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927
제927화 손자와의 첫 만남
항소운은 제패천의 자폭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그래도 명룡혼고 덕분에 영혼은 무사했다.
항양전은 휘청이는 아들을 붙잡고 다급히 물었다.
“운아, 괜찮으냐?”
“네. 절 진신 쪽으로 데려다주세요.”
항소운이 힘겹게 대답했다.
“알았다. 여기는 내가 전부 처리하마.”
항양전의 눈이 살기로 불타올랐다.
그는 아들을 데리고 곧장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러나 진법의 힘이 워낙 묵직하고 신력이 빼곡히 들어찬 탓에 쉽게 뚫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제족의 신급 강자들이 일제히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그들은 신급 병기와 온갖 기술을 동원해 압박했다.
이에 맞선 자전신후는 자신이 가진 최강의 무공을 펼쳤다. 자줏빛 천둥의 힘은 포효하는 용이 되어 적의 공격과 맹렬히 충돌했다. 그럴 때마다 화산이 폭발하듯 강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튀어 제족의 땅을 들썩이게 했다.
과연 자전신후는 대단했다. 수많은 신급 강자의 포위 공격 속에도 여전히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항양전은 자전신후와 함께 제족 놈들을 죽이고 싶었지만, 지금은 아들을 위해 포위를 뚫는 것에 집중했다.
경뇌순용(擎雷瞬涌)!
항양전은 한 손으로 아들을 붙잡고, 반대편 손으로 뇌정창을 휘두르며 상공으로 맹렬히 돌진했다. 극도로 강력한 천둥의 힘이 번쩍하더니 순식간에 전방의 진법 힘을 전부 무너뜨렸다. 그러고도 여력이 남아서 단숨에 창공 밖까지 뚫고 올라갔다.
그렇게 진법에서 벗어난 그는 아들을 데리고 신속히 아군에게 돌아갔다. 곧이어 항소운의 분신은 진신과 합일을 이루었다.
“난 놈들을 짓밟아주고 오마.”
항양전은 이 말만을 남기고 되돌아갔다.
항소운은 걱정스러웠으나 말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우리는 당장 철수한다.”
“전 남아서 두 분을 돕겠습니다.”
적화행군이 나섰다.
“그럴 필요 없다. 우린 지금 당장 떠난다. 아버지와 자전은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을 거야. 이제 곧 제족에서 고수들을 더 보낼 텐데, 우리가 남아 있으면 두 사람은 싸움에 집중할 수 없을 거다.”
항소운은 냉정히 말을 받았다.
적화행군은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먼저 철수하시죠.”
잠시 후 일행은 서둘러 퇴각했다.
자전신후와 항양전은 완전히 몸이 풀려서 적을 닥치는 대로 공격하며 마음껏 무공을 펼쳤다.
비록 신급 진법으로 보호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두 사람의 협공은 그 격렬한 충격파만으로도 제족 안의 사람들을 죽게 했다.
제념은 후회가 막심했다. 제패천의 자폭이 오히려 자극제가 될 줄 어찌 예상했겠는가.
제패천이 죽긴 했지만, 항소운 분신에게 부상을 입혔으니 헛된 죽음은 아니었다.
다만 생각지 못하게 다른 이들까지 목숨을 잃었으니 결국 득보다 실이 컸다.
* * *
한편, 항소운은 생명의 진의로 육신의 부상을 빠르게 치료했다. 하지만 영혼은 쉽게 회복되는 부분이 아니라서 여러 시일에 걸쳐 천천히 치료해야 했다.
항소운 일행이 자릉종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항양전과 자전신후도 돌아왔다.
자릉종에 돌아온 후 항소운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진법을 강화해 방어를 높이는 것이었다. 제족이 언제 또 쳐들어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쨌든 우채접은 제족에게 붙잡히지 않았으니, 금방 돌아올 터였다.
제족이 항소운 무리에게 당한 일은 서막 곳곳에 빠르게 퍼졌다. 이 일로 제족의 체면이 크게 떨어졌으니, 놈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때마침 랑진이 좋은 소식을 전해왔다. 개일의 분부로 항소운을 도울 랑위 백 명을 새로 데려왔다는 소식이다.
새롭게 들어온 랑위들은 기존의 랑위보다 모든 면에서 월등히 뛰어났다. 그중 셋은 자그마치 신급 경지이며, 반신 경지가 여섯이나 되고 나머지도 제급 이상이었다.
랑위는 총 365명인데, 현재 항소운을 따르는 두 무리를 합하면 165명이다. 남은 200명의 행방은 개일만 알 뿐 아무도 알지 못했다.
개일은 때가 되면 랑위를 순차적으로 항소운에게 계속 보낼 계획이다. 개일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제자를 보호하고 있었다.
항소운은 백 명의 랑위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기존의 랑위 중 스무 명 남짓이 지난 전투에서 죽었으나, 살아남은 사십 명은 전투력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 그리고 새로 들어온 랑위들 덕분에 자릉종의 병력은 다시 굳건해졌다.
다만 개일에게는 더 깊은 뜻이 있었다. 단순히 병력 보강용으로 랑위를 보낸 것이 아니라, 랑인족이 정착하고 후손을 번식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랑진이 가져온 스승의 서신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물론 항소운이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장왕산맥에 널린 것은 땅인지라 랑위에게 한 곳을 내어주는 것쯤 문제도 아니었다.
그가 직접 나설 필요도 없이 랑위더러 산을 하나 골라 그곳에 사는 요수들을 쫓아낸 뒤 살게 하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랑위들이 살 곳이 갖춰진 후 항소운은 직접 그곳을 방문해 진을 설치했다. 외부로부터 보호해서 더욱 안락하고 수련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급한 일을 처리했을 즈음, 마침내 우채접이 돌아왔다.
예상대로 그녀는 도중에 반신에게서 도망쳐 나왔다.
다만 달아나기 위해 적잖이 힘을 쓴 상태였다. 봉인된 힘을 스스로 풀고 나서야 상대방을 따돌리고 간신히 빠져나왔다.
그녀는 그 길로 항소운 일행과 헤어졌던 낙일 황조의 마연 입구로 갔다. 뒤늦게 그들이 자릉종으로 돌아간 걸 알게 된 그녀는 또 먼 길을 돌아오느라 적잖은 시일이 걸렸다.
항소운은 그제야 마음이 푹 놓였다. 그녀만 무사하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우채접이 돌아온 후에도 제족은 여전히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항소운은 이때를 틈타 척발완아와 척발능봉을 아버지 항양전에게 데려갔다.
자릉종 대전의 후원에선 항양전이 계속 왔다 갔다 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신급 경지쯤 되면 바깥일에 쉽게 마음이 흔들리지 않거늘 오늘은 좀처럼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이제 곧 있으면 장손자를 만나기 때문이었다.
‘누굴 닮았으려나. 운이 반만 닮아도 좋으련만.’
손자를 아들과 비교하는 건 무리였다. 아들인 항소운은 9대 성진의 힘을 융합한 태초 전체였다. 이 점만 놓고 봐도 중원에선 거의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게다가 마족의 능력까지 겸비했으니, 이만한 인재가 또 어디 있겠는가.
얼마 후, 항소운이 척발완아의 손을 잡고 나타났다. 그 옆으로 대략 일고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폴짝폴짝 뛰고 있었다. 무엇이 그렇게 신이 나는지 마치 새장에서 나온 작은 새처럼 활기가 넘쳤다.
항양전은 흡족한 눈으로 척발완아를 보더니 이내 척발능봉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뜨거운 눈빛에 아이는 살짝 겁이 났다.
“아저씨. 그만 쳐다보세요. 무섭잖아요.”
“봉아, 그렇게 말하면 못 써. 이분은 네 할아버지시란다. 어서 절 올려야지.”
항소운이 옆에서 말했다.
척발완아가 먼저 항양전에게 인사를 올렸다.
“아버님, 처음 뵙겠습니다.”
다른 여인들은 아직 시아버지라 부르지 못하지만, 척발완아는 그럴 자격이 있었다.
“그래, 어서 일어나거라.”
항양전은 서둘러 척발완아를 일으켰다.
“완아, 그동안 고생 많았다. 이 녀석이 서운하게 하진 않든? 행여나 그런 일이 있으면 내가 아주 혼쭐을 내주마.”
“봉아, 어서 할아버지께 인사드려야지.”
척발완아가 손짓하자, 척발능봉은 무릎을 꿇고 넙죽 인사를 올렸다.
“할아버지를 뵙습니다.”
아직 할아버지란 존재가 어색하지만, 어린 나이치고 철은 들어서 부모를 난처하게 하진 않았다.
“오냐, 우리 손자 얼굴 좀 보자꾸나. 할아비가 그동안 참 미안했다.”
항양전이 손자를 일으켜 세우며 감격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척발능봉은 7살 치고 꽤 키가 큰 편이었다. 똘망똘망한 눈을 보니, 어딜 가나 귀여움받는 아이로 자랄 것 같았다.
7살에 벌써 성력경 후기니, 10살 전에는 화강경에 오를 수 있을 터였다.
타고난 재능이 뛰어나 장차 크게 될 녀석이었다.
손자와 처음 만난 자리인데 선물이 빠질 수 없다.
항소운은 아버지가 꺼낸 선물을 보고선 내심 아들이 부러워졌다.
선물은 다름 아닌 최상급 성액(聖液) 만년쉬성천(萬年淬星泉)이었다. 아직 소왕급이 되지 못한 자의 성진을 최소 3배 이상 늘려주며 체질을 단련하는 효과까지 갖춘 영약이다.
“이건 예전부터 갖고 있던 거란다. 실은 네가 수련을 시작할 때 주려 했는데, 이젠 손자한테 줘야겠구나.”
항양전이 아들을 보며 허허 웃었다.
쉬성천은 단순한 성액이 아니었다. 워낙 찾기 어려워서 신급 강자라 해도 정말 운이 좋아야 손에 넣을 수 있다.
운명의 성진의 크기는 무력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성진의 크기가 클수록 그 속에 담을 수 있는 힘도 자연스레 커지며, 실제로도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쉬성천은 성진의 크기를 최소 3배 이상 늘리는데, 경지가 낮을수록 확장되는 폭이 훨씬 커진다. 동급에서 완벽히 우위를 점한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쉬성천은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최상의 수단이다.
예전에 항소운이 복용했던 샘물은 기껏해야 성진의 크기를 삼 분의 일에서 절반 정도로 키울 수 있을 뿐이니, 실로 엄청난 차이였다.
척발능봉은 나이에 비해 아는 게 많은 편이었다. 쉬성천이 얼마나 귀한 물건인지 알아채고는 바로 감사 인사를 올렸다.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오냐, 앞으로 이 할아비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항양전은 기분 좋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자, 이제 할아비가 하늘 구경을 시켜주마. 그러고 나서 우리 식구끼리 도란도란 얘기나 하자.”
“좋아요, 전 하늘에서 노는 걸 제일 좋아해요. 예전에는 흉대랑 흉이, 흉삼이 구경시켜줬는데 이제는 어머니가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척발능봉은 신이 나서 조잘거렸다.
“흉대, 흉이, 흉삼이 누구냐?”
항양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커다란 새인데, 아주 빨라요.”
척발능봉은 허리에 손을 올리며 우쭐댔다.
흉조 세 마리는 항소운이 오래전 용봉 학당에서 데리고 나온 요수다. 당시 황급이었으니 지금은 제급쯤 됐을 것이다. 녀석들은 척발능봉의 전속 탈것이었다.
다만 척발능봉도 아주 어린 나이는 아닌지라 척발완아는 아들이 새만 타고 마냥 놀지 못하도록 했다. 그래서 재미가 없던 차에 마침 할아버지가 데려가 주신다니,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그래도 한 핏줄이라고 큰 거부감은 없는 모양이었다.
항소운과 척발완아는 구태여 말리지 않았다. 처음 대면한 두 사람이 모쪼록 좋은 시간을 보내길 바랄 뿐이었다.
항양전이 손자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제족은 우가에게 사람을 보냈다. 우가와 통혼을 맺지 못했으니, 이미 보낸 예물은 되돌려 받아야 했다.
제족의 사자와 우가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모르나, 묘하게도 제족은 자릉종에 쳐들어가지 않고 오히려 항가를 겨냥했다.
항가는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상황이었다. 자신들이 점령한 성을 항가성이라 명했고, 주변의 크고 작은 세력들은 이미 항소운이 굴복시켜서 모두 항가에 복종하고 있었다.
다만 항가는 제족 같은 패기가 없었다. 과거의 손실이 워낙 큰데다 적도 많아서 작은 소주(小州)를 하나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따라서 세상에 나오고도 상당히 조용히 지냈다. 그래도 내부적으로는 순조롭게 발전하고 있었다. 혈통도 잘 전승되어 주변 세력이 함부로 덤비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제족의 신급 강자가 항가성으로 쳐들어갔다. 그는 곧장 항가 외원에 들어가 그곳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항가 사람을 대거 사살했다.
그래도 다행이었을까. 제족의 신급 강자는 항가의 중심지를 알지 못해 외원만 들쑤셔 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