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815
제815화 늙어빠진 묘지기
제림은 제패천의 곁에서 동조했다.
“맞습니다. 만약 마족이 항소운을 돕지 않았다면 그가 어디서 이렇게 강한 힘을 얻은 거겠습니까? 보아하니 마족이 이미 자릉종을 자신들의 근거지로 삼은 것 같습니다.”
잠시 있다 그는 제멸에게 말했다.
“제자, 제 생각엔 우리가 이 소식을 퍼뜨려서 더 많은 세력이 자릉종을 토벌하도록 만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그들이 알아서 무너지도록 말입니다.”
“마족……. 또 마족이야! 이놈들이 설마 이미 침투한 건가?”
제멸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또 말했다.
“제림. 너의 방법은 가능하긴 하지만 별 쓸모가 없을 거야. 자릉종이 무너진다고 해도 우리 제족이 발붙일 곳이 없으니 반드시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만 해. 안 그러면 감명 숙부의 죽음이 헛되게 돼.”
“상대방에게 신급 강자가 있을 수도 있는데 설마 족의 노조(老祖)를 움직이게 해야 하는 걸까요?”
제전이 고민했다.
“아니면 먼저 용문을 근거지로 만듭시다. 용문과 자릉종의 거리도 멀지 않으니, 먼저 용문을 차지해 땅을 점령하면 우리 제족도 다시 세상에 모습을 보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패천이 건의했다.
“용문 말이지? 그 이름 괜찮네. 그럼 먼저 그곳을 차지하자!”
제멸이 달가운 모습을 보였다.
“용문은 예전의 자릉종보다 조금 더 강할 뿐이기에, 지금 우리의 병력으로 충분히 그들을 복종시킬 수 있습니다!”
“그럼 더 늦기 전에 상처를 치료하면서 용문 쪽으로 가자!”
제멸은 조급해하며 사람들을 재촉했다.
“제자, 이 일은 너무 급하게 처리하면 안 됩니다. 용문과 자릉종이 이렇게 가까운데 만약 거기에 자릉종의 눈이 있어서 우리의 상황을 알게 된다면 어떡합니까? 그렇게 되어서 우릴 공격하려고 한다면 또 어떡할 거고요?”
제전이 설득했다.
“그럼 네 생각은 어때?”
제멸이 물었다.
“사실 전 제족이 출세해서 한 구역을 차지하는 게 아주 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왜 굳이 자릉종을 골라야 하는 걸까요?
그건 사실 자릉종이 제일 오래된 산맥의 땅을 차지하고 지닌 자원이 풍부한데다가 서막에서 진격하기도 후퇴하기도 좋은 위치여서입니다. 자릉종은 패업을 달성하기 위한 제일 좋은 선택지입니다. 제자가 만약 갑자기 장소를 바꾼다면 아마 족로가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제전은 먼저 분석을 했다.
그리고 그는 또 말했다.
“제 생각엔 차라리 돌아가서 족로에게 보고를 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 족의 장로가 장소를 고르게 한다면, 그들도 제자를 탓하지 않을 겁니다.”
* * *
용봉 학당은 4대 학당 중 한 곳이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무수한 인재를 배출했으며, 그중에는 심지어 신급 강자도 있었다.
어떤 세력에도 속하지 않으나, 여느 강대한 세력 못지않게 강해서 이 유서 깊은 학당을 건드릴 간 큰 세력은 없었다.
그런 용봉 학당의 장로 세 사람이 같은 날에 죽임을 당한 것이다.
마연이라면 있을 법한 일이나 중원 대륙에서는 극히 드문 일이었다.
사도명우와 섬영, 풍혹색은 이번에 죽은 장로들이었다.
그중 두 사람은 상급 장로요, 한 사람은 일반 장로라서 학당 내에서도 어느 정도 지위가 있었다.
세 사람은 동일 인물에게 당했는데, 공교롭게도 그자는 오래전 파문을 당했던 항소운이었다.
때문에, 용봉 학당으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항소운이 마족이란 소문은 어느새 학당에 쫙 퍼졌다.
그 소문은 패왕군단의 귀에도 들어갔으나, 단원들은 믿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믿든 그렇지 않든 간에 항소운은 신급 대인에게 붙잡혀 불구가 되어버렸고, 막다른 길에 몰렸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항소운이 마족에게 몸을 뺏겨서 그렇게 된 거라고 짐작했다.
그래서 대다수는 그의 처지를 동정했다.
그래도 역사상 처음으로 아홉 가지 성진의 힘을 전부 융합했던 불세출의 천재 아닌가.
항소운이 죽게 되면 9대 성진의 힘을 융합할 방법은 정녕 아무도 모르게 될 터였다.
* * *
용봉 학당의 능묘.
눈먼 노인 하나가 묘비 앞의 먼지를 쓸고 있다.
지켜보는 이가 없어도 노인은 묵묵히 비질에 열중했다.
수릉 장로.
용봉 학당 사람들이 노인을 부르는 칭호다.
이것 말고도 훨씬 대단한 칭호가 있었으니, 바로 ‘수호신’이다.
외부 사람들은 그를 ‘수호 대인’이라고도 불렀다.
중원 대륙에 혁혁한 공을 세운 자에게만 주어지는 칭호였다.
물론 이런 자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으며, 최정상급 인물로 꼽혔다.
수릉 장로는 이토록 대단한 존재였다.
하지만 평소 어찌나 나서길 싫어하던지 학당에서 그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영패가 없었다면, 묘지를 청소하는 눈먼 노인이 중원 대륙의 수호신이란 사실을 아무도 믿지 못할 것이다.
수릉 장로는 참으로 오래 살았다.
함께 했던 벗들은 거의 세상을 떠나서 오랜 세월을 고독하게 보냈다.
그러다 십 년 전, 어렵사리 제자를 하나 들이면서 마음 붙일 데가 생겼다.
그런데 제대로 가르치기도 전에 제자는 학당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는 수행원을 하나 보내 상황을 잠재우도록 했을 뿐, 제자를 지나치게 보호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무심한 듯 대했지만 사실 그가 몹시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 후로 십 년이 흘렀다.
제자는 그동안 한 번도 돌아오지 않았으나,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런데 별안간 제자의 비보가 들려왔다.
게다가 학당 장로 세 사람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노인은 묵묵히 입을 다물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랑위는 노인 앞에 무릎을 꿇고, 천설산에서 발생한 일을 낱낱이 보고했다.
얘기를 다 듣고 난 노인은 갑자기 손에 들고 있던 빗자루를 반으로 부러뜨렸다.
묘비를 쓴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빗자루가 부러지는 소리에 랑위는 흠칫 놀랐다.
마치 자신의 목이 부러진 듯 숨이 턱 막혀왔다.
“물러가거라.”
수릉 장로는 손을 내저었다.
랑위는 아무 소리도 못 하고 조용히 사라졌다.
수릉 장로는 부러진 빗자루를 땅에 떨어뜨렸다.
뒷짐을 진 채 능묘를 바라보던 그는 한숨을 길게 쉬었다.
“여기에 너무 오래 있어서 다들 이 늙은이를 잊어버린 게야.”
그는 기운을 흩뿌리며 순식간에 학당 의회당으로 향했다.
수릉 장로가 능묘를 떠난 것은 용봉 학당에게 있어 대사건이었다.
* * *
태상 장로들은 화들짝 놀랐다.
“이건 수릉 장로의 기운이잖아. 혹 무언가 발표하실 일이라도 생긴 건가?”
자줏빛 머리칼의 노인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폐관 장소를 나와 곧장 의회당으로 향했다.
“어르신께서 어쩐 일이실까? 설마 큰일이라도 생긴 건가?”
수려한 용모의 중년 사내는 어느 산꼭대기에 있다가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다른 곳에서도 강력한 힘이 요동쳤다.
최근 몇 년 사이 용봉 학당에서 가장 큰 움직임이 일어난 날이었다.
이들은 용봉 학당에서 가장 강한 인물들이었다.
작은 행동만으로도 학당의 근본을 흔들 수 있는 존재 말이다.
* * *
얼마 후, 용봉 학당의 의회당에는 십여 명이 모였다.
나이도 복장도 다르지만, 속세를 초월한 대단한 인물이란 점에서는 같았다.
십여 명 중에는 용봉 학당의 현 학장도 있었다.
일반 성로들은 아직 등급이 되지 않기에 이 자리에 참석할 자격조차 없었다.
의회당에는 수릉 장로가 서 있었다.
산 정상에 우뚝 솟은 소나무처럼 올곧은 풍채는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
태상 장로들의 태도도 공손해졌다.
감히 목소리를 높이는 자는 없었으며, 그건 학장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수릉 장로는 오랜 세월 능묘를 지킨 분이었다.
어떤 소란에도 능묘를 떠난 적이 없던 분인데, 이렇게 나오신 걸 보면 큰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학장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대인, 혹시 무슨 일이 생겼는지요?”
다른 자들도 조용히 수릉 장로의 대답을 기다렸다. 대체 무슨 일이 생겼길래 대인께서 이곳까지 납신 걸까.
“항소운이 마족인가?”
수릉 장로가 담담히 물었다.
이곳에 모인 자 중 절반은 항소운이란 이름을 몰랐지만, 나머지 절반에게는 무척이나 익숙한 이름이었다.
“항소운이 마족이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태상 장로 하나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
“말도 안 됩니다. 그 녀석은 분명 구성지체였습니다. 마족이 어찌 그런 체질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누가 헛소문을 퍼뜨린 거겠지요.”
그들은 일찍이 항소운을 제자로 들이고자 했으나, 항소운의 고집 때문에 결국 일은 성사되지 못했다.
게다가 최근 몇 년간 그들은 속세를 멀리하고 오직 수련에만 매진했다.
그래서 항소운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학장은 난처한 듯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항소운이 명황족의 능력을 사용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 후 무도진인(無道眞人)에 의해 성진이 파괴되었고, 지금은 생사조차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명황족의 능력을 쓸 줄 안다고 해서 마족이라 단정 지었단 말인가? 게다가 그걸 단정 지은 자들도 우리 용봉 학당의 장로들이고?”
수릉 장로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보아하니 이젠 날 늙어빠진 묘지기라고 무시하는가 보군.”
늙어빠진 묘지기.
이 말은 태상 장로들의 가슴 속에 가시가 되어 박혔다.
수릉 장로는 정말로 화가 나 있었다.
태상 장로들이 노하면 용봉 학당이 벌벌 떨지만, 수릉 장로가 노하면 중원 대륙 전체가 벌벌 떨 정도니 이는 보통 일이 아니었다.
“수릉 장로님, 이 일은 제가 즉시 사람을 보내 조사하겠습니다.”
다급해진 학장이 황급히 말했다.
“됐네, 이 일은 내가 직접 조사하겠네.”
수릉 장로는 손을 내젓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오늘 내가 여기 온 것은 자네들한테 할 말이 있어서야. 앞으로 능묘 청소는 다른 사람한테 맡기게.”
그러고는 몸을 홱 돌려 의회당을 걸어 나갔다.
그런 수릉 장로에게 감히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그들은 수릉 장로의 뒷모습에서 적막함과 분노를 느꼈다.
저 화가 폭발하면, 뒷일은 누구도 감당할 수 없을 것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학장은 크나큰 중압감을 느꼈다.
당시 항소운을 학당에서 쫓아내는 안건에 동의할 때만 해도 이런 중압감은 없었다.
그는 수릉 장로가 자신의 입장을 이해해줄 거라고 믿었다.
어쨌든 항소운이 사도염을 죽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절충안을 택했고, 결국 항소운을 학당에서 내쫓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수릉 장로도 결과를 묵인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번에 항소운에게 진짜 큰일이 발생하자 수릉 장로는 진심으로 노했다.
‘능묘를 지키지 않겠다니, 대체 무얼 하실 생각일까…….’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황색 도포를 입은 태상 장로가 낮은 소리로 물었다.
이렇게 된 마당에 무얼 더 감추겠는가.
학장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아는 내용을 전부 얘기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