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841
제841화 2황자와의 만남
성림원은 고목 나무가 빽빽하게 자란 정원이다.
더는 자랄 수 없을 만큼 오래된 나무들은 이곳에 뿌리를 내린 채 마른 나뭇잎을 땅으로 떨구었다.
길을 따라 층층이 쌓인 주황빛 낙엽은 아름다우면서도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곳은 천지의 영기가 무척 짙었다.
그러면서도 어슴푸레한 기운이 감돌아 평범한 사람은 바로 앞도 분간하기 힘들지만, 전천 성인은 풀 한 포기까지 또렷이 보였다.
항소운은 정갈한 기운을 느끼며 내심 감탄했다.
‘정말 좋은 곳이다!’
정원 한가운데에는 공터가 있었다.
한눈에도 예사롭지 않은 물건들이 휘황찬란한 빛을 발산하며 놓여 있었고, 그 주위를 몇몇 사람이 거닐고 있었다.
다름 아닌 성림원에서 성급 물품을 거래하는 장소였다.
항소운은 그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순간 주변의 기운이 갑자기 달라지는가 싶더니 이내 다른 공간에 들어간 느낌이 들면서 바깥세상과 차단되었다.
‘진법인가?’
그는 이런 생각을 하며 안으로 계속 걸어갔다.
그런데도 거래 장소와의 거리는 아직 까마득히 멀어서 더욱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성림원은 언뜻 봐선 그리 크지 않지만, 실은 황성보다 열 배는 넓었다.
이게 바로 진법의 능력이었다.
거래소에는 이삼십 명이 오가고 있었다.
다들 나이가 상당했지만, 겉모습은 제각기 달라서 수염이 허연 노인이 있는가 하면 아직 젊은 외모를 유지한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모두 성급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전천 성인은 흔치 않기에 어디를 가든 한 지역의 맹주는 될 만한 인물들이었다.
못 보던 얼굴이 나타났는데도 그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이곳에서 재배되고 있는 성급 약초야말로 이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항소운은 이곳에 들어선 순간, 깜짝 놀랐다.
이미 채취한 약초를 파는 게 아니라 땅에 심어진 상태로 살 사람이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영천(靈泉)으로 키운 약초라 그런지 맑은 기운이 물씬 풍겨 그 향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와, 정말 대단한 곳이다!’
그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눈앞에는 거대한 약초밭이 펼쳐져 있었다.
백여 개가 넘는 성급 약초는 다양한 종류만큼 등급도 제각기 달랐으나 하나같이 귀한 것들이었다.
혹 사람들이 훔쳐 갈 수도 있는데, 성림원은 걱정도 안 되는지 이처럼 자유롭게 풀어놓고 판매했다.
물론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이리라.
“자염등(紫炎藤), 하급 성약(聖藥). 성체의 부상을 빠르게 회복하며, 생명력을 늘린다. 하급 성정 2천 개.”
“열풍초(裂風草), 중급 성약. 바람의 성진의 힘을 높이고, 열풍성인(裂風聖刃) 기술을 얻어 바람의 힘과 공명을 높인다. 중급 성정 2천 개.”
“금하화(金河花), 중급 성약. 금의 힘이 대폭 향상되고, 금의 힘을 이용한 공격이 갑절로 강해진다. 중급 성정 2천 5백 개.”
수많은 성급 약초를 보고 있자니, 그의 눈빛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성진만 파괴되지 않았어도 지금쯤 몇 개는 샀을 것이다.
그래도 수중의 재산은 남부럽지 않게 있었다.
그동안 전천 성인을 여럿 죽이면서 그들의 보물들을 전부는 아니어도 일부는 챙긴 것이다.
더욱이 누무정과 화유인, 우환 부인 등 최상급 성인을 죽인 후, 꽤 많은 성정이 수중에 들어왔다.
물론 여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비할 수는 없을 테지만, 적어도 중급 성약 열 개쯤은 충분히 살 만했다.
그는 고민 끝에 몇 개를 사기로 했다.
자신은 쓰지 못해도 지인들에게 나눠줄 수는 있었다.
그렇게 한 바퀴를 둘러보다가 영롱하게 빛나는 한 송이 꽃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 꽃은 꽃 중의 왕처럼 꼿꼿이 서서 고귀한 기품을 드러냈다.
바로 귀하디귀한 아홉 꽃잎 유리화(琉璃花)였다.
그 꽃은 중급 성약 중에서도 상등품으로, 약효는 상급 성약에 뒤지지 않았다.
각 꽃잎에는 유리(琉璃) 특유의 온화한 빛이 흐르고 있었다.
꽃잎 한 장만으로도 흙의 힘을 연마하는 제존이 무공을 폭발적으로 높일 수 있으며, 아홉 장의 꽃잎을 전부 복용하면 단숨에 전천 경지에 오를 수 있다.
전천 성인이 복용해도 경지를 바로 높일 수 있고, 가격은 중급 성정 5천 개다.
약초밭 한가운데에는 관리인으로 보이는 노인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노인의 눈은 반쯤 감겼고, 머리카락은 힘없이 축 늘어졌으며 장포는 꾸깃꾸깃했다.
하지만 노인에게선 그 어떤 힘의 파동도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니 실력을 감춘 대단한 고수임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성약을 지키는 임무를 어찌 맡겠는가.
항소운은 노인에게 정중히 말을 건넸다.
“아홉 꽃잎 유리화 한 송이를 사고 싶습니다.”
그런데 노인이 채 입을 열기도 전에 옆에서 다른 이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혹 제가 그 꽃을 사드려도 되겠습니까?”
무슨 소리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니 스무 살 남짓의 젊은이가 부채를 가볍게 흔들며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시원스럽게 잘생긴 얼굴에, 머리에는 옥관을 쓰고 자주색과 금색이 어우러진 장포를 입고 있었다. 딱 봐도 부잣집 자제거나 귀한 신분이었다.
젊은이 뒤로는 범상치 않은 세 사람이 서 있었다.
모두 성급 경지로, 항소운은 그중 한 사람에게서 두려움마저 느꼈다.
항소운이 물었다.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인데 어쩐지 낯이 익었다.
“전 황고진(皇高進)이라고 합니다. 인사받으시지요.”
젊은이가 예의 바르게 말했다.
“아, 2황자셨군요. 실례했습니다.”
항소운은 급히 맞인사를 올렸다.
눈앞의 젊은이는 낙일 황조의 다음 왕위를 계승할 자로, 가장 유력시되는 두 태자 중 한 명인 황고진이다.
어째 낯이 익다 했더니 황천극과는 이복형제 사이였다.
황천극과 닮기도 했고, 마찬가지로 용의 기운을 갖고 있었다.
항소운은 2황자의 실제 나이가 결코 오십은 넘지 않을 거라 짐작했다.
한데 벌써 2품 전천 경지라니, 과연 유력한 계승자로 칭송받는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고귀하신 황자 전하께서 무슨 이유로 성약을 사주겠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은 불과 얼마 전 금위군에게 미움을 샀는데 말이다.
“항 형제, 어서 일어나십시오. 제 아우도 용봉 학당에서 수행 중이니 서로 동문 아닙니까.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이 유리화는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황고진은 수하에게 눈짓을 보냈다.
노인에게 저 아홉 꽃잎 유리화를 사라는 뜻이었다.
항소운은 급히 손을 내밀어 말렸다.
“아무 이유 없이 그런 귀한 선물을 받을 순 없습니다.”
그러고선 품에서 성정을 꺼내 노인에게 건넸다.
“무엄하다! 황자께서 주시는 선물을 어찌 마다한단 말이냐.”
뒤편의 전천 성인이 매섭게 꾸짖었다.
그러나 황고진은 손을 들어 제지하더니 오히려 온화하게 웃었다.
“제가 무례를 범했군요. 그렇다면 차 한 잔은 어떠십니까?”
“좋습니다. 다만 성림원을 다 둘러본 후에 응해도 되겠습니까?”
항소운이 대답했다.
“물론이지요. 차라리 제가 안내해드리는 건 어떻겠습니까? 이래 봬도 이곳 지리는 아주 잘 압니다.”
황고진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뒤편의 전천 성인 세 사람은 사뭇 놀란 눈치였다.
황자가 항소운이란 자를 이토록 높게 평가할 줄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짐작 가는 바가 있는지 항소운을 바라보는 저들의 눈빛이 곱지 않았다.
낙일 황조에서 1황자와 2황자가 다음 왕위를 놓고 경쟁을 벌이는 사실을 모르는 자는 없었다.
1황자는 적자 중 장남으로 국사부(國師府)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으며, 여론에서도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하지만 2황자 역시 많은 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래도 국사부에 비하면 다소 힘이 달리는지라 2황자는 지지 기반을 단단히 하기 위해 천하의 영웅호걸을 모아 ‘취영각(聚英閣)’이란 단체를 조직했다.
낙일 황조는 2황자의 행보에 대해 가타부타하지 않았다.
어차피 1황자도 자신의 세력을 구축한지라 오히려 이런 상황이 황실을 더욱 번성시킨다고 믿었다.
취영각은 지금껏 여든여덟 명의 영웅호걸을 모았다.
무공으로 압도하는 전천 성인과 진법 대사, 책략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들이 한데 모이다 보니 자연스레 경쟁이 이루어지고 서열이 발생하면서 ‘취영방(聚英榜)’이 생겨났다.
물론 서열이 높을수록 2황자의 주목을 받는 건 당연했다.
세 성인은 2황자가 항소운에게 친절히 대하는 것을 보며, 황자께서 또 인재를 아끼는 마음이 동하셔서 저자를 취영각으로 들이려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물론 항소운이 황자의 생각을 알 리 없었다.
상대가 안내해주겠다는데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같이 다니다 보면 황자의 의도도 알 수 있으리라.
2황자의 안내 덕분에 항소운은 성림원이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 알게 되었다.
이곳에는 성급 약초뿐만 아니라 성급 기술과 무기도 거래되고 있었다.
보통 거래소라 하면 시끌벅적하고 정신이 없거늘, 이곳은 여느 거래소와 달리 색다른 정취가 있어 자못 놀라운 경험이었다.
항소운은 다시 성정을 지불하고 ‘마천도(魔天刀)’라는 무기를 샀다.
외관은 평범했으나 자세히 보면 칼 몸에 용 비늘이 새겨져 있었다.
칼끝은 용의 이빨처럼 날카로워 극도의 파괴력을 발산했다.
그것은 어둠의 힘을 지닌 중급 성급 칼이었다.
가격은 중급 성정 7천 개로, 특히 힘을 배가시키는 데 탁월했다.
당분간은 환을 대신해 이 무기를 쓰면 되겠구나 싶었다.
이 칼이면 마기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아주 좋은 칼이군요. 이 칼에 어울릴 만한 초식이 필요할 겁니다.”
황고진은 이렇게 말하며 아주 오래돼 보이는 책 한 권을 건넸다.
“마침 제게 ‘혼원마도결(混元魔刀訣)’이 있는데, 마천도와 아주 잘 맞을 겁니다. 전 가지고 있어봤자 쓸 일도 없으니, 항 형제께 드리겠습니다. 부디 사양 말고 받아주시지요.”
다른 것도 아니고 성급 정점 기술을 내어주다니, 참으로 배포가 컸다.
항소운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황자 전하께서 이리 후하게 베풀어주시니, 그저 황송할 따름입니다. 혹 제게 바라는 일이라도 있으신지요?”
이런 상황에서 상대의 의도를 계속 모른 척하는 것도 예의는 아닌듯하여 거두절미하고 물었다.
“하하. 역시 성격이 시원시원하시군요. 천설산 전투에서 항 형제의 활약을 모르는 이가 천하에 있겠습니까. 대성을 죽이고, 얼마 전에는 사십여 명의 전천 성인을 죽이셨다죠. 동년배 중 적수가 될 자는 아마 이 세상에 없을 겁니다. 저는 다만 벗이 되고 싶을 뿐이니, 거절은 말아주십시오.”
2황자는 겸손한 말투로 항소운을 치켜세웠다.
황자가 저리 칭찬하면 우쭐해지기 마련이거늘 항소운은 심경의 변화가 크게 없었다.
“과찬이십니다. 그저 목숨을 지키려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겁니다.”
항소운은 잠시 멈추었다가 말을 이었다.
“실은 제가 입성(入城) 후 의도치 않게 금위군의 미움을 샀습니다. 황자께서 정말 저와 벗이 되고 싶으시다면, 더는 오해가 없도록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만 되면 전 응당 황자 전하의 벗이 될 것입니다.”
순간 황고진의 눈빛이 흔들리며 난처한 기색이 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