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945
제945화 99연승
선로궐의 고수를 몇이나 때려눕혀서 다들 겁을 먹은 건지 한동안은 도전자가 없었다.
그래도 얼마쯤 지나자, 사람들이 하나둘 도전하기 시작했다. 전천방이 곧 개막을 앞두고 있어서 각지에서 고수가 몰려든지라 다들 제 실력만 믿고 나댔으나, 결국 그에게 보기 좋게 패하고 말았다.
적당히 혼내주고 목숨은 살려주니 다들 기꺼이 패배를 인정했다.
그렇게 사흘을 연이어 싸운 결과, 50명에 이르는 전천경 고수가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불후 연무대 역사상 단연코 가장 빠른 기록이었다.
일단 전천 경지끼리 비무를 벌이면 적어도 한두 시진은 지나야 승패가 갈렸다. 경지가 같은 경우에는 며칠에 걸쳐 싸우는 일도 허다하거늘 항소운은 너무나 쉽게 전천 경지 강자들을 잇달아 제압했다.
패왕군단 단원들은 제 일처럼 기뻐했다. 생각 같아서는 자신들의 대장이라고 세상이 떠나가라 외치고 싶었다.
그 후로도 항소운의 연승 행진은 계속 이어졌고, 그는 다시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 * *
불후 황궁.
이 웅장하고 화려한 궁전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가고 싶어 하는 꿈의 궁전이다. 하지만 정작 이곳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전천경 이상의 고관만이 가능했다.
금룡좌에는 서른 남짓의 늠름한 사내가 앉아 있었다. 그는 용과 봉황이 수놓아진 금색 비단옷을 입고 있었다.
범접할 수 없는 존귀한 기운이 흐르고, 천하를 굽어보는 두 눈을 감히 마주할 수도 없는 자.
바로 불후 황조의 천자였다.
그에게는 십여 명의 황자와 공주가 있었다. 하나같이 뛰어난 인재들로, 채 이백 살도 되지 않았으나 전부 최상급 전천경 이상의 실력이었다.
이들은 불후 황조의 가능성이자, 장차 황실을 이끌 기둥이었다.
“그자가 지금껏 몇 승을 거두었다고?”
천자가 담담히 물었다.
“벌써 66연승이라고 합니다. 이대로라면 며칠 안 가 100연승을 달성할 겁니다.”
한 황자가 애가 탄다는 듯 말했다.
“젊은 자의 기세가 실로 대단하구나.”
천자는 짧게 탄식했다. 그는 황자와 공주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너희는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부황, 제가 출전해서 그자를 제압하겠습니다.”
아까 대답했던 황자가 재차 입을 열었다.
넷째 황자로, 여러 황자와 공주 가운데 무공이 상위에 속했다. 허나 성미가 급해서 용기만 있고 지략은 없는 자였다.
“저도 싸우겠습니다.”
또 다른 황자가 나섰다.
천자는 가타부타 말은 안 해도 살짝 실망한 눈빛이었다.
“제 생각엔 그자를 복종시키는 게 좋을 듯합니다.”
2황자가 골똘히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 불후 황조의 실력이면 그자를 더욱 높은 경지로 충분히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나중에 1품 호법 자리를 주면 그자도 거절은 못 할 겁니다.”
천자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긴 했으나, 이렇다 할 입장은 표하지 않았다.
이때, 1황자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그런 자는 복종시키기 힘들 겁니다. 그것보다 혼인이야말로 그를 우리 쪽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허나 아홉째 공주가 협조하지 않는 한 이 방법 역시 쉽지 않지요. 다른 공주들은 그자의 마음을 휘어잡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미 그자 곁엔 미인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1황자의 시선은 자연스레 한 공주에게 향했다.
일곱 빛깔로 이루어진 비단옷을 따라 그녀의 아리따운 몸매가 여실히 드러났다. 조각상과 같은 고운 얼굴, 보석을 품은 듯한 영롱한 눈망울은 보는 것만으로 숨이 멎을 듯했다.
경국지색이란 말은 이런 여인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불후 황조의 제일 미녀 하채의(何彩衣)였다.
그녀는 한 폭의 미인도를 연상시켰다.
비단옷이 사뿐히 움직일 때마다 일곱 광채가 반짝이며 그녀를 더욱 눈부시게 만들었다.
오롯이 미모만 놓고 따져도 우채접과 마희에 견줄 정도이며, 오히려 그 두 사람에겐 없는 그녀만의 장점이 있었다.
“오라버니, 저더러 항소운을 붙잡으란 말씀인가요?”
그녀가 살포시 미소 지었다.
“항소운은 대단한 인재야. 9대 성진의 힘을 융합하고, 최강의 전체를 이루었지. 그런 자에게 아홉째 동생 같은 빼어난 미인이 아니면 또 누가 어울리겠어?”
1황자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그제야 천자의 표정이 활짝 피며 만족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첫째 말이 맞다. 만약 항소운이 근본도 없는 자였다면 우리도 이렇게 고민할 필요 없겠지. 허나 그는 개일 부회장의 직전 제자다. 우리 쪽으로 끌어들일 가치가 있어.
설령 그자를 우리 황조의 일원으로 만들 수 없다고 해도 적어도 우호적인 관계는 될 수 있을 테지. 이런 난세 속에 적보다는 벗을 늘려야 하지 않겠느냐.”
“부황, 그자는 우리 선로궐을 욕보인 녀석입니다.”
4황자가 다급히 끼어들었다.
“그건 네 선로궐이지, 우리 황조의 선로궐은 아니다.”
천자가 퉁명스레 대꾸했다.
* * *
선로궐의 주둔지를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은 최상위 전천 성인뿐이다. 더군다나 이곳은 독립된 공간이라 외부의 방해를 받지 않았다.
고즈넉한 뜰에는 선로궐의 젊은이들이 돌 탁자를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그 주위로 신급 기운이 일렁이고 빛이 반짝여 신비롭고도 위엄 있는 분위기를 풍겼다.
이 젊은 강자 가운데는 항소운과도 안면이 있는 자향선자가 있었다. 출중한 자태와 선녀처럼 빼어난 미모, 바람이 불 때마다 잔잔히 느껴지는 향기에 뭇 남성의 마음이 설레었다.
항소운에게 패했던 남심용도 이 자리에 있었다. 그는 풀이 죽은 얼굴로 고개도 들지 못했다.
“이번 일로 우리 선로궐의 체면이 땅에 떨어졌다. 이대로 가만히 있어선 안 돼.”
금빛 옷의 젊은이가 남심용을 보며 말을 이었다.
“남 사제, 이 일은 네가 전적으로 책임져라.”
“이번 일을 전부 남 사제 탓으로 돌릴 순 없어. 사제 역시 선로궐을 위해 나섰다가 그런 거니까. 다만 너무 강한 상대를 만났던 거지. 그러니 패할 수밖에.”
붉은 머리칼의 사내가 두둔하고 나섰다.
그제야 남심용은 숨을 깊게 마시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확실히 항소운은 저보다 강한 녀석이었습니다. 그 점은 저도 인정합니다. 한데 놈은 우리 선로궐의 외문 집사를 죽였어요. 이 원수를 갚지 않으면 광릉궁과 신맹이 우릴 한심하게 볼 겁니다.”
“이제 곧 전천방이 열릴 텐데 우리더러 나서란 거냐?”
금빛 옷의 젊은이가 퉁명스레 말을 뱉었다.
“녹(綠) 호법을 보내겠습니다. 그자라면 충분히 이길 겁니다.”
남심용이 작정한 듯 말했다.
“녹 호법은 네 사람이니, 그렇게 한다면야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되겠지.”
붉은 머리칼의 사내가 대꾸했다.
“그럼 그렇게 하자. 영감들이 이 소식을 알게 되는 날에는 우리 모두 각오해야 할 거야.”
금빛 옷의 젊은이가 이렇게 말하자, 이번에는 자향선자가 나섰다.
“아니면 녀석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 볼까? 만약 거절하면…….”
“자향 사저, 당장은 관여하지 마세요. 녹 호법이 놈을 잡고 나서 다시 얘기해요.”
남심용이 말을 자르며 끼어들었다.
“그래, 알아서 하렴.”
자향선자는 구태여 강요하지 않고 싱긋 웃었다.
* * *
다른 공간의 주둔지에도 뛰어난 젊은이들이 모여 있었다. 복장을 보아하니, 신맹이 분명했다.
선로궐의 젊은 세대 중 우수한 자를 ‘선자’라 칭한다면, 신맹에서 가장 강한 젊은이들은 ‘신자(神子)’라 불렸다. 그들의 숫자는 선로궐의 108명보다 적은 88명이다. 하지만 규모만 작을 뿐, 실력에서는 결코 선로궐의 108 선자에 뒤지지 않았다.
이곳에 모인 자들은 신맹의 신자였다. 내력 또한 예사롭지 않아서 신맹이 여러 해 동안 각 지역에서 모은 최강의 인재들이었다. 신맹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이들의 무공은 4대 학당의 천재들을 충분히 압도할 수준이 되었다.
“항소운이란 자가 곧 100연승을 앞두고 있다더군. 듣자 하니 예전에 한 호법이 그자를 우리 쪽으로 끌어들이려 했는데 거절당했다지?”
젊은이들 가운데 우두머리 격인 평범한 외모의 젊은이가 말을 꺼냈다.
겉보기엔 별달리 이목을 끄는 구석이 없으나, 자세히 보니 눈빛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자였다.
“그랬다더군. 개일의 하나뿐인 제자라 그런지, 아주 오만하던걸. 이제 무시 못 할 만큼 커져 버렸으니, 계속 놔뒀다가는 우리 머리 꼭대기까지 기어오를 거야.”
옛 갑옷을 입은 자가 툴툴댔다.
“남심용을 이긴 걸 보면 확실히 예사 실력은 아니야. 놈을 압박할 건지 아니면 아군으로 만들지는 고심을 해봐야겠어.”
또 다른 신자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쉽게 결정 내릴 일은 아니야. 이제 곧 전천방이 열릴 테니 누구든 몸을 사릴 수밖에.
놈이 기고만장하게 나오더라도 지금은 그냥 내버려 두자고. 일단 상고 전장부터 들어가고 나서 해결해도 늦지 않아.
놈이 눈치 있게 굴면 신맹에 자리 하나 마련해주면 될 테고. 그런 눈치마저 없는 놈이라면 우리도 참을 필요 없지.”
평범한 외모의 젊은이가 태연자약하게 대꾸했다.
“전천방만 아니었으면 그 태초 전체란 게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겨뤄보고 싶군.”
갑옷 입은 자는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 * *
불후 연무대 위 항소운은 3품 전천경의 여인과 한창 겨루고 있었다.
그의 실력이면 기세만으로도 충분히 이길 수 있건만 어째서 시간을 끄는 것일까? 상대의 미색을 탐해서?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일까?
이게 다 지금껏 싸운 방식과 관련이 있었다.
목숨을 뺏지도 잔인한 방법도 쓰질 않으니 다들 항소운에게 가르침을 청하겠다며 너도나도 도전하고 나선 것이다.
그도 딱히 거절하지 않고 조금이나마 가르쳐주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좋은 인연을 맺어나간달까.
그래도 적보다는 친구가 많은 편이 낫지 않겠는가.
좋은 평판이 늘면서 도전자는 더욱 많아졌다. 물론 가르침을 청하러 온 자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말이다.
눈앞의 3품 전천경 여인은 남과 다른 목적이 있었으니, 바로 그를 유혹하는 것이었다. 그의 여인이 되는 것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있을까.
“항 공자, 이 초식 좀 봐주세요.”
여인은 싱긋 웃으며 항소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풍만한 부위가 무방비 상태로 닿았다.
이건 무공이 아니라 그냥 안기는 행위였다.
항소운도 슬슬 짜증이 났다. 손에 닿기도 싫은지 힘을 응집시켜 여인을 연무대 밖으로 내던지고는 큰소리로 외쳤다.
“다음! 앞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자는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
계속 예의를 차리다가는 이상한 자들만 꼬일 터였다.
얼마 안 있어 그는 99연승을 달성했다.
이제 한 경기만 이기면 성력을 받을 수 있다.
단지 칠 일 만에 거둔 쾌거로, 연무대의 성급 연승 기록도 깨어질 참이었다.
100번째 경기의 도전자는 푸르스름한 얼굴의 노인이었다.
노인은 선로궐의 호법 장포를 입은 채 항소운을 향한 살기를 거리낌 없이 드러냈다.
이 노인이 바로 남심용을 따르는 녹 호법이다.
8할 반신으로, 신급 경지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이 정도 실력이면 대성급 무인을 전부 쓸어버리는 것도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