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701
제701화 엉망이 된 항렬
눈 깜짝할 사이 항소운이 도착한 곳은 항가의 대전이었다.
익숙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어제 일처럼 모든 것이 그대로인 것 같았다.
대전은 황궁처럼 크고 화려했다. 열두 개의 용기둥이 천장을 받치고, 기와에는 기이하고 신비로운 동물의 형상이 가로 새겨져 있으며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하여 그 자체로 존귀한 분위기를 풍겼다.
게다가 대전 지붕에는 자줏빛의 신성한 돌이 둥실 떠서 천둥의 빛을 찬란히 내뿜고 있었다.
대전 앞은 성급 뇌수(雷獸) 두 마리가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항소운을 보고선 꿈쩍도 하지 못했다.
위험하면서도 항가의 혈맥이 동시에 느껴지는 자였다.
항소운은 지체하지 않고 대전 안으로 바로 들어갔다.
안쪽은 공간이 무척 넓어서 쾌적한 느낌마저 들었다.
내부 장식 역시 금빛으로 휘황찬란했다.
작은 부분 하나까지도 상급 재료로 신경을 쓴 덕분에 화려하고 기품이 넘쳤다.
평범한 사람은 감히 발들일 엄두도 내기 힘든 그런 곳이었다.
항소운은 빙 둘러보다가 주좌에 시선을 멈추었다.
최상급 재료로 만든 용교의는 금빛과 자줏빛을 발산하며 묘하게 빠져들게 했다.
“인황이 되고 제존이 되겠다던 꿈은 이루었으나, 되려 아무것도 남은 게 없구나.”
그는 탄식했다.
용교의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던 그는 몇 걸음 못가 눈앞이 까맣게 흐려지더니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항소운이 눈을 떴을 때는 낯선 곳이었다.
“일어났어?”
여인의 낭랑한 음성이 들려왔다.
소리 나는 쪽을 보니 계홍누가 아슬아슬한 옷차림으로 하늘하늘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은은한 향에 까무룩 빠져들 것 같았다.
하지만 항소운은 자제력이 대단하여 이 정도에 넘어가진 않았다.
그가 태연히 물었다.
“여기가 어디지? 항가 안인가?”
계홍누는 항소운 옆에 바싹 다가앉았다.
“기억 안 나?”
“뭐가? 너희가 항가로 데려왔잖아?”
항소운은 무슨 소리냔 표정으로 되물었다.
기억이 하나둘 돌아오면서 항가에서 있었던 일이 전부 기억났지만, 그는 짐짓 모른 척했다.
항가 사람들과 대면할 일이 막막해서다.
“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나 보네.”
그녀는 항소운의 표정을 찬찬히 살피더니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뭐 이게 더 나을지도 모르지. 안 그랬다간 또 무슨 소란이 날지 모르니까.”
“근데 여기는 왜 데려온 거냐?”
항소운이 물었다.
“호호, 내가 직접 보살피기 위해서지.”
그녀는 환히 웃었다.
“보살핀다고? 너희 설마 미인계를 써서 항가로 입적시키려는 거냐? 난 그런 거에 안 넘어가.”
그러자 계홍누가 그의 이마를 살짝 밀며 콧소리를 냈다.
“미인계는 무슨, 꿈 깨시죠.”
“그런 게 아니면 가봐야겠다.”
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혈포는 아직 어깨에 두르고 있었다.
덕분에 마음이 편안해졌으나, 항정천의 힘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혈포는 그에게 무척 중요한 물건이었다.
전생에 가장 사랑했던 여인이 직접 만들어준 선물이니 말이다.
그는 그 여인이 우채접의 전생이라 확신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이번 생애에 또 만난 것이다.
그래서 우채접을 처음 본 순간, 전생의 그녀임을 직감했고 이번 생도 함께 하겠다고 결심했다.
자릉종이 안정세로 접어들고 자신의 무공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 되면 우가에 혼담을 넣을 생각이었다.
먼 미래처럼 보이지만 한 걸음씩 완성해가면 그녀와 함께 할 날이 오겠지.
“여기는 나가도 되지만, 항가를 떠나선 안 돼.”
계홍누가 말했다.
“알았어.”
항소운은 손을 내저으며 대꾸했다.
그는 밖으로 빠르게 걸어 나갔다.
계홍누는 과부라서 단둘이 있어봤자 그녀의 평판만 나빠질 터였다.
그는 그런 점까지 고려하고 있었다.
방 밖으로 나오니 눈앞에 아름다운 정원이 펼쳐졌다.
기이한 화초를 가득 심어놔서 알록달록 예뻤다.
그런데 주변에 인가가 하나도 없는 걸 보니 항가 마을에서 꽤 떨어진 외곽인 모양이었다.
계홍누가 따라 나오며 넌지시 말했다.
“왜 그러고 서 있어? 막상 가려니까 아쉬운 거야?”
그녀의 말투는 어딘가 모르게 경박해서 못 견디게 외로운 여인처럼 보였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항가에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죽고 수절한 지 벌써 여러 해였다.
그래도 지금껏 정절을 지키고 살아왔건만, 항소운을 본 순간 심적 방어선이 툭 끊어져 버렸다.
그녀는 그간 항가의 모든 역사를 훑으며 항정천이란 논란의 인물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녀는 항정천처럼 야심 있고 능력도 출중한 영웅적 인물을 좋아했다.
그래서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며 늘 신세 한탄을 했다.
항정천과 같은 시대에 태어났으면 그의 여인이 되어 묵묵히 뒷바라지를 했을 거라고 말이다.
그런 그녀 앞에 항정천과 꼭 닮은 항소운이 나타났으니, 당연히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그래서 항소운이 기절하자, 자신이 보살피겠다며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아직 항소운의 신분이 정확히 밝혀진 것도 아니고, 장로들은 이 일을 어찌할지 여전히 논의 중이니 우선 계홍누에게 맡기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항소운이 계홍누를 난처하게 하진 않을 테니 지금은 결론을 기다리자는 입장이었다.
“근데 참 사람들도 무심하네. 어떻게 이런 곳에서 여자더러 혼자 살라고 하지?”
항소운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내가 그러겠다고 했어. 항가 남자들이랑 하루종일 얼굴 맞대기 싫거든.”
계홍누는 진저리가 난다는 표정이었다.
“과붓집 앞은 조용할 날이 없다더니.”
항소운은 한숨을 쉬었다.
“설마 너도 날 무시하는 거야?”
어쩐지 그녀의 눈빛이 슬퍼 보였다.
항소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널 왜 무시해? 정 여기 있는 게 싫으면, 차라리 밖으로 가서 세상 구경이라도 하지 그래?”
“항가 상황이 어떤지는 너도 봐서 알잖아. 함부로 나가지도 못해. 그래도 네 일로 바깥에 나가서 숨통은 트였어. 그런 일도 없었으면 혼자 여기서 외롭게 늙어갔을 거야.”
계홍누는 쓸쓸히 웃었다.
항소운은 얘기를 듣고 나자, 가슴 한편이 쓰렸다.
그녀를 동정해서는 아니다.
항가의 은둔으로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항가가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면, 이들도 이렇게 외롭지도 수구적이지도 않을 텐데 말이다.
‘무슨 방법으로든 속죄를 해야겠어.’
그는 한숨을 깊게 쉬었다.
이때, 누군가 그들을 찾아왔다.
항봉진이었다.
그는 항소운을 보고선 겁먹은 듯 쭈뼛거리다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어, 어르신. 일어나셨군요.”
항소운은 태연한 얼굴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문에서 날 모셔오라고 했나?”
“예, 다들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럼 가지.”
항소운은 곧장 항봉진을 따라 항가 대전으로 향했다.
항봉진은 곁눈질로 항소운을 흘끔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뭔가 달라진 거 같은데.’
이런 생각을 항소운이 알 턱 없었다.
물론 안다 해도 상관없었다.
어쨌든 그는 전생에 항정천이었고, 이 점은 항가 사람들도 부인하기 힘들었다.
잠시 후, 그는 항봉진과 함께 대전에 도착했다.
“항정천 어르신께서 오셨습니다.”
항봉진의 목소리가 대전에 울려 퍼졌다.
대전에는 항가의 성급 고수들이 대거 앉아있었다.
노년의 무인들은 흐릿한 눈동자로 일제히 항소운을 응시했다.
그의 모든 것을 꿰뚫고 말겠다는 눈빛이었다.
정작 항소운은 그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좌 쪽을 보았다.
주좌는 텅 비어 있었고, 항우경의 자리도 우측 아래에 불과했다.
‘족장은 여기 없는 건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항소운은 수십 명의 날카로운 시선 앞에 움츠러들기는커녕 태연히 마주 섰다.
“당신이 정말 항가 항정천인가?”
한 노인이 물었다.
항소운은 그자를 마주 보며 대답했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그게 무슨 말이지?”
노인이 다시 물었다.
“내 전생은 항정천이지만, 현생에 난 항가의 방계 후손인 항소운이지.”
“환생자란 건가?”
다른 노인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맞아.”
항소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지?”
“내 전포와 칼이 그 증거야.”
“그걸로는 부족하다.”
“좋아, 그럼 항가의 비밀을 말하겠다. 우리 가문의 1대 가주는 시동 출신으로 대기만성한 분이지. 2대 가주는 1대 가주께서 행방불명되시고 3년 후에 자리를 이어받으셨…….”
“그건 우리 가문의 역사잖나. 그런 거 말고 항정천에 관해 얘기해봐라. 직접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면 더욱 좋지.”
“나 항정천은 6세에 백 권의 책을 읽고 7세에 성력을 응집했으며, 열 살에 화강경에 오르고 성년이 되기 전 비천경에 올랐다. 그렇게 승승장구하여 항가의 여러 역사를 새로 썼지.
18세가 되던 해, 소왕급 정점 요수를 아홉 마리나 죽이면서 흑마 척운을 얻고, 스스로 패왕이라 칭했다. 그리고 항가군을 이끌고 천하를 평정하여 항가를 천하제일 가문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세웠지…….”
그는 이야기를 할수록 점점 신이 났다. 전생의 자신이 자랑스럽고 자부심마저 느꼈다. 이렇게 대단한 인물이었으니, 천하 제패라는 야망도 품은 거겠지.
사람들은 그가 항정천의 업적을 술술 풀어내자, 더는 믿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이틀 전 항소운의 모습은 영락없는 항정천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런 무시무시한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진짜 항정천 어르신께서 환생하셨구나!”
감정이 벅차오른 한 노인이 소리쳤다.
노인은 항소운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그의 신분을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따라서 무릎을 꿇었다.
항우경만은 미동도 하지 않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네가 항정천의 환생자란 말이지. 그렇다면 내 아버지 항비동께선 그 당시 어떤 직위셨고, 경지는 어느 정도셨느냐?”
항소운은 분명한 말투로 대답했다.
“당시 네 아버지는 최상급 전천 경지였다. 소생 경지를 바로 목전에 둔 상황이었지. 그리고 항가군 부원수를 맡았으며, 5대 전천장(戰天將)으로 유명했지. 참, 비동에게 딸이 하나 있는데 아마 이름이 항좌영(項左英)이었지? 그럼 네 여동생이 되겠구나.”
마지막 말에 항우경의 낯빛이 변했다.
이젠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항소운의 말대로 그에게는 여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몇천 년 전에 죽었다.
끝내 전천 경지를 돌파 못 해 수명이 다한 것이다.
그 후로 오랜 세월이 흘러 그녀의 존재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마 이 자리에 참석한 저 노인들은 기억조차 못 하겠지.
그런데 항소운은 여동생의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이건 항정천의 환생자가 분명하단 소리였다.
“어르신!”
마침내 항우경은 무릎을 꿇었다.
자신의 아버지는 항정천에게 살해된 게 아니라 가문을 지키다 전사하셨다는 얘기를 들은 후로는 항정천이 그리 밉지 않았다.
항소운은 항우경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숙부라고 불러라. 나와 네 아버지는 항렬이 같고, 또 내게는 사촌 형이기도 했다.”
“수, 숙부님.”
항우경은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항소운이 항정천의 환생자인 건 맞지만, 지금은 방계 후손이었다.
항소운은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자, 모두 일어나십시오. 앞으로는 그냥 항소운으로 봐주십시오. 항정천은 이미 과거의 사람입니다.”
그 말에 사람들은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표정들이 복잡했다.
공과와 상관없이 항정천은 항가 역사상 가장 강한 인물이었다.
따라서 존경을 받아 마땅하지만 환생한 몸이 하필 그들의 후손이라서 항렬이 엉망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