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692
제692화 납치 당하다
정주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순간이동 진은 평범한 진법으론 안 돼.”
“지켜보면 아실 거예요. 근데 나중에 자릉종까지 연결하는 공간 좌표는 도와주셔야 해요. 안 그러면 진법이 소용없어지니까요.”
“알겠다. 이번 한 번은 믿어보마. 장소는 대장로와 함께 고르려무나. 나는 관여하지 않겠다.”
항소운의 자신만만한 표정을 보니 차마 안된다고 할 수 없었다.
그가 물러나려는데 정주가 불러 세웠다.
“참, 너한테 꼭 해야 할 얘기가 있다. 완아 배 속의 아이는 반드시 ‘척발’씨여야 한다. 우리 척발 가문의 아이가 된다는 소리야, 알겠느냐?”
상의가 아니라 통보였다.
항소운이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척발완아에게 얘기를 들은 터라 항소운은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바로 승낙했다.
“할아버님 뜻에 따르겠습니다.”
“그래, 가 봐라.”
정주는 손을 내저었다.
‘그래도 사리 분별은 하는군. 앞으로 크게 되겠어.’
항소운은 그 길로 대장로를 찾아갔다.
대장로는 그가 올 걸 짐작한 듯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부마, 정주께 얘기는 들었습니다. 지금부터 순간이동 진을 설치할 만한 장소를 차례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대장로는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된 곳으로 항소운을 데려갔다.
순간이동 진은 무척 중요해서 인적이 드문 은폐된 장소가 적당했다.
항소운은 한 바퀴를 둘러보고 난 뒤, 대전과 거리가 있으면서도 금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공터를 택했다.
“장소는 결정됐군요. 부마, 또 도와드릴 일이 있습니까?”
대장로가 물었다.
“당장은 없어요. 다만 당분간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았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대장로는 조용히 물러갔다.
홀로 남은 항소운은 주변의 지형을 둘러보다가 흙의 진의로 땅속 상황을 살폈다.
‘잘해보자!’
마음속으로 용기를 불어넣으며, 그는 분신을 소환해 진신과 함께 일을 시작했다.
진법의 토대를 만들기 전에는 진신도 큰 역할을 했다.
진법의 핵을 깔고 성급 재료를 다루는 일이야 성급 힘이 필요하지만, 진신이 있어야 아주 견고한 대형 진을 만들 수 있다.
진법의 무늬는 힘으로 새기고 정신력으로 인장을 찍는데 이를 땅속 깊숙이 남겨 보통 사람이 건드릴 수 없도록 해야 했다.
굉장한 정신력이 소모되는 과정으로, 특히 이처럼 복잡하고 까다로운 대형 진의 경우, 많은 시일이 걸렸다.
그는 진법의 무늬를 하나하나 정성 들여 만들었다.
어느 한 부분도 대충할 수가 없는 고도의 작업이었다.
다행히 진법과 흙의 진의에 모두 능통한 덕분에 진법의 무늬를 제대로 새길 수 있었다.
무늬는 빽빽이 새겨져 보기만 해도 어지러웠다.
상상도 못 할 만큼 복잡한 무늬였다.
‘이래서 진법대사를 미치광이라고 하나 보다.’
각 부분은 극도로 정밀하고 세심한 작업을 거치며, 또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어 힘의 흐름을 제어해야 한다.
보통 사람은 배우고 익히기도 어려운 공정이었다.
정주와 대장로는 허공에서 몰래 지켜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부마께선 진짜 진법대사셨군요.”
대장로는 연신 감탄했다.
정주는 흐뭇한 얼굴로 기뻐했다.
“저 녀석 숨겨둔 비밀이 많군. 그래서 자신만만했던 거야.”
“부마께서 어떻게 하신 건지 정말 모르겠단 말입니다. 몇 해 전, 처음 지성정에 오셨을 때만 해도 인황이셨는데 벌써 혼태경에 오르고 성혼까지 만드시지 않았습니까. 혹시 절세의 기연이라도 만나신 걸까요?”
“다들 남모르는 비밀이 있지. 저 녀석은 그런 비밀이 아주 많아. 자, 호기심은 이쯤에서 멈추자고. 어쨌든 완아를 지킬 능력만 있으면 돼.”
정주는 흐뭇한 미소를 뒤로 한 채 대장로와 돌아갔다.
두 사람이 떠난 후, 항소운은 그들이 있던 쪽을 올려다보았다.
‘방금 누군가 몰래 보고 있었단 말이지.’
정주와 대장로의 무공이 얼마나 대단한데 그들의 존재를 눈치챘단 말인가.
그만큼 항소운의 의념이 강하단 소리다.
평범한 성급 영혼이었다면 두 강자의 시선을 절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혼태와 명혼공간의 융합으로 감응력이 놀라울 만큼 강해져 버렸다.
항소운은 족히 한 달은 돼서야 진법을 전부 설치했다.
특히 공간지석과 허개석, 영응석을 놓는 자리는 각별히 신경 썼다.
하나만 잘못 놓아도 이동 능력이 발휘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신력을 너무 쓴 탓에 성혼도 힘들 지경이었다.
그는 처소로 돌아가 꼬박 일주일을 쉬고서야 몸이 회복됐다.
척발완아는 아직 배가 나오지 않은 데다 혼례 후 매력이 폭발해서 어느 남자고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는 그녀 곁에서 사흘을 보낸 후 순간이동 진을 설치하기 위해 자릉종에 돌아갈 채비를 했다.
그녀는 그가 할 일이 많다는 걸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요즘엔 함께 하는 시간도 많아서 상당히 기분이 좋던 터라 그를 붙잡지는 않았다.
그저 순간이동 진을 빨리 만들길 당부할 뿐이었다.
그래야 그가 지성정에 오기도 쉬울 테니 말이다.
부디 아이를 낳기 전에는 그가 돌아오길 바랄 뿐이었다.
항소운은 흔쾌히 그러겠노라 약속했다.
항소운은 떠나기 전, 정주를 찾아뵈었다.
정주는 딱히 그를 붙잡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항소운은 척발완아와 장차 태어날 손주만큼 중요하지 않기에 여기에 남든 말든 큰 상관이 없었다.
정주의 심드렁한 태도에 항소운은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이렇게 해서 그는 마흔아홉 명의 정예병을 이끌고 지성정을 떠났다.
최대한 빨리 자릉종에 도착해서 진을 설치해야 두 지역을 연결하는 순간이동 진을 만들 수 있을 터였다.
대장로가 준 지도 덕분에 안내자 없이도 돌아가는 길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길을 달리는데 불현듯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일행 뒤를 몰래 밟고 있는 것 같았다.
불안해진 항소운은 수하들에게 길을 재촉했다.
그리고 감응력을 최대로 높여 은밀히 숨은 상대를 찾아보려 했으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아무도 없다고? 말도 안 돼. 다시 제대로 살펴야겠어.’
그러다 문득 한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그의 감응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성급 이상의 강자뿐이었다.
상대는 허공 속에 숨어 감응을 피한 게 분명했다.
그는 창공의 허공 속으로 힘을 조금씩 침투시켰다.
다행히 전생의 기억이 있어서 성급 영혼의 오묘한 능력을 조금씩 발휘하는 데 문제는 없었다.
과연 감응력이 허공 속에 스며들자마자 즉시 무언가를 발견했다.
“들켰나? 그렇다면 잡으러 가야지.”
허공 속 강자는 반응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그는 항소운의 감응이 자신에게 미치자, 한 마리 거대한 새처럼 허공을 찢고 달려들었다.
상대는 무공이 굉장한 자였다.
전천 경지에서도 수준급으로, 이미 그의 기세는 항소운을 꼼짝없이 붙들어 옴짝달싹 못 하게 했다.
항소운은 성혼을 내보내려 했으나, 그마저도 할 수 없었다.
상대의 기세는 너무 강해서 점점 숨이 막혀왔다.
마흔아홉 명의 병사들도 꼼짝없이 당하고 있었다.
상대는 항소운을 낚아채듯 붙잡고 어딘가로 빠르게 날아갔다.
‘대체 누구지?’
그는 꼼짝할 수 없었으나, 가까스로 이성을 부여잡고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그는 감응력으로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려 했지만, 강력한 기운이 그자를 둘러싸고 있어 침투조차 불가능했다.
다만 어디서 만난 듯한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혹시 제패천?’
그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패천이라면 그를 바로 죽일 테지, 붙잡아가지는 않을 터였다.
얼마쯤 날아간 후, 상대가 멈춰 섰다.
“네가 말한 자는 데려왔다. 어떻게 처리할 거냐?”
항소운을 붙잡아 온 사람이 공중에 가부좌를 틀고 있는 자에게 물었다.
“사람만 넘기면 된다. 일전에 약조한 일은 지키마.”
가부좌를 튼 자가 대답했다.
“흥, 약조를 어길 시에는 너희도 무사하지 못할 거다. 뒤통수를 쳤다간 어떻게 될지 알지?”
“우리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자는 것뿐이다. 우선 그자를 넘겨라.”
“지금 이 녀석은 영감탱이로부터 깊은 신임을 받고 있다고. 그러니 깔끔하게 처리하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우리까지 골치 아파지니까.”
항소운을 붙잡아 온 자가 말했다.
“마음 놓으시게. 그 녀석이 다시 세상에 나타나는 일은 없을 테니까.”
가부좌를 튼 자가 차갑게 말을 뱉었다.
“좋아, 그럼 녀석을 넘기지. 이제부턴 알아서들 하라고.”
그자는 상대방 쪽으로 항소운을 휙 던지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이렇게 해서 항소운은 또 다른 사람에게 붙잡혔다.
그는 이번에도 꼼짝 못 하고 또 어딘가로 끌려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상대가 그를 땅바닥에 내팽개쳤다.
쿵-!
얼마나 세게 부딪쳤던지 머리가 빙빙 돌고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래도 육신의 단단함만은 자부했건만, 전천 성인의 힘에는 상상을 초월한 파괴력이 있었다.
상대가 힘을 조절해서 망정이지, 아니면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다.
“정말 똑같이 생겼군. 자헌의 말이 사실이었어.”
상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항소운은 상대방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네모나게 각진 얼굴의 중년 남자로, 삼베로 만든 마의를 입고 있었다.
소박한 차림이나, 상당히 비범한 기운을 풍겼다.
“자헌?”
들어보긴 했는데, 어디서 들었는지 영 기억이 나질 않았다.
“기억하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중요한 건 네가 내 손에 있다는 거지. 이제 네 기억 속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한번 볼까?”
사내는 차갑게 웃으며 손을 뻗었다.
이번에는 항소운도 가만히 당하고 있지는 않았다.
재빨리 분신을 불러내 음검을 사정없이 휘둘렀다.
“내 기억을 뒤지겠다고? 어림없다!”
음검은 허공을 가르며 곧장 상대를 공격했다.
검의 위력은 평범한 성급을 넘어 2, 3품 성인도 막아내지 못할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벨 수 있으리라.
이번 기습이 성공하지 못하면, 오히려 죽는 쪽은 자신일 것이다.
검의 기세는 세차게 뻗어나가 천지를 가로질렀다.
음검 자체의 예리함과 성급 영혼력이 더해지자, 상상을 초월한 힘이 터져 나왔다.
검이 지나간 후 하늘에는 구멍이 뚫리고 구름은 모조리 걷혔으며, 땅에는 깊은 구덩이가 길게 생겨나 두 덩이로 나뉜 것 같았다.
이번 공격에 힘을 많이 쏟은 탓에 항소운의 낯빛은 급격히 창백해졌다.
“죽었나?”
눈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정말 대단한 무기에 그에 걸맞지 않은 실력이군.”
머리 위 상공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삼베옷의 사내는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한 모습으로 떠 있었다.
그는 팔짱을 낀 채 한심하단 눈초리로 항소운을 내려다보았다.
순간 그는 온몸이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상대를 맞추지도 못하다니, 상대의 무공이 얼마나 강하단 소리인가.
자신의 성급 분신조차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분신은 진신을 데리고 전속력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은신 능력으로 모습만 감추면 상대에게 발각될 염려는 없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