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95
제95화 이때는 정녕 몰랐다
갱도 근처에 이르자, 동재가 입을 열었다.
“아직도 흑모시가 저쪽에 많이 있는데, 어떻게 하죠?”
“그냥 기다려!”
항소운이 태연히 말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동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항소운은 대답하기도 귀찮아서, 아예 눈을 감고 좌선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난처해진 동재는 계속 물어볼 수도 없었다.
‘흥, 얼마나 대단한 일이라고, 날 무시해? 그럼 나도 신경 안 쓸 거야!’
동재도 화가 나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홱 고개를 돌려 다른 쪽으로 가서 앉았다.
흑모시들은 멀지 않은 곳에서 유유히 떠돌고 있었다.
그중에는 땅의 시체를 뜯어 먹는 놈들도 있었으나, 아직 근처에 있는 항소운과 동재의 존재를 알아차리진 못한 듯했다.
어느덧 갱도에서 검은 독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면서, 점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하늘이 점차 어두워지면서 스산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자, 동재는 놀라 몸을 잔뜩 웅크리고는 저도 모르게 항소운의 곁으로 바짝 다가섰다.
“항형, 날이 어두워졌어요!”
항소운이 꼼짝 않고 좌선하고 있자, 동재가 그를 살짝 밀며 말했다.
그는 동재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조용히 좌선하고 있었다.
침묵의 연속이었다.
휘익-
바람이 더욱 거세지자, 동재는 깜짝 놀라 항소운의 소맷자락을 잡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때, 항소운이 눈을 번쩍 뜨며 소리쳤다.
“이제 불을 붙일 때가 됐어.”
“무슨 불을 붙여요? 그냥 빨리 갑시다! 여기서 벗어나야죠.”
동재가 항소운을 보며 말했다.
“언제는 무슨 일인지 알고 싶다더니, 이젠 또 가자고? 대체 뭘 어쩌잔 거야!”
항소운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나, 난 어둠이 무섭단 말입니다.”
동재가 목을 잔뜩 움츠리고 말했다.
그러자 항소운이 동재를 매섭게 노려보더니, 장작 쪽으로 걸어가 혼자 준비를 했다.
동재는 항소운의 뒤에 바짝 따라붙어서 졸졸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난 갱도 쪽으로 가서 이 장작들을 놓고 올 테니까, 자넨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내가 불을 붙이라고 하면, 불을 붙여. 알았지?”
항소운은 그렇게 말을 이르고선, 장작을 잔뜩 짊어지고 흑모시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이봐! 나, 난 무섭다고!”
동재가 그 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쳤다.
만일 항소운이 이 모습을 봤다면, 또 이상한 놈이라고 욕을 퍼부었을 것이다.
어디 남자가 여자아이처럼 행동한단 말인가.
그으으으-
피 냄새에 민감한 흑모시는 항소운이 접근하자, 바로 그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곳엔 수십 마리의 흑모시가 있었다. 그것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자 공포가 엄습해왔다.
그렇다고 위축될 항소운이 아니었다. 항소운은 그들이 에워싸기 전에 패왕구유보로 빠르게 갱도 앞으로 달려가서는 장작 한 무더기를 던져 놓았다.
바로 그때, 흑모시 두 마리가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항소운이 몸을 돌려 흑모시를 향해 빠르게 다리를 날리자, 제대로 얻어터진 그들은 수 장을 날아갔다.
그는 이때를 틈타 많은 부싯돌을 잘게 부수어 갱도 앞에 떨어뜨렸다.
흑모시들이 울부짖으며 일제히 그를 포위했다.
항소운은 그는 조금도 겁내지 않고 패왕구유보로 빠르게 움직여 부싯돌 부스러기를 장작을 놓아둔 곳까지 길게 연결했다.
항소운의 엄청난 속도에 흑모시는 잡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불 붙여!”
항소운이 동재에게 소리쳤다.
넋이 나간 채 나무에 기대어 있던 동재는 항소운의 외침 소리에 몸을 부들부들 떨며 장작에 불을 붙이려 했으나, 아무리 해도 불이 붙지 않는 것이었다.
수많은 흑모시가 이미 항소운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들은 입으로 독기를 뿜으며 항소운에게 달려들었다. 그 독에 닿기라도 하면 바로 거품을 물고 기절을 할 정도의 위력이었다.
항소운은 이미 피독단을 입에 물고 있던 터라, 일반적인 독기로는 그를 공격할 수 없었다.
그는 전혀 피할 생각을 하지 않고, 흑모시들과 정면으로 맞섰다.
금선권!
항소운이 번개처럼 빠르게 주먹을 휘두르자, 엄청난 기세가 일어났다. 나선의 힘을 지닌 금색 빛에는 강력한 살기가 들어있었다.
퍽!
흑모시 한 마리가 항소운의 주먹에 가슴을 얻어맞고 그대로 터져버렸다.
당연히 흑모시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다른 놈에게 돌아서려는 순간, 갑자기 그놈이 다시 움직여 항소운의 팔을 잡고 물어뜯으려는 것이었다.
“꺼져!”
항소운이 소리를 치며 팔을 뿌리치자, 흑모시가 날아가면서 다른 놈과 부딪치고 말았다.
흑모시는 길고 날카로운 손톱을 가지고 있어서, 항소운이 뿌리치는 순간 그의 팔뚝을 할퀴며 날아갔다.
다행히 항소운은 일반 무인보다 훨씬 단단한 몸을 갖고 있어서, 손톱이 그의 살을 파고들지는 못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도 중독되고 말았을 것이다.
항소운은 정신을 가다듬고 쉴 새 없이 주먹을 날렸다. 그의 주먹은 흑모시의 머리를 집중적으로 노리면서, 하나둘 해치워가고 있었다.
“빨리 불 붙이라고! 빨리!”
항소운은 동재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고함소리에 정신이 든 동재는 드디어 부싯돌을 비벼 불을 내는 데 성공했고, 장작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지지직, 지직…, 펑!펑!!
장작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보통은 불을 붙여도 불꽃이 그리 크지 않아 천천히 타오르면서 점점 큰불이 되는 게 일반적인 장작불의 특성이다.
그러나 지금은 세찬 바람이 부는 데다, 바람의 방향도 때마침 갱도를 향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항소운의 생각대로 진행되었다. 바람이 불면 불길이 거세져서 미리 준비해둔 장작 위로 불길이 빠르게 번질 수 있었다.
항소운은 불길 가까이 다가섰다.
그러자 흑모시들이 잔뜩 겁을 집어먹은 표정으로 하나둘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양기가 가득한 불을 몹시 두려워했다.
그중 한 놈은 미처 도망가지 못하고 순식간에 몸에 불이 붙고 말았다. 흑모시의 검은 털이 빠르게 타들어 갔다.
흑모시가 비명을 지르며 갱도 쪽으로 달려가 뒤엉키자 다른 놈들까지 덩달아 불이 붙었다.
항소운은 그들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웃음이 나왔으나, 한편으론 일이 잘 풀린 것 같아 다행스러웠다.
이때, 동재가 그가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
“항형, 괜찮아요?”
“하마터면 자네 때문에 일을 망칠 뻔했잖아!”
항소운이 퉁명스럽게 말을 뱉었다.
“죄, 죄송해요!”
동재가 고개를 푹 숙이고 사과를 했다.
“이젠 괜찮아. 저들을 괴물이 아니라 자네가 상대해야 할 적이라 생각하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그럼 저놈들이 무섭지 않을 거야!”
항소운이 손으로 흑모시를 가리키며 무엇을 해야 할지를 얘기했다.
동재는 항소운의 말을 알아듣기는 한 건지, 그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드디어 불길이 크게 치솟았다.
마른 장작과 부싯돌 부스러기에 불이 붙자, 갱도 앞에 놓인 장작 무더기로 완전히 번지면서 바람에 활활 타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본 동재는 그제야 항소운이 왜 한참 동안 기다리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조용히 항소운을 쳐다보는 그의 눈에 알 수 없는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어, 큰일 났다!”
갑자기 항소운이 소리쳤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동재가 잔뜩 긴장해서 물었다.
“왜 그래요?”
“이 불로 흑산교만 이득을 보게 생겼어! 얼마 안 있으면 그들이 이리로 올 텐데!”
항소운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항형은 흑산교 제자가 아니었어요?”
동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내가 언제 흑산교 제자라고 그랬어!”
항소운이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그럼 절 속이신 겁니까?”
동재가 화난 사자처럼 항소운을 노려보았다.
“그건 자네 혼자 그렇게 지레짐작한 거잖아. 난 한 번도 흑산교 제자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그러니 당연히 속인 게 아니지!”
항소운은 거리낄 게 없다는 듯 말했다.
“그, 그럼 왜 저한테 제대로 말하지 않았습니까?”
동재가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하고 물었다.
“난 자네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어?”
항소운이 도리어 동재가 화를 내는 게 너무나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그는 눈앞의 녀석이 정말 순진하고 어리석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체 어느 집 자식이길래 이렇게 세상 물정을 모르는 걸까!
동재가 다시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할 때, 갑자기 갱도 안에서 극심한 고통으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불길이 갱도 안쪽으로 번지면서 그 안에 있던 물체에 불이 붙는 바람에 갱도는 삽시간에 불바다가 되어버렸다.
많은 수의 흑모시가 불이 붙은 채 밖으로 뛰쳐나왔는데 대부분 그대로 타 죽고 말았다.
“항형, 정말 좋은 방법입니다!”
동재가 놀라 소리쳤다.
“자네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난 가서 물을 가져올 테니까!”
항소운은 동재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그대로 뛰어갔다.
그러자 동재는 다시 항소운의 뒤를 쫓아갔다.
항소운은 조금 전에 마른 장작을 찾다가 진흙 웅덩이를 하나 발견했다. 물은 그다지 많지 않았으나, 그가 쓰기엔 충분한 양이었다.
“겨우 이 정도 물로 뭘 하려는 겁니까? 이걸로 불을 끄려고요?”
동재가 물었다.
항소운이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제발 생각 좀 할 수 없어? 내가 언제 불을 끈다고 했어?”
“그럼 그걸로 뭘 하려고요?”
동재가 기가 죽었는지 조금은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물었다.
항소운은 웅덩이에 이상한 건 없는지 확인한 후, 바로 뛰어내렸다.
“항형, 거긴 더럽다고요!”
동재가 코를 막으며 말했다.
“자네도 어서 들어와!”
“싫어요!”
동재가 뒷걸음을 치며 말했다.
항소운이 웅덩이에서 기어 올라오더니,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자네는 몸에 물을 적시면 불을 막아준다는 말도 못 들어봤어?”
동재는 어리석진 않았다.
다만 경험이 많지 않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탓에 대응 능력이 조금 부족할 뿐이었다.
항소운이 명확하게 해야 할 바를 얘기를 하자, 그도 항소운의 뜻을 알아차렸다.
“하, 하지만 여기 물은 더럽다고요!”
동재가 다소 겸연쩍은 얼굴로 말했다.
항소운은 두말하지 않고 동재의 엉덩이를 발로 걷어찼다. 그러자 동재가 웅덩이 안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나쁜 놈!”
수렁에 빠진 동재는 온몸이 젖어 진흙투성이가 되었다.
“쓸데없는 소린 그만하고, 물에다 수건을 적셔서 얼굴에 대고 갱도 안으로 들어가자고!”
항소운이 소리를 치며 다그쳤다.
“이 빚은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동재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항소운을 노려보았다.
방금 전 자신이 맞은 부위를 생각하자, 그는 항소운을 세게 때려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항소운은 다급한 상황에서 말싸움도 귀찮다는 듯 재빨리 갱도 쪽으로 걸어갔다.
그의 예상대로라면 흑산교 사람들이 곧 들이닥칠 것이었다. 그러니 그들이 오기 전에 먼저 갱도 안을 제대로 확인해야 했다.
동재가 준 왕급 갑옷을 입은 항소운이 고개를 돌려 말했다.
“잘 생각해야 할 거야. 이곳에 들어가면 좋지 않은 상황이 벌어질 확률이 훨씬 높으니까, 무서우면 거기 있어도 돼.”
“퉤퉤, 분명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요!”
동재가 다시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난 들어갈 겁니다!”
“좋아, 그럼 들어가자고!”
고개를 끄덕이는 항소운의 손에는 패왕전천도가 들려 있었다.
현재 패왕전천도는 많은 부분이 복원되었다. 작은 균열들이 금진액에 적셔지며 합쳐졌고, 칼날도 훨씬 매끄럽게 빛나고 있었다. 다만 심각하게 깨진 부분은 여전히 그대로인 상태였다.
동재는 항소운이 깨진 대검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한마디 했다.
“항형, 이렇게 깨진 칼로 어떻게 싸우겠습니까? 제가 하나 드릴게요!”
“됐어, 그냥 가자고!”
항소운은 거절을 하더니, 젖은 수건으로 얼굴을 감싸고 갱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참, 사람의 호의도 몰라보고, 언젠가 분명 나중에 나에게 애원할 날이 올 거다!’
동재가 속으로 중얼거리더니, 항소운처럼 젖은 수건으로 얼굴을 감싸고 안으로 들어갔다.
갱도 안은 불길이 세진 않았지만, 매캐한 연기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항소운은 안력(眼力)이 범인보다 뛰어나 가까스로 버틸 수 있었지만, 동재는 버티기 힘들었다.
그는 연기 때문에 계속 눈물을 흘렸다. 너무 괴로워 당장 갱도 밖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이걸 대고 있으면, 조금 나을 거야!”
항소운이 젖은 천을 건네며 말했다.
그가 건넨 얇은 천은 매우 투명해서 눈을 감싸고 있어도 시선을 가리지 않았고, 습기를 제대로 머금고 있어 연기를 막아주었다.
동재는 천을 받아 들고 눈을 감쌌다. 어느새 그의 마음속에선 항소운에 대한 믿음과 의지의 끈이 살짝 당겨졌다.
다만 그 믿음의 끈이 나중에 사랑의 끈으로 변할 줄은 이때는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