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93
제93화 왜 이렇게 짜증나게 하지?
흑산진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이었다.
이곳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흑철암(黑鐵岩)은 무기를 제련할 때 쓰이는 석재였다. 왕급 재료는 아니지만, 이 마을에서는 꽤 중요한 물건이었다.
흑산교는 흑철암 광맥을 몇 개 갖고 있었는데, 매년 많은 흑철암을 캐냈다. 흑철암 중 일부는 성에 조공으로 바쳤고, 나머지는 다른 마을과 교역을 통해 다양한 자원들과 교환했다.
자원이 있으면 많은 천재 소년들을 배출해 낼 수 있었다. 아울러 마을의 전체적인 실력도 더욱 강해지는 게 당연한 이치였다.
그러나 3개월 전 열린 백진 대결에서 흑산교는 심각한 손실을 입었다. 게다가 가장 가슴 아픈 일은 다섯 명뿐인 화강경 천재 소년 중 한 명이 하마터면 불구가 될 뻔하고, 또 다른 한 명은 돌아오지 못한 길을 떠난 것이다.
그들은 흑산교의 미래였다. 한 사람이 사라진 것만으로도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다.
흑산교는 누가 이 두 명의 화강경 천재를 이렇게 만든 건지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복수를 할 수는 없어서, 그저 속으로 울분만 삼키고 있었다.
다행히 그자가 금하곡에서 돌아오지 못했다는 소문을 듣고, 그들은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그들은 이 소년이 자신들의 바람과 달리 살아남아서 더욱 강자가 되었고, 벌써 그들 흑산교의 구역에 조용히 도착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항소운은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평소 원한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괴롭히는 자를 용서하거나 가만히 참고 있지는 않았다.
항소운은 당당한 자세로 흑산진으로 향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알아볼 수 있다는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다.
비록 흑산교가 자신을 공격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는 동렴원이 흑산교와 결탁을 했거나, 오가가 이쪽에 아는 세력이 있어서 사람을 보내 자신을 공격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갔다.
어떤 이유든 상관없이 그는 흑산교의 사람들에게 복수의 차가운 맛을 느끼게 할 작정이었다.
항소운은 한가로이 거리를 거닐면서 마을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혹시 흑산교의 상황을 알 수 있을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아무런 수확도 거두지 못했다.
“뭐, 상관없어. 떠돌아다닌 지도 오래됐는데 우선 좋은 것 좀 먹고 다시 생각해야지.”
항소운은 마을에서 가장 호화로운 요릿집으로 들어갔다.
요릿집은 장사가 잘되는지, 오고 가는 손님이 많았다.
항소운은 아무 자리에나 앉아 즉시 좋은 술과 요리를 많이 주문한 다음 혼자서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오랫동안 배를 곯은 상거지 아이처럼 보였다.
한참이 지난 후, 그는 주문한 음식을 모조리 먹어 치웠다.
술 주전자를 들어 목구멍으로 들이붓자, 목구멍이 타는 듯 강렬한 느낌에 그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좋은 술에 맛있는 음식까지 먹으니 신선이 따로 없구나!”
그는 아주 오랜만에 편안하게 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바로 그때, 누군가 다가와 그의 맞은편에 앉더니 말을 꺼내는 것이었다.
“형씨, 한눈에 봐도 강호 사람 같은데, 같이 앉아서 한잔해도 되겠습니까?”
항소운은 고개를 들어 낯선 이를 바라보았다. 잘생긴 소년이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자보다 예쁘게 생긴 소년이었는데 온몸에서 온화한 기운이 느껴졌다.
만약 그가 남자 옷을 입지 않았다면, 누가 생각해도 여자라는 오해를 살 만했다.
“이봐, 혹시 여자가 남장한 거야?”
항소운은 그자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낮은 소리로 그 소년에게 물었다.
순간 소년의 얼굴이 붉어지더니 부채를 펴서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형씨, 농담도 참 잘하시네요. 제가 어딜 봐서 여인 같습니까?”
항소운이 소년을 위아래로 자세히 훑어보자, 소년은 더욱 어색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어허, 언제까지 볼 겁니까?”
“이제 다 봤어!”
항소운이 눈길을 거둬들이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가슴이 없는 것 빼곤, 다른 데는 여자랑 똑같은데!”
“나, 나쁜 놈!”
소년은 화를 벌컥 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이봐, 그러고도 여자가 아니라는 거야? 지금 표정이나 태도가 여자랑 똑같잖아! 그만 속이라고!”
항소운이 옅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소년은 자신이 흥분했다는 것을 깨닫고, 즉시 태도를 공손하게 바꾸며 말했다.
“난 다만 형씨가 이렇게 천박한 사람인 줄은 몰라서 그랬던 겁니다.”
“됐어,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으니까, 술이 마시고 싶은 거면 스스로 따라 마시라고!”
항소운이 별 관심이 없다는 듯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년은 본래 자리에서 떠나려 했다가 잠시 망설이더니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잔에 술을 가득 따르더니 시원하게 들이켰다.
“허허…, 좋은 술이군! 컥, 켈록.”
소년은 술을 마시다 사레가 들렸으나, 오히려 신이 난 표정으로 말했다.
항소운이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소년의 목젖이 튀어나온 것을 발견하고, 항소운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녀석 정말 남자가 맞잖아. 그런데 왜 이렇게 여자 같은 느낌이 들지? 설마 이상한 놈은 아니겠지?’
이런 생각이 들자, 항소운은 갑자기 구역질이 났고 위장 속의 음식물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자, 형씨, 우리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건배나 합시다!”
소년이 붙임성 좋게 말했다.
항소운은 거절하기도 뭐해서, 잔을 들어 술을 한잔 마셨다.
“난 다 먹었으니, 남은 술은 자네가 마시게. 부족하면 더 시켜도 되고!”
항소운은 이 소년과 같이 있고 싶지 않아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형씨, 그렇게 서두를 필요 뭐 있습니까? 혼자 마시면 재미가 없어서요.”
소년이 항소운을 붙잡았다.
항소운이 계속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자, 소년은 하는 수 없이 얘기를 꺼냈다. 항소운이 듣고 싶은 얘기였다.
“형씨, 형씨는 흑산교 제자가 맞지요? 저와 술을 몇 잔 더 마셔주신다면, 흑산교의 비밀을 알려드리지요.”
소년은 수단도 좋게 항소운이 알고 싶은 바를 정확히 짚었다.
“진짜야?”
항소운이 물었다.
“믿으면 여기 계시고, 아니면 그냥 가셔도 됩니다!”
소년이 슬쩍 말을 돌리며 사람을 조바심 나게 했다.
항소운은 하는 수 없이 다시 자리에 앉으며 점원을 불렀다.
“여기 좋은 술 두 병이랑 땅콩 두 접시 좀 가져다주시오!”
“허허, 이제 얘기할 맛이 나네요!”
소년이 몹시 만족한 듯 말했다.
“우리 흑산교에 대해 뭘 안다는 거지?”
항소운이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우선 저와 술이나 실컷 마시고 얘기하시죠!”
소년은 항소운의 질문에 아랑곳하지 않고 술을 마셨다.
이 소년은 그야말로 어린 술고래여서 술을 아주 좋아했고 많이 마셨다.
항소운은 하는 수 없이 그와 술을 마시며 질문을 했다.
“아우는 이름이 어떻게 되는가?”
“제 이름은 동재(董梓)입니다. 음, 형씨는 존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소년이 물었다.
“나? 난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하고 멋스러운 풍모를 지닌 천상천하 유아독존 항패왕이야!”
항소운이 술을 한 모금 마신 후 말했다. 겸손함이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자아도취의 전형이었다.
“푸웁!!!”
소년이 입에 있던 술을 훅 뿜어버렸다.
다행히 항소운이 몸을 빠르게 돌려 피하는 바람에 옷이 모두 젖는 대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
“항패왕이라, 거 허풍이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동재가 껄껄 웃었다.
“흥, 뭘 안다고 그래? 난 사실만 얘기하니까, 믿기 싫으면 관두라고! 그리고 다신 나한테 술을 내뿜지 마. 또 그랬다간 나도 가만 안 있을 테니까!”
“에이, 실수로 그런 것 아닙니까!”
동재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항형(項兄), 이름이 패왕이라니, 참 재밌습니다. 그런데 왕들이 그 이름을 들으면 가만두지 않을 텐데, 두렵지도 않으십니까?”
“흥, 내가 왕이 되고 나면, 그자들을 가만둘 것 같아?”
항소운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태연히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말로는 형씨를 이길 수가 없네요. 자, 우리 술이나 마십시다!”
동재는 이런 문제로 입씨름을 하고 싶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의 봉황 같은 눈에는 옅은 수심이 드리워져 있었으나, 누구도 쉽사리 알아차릴 수 없었다.
항소운은 묵묵히 술을 마시면서, 어떻게 저자의 입에서 흑산교 이야기를 끄집어낼지 궁리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사기꾼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시간이나 때우지, 뭐.’
항소운은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동재는 술을 몇 잔 마시다가, 갑자기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술은 사람을 취하게 한다던데, 어째 마실수록 재미가 없네요. 전 그만 마셔야겠습니다!”
항소운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가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갑시다. 항형은 흑산교의 비밀을 알고 싶은 것 아닙니까? 그럼 절 따라오시죠!”
동재가 앞으로 머리를 쑥 내밀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항소운은 불쑥 다가온 사내의 잘생기고 발그레한 얼굴을 보며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아무리 예쁘게 생긴 얼굴이라고 해도 남자란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대체 왜 이처럼 가까이 들러붙는단 말인가?
“난 먼저 계산할게.”
항소운이 자리에서 일어나 점원을 불러 계산을 하고는 동재를 보며 말했다.
“이제 가지!”
동재는 부채를 펴들고 잘생긴 얼굴을 꼿꼿이 든 채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곳에서 식사하던 여인들이 그가 떠나는데도 여전히 추파를 던지고 있었다. 항소운마저 잘생긴 그의 그늘에 가려질 정도였다.
항소운은 이런 것을 신경 쓰지는 않았으나, 되도록 동재와 거리를 두었다. 아무리 봐도 이 녀석은 남자를 좋아하는 듯했다.
요릿집에서 나온 동재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
“항형은 내가 무섭습니까?”
“내가 자네를 왜 무서워해?”
항소운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떨어져 있는 겁니까?”
동재가 되물었다.
“하하, 이쪽 경치가 더 좋더라고!”
항소운이 대충 둘러대며 웃었다.
“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군요. 제가 그렇게 사람을 짜증나게 합니까?”
갑자기 동재가 슬픈 얼굴로 물었다.
“아, 아냐! 무슨 그런 말을 하고 그래!”
동재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진 그가 말했다.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절 미워하고 싫어한다는 거 알아요.”
동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항소운이 속으로 외쳤다.
‘이봐, 우린 방금 만난 사인데 이럴 필요 없잖아!’
“제 술 동무가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가시죠.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동재가 기운을 내려는 듯 숨을 깊이 들이마시더니, 마을 변두리로 걸음을 옮겼다.
그는 일반 성력경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걷고 있었다.
항소운은 상대방이 흑산교 제자는 아닌지 의심이 들긴 했으나, 그렇다고 확실치도 않아서 하는 수 없이 무작정 그의 뒤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그들은 곧 마을 어귀를 벗어나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항소운은 시간이 지날수록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동재의 진짜 실력을 그가 가늠할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왕의 기세를 가진 그가 상대방의 실력을 가늠할 수 없는 경우는 두 가지뿐이었다. 하나는 그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상대방이 무서운 실력을 지닌 경우고, 다른 하나는 상대방 몸에 실력을 감추는 보석이 있어 그 기운을 차단하는 경우였다.
어떤 경우라도 동재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란 것만은 분명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동재를 바짝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