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893
제893화 정말 미안해……
항소운은 옥통을 가만히 쥐고 기운을 느꼈다.
아버지가 근처에 계신다면 옥통과 감응을 이뤄 위치를 알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아무런 움직임도 느껴지질 않았다.
그는 낙심하여 얼굴을 떨구었다.
옥통의 기운이 차단된 걸 보면, 아마도 중앙 지대로 들어가신 모양이었다.
“아버님께서 오마령에 계신 게 확실해? 잘 생각해 봐.”
옆에서 마희가 물었다.
“확실해. 결전을 하루 앞두고 내게 직접 말씀하셨어. 금방 돌아오신다고 했는데, 그 뒤로 소식이 끊겨버렸지.”
그의 눈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지금으로선 제발 살아만 계시길 바랄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쪽을 살피러 갔던 일행이 전부 돌아왔다.
그들 역시 아무것도 발견 못 하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난 이제 오마령 금지로 들어갈 거야. 함께 갈 자신이 있나?”
“물론입니다.”
다섯 사람은 입을 모아 외쳤다.
“좋아. 이제부턴 서로 멀리 떨어져선 안 돼. 반드시 내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해.”
이렇게 해서 일행은 중앙 지대로 향했다.
바깥쪽에는 흉악한 생물이 득실거렸다.
그래도 대부분이 황급, 제급이라 은자에게 단련용으로 넘겼다.
얼마 후 그들은 커다란 바위 앞에 도착했다.
바위에는 ‘오마령에 들어가는 자, 생사를 논하라.’라고 새겨져 있었다.
진홍빛 글자에선 끈적한 피 냄새가 지금도 나는 것 같았다.
일행은 일련의 글자들에서 거스를 수 없는 압도적인 힘을 느꼈다.
놀란 눈빛들 사이로 서귀의 감탄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직 신혈(神血)만이 이런 바위에 낙인을 새길 수 있고 영원토록 보존할 수 있다더군요.”
“신급이 아니면 오마령에 들어갈 수 없는 겁니까?”
절망이 물었다.
“아마도 예전에는 신급 무인도 들어갈 수 있었을 겁니다. 나중에는 불가능해졌지만 말이죠.”
병부사가 대신 대답했다.
“아무튼 이곳에 거대한 위험이 있는 것만은 분명해. 다들 각별히 조심하도록.”
항소운의 표정이 한층 진지해졌다.
이곳에 이르자 죽음의 기운이 사방에 가득했다.
웬만한 무인은 죽음의 기운에 휩싸여 목숨을 잃는 경우가 허다했다.
일행은 계속해서 전진했다.
얼마쯤 갔을까.
불현듯 금제의 힘이 몸에 들러붙는 것이 느껴졌다.
덩달아 일신의 무력이 서서히 줄어들자, 일행은 심히 당황했다.
성급 힘을 쓰지 못하면 전투력이 대폭 약해질 터, 육신의 힘만으로 싸우기엔 무리였다.
“진짜 금지에는 아직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힘이 크게 줄었어.”
마희가 놀라 외쳤다.
“정말 괴상한 곳입니다.”
서귀는 한숨을 푹 쉬었다.
항소운은 일행을 돌아보며 물었다.
“다들 성진의 힘을 쓸 수 없는 거야?”
일행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은자의 요단도 이곳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항소운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근데 왜 난 아무 변화가 없는 거지?’
항소운은 말을 아꼈다.
계속 전진하면서 자신의 힘도 사라지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얼마 후, 마침내 오마령 금지 앞에 도착했다.
이곳은 금제의 힘이 한층 강해서 항소운을 제외하고는 성진의 힘을 아예 운용할 수 없었다.
“다들 돌아가.”
그는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곳은 죽음의 기운만 가득한 게 아니라 저들의 힘을 속박하고 있었다.
방어할 힘이 없으면 죽음의 기운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수명이 깎여버릴 터였다.
“나도 갈래.”
“저희도 패왕과 함께 가겠습니다.”
마희를 시작으로 일행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항소운은 전신에서 힘을 일으키며 말했다.
“보다시피 난 멀쩡해. 여기 영향을 안 받는 모양이야. 한데 자네들은 힘을 쓸 수 없으니, 같이 간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러니 돌아가는 편이 낫겠어.”
일행은 몹시 놀랐다.
자신들의 힘은 봉쇄당했는데, 어째서 패왕은 아무런 영향도 없단 말인가.
절망과 병부사는 패왕의 능력에 한층 탄복한 눈치였다.
“그럼 조심해.”
마희의 눈빛에는 걱정과 아쉬움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번 일만큼은 그를 말릴 재간이 없었다.
“걱정 마. 무사히 다녀올게.”
항소운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금지 안으로 성큼 들어갔다.
잠시 후, 그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연 안개는 일행의 감응마저 차단하고 있었다.
“우린 밖에서 패왕이 돌아오길 기다리세.”
서귀의 말에 따라 일행은 밖으로 나갔다.
계속 있다가는 죽음의 기운에 의해 목숨까지 잃을 판이었다.
이곳은 오마령 외곽과 확연히 다른 독립된 공간으로, 죽음의 기운이 바깥보다 십수 배는 강했다.
죽음의 기운은 전천 성인에게도 심각한 위협이었다.
억지로 중앙 지대에 들어갔다간 불과 몇 시진 만에 목숨을 잃고 말 터였다.
항소운은 부지런히 성급 힘을 운용했지만, 전부 죽음의 기운에 의해 소멸되고 말았다.
죽음의 기운은 원혼처럼 들러붙어 방어막까지 뚫으려 했으나, 그것만은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안전해진 것은 아니었다.
땅 위에는 썩어 문드러진 시체가 잔뜩 널려 있었다.
묘하게도 뼈만은 온전했는데, 골질이 범상치 않은 걸 보면 성골(聖骨)이 분명했다.
무서운 와중에도 저 성골들을 가져가면 성급 병기를 여럿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널린 시체만으로도 끔찍한데 시마(尸魔)들이 사방에서 어슬렁거렸다.
그들은 완전 무의식 상태였다.
지능은 낮으나, 일부는 이곳의 죽음의 기운을 빨아들이고 뱉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런 녀석들은 적어도 황급 이상이었다.
죽음의 기운으로 가득한 이곳에 돌연 생명력이 느껴지자, 그들은 항소운이 있는 쪽을 일제히 쳐다보았다.
시족(尸族).
태고 시대, 죽음이 임박했던 어느 성급 무인은 삶을 향한 열망을 도저히 놓을 수 없었다.
신급 경지는 오르지 못했지만, 그는 독자적으로 ‘시마공(尸魔功)’이란 무공을 창안했다.
이 마공은 육신을 사지로 몰아넣어 수명을 오래 연장하는 것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생매장한 채 시마공을 연마했다.
그리고 일만 년 후, 땅을 뚫고 나온 그는 마침내 의식을 갖춘 시마신(尸魔神)이 되었다.
그는 시마공을 통해 시마를 대거 양성해냈고, 이로써 시족이란 종족이 생겨났다.
일반적으로 시체는 다양한 변이를 거쳐 살아있는 송장이 된다.
그리고 시족의 전승까지 받으면 무공 수련이 가능한 시족 강자로 거듭난다.
시마는 강시, 시왕(尸王), 시황, 시제, 시성 등으로 나뉜다.
강시는 지능이 없는 평범한 시마로, 일단 수련 지능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시왕으로 분류된다.
그 후 힘을 삼키거나 뱉는 것이 가능해지면 시황이며, 초식을 운용한 싸움이 가능해지면 시제라 한다.
시성 단계에 이르면 인간의 말을 할 수 있으며 새로운 기억과 영혼이 생겨 새 생명체로 탈바꿈한다.
오마령은 어째서 인간족에게 금기의 땅이 됐을까?
이곳은 본래 수많은 유골이 묻혀 있던 묘지인데, 시족에 점령당한 뒤 그들의 본거지가 되어버렸다.
얼마 안 있어 항소운은 여러 강시에 둘러싸였다.
사방에 자욱하게 깔려있던 죽음의 기운이 세력을 확장하며 훅 불어닥쳤다.
하지만 지능이 없는 강시는 애초에 위협이 되질 못 했다.
상대하기도 귀찮아서 방어막으로 차단하자, 강시들은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했다.
잠시 후 시왕과 시황이 사방에서 나타났다.
그들은 죽음의 기운에 영향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그 기운을 이용해 공격을 퍼부었으나, 항소운에게는 우스울 뿐이었다.
그들 중에는 인간족도 있고 요수족과 이족도 있었다.
가만 보니 온갖 종족이 다 모여 있었다.
‘여기선 힘을 쓸 수 없으니 누구든 살아나가긴 힘들겠어.’
그는 한숨을 지으며 속도에 박차를 가해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쯤 가자, 이번에는 시제가 나타나 공격을 퍼부었다.
녀석들은 무기를 든 채 강력한 초식을 구사했다.
어느새 죽음의 기운은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강해져 있었다.
이젠 전신을 둘러싼 방어막도 조금씩 갉아 먹히는 듯했다.
계속 전진하다가는 죽음의 기운에 꼼짝없이 잠식당하고 말 터였다.
항소운은 주먹을 날려 시제들을 터뜨림과 동시에 화염을 일으켜 바싹 접근한 죽음의 기운을 태워버렸다.
극양의 화력이 등장하자, 시족은 두려운 기색을 보이며 차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는 무리해서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저 깊은 안쪽에는 더욱 강력한 시족이 도사리고 있었다.
죽음의 기운을 상대할 능력이 없다면, 더 깊이 들어가봤자 위험할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죽음의 눈이 있었잖아. 그렇다면 죽음의 기운을 흡수해서 내 식대로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죽음의 기운도 더 이상 두렵지 않을 거야.’
항소운은 고민 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이곳의 죽음의 기운을 흡수하기로 결심했다.
남들 눈에는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는 자신이 무얼 하려는지 잘 알고 있었고 해낼 자신도 있었다.
바로 그때, 멀지 않은 곳에 익숙한 형체가 보였다.
그는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술고래!”
술고래 다길은 자릉종의 원로였다.
당시 다길이 죽음을 무릅쓰고 구해주지 않았다면, 항소운은 이미 제패천의 손에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다길은 항양전을 찾기 위해 죽음도 불사하고 오마령으로 들어갔으나, 결국 우려하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지금의 그는 의식을 완전히 상실한 강시에 불과했다.
그저 다른 강시들처럼 겅중겅중 뛰며 계속 전진할 뿐이었다.
그에게서 생명의 기운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온몸이 죽음의 기운에 휩싸인 채 푸르뎅뎅한 얼굴만 하고 있었다.
변해버린 다길을 보고 있자니,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항소운은 이를 악물고 전방을 향해 뛰어갔다.
앞을 가로막던 시마들을 전부 찢어버리고 나서야 술고래 앞에 이르렀다.
술고래는 생전에 전천 성인이었다.
그러나 강시가 되어버린 지금은 반드시 시마공의 전승을 얻고 각종 변이를 거쳐야 마공을 수련할 수 있었다.
모든 시족이 시성이 되고 새 생명을 얻는 것은 아니라 이것도 기연이 필요했다.
다만 술고래는 생전에 전천 성인이었기 때문에 다른 평범한 시체보다 유리했다.
따라서 시마성이 될 확률은 절반으로 꽤 높지만, 시마신의 단계까지 오를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항소운이 가까이 다가가자, 술고래는 본능적으로 이빨을 들이밀며 달려들었다.
일단 물리면 죽음의 기운과 독에 목숨을 잃게 되어 결국 강시가 되고 만다.
항소운은 술고래에게 점혈을 찍고선 흐느껴 울었다.
“정말 미안해…….”
술고래는 자릉종과 아버지를 위해 희생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끔찍하게 변해버린 수하를 보고 있자니, 죄책감과 미안함에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려낼게.”
항소운은 죽음의 기운을 차단하고 생명의 진의를 일으켰다.
생명의 기운이 끝도 없이 흘러나와 술고래의 몸을 감쌌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는 거기서 포기하지 않고 손으로 술고래의 이마를 짚었다.
신급 영혼의 힘을 술고래의 머릿속으로 밀어 넣었으나, 뜻밖에도 술고래의 성혼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영혼의 소멸, 즉 완전한 죽음을 의미했다.
이런 상태면 아무리 스승님이라도 살릴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