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790
제790화 어떻게 해야 화를 푸시겠습니까
“대인,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항 공자께서 이유 없이 그런 건 아니실 테니, 우선 상황부터 파악하죠.”
유언연이 다급히 끼어들었다.
“언연아, 지금 남을 두둔하는 것이냐?”
장왕비가 눈을 부릅떴다.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월태숙은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말을 잘랐다.
“넌 가만히 있어라.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선 안 돼.”
“맞습니다. 사과든 뭐든 받아내야 합니다. 그전에는 여기서 한 발자국도 못 나가게 해야 합니다.”
원령소가 덩달아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선동 속에 다른 자들도 한목소리로 떠들어댔다.
“그래요, 받아내야 합니다.”
“정말 너무하네요!”
척발완아가 참다못해 소리쳤다.
“동맹을 잘못 맺었나 봐요.”
궁금음 역시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하하…….”
별안간 항소운이 고개를 젖히며 큰소리로 웃어젖혔다.
웃겨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뭐야, 왜 웃는 거야? 죽고 싶냐?”
누군가 호통을 쳤다.
“너희 연화루가 손님을 어떻게 대접하는지 이제 잘 알았다. 뭐든 받아내겠다 이거지? 그렇다면 잘 받아라!”
항소운은 벼락같은 호통과 함께 온몸의 기세를 최대로 끌어올려 힘껏 발을 굴렀다.
그러자 땅이 쩍, 갈라지면서 그 사이로 흙이 와르르 무너지더니 깊은 구덩이가 생겨났다.
사람들이 놀란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이는 연화루를 향한 경고였다.
“네놈이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장왕비는 월태숙보다 성격이 급했다.
그녀는 불같이 화를 내며 항소운의 얼굴을 향해 바로 장법을 날렸다.
그 순간, 갑자기 공간이 찢기면서 정체 모를 검광이 쏜살같이 날아왔다.
“왕비, 조심하시오!”
월태숙이 다급히 소리쳤다. 하지만 그가 막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
슉-!
“악!”
눈 깜짝할 사이 장왕비의 팔 한쪽이 잘려 나갔다.
그녀의 처절한 비명과 함께 피가 마구 쏟아져 내렸다.
“네 이놈!”
월태숙은 분노에 찬 포효를 내지르며 낯선 적을 공격했다.
그러나 제아무리 전천 성인이라 해도, 그는 오래전 전장에서 물러난 노인일 뿐이라 역시 잠서를 상대로는 역부족이었다.
잠서는 가벼운 몸놀림으로 잽싸게 방향을 틀더니 재차 검을 휘둘렀다.
순간 월태숙은 팔이 욱신거리는 통증을 느꼈다.
그리고 여지없이 팔이 잘려 나가고 말았다.
그렇게 팔을 하나씩 자른 잠서는 그쯤에서 공격을 멈추고, 항소운 뒤에 공손히 섰다.
일순 사람들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원령소는 너무 놀라 제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성급함을 탓했다.
유언연은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을 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통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운 복잡미묘한 감정이었다.
월태숙과 장왕비는 다시 권세를 잡은 뒤로 아주 오만해져서 소루주인 유언연을 무시하기 일쑤였다.
그런 그들이 따끔하게 혼이 났으니 통쾌하긴 한데, 연화루와 자릉종의 사이가 틀어질까 봐 심히 걱정스러웠다.
“어, 어서 진법으로 놈들을 죽입시다!”
누군가 떨리는 음성으로 외쳤다.
성로조차 속수무책으로 당한 상황에서 진법 외에 저들과 맞서 싸울 방법이 있을까?
“배짱이 있으면 얼마든지 해봐. 그런 식이면 나도 얼마나 죽일지 감당 못 해.”
항소운이 차갑게 말을 뱉었다.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든 유언연이 황급히 소리쳤다.
“다들 멈춰라! 공격을 멈추고, 모두 내 명령에 따르라. 거역하는 자는 죽이겠다!”
그러자 소란스레 떠들어대던 사람들이 일제히 침묵했다.
그들은 명령을 기다렸다.
비록 항소운 옆에 강력한 수하가 있다고는 하나, 그들은 수적으로 우세했다.
무엇보다 연화루의 명예가 달린 문제에 양보란 없었다.
설사 죽는 한이 있어도 목숨 바쳐 지켜낼 가치가 있었다.
“유언연, 자릉종과의 동맹을 당장 철회해라!”
장왕비가 부상당한 팔뚝을 붙잡고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렇지 않아도 노쇠한 몸인데, 팔이 잘려 나가면서 생기가 크게 줄어들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저놈들을 죽이고 싶지만, 되려 죽임을 당할까 봐 두려웠다.
월태숙은 입을 꾹 다물었지만, 항소운 일행을 보는 눈빛에는 증오가 서려 있었다.
그는 체내로 성천(聖泉)을 녹여 빠르게 부상을 치료했다.
상처가 웬만큼 회복되면, 잘려 나간 팔을 이을 생각이었다.
그는 전천 경지라 가능하지만, 장왕비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인간 말종들이군.”
항소운은 한숨을 푹 쉬고선 부인들에게 말했다.
“괜한 걸음을 한 것 같소. 이만 갑시다.”
솔직히 연화루에 대한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자신은 위험을 감수하고 병력까지 보내 저들을 도와줬는데 말이다.
“항 공자, 잠깐만요. 우리 대화로 풀어요. 아마 오해가 있었던 것 같아요.”
유언연은 항소운 일행을 다급히 막아섰다.
그러자 보다 못한 척발완아가 나섰다.
“언연아, 친구로서 솔직히 말할게. 이번 일은 너희 연화루 사람이 시작한 거야. 며칠 전 연화성에 왔을 때, 어떤 남자가 나와 동생을 희롱했어. 그래서 부마가 그자를 혼내준 거고. 당시에는 너희 연화루 사람인 줄 전혀 몰랐지. 그러다 여기서 마주친 거야. 근데 그자들이 우릴 잡아가겠다고 큰소리를 치더라.
부마는 우리를 지키기 위해 맞서 싸운 거야. 우릴 희롱했던 사람은 바로 저자야. 저자가 먼저 자기 일행한테 우릴 공격하라고 한 거고. 못 믿겠으면 불러서 직접 물어봐.”
땅바닥에 주저앉아있던 원령소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에요, 저는 모르는 일이에요.”
“저자를 데려와라.”
유언연이 낮게 소리쳤다.
뒤이어 수하가 빠른 걸음으로 원령소를 잡아 왔다.
“말해라, 네가 벌인 짓이냐?”
그녀가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
“자,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원령소는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이분들이 누군지 아느냐? 우리 연화루의 우방이자, 귀한 손님이다. 그런데 감히 희롱을 해? 네가 얼마나 큰 죄를 저질렀는지 알고 있느냔 말이다!”
그녀는 호되게 꾸짖었다.
뒤이어 청색 유검(柳劍)이 허공을 가르더니, 원령소의 머리가 땅으로 떨어졌다.
사람들은 너무 놀라 그대로 굳어버렸다.
중형은 예상했어도, 원령소를 죽일 줄은 예상치 못한 것이다.
월태숙과 장왕비의 안색은 심히 복잡했다.
소루주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유언연은 좌중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여기 계신 항 공자는 자릉종의 소종주십니다. 얼마 전, 연화루는 자릉종과 동맹을 맺었고 자릉종으로부터 도움을 받았습니다. 한데 원령소는 우방에게 실례를 범했을 뿐 아니라 사람들을 선동하여 오해를 일으켰으니 죽어 마땅합니다.
이번 일은 여기서 마무리 지을 테니, 더는 잘잘못을 따지지 마십시오. 귀한 손님에게 결례를 범한 것만도 우리 연화루의 잘못이 큽니다. 계속 이 일을 따지고 들다가는 동맹에 악영향만 미칠 뿐입니다. 그런 사태는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녀의 말뜻은 분명했다.
원령소를 죽임으로써 이번 일은 마무리를 지을 테니, 더는 잘잘못을 가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항소운에게 맞은 자들은 내심 억울했으나, 실은 이 모든 일이 원령소 때문에 벌어졌음을 알고 나자 원령소를 탓하는 마음이 훨씬 컸다.
하지만 이미 죽은 자를 탓해서 뭐 하겠는가.
그저 언짢은 마음을 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자릉종에서 온 자들은 강했고, 자신들의 성로는 팔까지 잘려 나갔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의 싸움이 의미가 있을까.
“항 공자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유언연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
“전 연화루의 태도에 아주 실망했습니다. 우리가 온 지 사흘이나 됐는데, 그동안 당신들은 관심조차 없더군요. 그러더니 어떤 정신 나간 놈이 내 부인을 희롱하는 겁니다. 그리고 전후 상황은 듣지도 않고, 다짜고짜 날 공격했고요. 내게 그만한 무공이 없었다면 진작에 난 죽고 두 부인은 능욕을 당했을 겁니다. 그런데 내가 그냥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항소운은 더 억울하다는 입장이었다.
연화루 사람들은 수긍하는 눈치였다.
입장을 바꿔 자신이 저런 처지였다면, 남의 손에 놀아나다가 죽고 말았을 것이다.
그의 현란한 말솜씨에 사람들의 분노가 한풀 꺾였다.
다만 유언연만은 그에게 다른 속셈이 있음을 간파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화가 풀리겠습니까? 이미 이렇게 많은 사람을 때리지 않았습니까?”
유언연이 물었다.
“그건 당신네들이 자초한 것 아닙니까.”
항소운이 퉁명스레 대꾸했다.
그러자 월태숙과 장왕비의 낯빛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우린 이 일에서 손 떼마!”
장왕비는 불만스레 말을 뱉고는 남편을 잡아끌고 자리를 떴다.
여기 남아봤자 속만 터질 뿐이었다.
유언연이 자신들을 무시하는 게 빤히 보이지만, 대놓고 따질 만한 자리도 아니었다.
차라리 지금은 서로 안 보는 게 나았다.
유언연도 딱히 만류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동맹을 유지하는 게 더 중요했다.
“항 공자, 말씀해 보세요. 어떻게 해야 화를 푸시겠습니까. 동맹을 맺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사소한 일로 감정이 상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세상 사람들이 비웃을 겁니다.”
“우선 처음에 약속한 조건부터 지키시죠. 다른 일은 그 후에 얘기합시다.”
항소운은 계속되는 입씨름에 지친 듯 바로 본론을 꺼냈다.
항소운이 이번에 척발완아와 궁금음을 데리고 이곳을 방문한 것은 연화기지(烟花奇地) 때문이었다.
항간의 소문처럼 그렇게 신비로운 곳인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그런데 유언연은 사흘이 되도록 나타나질 않았다.
그는 일이 틀어질 수 있음을 직감했다.
그래서 원령소를 구실 삼아 오히려 일을 크게 만들었다.
유언연에게 확답을 받기 위해서였다.
사람들 앞에서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기에 유언연은 사람들을 물렸다.
“이제 다들 돌아가세요.”
듣는 귀가 없어지자, 그녀가 안심하고 입을 열었다.
“항 공자, 연화루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하시죠.”
연화루는 문파명이면서 동시에 본관을 칭했다.
항소운은 두 부인과 잠서를 데리고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연화루에 이르자, 이미 십여 명의 혼태경 무인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연화루의 중역들이었다.
자리에 앉은 유언연이 중역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장로 여러분, 자릉종과 동맹을 맺기 전 여러 장로께 의견을 구한 결과, 모두 자릉종의 조건을 승낙하셨습니다. 이제 항 공자께서 오셨으니, 약속대로 세 명을 들여보내려고 하는데 다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에 다들 약속이나 한 듯 침묵을 지켰다.
이때, 누군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이미 약속한 일을 번복할 수는 없지요. 그랬다가는 우리 연화루가 항간의 조롱거리가 될 겁니다.”
“맞습니다. 일전에 두 분 성로께서 한 명으로 인원을 제한하자고 하셨는데, 마땅한 처사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일구이언할 수는 없지요.”
뒤이어 중역들이 하나둘 의견을 표했다.
약속한 대로 이행하자는 쪽으로 결국 의견이 모아졌다.
항소운은 그들의 대화를 통해 지난 사흘간 왜 아무런 소식이 없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중간에서 누군가 사람 수를 가지고 훼방을 놓았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