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904
제904화 괜히 전생처럼 깨지지 말고 보내줘라
우가 젊은이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아까만 해도 연무대를 휘어잡던 제멸이 항소운의 호통 한 번에 무너지다니, 눈으로 보고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정작 항소운은 제멸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우채접에게 다가섰다.
그렇게 그녀를 끌어안은 채 세상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같이 나가자.”
우채접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녀의 어여쁜 눈망울은 한없는 애정으로 차올랐다.
“네, 당신을 따를게요.”
두 사람은 전생의 부부로, 현생 역시 저 둘 사이를 갈라놓을 순 없었다.
허나 현실은 우가 대문 앞이었다.
우가 사람들이 이미 빽빽이 둘러싼 탓에 마음처럼 떠날 수가 없었다.
제멸은 화가 나고 부끄러운 나머지 멸천신검(滅天神劍)을 꺼내 들었다.
불의 기운이 화르르 피어나며 등 뒤로 난새의 형상이 떠오르는 가운데 기세가 전천경 정점까지 치솟았다.
“항소운, 오늘이 네 제삿날이다!”
혈봉멸세(血鳳滅世)!
제멸이 제족의 제자(帝子)가 될 수 있었던 건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다.
바로 어려서부터 봉황의 피를 주입받아 혈봉전체(血鳳戰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봉황의 전투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제멸이 멸천신검을 휘두르자, 사나운 힘을 품은 혈봉 한 마리가 항소운에게 돌진했다.
제멸은 곁에 있던 우채접과 다른 사람은 전혀 상관하지 않는 듯했다.
저 화염의 등급은 굉장히 높아서 전천 성인을 죽이는 건 물론이요, 신급 강자까지 위협이 가능했다.
“어리석은 놈.”
항소운의 동공이 일순 가늘어졌다.
그는 곧장 갈퀴손을 뻗어 제멸의 공격에 맞섰다.
그의 조공(爪功)은 이미 대성급에 육박할 만한 수준이었다. 이는 제멸의 공격보다 한 수 위라서 혈봉은 이내 찢겨버렸다.
그는 이대로 끝낼 생각이 없는 듯 다시 손을 뻗었다.
제멸은 상대가 이리 강할 줄 전혀 예상 못한 눈치였다.
공격에 집중한 나머지 미처 막질 못하고 가슴 쪽 옷이 사정없이 뜯기고 말았다.
제멸은 붉은 내갑을 훤히 드러낸 채 멀리 나가떨어졌다.
다행히 누군가 재빨리 다가가 제멸을 보호한 덕분에 큰 부상은 없었다.
항소운의 공격력과 제멸의 힘은 갑작스레 불어닥친 힘에 의해 공간 틈으로 사라져서 우가 사람들은 모두 무사했다.
“항소운, 그만 멈춰라. 수호 대인의 면을 봐서 오늘 일은 문제 삼지 않겠다. 그런데도 계속 완강하게 나온다면 널 이곳에 백 년간 가둬둘 수도 있어. 그땐 수호 대인도 세상의 비난을 감수하고 널 구하지는 못할 거다.”
고요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였다.
잠시 후 아리따운 여인이 홀연히 나타났다.
강력한 여왕의 기세를 지닌 우화염이었다.
빛에 둘러싸인 그녀의 모습은 흡사 여신을 방불케 했다.
흐릿한 빛은 한층 신비로운 매력을 자아냈고, 고고한 기세에선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이 느껴졌다.
당시 반 신급 경지였던 그녀는 가장 중요한 관문을 거쳐내고 마침내 소생 경지에 이르렀다.
그녀 뒤로 전천경의 강자가 여럿 나타났다.
대성은 물론이고 심지어 반 신급까지 있어 우가가 얼마나 대단한 세력인지 짐작케 했다.
이 정도면 항소운 일행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마희와 유청신 등은 경계 태세를 높이며 언제든 항소운을 도울 준비를 했다.
이 무렵, 창공에선 두 공봉이 절망에게 호되게 당하다가 황급히 도망쳐 내려왔다.
두 사람은 명색이 대성이었다.
그런데도 이제 막 대성이 된 절망을 당해내지 못하다니 절망의 도가 얼마나 강하단 소리인가.
절망은 그 뒤를 쫓다가 우가 쪽에 강자가 여럿 나타난 것을 감응하고는 더 이상 쫓지 않았다.
그는 상공에 멈춘 채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그리고 서귀는 더욱 거침이 없었다.
풍공봉에게 중상을 입힌 것도 모자라 팔 한쪽을 잘라버렸다.
상대가 빨라서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목이 달아났을 것이다.
서귀는 이 대결을 통해 바로 대성 경지에 도전했다.
천지의 영기가 감싸는 가운데, 음양의 힘이 특별한 역장을 형성하며 지옥과 천당의 모습을 펼쳤다.
창공에 기이한 광경이 펼쳐지자,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서귀는 성정을 대거 녹여 부족한 힘을 계속 채워나간 끝에 마침내 대성 경지를 돌파했다.
우화염은 서귀가 경지를 돌파하는 것을 알았지만, 구태여 저지하지 않았다.
그녀는 조용히 항소운의 대답을 기다렸다.
우가 사람들은 항소운의 명성은 물론이고, 그와 우채접이 깊은 사이란 것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내심 두 사람이 함께하기를 바랐다.
실제로 오늘 목도한 항소운의 무공은 실로 대단했다.
제멸보다 훨씬 강하며, 무엇보다 우채접과도 꽤 잘 어울렸다.
다만 대가문에 속해 있다 보니 제 뜻을 밝히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마음은 두 사람을 응원하지만, 도울 힘은 없었다.
“저놈이 누구 제자든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제멸은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스스로 강하다고 믿었건만, 결국 무참히 패하고 말았다.
그는 이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럼 저자에게 다시 도전하든가.”
우화염은 담담히 말을 뱉었다.
그러자 제멸은 말문이 턱 막혔다.
혼자 힘으로 항소운을 이길 수 있으면, 그런 망신을 굳이 왜 당했겠는가.
“예전에 했던 말은 기억하십니까? 제가 저 녀석을 이기면 우리 사이를 허락해주신다고 했죠. 그런데 지금 저더러 혼자 떠나라는 겁니까?”
항소운은 기가 찬다는 듯 웃었다.
우화염은 미안한 내색을 보였다.
“가문에서 결정한 일이라 나도 어쩔 수 없다.”
“하, 어쩔 수 없다라.”
항소운은 더는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그대로 우채접의 손을 잡고 떠나려 했다.
“안 된다고 했을 텐데.”
우화염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들 앞을 막아섰다.
“비키시죠!”
항소운은 냅다 소리를 질렀다.
“눈에 뵈는 게 없구나. 이자를 포박하라!”
이때, 우가의 반 신급 무인이 벌컥 화를 내며 달려들었다.
그자는 갈퀴손을 들이밀며 항소운을 붙잡으려 했다.
무형의 힘은 순식간에 눈앞까지 들이닥쳤다.
참다못한 유청신이 앞으로 나서서 갈퀴손을 움켜쥐고는 그대로 박살 내버렸다.
“고작 이 정도 실력으로 우리 형님께 큰소리친 거냐?”
유청신은 혀를 끌끌 찼다.
“그래? 그럼 네 실력은 얼마나 대단한가 한 번 볼까?”
반 신급 무인은 호통을 치며 재차 공격을 날리려 했다.
“멈춰라!”
바로 그때, 우가의 한 소년이 소리쳤다.
소년의 음성에는 알 수 없는 위엄이 서려 있어, 반 신급 무인은 엉거주춤 행동을 멈췄다.
우화염 역시 소년에게 시선이 향해 있었다.
이 소년이 바로 우가의 세숙인 우기전(虞紀傳)이다.
열일고여덟 살 정도로 보이지만, 두 눈에선 세월의 연륜이 묻어났다.
마냥 혈기 왕성하던 젊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이 일은 내가 처리하겠다.”
“세숙, 이번 일은 아주 중차대한…….”
우기전은 반 신급 무인의 말을 자르며 손을 내둘렀다.
“모든 결과는 내가 책임지마.”
그러고는 우화염을 보며 물었다.
“화염아, 불만 없지?”
“제가 무슨 불만이 있겠습니까? 다만 가문의 몇몇 자들이 세숙의 처리방식에 동의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선조의 유훈도 따르지 않는 녀석들인데, 신경 쓸 게 뭐 있느냐.”
우기전의 입에서 의미심장한 말이 흘러나왔다.
일순 우가 사람들의 안색이 기괴하게 변했다.
저런 대역무도한 발언은 오직 세숙만이 할 수 있으리라.
우기전은 우채접에게 물었다.
“채접아, 이자가 항정천이냐?”
“네, 맞아요.”
우채접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랬군.”
우기전은 옅게 미소 짓더니 항소운을 보며 말을 이었다.
“전생에 너와 겨룬 적이 있지. 당시 한 수 차이로 너에게 졌는데, 이번 생은 네 경지가 나보다 낮군. 만약 이번에도 날 이긴다면, 채접이는 데려가도 좋다.”
“저 사람은 누구야?”
항소운이 우채접에게 물었다.
“우기전이에요.”
“우기전?”
항소운은 그 이름을 잠자코 되뇌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 난 또 누구라고. 그때 끝내 소생 경지에 오르지 못하더니, 현생도 마찬가지구나. 역시 타고난 재능은 어쩔 수 없는 건가.”
우기전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래도 내가 너보단 낫지. 적한테 당해서 영혼까지 깨질 뻔한 게 누구더라. 그런데 이렇게 다시 환생하다니 정말 뜻밖이다.”
“너도 살아있는데, 내가 죽을 수 있나.”
항소운은 잠시 멈추었다가 말을 계속했다.
“그냥 기분 좋게 보내줘라. 괜히 전생처럼 깨지지 말고.”
“말했을 텐데. 날 이겨야 데려갈 수 있어.”
우기전은 기세를 드러내며 소리쳤다.
사실 우기전은 대성 경지였다. 그가 진작 나섰다면, 제멸은 상대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
세숙의 등장에 우가 사람들은 내심 뿌듯해졌다.
세숙은 항렬이 아주 높은 분이었다.
그런데 백 살도 안 된 나이에 벌써 대성 경지에 올랐으니, 이만한 천재가 또 어딨겠는가.
“형님, 저자는 제게 맡기시죠. 살려달라고 애원하게 만들겠습니다.”
옆에서 유청신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뭐 저자가 동의하면, 나야 상관없지.”
“분명 원할 겁니다.”
유청신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하고는 앞으로 성큼 걸어갔다.
그는 불멸금신결을 운용해 마찬가지로 대성급 기세를 일으키고선 큰소리로 외쳤다.
“나와 겨룰 테냐?”
우기전은 눈을 번뜩이더니, 항소운을 보며 물었다.
“너희 두 사람의 운명을 정말 이자한테 맡길 거냐?”
“청신아, 잠깐. 저자와 대화 좀 해야겠다.”
막상 유청신한테 맡기자니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아우의 실력이 못 미더워서가 아니라, 워낙 중차대한 일이었다.
“정말 나와 겨루고 싶냐? 아주 처참하게 깨질 텐데.”
항소운은 천천히 말을 뱉으며 분신을 밖으로 불러냈다.
이내 아주 강력한 힘이 주변을 휩쓸었다.
진신이 4품 전천 경지를 돌파하면서 분신 역시 4할 반신의 경지에 올라섰다.
거기다 품급을 뛰어넘는 능력까지 더하면 제아무리 소생 경지라도 싸워볼 만했다.
우기전은 항소운 옆에 또 다른 항소운이 나타난 걸 보더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가 사람들도 저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전천 경지가 분신을 만들어내는 거야 놀랄 일이 아니지만, 분신의 실력이 진신보다 강한 경우는 난생처음 보았다.
우화염은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과연 성림방 1등은 다르구나. 그래서 겁날 게 없던 거야.’
제멸은 질투심에 눈이 멀어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저 망할 놈, 반드시 죽이고 말겠어!’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우기전은 씩 웃었다.
“하하. 나만 더 강한 분신이 있는 줄 알았는데, 너도 그랬었군. 이거 더 재밌어지겠는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기전 옆에 그와 꼭 닮은 분신이 나타났다.
분신은 자그마치 반 신급 경지였다.
놀라움도 잠시, 우가 사람들은 기쁨에 벅차 왁자지껄 떠들어댔다.
“역시 세숙이라니까. 언제 이렇게 강한 분신을 만든 거지. 이제 항소운은 상대가 안 되겠어.”
“세숙이 계시니, 우리 우가 젊은이들도 마음껏 활개를 치겠어.”
“아무튼 두 사람 다 대단한 인물인 건 분명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