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996
제996화 약육강식의 세계에 자비란 없구나
호족은 무참히 찢기는 호도를 보며 슬피 울부짖었다.
“내가 자릉종에 일찍 가서 도움을 청했더라면 이런 끔찍한 일은 없었을 텐데.”
호덕천은 자책하고 있었다.
“족장님, 지금은 누굴 탓할 때가 아닙니다. 어떻게든 봉쇄를 뚫고 공주님을 자릉종으로 보낼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으로선 부마께 도움을 청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성급 호인이 말했다.
“이미 끝났어. 놈들이 여기까지 쳐들어온 이상 우리 힘으로 맞서는 수밖에 없다. 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 굴복하진 않을 거다.”
호덕천은 종족을 이끌고 마족 대군을 막으러 갔다.
한편, 호족 공주인 호미혜는 누구보다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3품 요성 경지인 그녀는 마호족의 맹공 앞에 힘없이 무너졌다.
그녀 앞을 마호족 왕자가 막아섰다.
왕자는 그녀의 매혹적인 자태를 보자 욕정이 끓어올랐다.
“이봐, 아가씨, 날 따르는 건 어때? 아주 잘해줄게. 아가씨도 죽고 싶진 않잖아.”
왕자는 경지가 훨씬 높다는 것만 믿고 노골적으로 그녀를 희롱했다.
절망에 빠진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히 본 패왕의 여자를 건드리다니 죽을 각오나 해라!”
익숙한 음성이 들리자, 호미혜는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아까 호도 어르신이 죽임을 당할 때 아무것도 못 하고 그저 지켜보기만 했던 자신이 얼마나 원망스러웠던가.
종족이 하나둘 죽어 갈 때마다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
생각 같아서는 적들을 전부 죽이고 싶지만, 그럴 능력이 없었다.
그런데 위급한 순간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 구해주자 참았던 설움이 폭발했다.
“패왕, 제발 우리 종족을 구해주세요!”
그녀가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항소운은 그녀를 부드럽게 품에 안았다.
“걱정 마. 이제 마음 놓아도 돼.”
마호족 왕자는 웬 놈이 제 일을 망쳤다 싶어 길길이 날뛰었다.
“건방진 놈. 너부터 죽이고 나서 네 여자를…….”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항소운이 손바닥을 쭉 뻗었다. 일순 강력한 힘이 상대를 속박하더니 그대로 허공으로 이동시켰다.
왕자는 죽음의 위협을 느꼈다. 어떻게든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싶었지만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잘 봐라. 이게 너희 마족의 미래다!”
항소운의 음성은 웅장한 종소리가 되어 모든 마족의 귀에 울려 퍼졌다. 소리에 이끌려 위를 올려다보자 뜻밖에도 허공에 왕자가 매달려 있었다. 다음 순간 끔찍한 장면이 펼쳐졌다.
쿵-!
마호족 왕자는 모든 마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 줌 핏물이 되어 뚝뚝 떨어졌다.
7품 마성이던 왕자가 이리 쉽게 죽다니, 대체 상대는 얼마나 강하단 소리인가.
마호신(魔狐神)이 목에 핏대를 세우고 고래고래 악을 썼다.
“네놈의 껍질을 벗겨 고통 속에 죽게 해주마!”
“여우 주제에 어디서 우리 형님한테 큰 소리야?”
어느 틈엔가 푸른 옷의 청년이 마호신 앞에 나타났다.
그 옆으로 금빛 옷의 청년이 나란히 섰다. 둘 다 앳된 얼굴이지만, 절대 가벼이 볼 수 없는 강한 기세가 있었다.
푸른 옷의 청년은 청룡, 그리고 금빛 옷의 청년은 소백이었다. 이들은 스무 살 남짓의 한창나이로 보였는데, 그 앞에 선 항소운은 더 앳돼 보였다.
여러 번 환골탈태를 거치면서 외모는 한층 어려졌고, 아직 오십도 안 된 나이에 신급에 올라서 겉모습은 영락없는 풋풋한 청춘이었다.
마호신은 푸른 옷의 청년과 마주한 순간, 마치 사나운 용 앞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저도 모르게 몸이 덜덜 떨렸다.
마호신은 아무 대꾸도 못 하고 조용히 빠져나갈 궁리를 했다. 하지만 청룡이 그런 기회를 줄 리 만무했다.
조용히 돌아선 마호신을 갈퀴손이 힘껏 후려치자 등에 끔찍한 갈퀴 자국이 생겨났다.
마호신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죽기 살기로 달아났다. 청룡은 자신이 결코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사룡족 대인에 필적할 만한 용이다!’
하지만 아무리 달아나도 청룡의 손바닥 안이었다.
어느 틈엔가 앞에 나타난 청룡은 세차게 발길질을 날려 마호신을 제자리로 돌려보냈다.
그러자 소백이 허공으로 뛰어오르며 소리쳤다.
“이제 나한테 맡겨!”
그러고는 황금빛 호권을 뻗어 마호신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삼안마호족은 그 광경을 보고선 기겁해서 뿔뿔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백호, 왜 내 걸 가로채? 나중에 두고 봐!”
청룡은 씩씩대더니 삼안마호를 뒤쫓았다.
“흥, 누가 겁낼 줄 알고?”
소백이도 맞받아치더니 이내 마족을 쫓아갔다.
청룡과 소백은 서로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댔다. 항소운이 간신히 막고는 있지만, 어느 한쪽도 지려하지 않았다.
항소운이 직접 나서지 않아도 청룡과 소백만으로도 마족을 제압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호미혜에게 부상당한 자들을 한곳에 모으도록 했다. 그리고 회춘술을 전개하자 호족의 상처가 금세 아물었다.
호족은 허리를 깊게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부마,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짐을 챙기세요. 자릉종 옆에 장왕 산맥이 있는데, 그곳이라면 여러분이 살기에 편하실 겁니다.”
항소운이 말했다.
이곳은 이미 마족의 침입으로 초토화가 돼서 다른 곳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알았네. 지금으로선 그 방법밖에 없겠군.”
호덕천은 한숨을 푹 쉬었다.
이곳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호족의 터전이었다. 그래서 줄곧 이주를 망설였지만, 이젠 떠날 수밖에 없다.
얼마 후, 청룡과 소백은 삼안마호족을 전부 소탕했다.
상황이 정리되자 항소운은 호덕천, 호미혜와 오랜만에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 * *
사흘 후, 이사 준비가 끝나자 호족을 자릉종으로 보냈다.
다만 항소운은 새롭게 돌파한 신급 힘을 단련하기 위해 이곳에 남았다.
목적지는 마족에게 점령당한 낙일 황조다. 그곳은 마족이 득실대는 곳이라 쓸 만한 마족 괴뢰를 여럿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충분한 조력자 없이 소회장 자리에 오르는 건 불가능했다.
그는 청룡과 소백을 데리고 마족의 점령지로 향했다. 벌써부터 마기가 요동쳤으나, 이 정도 마기는 마연에 비하면 형편없이 약했다.
중원 대륙은 결계의 힘을 이용해 마기가 올라오는 것을 막고 있었다. 이 때문에 마기가 대량으로 생성되기 어려워 마족은 이 땅에서 오랜 시간 생존할 수 없다.
만약 결계가 무너진다면 중원과 마연의 힘이 한데 섞여 새로운 환경을 만들 터. 그때야 비로소 마족은 이곳에서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사룡족이 다른 마족을 이끌고 이 땅에 쳐들어온 것은 마연이란 감옥에서 벗어나 새로운 터전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명황족이 중원에서 갑자기 종적을 감추자, 그제야 예상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사룡족은 서둘러 점령지를 확장하지 않았다. 게다가 인간족 강자들이 쉴 새 없이 몰려와 공격을 퍼부었다. 사룡족 가운데 최상위 고수들이 없었다면, 진작 마연으로 쫓겨났을 것이다.
최상위 고수들은 실로 강한 존재였다. 마찬가지로 인간족에서 신급 정점의 고수가 오지 않는 한, 이들과 맞서는 건 무모한 짓이다.
이들은 각각 9품 마신과 8품 마신 정점이었다. 모든 생령 가운데 최상급 존재다.
이들 외에도 신급 사룡이 수십 마리 더 있고 마신도 한 무리나 되어 극강의 세력을 형성했다. 인간족이 힘을 모으지 않는 한 이들을 물리치는 건 불가능했다.
항소운은 청룡, 소백이를 데리고 사룡족이 장악한 구역으로 접근했다. 가는 곳마다 수많은 시체가 쌓여 있고, 검붉은 피가 주변을 눅진하게 적셨다.
비통한 마음에 한숨도 뱉을 수 없었다.
‘약육강식의 세계에 자비란 없구나. 최고의 경지에 올라 모든 것을 압도해야 천하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겠어.’
과거에는 자신의 가족과 주변 사람만 지키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더 나아가 중원 대륙을 지켜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간 심경의 변화도 있었고, 인간족의 한 일원으로서 일말의 책임감이 생겼다.
그는 감응에 의지해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을 찾았다. 하지만 그곳 역시 아비규환이었다. 이미 마기에 잠식당해 이성을 상실해서 인간끼리 서로 죽이고 있었다.
항소운은 그들을 모두 정신 차리도록 한 뒤, 떠날 방향을 일러주었다.
그 후로 항소운 일행은 십여 개의 마을을 거치며 수많은 마족을 죽이고 사람들을 대거 구해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도무지 끝이 날 것 같지 않았다. 이 땅에서 사룡족을 완전히 몰아내지 않는 한 사람들은 영원히 고통받을 것이다.
그는 청룡, 소백이와 함께 사룡족의 근거지로 향했다. 마족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곳으로, 외곽에서는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마족과 싸우고 있었다.
그곳은 사룡족이 쳐들어온 뒤로 단 하루도 전쟁을 멈춘 적이 없었다.
인간족의 대다수는 수호 공회였고, 일부는 낙일 황조의 패잔군과 각지에서 자원한 무인들이었다.
항소운 일행이 도착했으나, 이들을 신경 쓰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싸우러 왔다기엔 너무 젊어서 어쭙잖게 단련이나 하러 온 애들처럼 보였다.
“얘들아, 어서 가거라. 여긴 너희들이 오기에 너무 위험한 곳이야.”
한 중년 사내가 걱정되는 마음에 항소운 일행을 만류했다.
마혈로 얼룩덜룩한 옷과 전신을 휘감은 살기를 보니, 그간 얼마나 죽기 살기로 싸웠을지 짐작이 갔다.
항소운은 중년 사내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괜찮아요.”
“이실(李實)은 너희를 생각해서 한 말이다. 괜히 객기 부리지 말아라.”
또 다른 남자가 한심하다는 듯 대꾸했다.
“내버려 둬요, 죽고 싶다는데 뭐 하러 말려요. 여긴 사룡이 있는 곳에서 멀지 않아서 언제든 다시 전투가 벌어질 테니 아무래도 멀리 물러나는 게 좋겠어요.”
옆에서 여자가 말을 받았다.
현재 이곳에는 백여 명 정도가 남아 있었다.
이들은 특정한 소속 없이 자원한 무인들로, 실력은 제급 정도라서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외곽을 맡고 있었다.
항소운은 그들의 말이 거슬리기는 했지만, 그냥 흘려 넘겼다.
이곳까지 왔는데 사소한 일로 아군과 따지고 싶지 않았다.
이때 저 멀리서 마족 무리가 이쪽을 향해 돌진해 왔다. 짙은 마기가 거대한 기세를 일으키며 상공을 뒤덮었다.
사람들은 일제히 무기를 들고 싸울 준비를 했다.
“이번에는 마성까지 쳐들어오는군. 너희는 어서 떠나라!”
‘이실’이라 불렸던 중년 사내가 항소운 일행을 보며 다급히 소리쳤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대도를 움켜쥐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 버러지 같은 놈들, 내 아들 살려내!”
그러나 마성은 이들이 맞설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전부 내 먹이가 되어라!”
이번에 쳐들어온 마성은 꽤 강한 놈이었다. 게다가 마족 십여 마리가 이미 주변을 봉쇄한 터라 달아나는 것도 불가능했다.
이렇게 된 이상 죽기 살기로 싸우는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함성을 지르며 무기를 들고 달려 나갔다.
비록 이실의 무공이 뛰어나다고는 하나, 마성 앞에서는 역부족이었다.
순식간에 제압당한 그가 잡아먹히려는 순간, 한 젊은이가 홀연히 나타나 마성의 머리를 짓눌렀다.
마성은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느꼈다.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쳐 황급히 물러나려 했으나, 어쩐지 꼼짝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