 죽어라!
“설마 만년 종유천은 아니겠지……?”
만년 종유천은 성급 샘물로, 그 효능이 만만치 않았다.
성인조차도 이를 보면 눈이 뒤집혀질 정도였는데, 눈앞의 지성정 정주는 그저 이로 차를 우리도록 하다니. 너무 낭비가 아닌가?
항소운은 종유천을 그냥 챙겨 가버리고 싶었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우리라면 우리거라.”
지성정 정주는 조금 귀찮다는 듯 말했다.
항소운은 마음을 가다듬고 청심주를 묵념하고 눈앞의 평범치 않은 그릇을 들어 차를 우렸다.
다도에 대해 항소운은 어릴 때부터 깨우쳤는데, 비록 내려놓은 지 몇 년 됐음에도 기본은 아직 있었다.
눈앞의 찻잎과 찻물은 너무 진귀했기에 그는 모든 동작을 더욱이 조심히 할 수 없었다.
다행히 그의 현재 실력은 과거에 비해 많이 성장해서 시야도 예전 같지 않았다.
찻물과 찻잎은 확실히 소중했지만, 그도 성급 물건을 가지고 있는 자여서 이내 마음을 안정시키고 향기로운 차를 우려낼 수 있었다.
차는 눈처럼 투명했고, 이내 차가운 향이 풍기기 시작했다.
이런 최상급 차는 절대 바깥의 어느 세력이라도 쉬이 꺼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항소운은 냄새를 맡자 자신도 모르게 계속해 침을 삼켰다.
그는 이게 자신이 우려낸 가장 향기로운 차라고 맹세할 수 있었다.
항소운은 지성정 정주에게 한 잔을 따라 올리며 말했다.
“할아버지 차 드시지요.”
지성정 정주는 마다하지 않고 차를 받아 바로 마셨다.
이런 차는 영단묘약에도 비할 수 있었는데, 누구든지 이를 마시면 모두 비범한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성정 정주에게는 아무런 반응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이어 말했다.
“또 따르거라.”
항소운은 재빨리 한 잔을 더 따랐다.
지성정 정주는 그저 물을 마시듯이 한 번에 차를 깨끗이 마셔버렸다.
항소운은 또 따라 올리면서 그 모습을 보자 마음이 간지러워졌다.
그는 그가 우려낸 차가 지성정 정주에게 모조리 마셔진 걸 보고난 뒤였다.
지성정 정주가 눈을 살짝 뜨며 말했다.
“우려진 차가 나쁘지 않구나. 한데 넌 왜 마시지 않는 거냐? 이거 원래 널 대접하려 내놓은 건데?”
항소운은 그 말을 듣자 두 눈이 뒤집혀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
만년 설연화와 만년 종유천으로 우려낸 차.
이 차 한 잔에 수명이 백 년은 늘어나며 육신은 깨끗해지고 무공이 강해진다.
항소운은 마시고 싶어도 차마 입도 데지 못했다.
그런데 지성정 정주가 차를 거의 다 마시고 나더니 이 차는 자신을 위해 준비한 거란다.
그는 속이 쓰렸다.
다행히 아직 한두 모금은 남아있었다.
그는 체면 불사하고 이를 전부 마셔버렸다.
은은한 향기가 입 안 가득 차오르고 찻물이 목구멍을 적시며 뱃속으로 들어가자, 무더운 여름날 내리는 소나기처럼 아주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뒤이어 알 수 없는 힘이 오장육부와 몸 구석구석으로 스며들자 숨겨져 있던 내상이 깨끗이 치유되고 불순물도 배출되었다.
덕분에 생명력이 빠르게 활성화되면서 전반적인 상태가 좋아졌고, 극히 순수한 힘이 9대 성진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는 단 한 방울도 낭비할 수 없다는 듯 바로 전결을 운용하여 새로운 힘을 전부 흡수하기 시작했다.
지성정 정주는 항소운을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는 아홉 성진의 힘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걸 느꼈다.
2품 혼태경 초기였던 경지는 후기를 뛰어넘고도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겨우 두 모금을 마셨을 뿐인데, 그 찻물에 이토록 강한 힘이 숨겨져 있다니 놀랍고도 기뻤다.
이것이야말로 지성정 정주가 베푼 큰 은혜였다.
무인은 경지가 높아질수록 성장 속도가 더뎌지는 게 예사다.
무공을 한 단계 높이려 해도 그만큼 더 많은 힘이 필요하기에, 남들보다 유달리 흡수 속도가 빠른 항소운이라 해도 짧은 시간에 경지를 높이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데 정주 덕분에 고된 수고를 덜게 되어 과분한 은혜에 몸 둘 바를 몰랐다.
힘은 비약적으로 상승하여 2품 혼태경 정점까지 치솟더니 3품 혼태경으로 거침없이 나아가려 했다.
그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끓어오르는 힘을 쉼 없이 정제하고 압축해서 9대 성진으로 보냈다.
3품 혼태경을 돌파하는 것보다 기초를 단단히 다지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정주는 항소운의 변화를 감응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기초가 저리 두터운데도 힘을 억누르다니.’
그는 이 차가 지닌 힘을 잘 알고 있었다.
혼태경 무인이 마셔도 두세 품급은 너끈히 높이는 게 일반적이거늘, 항소운은 한 품급도 높아지지 않고 남은 힘은 전부 압축을 시키는 것이었다.
역시 평범한 녀석은 아니었다.
경지를 돌파할 기회를 포기할 수 있는 자는 거의 없으니 말이다.
그 후로 한참이 지나고서야 항소운은 눈을 떴다.
그는 너무 기뻐서 정주에게 바로 절을 올렸다.
“할아버님, 감사합니다.”
2품 초기에서 정점까지 단숨에 뛰어오르다니,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게다가 불순물도 대거 배출되어 육신은 더욱 깨끗하고 영롱한 상태가 되었다.
장차 무구지체(無垢之體)가 되면 준성체(准聖體)가 될 터였다.
평범한 사람이 성인의 경지에 이르면 완전무결한 육신과 정신을 갖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질적인 변화 과정이다.
“아까는 어찌하여 경지를 넘지 않은 것이냐?”
정주가 물었다.
“그러기엔 힘이 부족해서요. 차라리 그 힘으로 현 단계를 강화하고 나중에 더 많은 힘을 모아 돌파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습니다.”
항소운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힘이 부족해서라. 재미있군.”
정주는 담담히 미소 지었다.
항소운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기초가 훨씬 단단한 녀석이었다.
“할아버님, 그건 그렇고 완아가 순간이동 진에 대해 말씀드렸죠? 제대로 만들어보려고 하는데 혹시 이곳에 쓸 만한 재료가 있을까요?”
항소운은 염치 불고하고 찾아온 목적을 꺼냈다.
그는 이 일을 신속히 처리하고 싶었다.
필요한 재료를 하루빨리 취합해서 자릉종의 후방을 튼튼히 해야 마음 놓고 수련에 집중할 수 있을 터였다.
자신부터 강해져야 내 사람도 지키고, 다른 세력의 도발에도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을 테니까.
“그 일은 급할 거 없다. 그보다 네게 물을 게 있다. 완아와 함께 지성정에 남는 게 어떠냐?”
정주의 물음에 그는 말문이 막혔다.
대답을 잘못했다간 무슨 벌을 내릴지 모른다.
그렇다고 잠자코 있을 수는 없어서 결국 솔직하게 대답했다.
“완아와 혼례를 올렸으니, 더욱 아끼고 사랑해줄 겁니다. 다만 부친께서 남기신 가업이 있어 제가 이어받으려 합니다. 할아버님, 부디 너그러이 이해해주십시오.”
“네 부친의 가업은 나도 알고 있다. 듣자 하니 지성정의 삼 분의 일에도 못 미친다더군. 만약 네가 이곳에 남는다고 하면 정주 자리를 주마, 어떠냐?”
항소운은 잠시 망설이다 단호한 어투로 대답했다.
“그럴 순 없습니다.”
“우리 척발 가문이 눈에 차지 않는다는 거냐? 아니면 완아에게 진심이 아니고, 그냥 가지고 놀 셈이었던 거냐?”
정주는 크게 노했다.
순간, 생전 느껴본 적 없는 강력한 힘이 항소운의 영혼과 육신을 압박했다.
숨이 콱 막혀 이대로 기절할 것만 같았다.
그는 꺼져가는 정신을 붙잡고서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 그런 뜻이 아니에요. 완아는 제 사람이니 절 따라야죠. 제 세력이 비록 작긴 하지만, 반드시 지성정보다 더 큰 세력으로 키워낼 겁니다. 그리고 완아가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도록 꼭 지킬 거예요.”
처가에 기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정주는 누구라도 혹할 만한 제안을 했지만, 그는 그런 식으로 자신의 야심을 채우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가 물려주신 가업도, 다른 사랑하는 여인들도 포기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평생 지성정에 묶이고 싶지 않았다.
그건 그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흥, 말끝마다 완아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정작 그 아이를 위해 작은 희생도 할 수 없다는 것 아니냐? 너도 다른 사람들처럼 위선자로구나. 나중에 완아가 너 때문에 눈물을 흘리느니 차라리 지금 네놈을 죽이는 게 낫겠다.”
정주가 분개하자, 사방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항소운은 상대의 분노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만 피를 토해냈다.
“다시 묻겠다. 여기 남겠느냐?”
비록 안색은 초췌해졌지만, 항소운의 눈빛에는 확고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죄송하지만, 명령에 따를 수 없습니다.”
“그럼 죽어라!”
지성정 정주는 두 눈에 살기가 서려 호통쳤다.
항소운은 정주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리는 걸 보며 이제 끝났구나 싶었다.
실력 차이가 너무 커서 저항도 무의미했다.
그저 눈을 감고 죽음을 기다리는 수밖에.
‘완아, 잘 있어요.’
그는 비통한 심정으로 부르짖었다.
행복하게 혼례를 올린 게 바로 엊그제인데, 갑자기 죽는다니 너무도 원통했다.
눈을 질끈 감고 정주의 장법을 기다리는데 어째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슬그머니 눈을 뜨고 보니 정주는 이미 살기를 거둬들이고 뒷짐을 진 채 서 있었다.
“죽는 한이 있어도 싫다니, 마음을 단단히 먹은 모양이군. 지금 널 죽여봤자 완아만 슬프겠지. 목숨은 살려줄 테니 앞으로 내 손녀한테 잘하거라. 혹 그 아이를 조금이라도 힘들게 하면 절대 용서치 않을 게야.”
정주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예, 할아버님.”
그제야 항소운도 한시름 돌릴 수 있었다.
어쨌든 목숨은 붙어있으니 그거면 족했다.
다친 몸을 이끌고 돌아가려는데 정주가 불러세웠다.
“왜 그냥 가느냐? 아까 물어볼 게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저……. 순간이동 진을 만들려고 하는데 재료가 부족합니다.”
항소운이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그거라면 줄 수 있지. 다만 천사족과 통하는 순간이동 진이 아니라 지성정과 자릉종을 연결하는 것이어야 한다.”
정주의 말에 그는 당황한 나머지 말문이 막혔다.
“왜, 싫으냐?”
항소운이 대답을 하지 않자 정주가 뒷말을 재촉했다.
“아닙니다. 그렇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죠.”
항소운은 손을 내저으며 황급히 대답했다.
천사족으로 통하는 순간이동 진을 만들려고 했던 건 그들의 도움이 필요해서였다.
비록 천사족과는 당장 만들 수 없다 해도 대신 지성정과 연결하는 순간이동 진은 만들 수 있게 되는 것.
빈손으로 돌아가나 싶었는데 되려 이득이었다.
지성정이 보유한 무력은 결코 천사족에 밀리지 않았다.
더군다나 지성정 정주의 무공은 제사장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어서 자릉종으로서는 든든한 우방이 생기는 셈이었다.
물론 정주가 아무 조건 없이 항소운의 청을 들어줄 리 만무했다.
“순간이동 진을 만들고 나면 필요시에는 언제든 지원군을 보내마. 단 평상시에는 지성정 쪽으로 아무도 보내선 안 되며, 오직 지성정 사람만이 순간이동 진을 출입할 수 있다. 이게 전제 조건이다.”
항소운은 고민 끝에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지성정은 천사족의 영지와 마찬가지로 외부인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었다.
이는 이들의 비밀과도 깊은 관련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