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700
제700화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전부 미쳤군! 저자는 항정천이 아니야. 자세히들 보라고, 항정천이 어찌 저리 젊겠나. 저놈은 가짜야. 두고 봐, 내가 저놈의 진짜 모습을 밝혀낼 테니까!”
항우경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재차 공격을 날렸다.
순간, 눈앞의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지팡이가 눈 깜짝할 사이 항소운의 가슴으로 떨어졌다.
일격에 죽이겠다는 뜻이었다.
보아하니 그는 항정천이란 조상에게 존경심이라곤 티끌만큼도 없는 것 같았다.
주변 사람 중 항우경을 저지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어서 그들은 항소운이 찔리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항우경은 이번 일격으로 상대를 죽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정작 지팡이가 내리친 건 허공이었다.
항소운은 어느 틈엔가 피해 항우경 옆에 나타났다.
“넌 본 패왕에게 존경심이 없는 것 같군. 그렇다면 정신이 들게 해줘야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손을 칼처럼 휘둘렀다.
손날은 순식간에 상대의 어깨로 떨어졌다.
항우경은 피할 겨를도 없이 어깨를 맞고 말았다.
쿵, 하는 둔탁한 타격에 성급 기운이 갈라지면서 몸이 여지없이 뒤로 밀려났다.
항소운은 잽싸게 쫓아가 다시 손날을 후려쳤다.
전천구도결!
그는 전결이 지닌 위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도의는 정점에 이르러 의념에 따라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상대를 정신없이 압박했다.
그 바람에 항우경은 좌우로 연신 피하느라 반격할 새도 없었다.
항우경은 복장이 터졌다.
명색이 대성 경지거늘 어찌 일방적으로 당한단 말인가.
그는 참다못해 분통을 터뜨렸다.
“네가 무슨 수로 조상님 흉내를 내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기필코 그 껍데기를 벗기고 말겠다!”
지팡이에 힘을 불어넣자, 무수한 천둥의 힘이 그의 주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천둥의 힘에는 굉장한 파괴력이 실려있어 성 전체가 흔들릴 정도였다.
“대장로님, 진정하십시오! 이러다 성이 무너지겠습니다!”
항심과가 소리쳤다.
“우린 힘을 합쳐 이곳을 지킨다. 성이 부서지지 않도록 다들 힘을 모아라!”
누군가의 단단한 음성이 들려왔다.
이자의 무공은 심오하여 결코 항우경에게 밀리지 않았다.
그는 순식간에 사방을 봉쇄하는 힘을 생성해 저 둘의 힘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했다.
다른 전천 경지의 강자들도 그와 합세하여 사방을 봉쇄했다.
항소운은 항우경의 놀라운 위력 앞에 겁을 내기는커녕 오히려 가소롭다는 표정이었다.
“재미있군, 재롱 잘 봤다.”
그는 거침없이 상대의 공격에 맞섰다.
혈포는 천둥의 힘에도 끄떡없었고, 그는 강력한 흡입력으로 천둥의 힘을 체내로 마구 빨아들였다.
흡사 천둥의 신이 나타난 듯 천둥 번개는 그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다.
항우경은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이럴 수가. 네놈이 이리 강할 리 없어!”
항우경은 포효를 내지르며 바짝 접근해 지팡이를 매섭게 휘둘렀다.
지팡이는 적의 위아래를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하면서 한 치의 틈도 허용치 않았다.
정통으로 맞으면 산도 가루가 돼 버릴 정도라 설령 전천 성인이라 해도 죽음을 면하기 어려웠다.
순간, 항소운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더니 전천도를 돌려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고선 바로 반격을 가했다.
그는 항우경 곁을 스치듯 지나가며 손바닥을 뒤집어 공격을 날렸다.
손날은 정확히 상대의 얼굴을 가격했다.
쿵-!
항우경은 얼굴 뼈가 일그러져서 이빨을 뿜으며 날아가고 말았다.
항소운은 구유보로 단숨에 따라잡고선 항우경의 몸을 힘껏 짓밟았다.
땅이 사람 모양으로 움푹 파이며 흙먼지가 뿌옇게 일었다.
“감히 날 의심하다니, 네놈이 살기 싫은 게로구나.”
항소운은 차가운 눈빛으로 말을 뱉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저 지켜보기만 할 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대장로인 항우경이 맞고 있으니 마땅히 도와야 하지만, 상대는 자신들의 조상과 똑 닮은 데다 거역할 수 없는 압도적인 기세 때문에 더더욱 믿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우선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항심과와 항천인, 항봉진 등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항소운은 그들이 강제로 데려온 자였다.
그런데 저런 무시무시한 실력을 감추고 있었다니,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했다.
항우경은 구덩이에서 기어 나오면서도 여전히 호통을 쳤다.
“너, 넌 절대 항정천이 아니야. 절대 아니라고!”
그의 눈빛에선 극도의 분노와 살기가 느껴졌다.
항소운을 죽이지 않고선 원통해 못 살겠다는 눈빛이었다.
항소운은 그 눈빛을 읽고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렸다.
문득 머릿속으로 낯익은 얼굴이 떠올랐다.
“혹시 항비동(項飛東)의 아들인가?”
“어, 어떻게 알았지?”
항우경은 당황한 듯 눈빛이 움츠러들었다.
그제야 그는 어쩌면 이자가 항정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항비동의 아들이니, 날 이렇게 미워하는 거겠지.”
항소운은 탄식을 하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래, 내가 미울 수밖에 없겠지. 네 아버지는 영웅이란 말이 아깝지 않은 사내대장부였다. 우리 항가와 항가군을 위해 정말 최선을 다해주었어.”
“근데 네놈이 죽음으로 몰아넣었잖느냐!”
항우경은 격분해서 소리쳤다.
만 년 전 전쟁에서 항비동은 항가군의 장군이자 부원수 중 한 명으로 활약하며 항정천의 깊은 신임을 받았다.
그러다 항가군은 적들에게 포위를 당했고, 그대로 가다가는 모든 병사가 전멸할 위기에 처했다.
당시 항정천은 여덟 명의 최상위 신급(神級) 강자들을 상대하느라 병사들을 챙길 여력이 없었다.
전멸을 막기 위해서는 누군가 대군을 막고 그사이에 병사들을 후퇴시키는 방법이 유일했다.
항정천 수하의 5대 장군들은 적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지만, 이중 누군가는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고 대의를 위해 희생해야 했다.
그렇게 결정된 자가 항비동이었다.
그의 무공은 이미 전천 경지의 정점에 이르러 모든 면에서 가장 적합했다.
그는 홀로 후방에서 적군을 막아내며 아군이 무사히 귀환하도록 치열하게 싸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후 그는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당시 항우경은 너무 어려서 자초지종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저 항정천의 명을 받들어 전사했다는 얘기만 전해 들었을 뿐이다.
이런 이유로 항정천에게 깊은 원한을 품은 그는 항정천의 직계 후손이 절대 성장할 수 없도록 지금껏 그들을 짓밟고 내리눌렀다.
항소운이 항비동에 관한 얘기를 털어놓자, 항우경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머리로는 항소운의 말을 부정하면서도 마음은 이미 받아들이고 있었다.
“항비동은 우리 항가의 자랑이었다. 그 사람이 있었기에 항가가 지금껏 맥을 이어온 거지. 물론 내 잘못도 있다. 내가 고집만 안 부렸어도 항가가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항소운의 눈빛에는 회한이 가득했다.
항가군의 병사들과 찬란했던 항가를 떠올리자, 후회와 자책이 밀려와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다.
오늘에서야 당시의 잘못을 뉘우친 것이다.
그때 가문을 더 생각했더라면 그 많은 사람이 죽지는 않았을 텐데.
“저, 정말 패왕이십니까?”
누군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이가 많아 곧 죽음을 앞둔 전천 성인이었다.
항우경과는 같은 시대 사람으로 당시 대전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아들뻘 되는 세대라 항정천에 관한 얘기는 알고 있었다.
항소운은 그자의 물음에 슬픈 눈빛으로 대답했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그러고는 항가 금지 쪽으로 홀연히 떠났다.
“어딜 가는 거냐?”
항우경은 놀란 눈으로 뒤따라갔다.
비록 부상을 입긴 했지만, 항소운도 진짜 죽일 의도는 없었기에 중상을 당하진 않아서 바로 따라갈 수 있었다.
다른 성인들은 황급히 뒤쫓았고, 젊은이들만이 여전히 넋 나간 표정으로 제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설마 그 녀석 변신술을 쓴 건가?”
항우영이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어. 난 가서 찬물에 세수나 해야겠다.”
항자헌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걸음을 옮겼다.
그는 항소운이 항정천이란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게다가 무공은 또 어떻던가.
무시무시한 무공으로 대장로를 단숨에 쓰러뜨리지 않았던가.
이 사실이 그에게는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반면, 계홍누는 동경하는 눈빛이었다.
‘저분이 바로 항가 제일의 패왕이구나. 매력이 넘치는걸. 너무 마음에 들어.’
항가 금지에는 항씨 가문의 능묘가 있었다.
집안의 높은 분들을 기리는 곳이라 제사 때를 제외하고 평소에는 출입이 금지되었다.
다만 전천 경지의 성로만은 예외여서 어느 때고 드나들 수 있었다.
항소운은 곧장 능묘로 향했다.
여덟 개의 거대한 조각상 앞에 이른 그는 가장 먼저 항정천의 조각상을 쳐다보았다.
머리 꼭대기에는 해와 달이 걸렸으며, 성진을 밟고 선 채 전천도를 쥐고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었다.
조각상이지만 강인한 표정이 그대로 살아있어 절로 머리가 조아려졌다.
조각상을 보고 있자니 마치 전생의 자신을 보는 듯했다.
누가 만든 건지는 몰라도 둘의 외모는 판에 박은 듯 똑같았다.
이어서 그의 시선이 다른 조각상에게 향했다.
그는 그 앞에 두 무릎을 꿇고는 일곱 분의 조상에게 큰절을 울렸다.
쿵! 쿵!
머리가 땅에 닿을 때마다 육중한 소리가 났다.
뒤늦게 쫓아온 전천 성인들은 그 광경을 보며 누구도 저지하지 못했다.
항소운의 진실한 마음이 그들에게도 전해진 것이다.
그는 한 분마다 큰절을 세 번 올린 후, 자리에서 일어나 능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잠시 후, 그는 어느 무덤 앞에 이르렀다.
무덤을 바라보는 눈빛이 격렬히 떨렸다.
그는 손을 뻗어 묘비를 가만히 어루만졌다.
마치 가족을 쓰다듬는 것처럼 부드럽고 정성 어린 손길이었다.
항가 사람이라면 그 무덤이 항정천 부모의 묘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항소운의 일련의 행동은 그가 항정천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한층 힘을 실어주었다.
만약 그가 항정천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 묘를 알아보며 저런 행동을 취했겠는가.
한참이 지난 후, 그는 무덤에 큰절을 올렸다.
그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는 몸을 일으켜 더욱 안쪽으로 들어갔다.
능묘의 변두리에는 봉분들이 있었다.
대단한 인물들은 아니었기에 족보에 이름이 올려진 자들이었다.
이곳에는 많은 사람이 묻혀 있는데, 그중에는 전쟁 중 목숨을 잃은 항가군도 있었다.
그들은 가문을 위해 피땀을 흘리다 결국 한 줌의 흙이 되어버렸다.
항소운은 술을 한 병 꺼내 들고 외쳤다.
“항가군 불패! 항가 사내야말로 최강이다! 형제들이여, 함께 술을 마시자!”
그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
술이 흘러서 옷이 젖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땅에 술을 붓고 봉분에도 뿌렸다.
항소운의 뒷모습은 쓸쓸하고 고독해 보였다.
사람들은 그저 지켜볼 뿐,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그는 그곳에서 한 시진을 서 있다가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