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955
제955화 도망칠 필요 없어
우채접 등은 항소운이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그런데 그녀들이 채 도착하기도 전에 항소운이 눈을 번쩍 떴다.
그는 칼을 땅에 박고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생명의 진의가 빠른 속도로 부상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체력 소모는 컸지만, 회복 속도는 누구보다 빨랐다. 실체화를 이룬 성진은 남들의 성진과 확연히 달라서 성진의 힘이 응집되는 속도 역시 독보적이었다.
“올 필요 없어…….”
항소운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말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주변의 힘이 체내로 들어와 빠르게 힘으로 전환되었다. 동시에 체내의 성정을 분해해 흡수하자 힘이 빠른 속도로 보충되면서 회복을 앞당겼다.
그는 자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자요는 상대가 다가오는 걸 느꼈지만, 완전히 탈진한 상태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결국 내가 졌구나.’
어느새 자성하 무리가 달려와 자요 앞을 막아섰다. 항소운이 죽이는 것만은 막아야 했다.
“항소운, 죽고 싶어 제 발로 왔구나. 죽어도 원망 마라.”
자성하는 무기를 꽉 움켜쥔 채 언제든 필살의 일격을 날릴 준비를 했다.
“저, 전부 비켜. 내가 졌다.”
자요가 힘겹게 말을 뱉었다.
“형님,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건 무승부라고요. 저놈도 지금 싸울 힘이 없어요.”
자성하를 시작으로 다른 자들도 한목소리를 냈다.
“맞습니다. 도련님은 패한 게 아닙니다. 누가 봐도 이건 비긴 싸움입니다.”
자요는 수호 공회에 속한 자씨 가문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어찌 쉽게 패배를 인정한단 말인가.
“지면 진 거지, 감출 게 뭐 있어? 패할 용기조차 없으면서 어떻게 소생 경지에 오르겠어?”
자요는 환히 웃었다. 소생 경지에 오를 방법을 이미 깨달은 듯했다.
항소운도 자연스레 걸음을 멈췄다. 패배를 인정한 마당에 죽일 필요는 없었다. 무엇보다 영역 밖 생령 대군이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정말 인간족이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군. 이런 좋은 기회를 날려버릴 수 없지. 얘들아, 전부 쓸어버려라!”
멀지 않은 곳에서 생령의 외침이 들려왔다.
이번에는 꽤 많은 수였다. 자그마치 삼백 마리가 넘는 대군으로, 백골 대군과 잔혼도 합세하여 위세가 대단했다.
생령은 워낙 기이한 재능이 많다 보니, 백골 대군과 잔혼을 통제하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너무 강한 놈들이다. 지금은 물러나야 해.”
자성하가 놀라 소리쳤다.
“우선은 피했다가 자요 도련님이 회복된 후에 결판을 내야 할 것 같습니다.”
반신이 말을 받았다.
잠시 후, 자성하 무리는 생령을 피해 빠르게 달아나기 시작했다.
“우리도 어서 갑시다!”
서귀가 다급히 소리쳤다.
지금껏 쉬지 않고 싸우느라 일행은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이런 상태로 생령 대군에 맞서 싸우는 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항소운은 계속 싸우자고 하려다가 고민 끝에 관두었다. 지금은 서귀의 말대로 이곳을 빠져나가야 했다.
“흥, 도망치겠단 거냐? 한 놈도 빠짐없이 전부 붙잡아라!”
생령의 호통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생령 대군은 둘로 나뉘어 전속력으로 뒤쫓았다.
“너희는 패왕을 모시고 먼저 떠나라. 후방은 내가 맡는다!”
서귀가 다급히 소리쳤다.
“저도 남겠습니다.”
유청신이 나섰다.
두 사람의 무공이 강하긴 하지만, 저 둘로 생령 대군을 전부 막기란 아무래도 무리였다.
“사야성, 너희도 남아라!”
항소운의 명령이 떨어졌다.
사야성은 최상급 대성이니, 이들이 함께 싸운다면 조금은 안심이었다.
‘힘만 회복되면 전부 쓸어버릴 테다.’
항소운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서귀와 유청신, 사야성이 후방에서 생령 대군을 붙잡아 둔 덕분에 항소운 일행은 빠르게 그곳을 벗어났다.
그러나 얼마 못 가 또 새로운 위기에 봉착했다. 영역 밖 생령 무리가 나타난 것이다. 이번에는 맞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우채접, 마희, 육소청 그리고 자릉종의 몇몇 강자가 전면전에 나섰고, 하류휘와 양장민 역시 필사적으로 싸웠다.
오직 귀척만이 부상당한 항소운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지금 항소운은 상처 치료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생명의 진의가 있어 회복 속도는 더욱 앞당겨졌고, 크게 소모됐던 힘도 차츰 채워지고 있었다.
진신이 고되더라도 신급 분신은 공개하고 싶지 않았다.
이곳은 전천 성인들의 전장이었다. 만약 신급 분신을 쓴다면, 경쟁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인간족은 하나같이 약해 빠졌군. 전부 먹잇감이 되어라!”
생령 하나가 미친 듯이 웃어 젖혔다.
놈들은 실로 강했다. 무력만 강한 것이 아니라 듣도 보도 못한 수단을 쓰는지라 일행은 점점 열세에 처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목숨도 지키기 어려웠다.
“다들 고생했어. 이제부턴 나한테 맡겨.”
항소운은 정신이 조금 돌아오자,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는 포효를 내지르며 명혼공간을 펼쳤다.
잠시 후 생령, 아군 할 것 없이 모조리 명혼공간에 갇혔다.
생령은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아군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다들 진정해. 여긴 내 공간이니까 안심해도 돼. 이제부터 놈들을 전부 죽일 거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셀 수 없이 많은 쇠사슬이 생령을 향해 달려들었다.
“악! 이게 뭐야? 움직일 수가 없잖아!”
“대체 여긴 어디지? 왜 힘이 억제되냔 말이다!”
“정신 차려. 여긴 명황족의 명혼공간이다. 지금부터 다 같이 힘을 합쳐 이곳을 뚫는 거야!”
생령들은 혼란에 빠져 연신 괴성을 질렀다.
“죽이자!”
우채접은 아군을 이끌고 앞장서 달려 나갔다.
명혼공간 덕분에 적들을 죽이기가 한결 수월했다.
이렇게 해서 위기는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다들 탈진해서 팔을 들어 올릴 힘도 없었다. 그들은 이제야 상고 전장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새삼 깨달았다. 생령 외에도 같은 인간끼리 서로 목숨을 노리는 곳이었다.
“몸은 좀 어때요?”
명혼공간에서 빠져나온 후 우채접이 걱정스레 물었다.
마희와 육소청도 걱정 섞인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금방 좋아질 거야.”
항소운은 그녀들을 향해 씩 웃어 보였다.
확실히 외상은 거의 아물고 있었다.
다만 체력 소모가 워낙 큰 탓에 힘은 겨우 2할을 회복했다. 아무래도 제대로 보충해야 될 듯싶었다.
“우린 너무 약해. 패왕이 없었으면 여기서 전멸했을 거야. 반드시 실력을 높여야 해.”
마희가 자책하듯 말했다.
“맞아요. 더욱 열심히 노력해서 더는 패왕에게 짐이 돼서는 안 돼요.”
육소청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하류휘와 양장민, 당용비 등은 괜스레 부끄러워졌다. 자신들이야말로 모두에게 짐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소리 말고, 생령한테 무슨 좋은 물건이 있나 살펴보자. 쓸 만한 건 없는지 잘 찾아봐.
아, 여기엔 상고 시대 잔혼이 많아서 운 좋으면 전승도 얻을 수 있어. 다들 금방 강해질 거야.”
항소운은 사람들을 다독이며 기분 좋게 웃었다.
그는 우선 일행을 데리고 이곳을 떠나기로 했다. 지금은 치료에 전념할 수 있는 안전한 곳이 필요했다.
항소운은 성정을 대거 녹여 부족한 힘을 계속 보충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얼마 못 가 잔혼의 습격을 받았다. 귀척이 없었다면 상당히 힘들었을 것이다.
어렵사리 잔혼을 처리하고 나자, 예상치 못한 복병이 나타났다.
“그렇게 찾을 때는 없더니 여기 있었네!”
적개심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소리 나는 쪽을 보니, 뜻밖에도 남심용이었다.
남심용 무리는 오십 명 이하로 많지 않았다. 지친 행색을 보니 치열한 전투 끝에 이곳까지 온 모양이다. 그래도 항소운 일행에 비하면 멀쩡한 편이었다.
항소운 등은 즉시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남심용 무리가 공격해 온다면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싸울 생각이다.
“싸우잔 거냐?”
항소운이 담담히 물었다.
“하하. 가지고 있는 공적패를 전부 내놓으면 목숨은 살려줄 수도 있지.”
남심용은 항소운의 힘이 크게 줄어든 것을 알자,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무엇보다 곁의 사람들은 항소운 일행보다 월등히 강했다. 지금이라면 항소운을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다간 목숨만 재촉할 텐데.”
“그런가? 네가 지금 그런 말 할 처지가 되는지 한 번 볼까?”
남심용은 앞으로 한 발을 내디디며 기세를 발산했다. 놀랍게도 이전보다 실력이 꽤 늘어 있었다. 그래서 배짱을 부렸던 거였다.
항소운도 지지 않고 맞서려는데, 어디선가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신급 잔혼이 몰려온다!”
고개를 돌리니 수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이쪽으로 구름떼처럼 달려오고 있었다. 마치 전쟁이라도 난 듯 잔뜩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드는 사람들을 보니 저도 모르게 섬뜩해졌다.
항소운은 예민한 감각으로 사람들 뒤편의 신급 잔혼을 여럿 발견했다. 유청신과 싸웠던 신급 잔혼보다 강하면 강했지, 절대 약한 놈들이 아니었다. 이제야 사람들이 왜 저렇게 겁을 먹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빌어먹을. 항소운, 운 좋은 줄 알아라. 가자!”
남심용은 항소운을 쏘아보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신급 잔혼을 상대할 수 있는 특별한 무기가 있지 않는 한, 정면충돌은 무의미했다.
“패왕, 어서 가요!”
우채접이 다급히 외쳤다.
“신급 잔혼이 무섭긴 하지. 내가 대성 경지만 됐어도 한 놈은 처리했을 텐데.”
마희는 못내 아쉬운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신급 잔혼이 한 마리였으면 딱 죽여버리고 전승을 얻는 건데.”
하류휘가 한숨을 쉬자, 당용비가 한심하다는 듯 대꾸했다.
“이그, 한 마리였으면 사람들이 놀라서 도망가지도 않지.”
일행이 철수할 준비를 하는데, 항소운이 태연히 말을 꺼냈다.
“도망칠 필요 없어. 신급 잔혼들은 내가 처리할 테니까, 너희는 강해질 준비나 해.”
이곳의 신급 잔혼은 인간족 뿐만 아니라 영역 밖 생령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생전의 원한이 응집되어 만들어진 잔혼이었다.
비록 살아있을 때만큼 강하진 않지만, 반신과는 너끈히 겨룰 수 있는 수준이며 일부는 신급과 맞서 싸울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이 이들과 직접적인 싸움을 피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이들을 제압한다면 생전의 기억이나 전승을 이어받을 수 있다. 이는 무인이라면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사람들이 신급 잔혼을 두려워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아무래도 본질적인 측면에서 생령의 공격과는 차이가 나서다.
신급 잔혼의 공격은 실체가 있는 데다 타인의 영혼을 공격해 육신을 차지하는 게 가능했다. 이로써 그들은 다른 의미의 환생을 이루지만, 살육에 대한 의식만 있을 뿐 다른 개념은 모호하여 상당히 위험한 존재였다.
항소운 일행이 신급 잔혼을 전부 상대하기란 아무래도 무리였다. 그런데도 어쩐지 항소운은 자신만만했다.
단순히 귀척 때문만은 아니다. 명혼공간과 명룡혼주라는 기가 막힌 수단이 있어서다.
현재 그는 힘을 대부분 회복한 상태였다. 무엇보다 마주의 힘은 아직 쓰지도 않았다. 그 힘을 쓴다 치면 완벽히 회복한 자요와 싸운다 해도 문제없었다.
이러한 전투력을 지금껏 숨긴 것은 자신을 더욱 절박한 환경으로 몰아넣기 위해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행에게 이곳의 위험성을 인지시켜 잠재력을 끌어올리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신급 잔혼 여러 마리는 일행을 향해 빠른 속도로 돌진하고 있었다.
이미 일행의 존재를 알아채고 목표물로 정한 상태였다.
죽어라!
신급 잔혼은 이렇게 부르짖는 듯했다. 사악한 기운과 강력한 힘의 조합은 압도적인 위력을 발산하며 일행을 뒤덮기 시작했다.
그 충격에 공간이 뒤틀리며 놀라운 파괴력이 뿜어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