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850
제850화 앞뒤가 다르게 행동하다
젊은 승려는 항소운을 대전 앞으로 안내했다.
이곳에는 호연대불이 모셔져 있는데, 무려 수십 장 높이였다.
웅장하면서도 자애로운 미소의 불상 앞에 서니 그 인자한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어졌다.
그는 비록 전천 성인이긴 하지만, 허리를 살짝 굽혀 불상에 예를 표했다.
호연불종을 세운 창시자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다.
대불 아래에는 한 노승이 목탁을 치며 염불을 외고 있었다.
항소운이 불상에 절을 하고 나자, 노승은 때맞춰 몸을 돌려 합장을 했다.
“아미타불. 귀한 손님께서 찾아와주셔서 참으로 기쁩니다.”
항소운도 예를 갖추어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한데 스님, 혹시 사람을 잘못 보신 것 아닙니까. 제가 귀 사찰을 찾은 건 맞지만, 기다리시던 귀한 손님은 아닙니다.”
그러자 노승이 인자한 미소로 답했다.
“성림방 1등이 귀한 손님이 아니라면, 천하의 어떤 이가 본 사찰의 귀빈이겠습니까?”
노승은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최근 귀한 손님이 우리 사찰에 오실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오늘 항 시주께서 오셨으니 바로 그 귀빈이지요.”
“스님의 예지력에 감탄했습니다.”
노승의 시선이 항소운에게 향했다.
노련한 눈동자에선 알 수 없는 광채가 번뜩였다.
모든 것을 훤히 꿰뚫는 듯한 눈빛에 항소운은 왠지 불편해졌다.
“항 시주께서는 인간과 마족의 능력을 모두 연마하셨군요. 참으로 보기 드문 일입니다. 그럼 시주께서는 인간입니까, 아니면 마족입니까?”
노승의 물음에 그가 태연히 되물었다.
“그렇다면 주지 스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인간입니까, 아니면 마족입니까?”
“모든 중생은 평등합니다. 생각에 따라 인간이 되기도 하고, 마족이 되기도 하지요. 그 대인께서 직접 항 시주의 결백을 증명하셨으니, 아마도 마족은 아니겠지요.
허나 아직 몸속에 마장(魔障)이 있으니, 본 사찰의 복마진(伏魔陣)으로 마장을 제거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야 결백한 몸이 될 수 있을 겁니다.
항 시주, 어떠십니까?”
복마진은 아주 무시무시한 살상진이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저 속을 모를 자가 있을까.
노승은 그에게 마기가 있다는 것에 여전히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스승의 말을 전적으로 믿지는 않았던 것이었다.
“스님께서는 모르시겠지만, 전 예전에 천사족으로부터 정화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의 광명사자가 되었지요. 이런 제가 마족일 리 있겠습니까?”
말을 마친 그의 미간 사이로 지혜의 빛이 반짝였다.
극히 순수한 광명의 힘이었다.
그는 순식간에 위엄 있고 바른 기운이 넘쳤으며, 상서로운 기운은 사찰의 정기와 자연스레 어우러졌다.
이 순간, 진정한 광명사자로 거듭난 그는 마족과 아무런 관련도 없어 보였다.
정화형.
그것은 천사족이 악을 물리칠 때 행하는 형벌이었다.
불가의 복마진과는 다르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같으니 바로 ‘마’를 제거하고 사악한 존재를 정화하는 것이다.
노승은 항소운의 말을 듣더니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천사족의 정화형은 ‘마’를 제거하기에 가장 적합한 형벌입니다. 그렇다면 항 시주의 신분도 염려할 필요는 없겠군요.”
노승은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시주님께서는 훌륭한 재능과 자태를 갖추셨고, 마음속에 광명이 있으니 참으로 우리 인간족의 복입니다.”
“과찬이십니다, 스님. 비록 제 몸에 마혈과 마기가 있긴 하나, 전 언제나 인간족이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이유 없이 공격한 적도 없고요. 그건 제 삶의 원칙입니다.
예전에 저희 스승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제 마음속에 ‘마’가 없다면, 마족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누군가 마음속에 ‘마’를 품고 있다면, 설령 그자가 인간이라 할지라도 마족이라고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스님?”
항소운은 상대를 똑바로 응시하며 물었다.
그러자 노승이 눈을 빛내며 합장을 했다.
“아미타불. 대인의 말씀이 맞습니다. 만물은 모두 평등하니 인간이든 마족이든 일심으로 선을 행한다면, 누구든 성불할 수 있지요.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항소운은 이런 문제로 주지 스님과 계속 입씨름하고 싶지 않았다.
뒤이어 그는 장연의 유골과 사리를 꺼냈다.
“실은 장연 대사의 잔혼의 부탁으로 이곳에 왔습니다. 여기 받으시지요.”
장연의 유골과 사리를 본 노승의 얼굴에서 슬픔과 연민이 느껴졌다.
“아미타불. 장연 사제, 어서 오시게.”
노승의 목소리는 파장을 일으키며 웅장하게 퍼져나갔다.
그 순간, 노승의 몸에서 금빛이 번쩍이더니 불기가 순식간에 모이면서 사찰은 이내 성대한 기운으로 가득 찼다.
하늘에는 여러 부처께서 법문을 외는 듯한 형상이 드리워졌다.
댕- 댕-
대전 밖에서 종소리가 울리자, 승려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불종이 울린다는 것은 절에 큰일이 발생했다는 뜻이었다.
불기와 여러 부처의 형상이 등장하자, 항소운이 가져온 사리에서 어떤 형상이 홀연히 떠오르더니 이내 장연 스님의 모습이 되었다.
그는 엄숙한 얼굴로 대전의 호연대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미타불. 제자, 호연불종께 인사 올립니다.”
그는 대불을 향해 절을 올리고는 주지 스님에게 인사를 올렸다.
“입적 전 사형을 뵀으니, 이제 여한이 없습니다.”
“오랜 세월 끝에 만났거늘 이미 같은 세상 사람이 아니구나. 사제, 남길 말이라도 있는가?”
노승은 깊이 탄식했다.
“사형, 슬퍼 마십시오. 불가에서는 육근청정(六根淸淨: 진리를 깨달아 욕심과 집착이 없어진 상태)과 무위를 이상적인 삶으로 보지 않습니까.
생사는 제게 중요치 않습니다. 죽은 건 거죽일 뿐, 이미 사리를 만들었으니 부처님 곁에서 오랫동안 머물 수 있지요. 다시 불문에 귀의할 수 있는데, 아쉬울 게 무엇 있겠습니까.”
이어서 장연은 항소운을 보며 말을 이었다.
“시주께서는 정말 신의가 있는 분이시군요. 소승,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제자 장연, 이만 가보겠습니다.”
장연의 허상은 사리 위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사리는 대전 밖으로 날아가더니 길게 금빛을 그리며 호연불종 요지로 사라졌다.
주지 스님은 그저 묵묵히 바라볼 뿐이었다.
사리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자, 스님은 눈을 감고 양손으로 합장을 하며 조용히 법문을 읊었다.
대전 밖에선 수많은 승려가 다 함께 독경했다.
끝없이 방대한 불기가 하늘 가득 퍼지면서 여러 부처의 형상이 떠올라 인간 세상을 교화하고 중생을 제도했다.
항소운은 어렴풋하게나마 그 의념을 느낄 수 있었다.
절 안의 모든 사람이 한마음으로 만들어낸 호연(浩然) 불기와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수많은 신자의 불심이 하나로 합쳐져 세월의 풍파에도 무너지지 않는 굳건한 기세를 이뤄낸 것이다.
‘불문은 참으로 심오하구나.’
장연은 적어도 만 년 전에 죽은 승려였다.
주지 스님은 장연의 사형이니, 아마도 신급 경지는 될 터였다.
호연불종은 일곱 개의 말사가 있고, 일흔두 곳의 중사(中寺)와 삼백육십오 개의 암자를 두고 있었다.
규모로는 중원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대사찰로, 막강한 저력을 지니고 있다.
이날, 항소운은 곁채에서 잠시 쉬게 되었다.
주지 스님은 장연 스님의 장례 의식을 주관하느라 손님 접대할 겨를이 없었다.
절에 묵고 있으니, 뒤쫓던 자들도 더는 접근하지 못했다.
아마도 절을 떠나는 순간만 벼르고 있을 터였다.
항소운은 우두커니 창가에 서서 하늘의 달을 바라보았다.
달빛은 천천히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들어와 뜰 안을 고요히 비추었다.
달 밝은 밤 풍경에 취하니 이런저런 생각이 났다.
‘여기 일도 끝났으니, 이제 문파로 돌아가야겠다. 그리고 아버지를 찾으러 가야지.
집을 떠나신 지 벌써 이십 년이 돼 가구나. 옥통이 아직 빛을 내는 걸 보면, 분명 곤란한 일이 생겨서 못 오시는 걸 거야. 그리고 술고래도 돌아오질 않았지.
아무래도 그 오마령 금지란 데는 아주 위험한 곳이 틀림없어.’
이튿날 아침,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데 한 동자승이 찾아와 그를 어디론가 안내했다.
영문도 모른 채 따라간 그는 도착하고 나서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그곳은 탑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숲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강력한 진법이 빼곡히 배치되어 있었다.
일순 진법이 개진되면서 항소운은 그 속에 갇히고 말았다. 성스러운 정기가 훅 불어닥쳤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탑 사이에서 서른여섯 명의 승려가 걸어 나왔다.
그들은 절도 있는 동작으로 손에는 나무 봉을 든 채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그를 에워쌌다.
“스님들, 왜 그러십니까?”
항소운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자신의 신분에 관한 거라면 어제 주지 스님을 충분히 설복시켰고, 장연의 사리도 가져오지 않았던가.
이제 모든 일이 끝났거늘 저 승려들은 대체 무슨 이유로 다시 찾아왔단 말인가.
“아미타불. 이곳은 저희 사찰의 복마진입니다. 마인은 여기서 형벌을 받으시오.”
승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네 절은 귀한 손님을 이리 대한단 말입니까?”
항소운은 속에서 화가 끓어올랐다.
주지 스님이란 자가 앞뒤가 다르게 행동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세상에 이런 위선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
“우리는 마족의 마성을 제거하여 천하를 태평하게 만들 것이오. 정도를 지키고 넓고 바른 기운을 영원히 이어나가는 것이 우리의 임무요. 복마진을 개진하라!”
그 승려가 큰소리로 외쳤다.
서른여섯 명의 승려는 모두 전천 경지였다.
그들이 발산하는 기운은 탑림(塔林)의 진법과 결합되었다.
강력한 호연 정기가 승려들에게 기운을 더하자, 그들의 무공은 순식간에 최상급 성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설령 대성이라도 이들의 협공을 상대로는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었다.
복마정기경(伏魔正氣經)!
승려들의 몸에서 발산된 호연 정기는 여러 부적의 형태를 이루며 항소운에게 덤벼들었다.
그 부적에는 거대한 힘이 실려있어 도저히 막질 못하고 결국 그의 몸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항소운은 이내 마주와 마혈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신체의 일부는 벌써 완벽히 제압당한 듯했다.
일순 극도의 분노가 터져 나와 그는 악에 받쳐 소리쳤다.
“그만해!”
항소운은 몸속에 생명의 성진이 만들어짐으로써 신체(神體)를 이루었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머릿속 마주는 여전히 존재했다.
그것은 마기의 경지에 속하는 힘으로, 사악하고 부정적인 이면을 나타낸다.
잘 조절만 하면 아무 문제 없지만 외부 힘에 자극을 받을 경우, 부정적인 감정이 폭발하여 폭주 상태가 되고 만다.
‘복마정기경’이란 마기를 제거하고 사악한 것을 정화하여 광명과 정기를 복원하는 불경이다.
이 경문은 막강한 위력을 품고 있어, 마족에게 가하면 마핵이 파괴되어 죽고 만다.
현재 항소운은 그러한 위험에 처해 있었다.
갑자기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마주가 욱신거렸다.
극심한 통증에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마기를 방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