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817
제817화 무엇이 ‘마(魔)’인가
“계속 덤벼!”
역시 자전신후는 전쟁터에서 뼈가 굵은 장군답게 싸울수록 용맹해졌다.
일순 천둥 바다가 펼쳐지는가 싶더니 빙룡을 향해 마구 공격을 퍼부었다.
그 파괴력은 천둥 본연의 힘에 버금갈 정도로 막강했다.
빙룡도 전투력을 최대로 발휘해 얼음으로 천둥 번개의 폭격을 막아내더니, 날카로운 발을 마구 휘둘렀다.
저 보잘것없는 인간을 반드시 죽이고 말리라.
“오늘 네놈을 기필코 죽여주마!”
빙룡은 위엄이 무너졌다는 생각에 불같이 성을 냈다.
빙룡이 정신없이 몸을 흔들자, 극한의 얼음의 힘이 주변을 꽁꽁 얼리기 시작했다.
자전신후는 상대가 전력을 다하기 시작했음을 느꼈다.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다는 생각에 마침내 그는 진짜 자전신창을 꺼내 들었다.
천둥의 힘을 전부 창에 불어넣자, 활 모양의 천둥 번개가 궤적을 그리며 나타났다.
그러더니 마치 시공을 초월한 듯 곧장 용의 목을 공격했다.
호뢰경세(弧雷驚世)!
오랜 시간 단련을 거친 자전신창결의 위력은 대단했다.
호선을 이루는 천둥은 아주 교묘한 위치에서 공격을 퍼부었다.
빙룡은 미처 피할 새도 없이 창에 찔리고 말았다.
“컥!”
또 비늘이 한 움큼 떨어져 나갔다.
천둥 번개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상처를 쉴 새 없이 파고들었다.
빙룡은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연신 포효를 내질렀다.
빙룡은 그제야 상대의 무공이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계속 싸워봤자 승산은 없었다.
빙룡은 그대로 몸을 돌려 천설산 밑으로 달아났다.
그곳은 빙한의 기운이 가득하여 얼음의 힘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었다.
천설산 아래에 이른 빙룡은 설산의 힘을 빠르게 흡수하더니 얼음의 힘으로 상처를 얼려버렸다.
뒤늦게 따라 내려온 자전신후에게 그는 버럭 호통을 쳤다.
“진짜 죽을 때까지 싸울 생각이냐?”
“패왕만 돌려주면, 목숨은 살려주마.”
자전신후는 공격을 멈춘 채 태연히 말했다.
“패왕? 대체 누구를 말하는 거냐? 난 네가 무슨 말 하는지 몰라!”
빙룡이 억울하다는 듯 대꾸했다.
그러자 자전신후가 손바닥 위로 잔영을 만들었다.
항소운의 모습이 떠오르자, 그제야 빙룡은 무슨 일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하, 저 재수 없는 놈이군.”
빙룡은 욕을 퍼부었다.
“잠깐 기다려라. 녀석을 데려오마.”
상대는 요구를 거절하면 끝까지 싸울 녀석이었다.
더는 인간족 고수와 마찰을 빚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는 결국 여기를 떠날 수밖에 없을 터였다.
빙룡은 빠른 속도로 동굴에 돌아갔다.
마침 은자가 자신의 천각뿔을 얼음에 힘껏 부딪치며 항소운을 구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은자는 돌아온 빙룡을 보고도 겁먹은 기색 없이 솔직했다.
“대인, 형님 좀 꺼내주세요.”
“뭐야, 너도 이놈을 구하고 싶단 거냐? 이젠 지긋지긋하니 전부 가버려라.”
빙룡은 가뜩이나 부상을 당해서 성질이 더 고약해졌다.
바로 은자와 항소운을 붙든 채 동굴 밖으로 날아갔다.
“데려가라. 그리고 다신 찾아오지 마. 그렇지 않으면 설령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네 녀석과 함께 죽을 거니까. 이건 진심으로 하는 소리다!”
빙룡이 은자와 항소운을 내던지며 소리쳤다.
자전신후는 부드러운 기운을 내보내 은자와 항소운을 사뿐히 감싸서 내려놓았다.
하지만 얼음 조각처럼 딱딱하게 얼어붙은 항소운을 본 순간, 자전신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렇게 끝내려고?”
“그럼 뭘 더 어쩌라는 거냐? 내가 적당히 하라 그랬지.”
빙룡이 벌컥 성을 냈다.
“신급 약초를 내놔. 안 그러면 네 집을 부숴버리겠다.”
자전신후가 단호히 말했다.
“이놈이 보자 보자 하니까!”
빙룡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자전신후를 다시 공격했다.
자전신후도 걸어오는 싸움을 마다할 사람은 아니었다.
항소운과 은자를 안전한 곳에 둔 뒤, 침착하게 맞섰다.
손에 들린 자전신창에는 천둥의 힘이 가득 차올랐고, 하늘에선 세찬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일촉즉발의 순간, 별안간 그들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신급 고수인 그들조차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조용한 움직임이었다.
그들은 긴장한 눈초리로 그자를 관찰했다.
상대는 눈먼 노인이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얇은 베옷 차림이나, 소나무처럼 곧은 풍채는 비범하면서도 예사 사람이 아니란 느낌을 주었다.
빙룡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자전신후는 천둥의 힘을 응집시킨 채 긴장한 눈초리로 지켜보았다.
혹 저자도 패왕을 노리는 걸까.
노인의 정체는 용봉 학당의 수릉 장로였다.
“그 아이는 나한테 넘겨라.”
수릉 장로가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그 전에 나부터 죽여야 할 거다.”
자전신후는 두려움 없이 나섰다.
전생에는 패왕을 지키지 못했지만, 이번 생은 패왕을 위해 한목숨 바치리라!
“괜찮은 사람이군.”
수릉 장로는 담담히 말을 뱉고선 소맷자락을 휘둘렀다.
순간 거센 바람이 훅 불더니 어느새 항소운은 수릉 장로의 손에 들려있었다.
“빌어먹을.”
자전신후는 상대의 무공이 범상치 않다는 걸 알았지만, 그렇다고 두렵지는 않았다.
그는 곧장 자전신창을 내리꽂았다.
하늘도 뚫을 듯 강력한 기세가 휘몰아쳤다.
하지만 이런 강력한 일격도 수릉 장로의 장법에는 맥을 추지 못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신의 경지였다.
자전신후의 표정이 일순 굳었다.
빙룡은 겁을 집어먹고 동굴 속으로 숨어버렸다.
이래 봬도 이들은 신급 강자였다.
더욱이 평범한 신급이 아니거늘 이 눈먼 노인 앞에서는 일격에 무너지고 말았다.
“대체 넌 누구냐?”
자전신후가 물었다.
“난 이 아이의 스승이네.”
수릉 장로는 담담히 말을 뱉더니 항소운을 데리고 사라져버렸다.
“패왕의 스승이라고?”
자전신후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네, 저분은 형님의 스승님이세요. 저도 뵌 적이 있는걸요.”
옆에서 은자가 말을 받았다.
“용봉 학당에 있을 때요.”
“그랬군. 그럼 안심해도 되겠어.”
자전신후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뒤이어 그는 큰소리로 빙룡을 불러댔다.
빙룡은 안에 틀어박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자전신후가 천설산을 폭발시키려 하자, 그제야 화가 잔뜩 나서 얼굴을 내밀었다.
“진짜 죽고 싶어 환장했냐!”
빙룡은 매섭게 울부짖으며 다시 맞붙어 싸우기 시작했다.
용의 기운을 터뜨리자, 전투력이 순식간에 강해져서 동급 중에선 대적할 자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자전신후는 가히 천둥의 신이라 불릴 만한 자였다.
천둥의 힘을 다루는 솜씨는 이미 입신의 경지에 이르렀고, 전투력도 빙룡 못지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신급 약초를 받아내서 패왕에게 드리겠다고 결심한 터라 다른 건 안중에도 없었다.
그렇게 둘은 칠일 밤낮을 꼬박 겨뤘다.
빙룡의 몸에선 비늘이 대거 떨어져 나갔고, 피도 많이 흘려서 참혹한 몰골이었다.
자전신후의 상황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온몸은 상처로 가득한 데다 하마터면 팔 한쪽을 먹힐 뻔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침착한 태도로 부상당한 팔을 치료하고선 계속해서 싸움을 이어나갔다.
“제대로 미쳤군!”
빙룡은 욕을 퍼부었다.
“어서 약초를 내놔!”
자전신후는 고집스럽게 물고 늘어졌다.
“에잇, 재수가 없으려니까.”
빙룡은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았다.
무수한 세월 가운데 가장 참혹했던 대결이었다.
이러다 저 미치광이가 물귀신 작전으로 나오진 않을까 싶어 빙룡은 덜컥 겁이 났다.
그는 동굴로 돌아가 신급 약초를 뱉고선 자전신후에게 내던졌다.
그제야 자전신후는 만족한 얼굴로 은자를 데리고 떠났다.
* * *
북강의 어느 이름 없는 산.
천설산만큼 춥진 않아도 새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그 위로 이따금 날리는 눈송이는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풍경에 취했다.
수릉 장로는 항소운을 데리고 이 설산에 왔다.
꽁꽁 얼어붙었던 몸은 스승이 간단히 녹여버려서 이제 자유의 몸이 되었다.
하지만 성체가 훼손돼서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힘겨웠다.
항소운은 옆으로 몸을 기댄 채 힘겹게 입을 뗐다.
“스승님, 감사합니다.”
얼음에 갇혔어도 의식은 선명했다.
자전신후가 구하러 왔었고, 생각지도 못하게 스승님이 나타나자 심장이 마구 뛰었다.
항소운은 스승님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알게 되었다.
아무리 전생의 그였다 해도 스승님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스승님께서 내 걱정은 하고 계셨구나.’
수릉 장로는 그저 묵묵히 품에서 신급 샘물이 담긴 병을 꺼냈다.
항소운에게 한 모금 먹이자, 망가졌던 육신이 빠르게 회복되었다.
그러나 이미 파괴된 성진은 되살아나지 못했다.
오직 성진초만이 성진을 되살리고, 타고난 체질을 복구시킬 수 있었다.
신천(神泉)의 위력은 대단했으나, 현재로선 직접 제련시킬 방법이 없어 하는 수 없이 마주로 힘을 보내 마기의 경지를 높이기 시작했다.
어차피 마족이란 정체가 만천하에 드러난지라 스승님이 알게 되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신천의 힘이 마기의 경지를 강화하자, 마기가 일렁이면서 이마에 마문이 나타났다.
수릉 장로는 초점 없는 눈으로 쓱 훑더니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이내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신천의 힘을 전부 흡수하고 나자, 마기의 경지는 곧장 1품 마성 정점에 이르렀다.
항소운은 몸이 한결 편안해진 것을 느꼈다.
비록 성진의 힘은 없어졌지만, 마주의 힘이 몸 전체를 관리하고 있어 그는 지금도 여전히 강했다.
항소운은 자리에서 일어나 스승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일어나거라.”
수릉 장로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다들 널 마인이라 해도 믿지 않았는데, 이젠 믿겠구나.”
순간 항소운은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이제 솔직히 털어놓는 수밖에 없었다.
“스승님 말씀이 맞습니다. 제 몸에는 마인의 피가 흐르고 있어요. 제 어머니는 명황족이십니다.”
그는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확실히 인간족이십니다. 저도 어려서부터 인간족 마을에서 살았고요.”
“무엇이 ‘마(魔)’인 줄 아느냐?”
수릉 장로가 돌연 물었다.
항소운은 고민 끝에 대답했다.
“마기를 수련하는 종족이 마족 아닐까요?”
“틀렸다.”
수릉 장로는 말을 이었다.
“마음속에 ‘마’가 있어야 마족이다.”
“마음속에 ‘마’가 있어야 마족이라고요?”
항소운은 그 말을 잠자코 음미했다.
“부처께서 말씀하시길, 일체중생은 평등하고 만물은 영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인간이나 요수, 마족 그리고 다른 이족 모두 평등하다는 소리지. 허나 각 종족은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차별하고 무시하고 있단다. 이 때문에 인간족과 마족 사이에도 전쟁이 끊이질 않고 있지. 생각만 바꾸어도 다 같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는 걸 모르는 게야.”
수릉 장로는 한숨을 내쉬었다.
항소운은 순간 멈칫했다.
‘스승님은 저런 생각을 하고 계셨구나.’
상당히 생각이 깨어있는 분이셨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잘잘못은 제쳐두고 대다수가 선택하는 대로 움직일 뿐이었다.
그런 사람이 대다수를 이루는데 어찌 차별을 멈추고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겠는가.
“스승님, 가르침을 주십시오.”
항소운은 공손히 가르침을 청했다.
어쩌면 스승님이라면 앞으로 살길을 알려주실지도 모른다.
이제 혼자서는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할지도 막막했다.
인간족은 마족을 증오했다.
그의 이름이 각지에 쫙 퍼지고 나면, 그는 모두에게 지탄받는 존재가 되어버릴 터였다.
절대 그런 식으로 살고 싶지는 않았다.
적이 늘어나는 게 두려운 게 아니라 인간족이 자신을 배척해서 어쩔 수 없이 마족이 되는 게 두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