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Third-Generation Heir of a Conglomerate RAW novel - Chapter (117)
독식하는 재벌 3세-117화(117/518)
117화. 새 시대 (1)
1999년의 마지막 날.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2000년이 오길 기다렸다.
땡! 땡! 땡!
TV를 통해 보신각의 종이 울리는 걸 지켜보았다.
그 모습을 아무런 말 없이 몇 분을 지켜보고 나서야 할아버지가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다행이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구나.”
“설마 Y2K 괴담 때문에 걱정하신 거예요?”
“혹시라는 것이 있지 않느냐.”
“꼭 무슨 일이라도 터지길 바라시는 분처럼 말씀하시네요.”
“허허, 내가 왜 그러겠느냐? 가만히만 있어도 태우그룹이 재계 1위를 달성하는 날이 머지않았는데 말이다.”
태우그룹의 상황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반면 현재그룹은 여기저기서 삐걱거리는 중이었다.
현재건설의 매출 부진과 SS자동차 인수로 인한 불협화음 거기다 후계자 경쟁까지.
정말 가만히만 있으면 어부지리로 재계 1위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재계 1위 자리야 늦어도 내년 안에는 차지할 수 있겠죠. 문제는 수성 아니겠습니까?”
“미래 먹거리 관련 이야기더냐?”
“10년 후, 20년 후의 미래를 대비해 미래 먹거리를 확보해 두어야 합니다.”
“태우그룹에서는 다양한 사업에 투자 중이다. 그리고 네가 IT 사업까지 키우고 있는데 무엇이 문제겠느냐?”
“부족합니다. 더 많은 투자가 있어야지만 한국 1위는 물론이고,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TV를 끄고 나를 바라보셨다.
“그래서 어디에 투자를 하고 싶다는 게냐.”
“미래를 주도할 사업으로는 인공지능, 로봇, 배터리 그리고 우주 산업입니다.”
회귀 전에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로 듣던 산업들이었다.
아직은 생소한 산업이 많았지만, 20년 후의 태우전자를 생각한다면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 했다.
“배터리야 태우전자에서 키우고 있으니 그렇다 쳐도, 인공지능과 우주 산업은 우리와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구나.”
“우주 산업의 경우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우주 산업을 하기에는 너무 많은 규제가 있어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막대한 투자금도 들고 수익 구조도 빈약합니다.”
“그럼 인공지능과 로봇에 투자해야 한단 말이냐?”
“로봇과 인공지능은 한 세트와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부터라도 두 산업을 육성해야지만 태우그룹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모든 산업에 과감히 투자를 하면 더 좋겠지만.
그렇게 하기엔 너무 많은 돈이 들었고, SAVE 투자회사가 지원을 해 준다고 해도 불가능에 가까웠다.
“로봇이야 지금도 자동차 공장에서 로봇 팔을 사용하고 있으니 개발이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인공 지능으로는 무얼 하려는 게냐?”
“많은 것을 할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관심을 가질 만한 사업으로는 자율 주행 자동차가 있겠고, 음성 인식을 통한 전자제품 작동도 가능합니다.”
“허허, SF 영화에서 볼 법한 이야기를 하는구나.”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써 내려가야 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 할아버지셨다.
그렇기에 난 할아버지가 관심을 가질 만한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인공지능과 로봇을 이용하면 무인 공장으로 자동차를 생산할 수가 있습니다. 로봇이니 인건비도 들지 않고, 파업도 하지 않겠지요.”
“그렇게 된다면 좋겠지만, 정치권에서나 노동계에서 좋아하지는 않겠구나.”
“대한민국의 인력풀은 한정적입니다. 태우그룹이 더 커지면 일할 사람이 부족한 시대가 오게 될 겁니다. 그때를 대비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 앞으로 태우그룹은 네가 이끌어 나가야 하니 네 말대로 하는 것이 옳겠지.”
할아버지가 마지못해 허락을 해 주셨다.
여기서 그냥 끝내도 되었지만, 난 부정적인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당장은 이득을 보기 힘든 분야들입니다. 돈 잡아먹는 하마가 될 분야들이기도 하죠. 태우전자와 태우자동차가 벌어들이는 수익 대부분이 투자금으로 사라지게 될 겁니다.”
“돈이야 있다가도 없는 것이고, 없다가도 있는 것 아니겠느냐? 막대한 개발비가 든다고 하지만, 개발에 성공해서 우리가 독점적인 위치에 올라설 수 있다면 투자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
할아버지는 내 예상보다 훨씬 깨어 있는 분이셨다.
역시 태우그룹을 여기까지 키우신 할아버지의 안목은 여전했다.
“제가 세운 로드맵에 따라 그룹이 운영되면 10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나면 한국 1위가 아니라 세계 1위에 올라선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나는 여기에 없겠구나.”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저와 함께 태우그룹에 계셔야지요.”
“요즘 몸이 예전 같지가 않더라.”
할아버지는 팔과 다리를 주무르며 말씀하셨다.
오늘따라 할아버지의 주름이 더욱 깊게 파인 느낌을 받았다.
“태우그룹이 세계 1위 그룹이 되시기 전까진 아무 데도 못 보내 드립니다.”
“그게 어디 우리 마음대로 되는 일이더냐. 소원이 있다면 태우그룹이 세계 1위를 하는 것보다…… 네 결혼식에 건강하게 참석하고 싶구나.”
“갑자기 결혼 이야기를 하신다고요?”
“새로운 시대가 열렸으니 너도 새로운 가정을 꾸려야 하지 않겠느냐. 언제까지 할애비 옆에서만 있을 테냐.”
갑작스럽게 바뀐 주제긴 했지만.
할아버지의 말이 틀린 점은 없었다.
“진지한 만남을 가져 보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정말이냐?”
“올해가 가기 전에 꼭 좋은 소식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좋은 소식이 꼭 결혼일 필요는 없다. 요즘은 혼수를 먼저 장만하고 결혼하는 게 유행이라고 하더구나.”
“애부터 만들라는 말씀이세요?”
“흠흠, 그래도 나는 문제 삼지 않겠다는 말이지.”
할아버지가 얼마나 증손자가 보고 싶은지 알 수 있었다.
솔직히 나도 할아버지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지만, 지금은 연애보다 회사 키우기가 너무 재밌었다.
***
1월이 시작되자 나는 태우증권 박만덕 사장을 기획실로 불렀다.
박만덕 사장의 얼굴은 매우 밝았다.
애국 펀드 덕분에 태우증권이 창립 이래 최고의 수익을 올리고 있었기에 표정이 밝을 수밖에 없었다.
“애국 펀드 만기가 이번 달이면 끝나죠?”
“그렇습니다. 고객들이 어서 새로운 펀드를 출시해 달라고 매일같이 연락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애국 펀드 2탄 출시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성공한 상품은 후속작이 나오기 마련이었고.
애국 펀드의 경우 증권사의 역사에 남을 대성공을 이루어 내었기에 후속 상품을 만드는 것이 당연했다.
“올해는 펀드 출시를 하반기부터 하는 게 좋겠습니다.”
“전반기 시장을 버리자는 말씀이십니까?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시장이 좋습니다. 작년만 해도 300%에 달하는 수익을 올렸고, 올해는 그 이상이 가능하다는 전망입니다.”
“수익의 대부분을 IT 관련 주식으로 올리셨죠?”
“그렇습니다. 이번에 출시할 펀드도 IT 종목으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IT 관련 종목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상한가를 치는 게 지금 주식 시장이었다.
태우증권은 물론이고, 다른 증권사들도 경쟁적으로 IT 종목에 투자하고 있었다.
그리고 엄청난 수익률을 올리고 있었기에 올해도 IT 관련 펀드가 쏟아져 나올 게 분명했다.
“IT 시장이 너무 과열되어 있어요. 당분간은 뒤에서 지켜보는 편이 좋아 보입니다.”
“주식 시장은 원래 광기로 흘러가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증권사는 고객들의 광기를 충족시킬 상품을 만들어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다른 증권사와 다르다는 이미지를 심어 줄 수 있는 기회죠.”
“IT 시장이 갑자기 하락세로 변한다면 그렇게 되겠지만, 미국에서도 여전히 IT 종목은 상한가를 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새로운 펀드를 출시하지 않는다면, 고객들이 다른 증권사로 넘어가게 됩니다.”
살짝 고민이 되는 부분이긴 했다.
고객이 다른 증권사로 넘어가는 걸 지켜봐야만 할까?
다른 증권사는 무조건 IT 종목에 투자를 할 것이고, IT 버블이 터지는 순간 엄청난 손해를 입게 된다.
다른 증권사가 손해를 입는 건 그렇다 쳐도.
우리에게 들어와야 할 고객의 돈까지 사라지지 않는가.
“흠, 그럼 펀드를 출시하긴 해야겠군요. 펀드를 출시하지만, 공격적인 투자는 하지 마세요.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채권 상품에 투자를 하는 정도로만 돈을 굴리세요.”
“채권에 투자하면 수익률은 고작해야 5% 정도에 불과합니다. 은행 이자나 큰 차이가 없는 수익률입니다.”
“전반기는 그렇게 투자하고, 상황을 봐서 하반기에 공격적인 투자를 하면 됩니다. 고객 일부가 다른 펀드로 떠날 순 있지만, 충성 고객이 많으니 크게 이탈하지는 않을 겁니다.”
박만덕 사장은 할 말이 많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도 IT 종목의 광기에 물들어 있는 상태였다.
“모든 책임은 제가 집니다. 전반기는 버린다는 생각으로 안정적인 투자만 진행하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여전히 불만이 많아 보이긴 했지만.
박만덕 사장은 내 말을 따를 게 분명했다.
만약 내 말을 따르지 않고 움직인다면, 모든 책임을 자신이 져야 하기에.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책임을 지기 싫어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니 나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서라도, 내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
2000년이 시작되었다곤 하지만 크게 변한 건 아직 없었다.
하지만 3월이 되자 아주 큰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다.
“본부장님, 현재그룹의 경영권 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드디어 터질 게 터졌네요. 공동 회장으로 그룹이 운영되면 당연히 분쟁이 일어나기 마련이죠.”
장영주 회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회장직에서 내려오셨고.
장남인 장경준과 육남인 장영준이 공동 회장으로 현재그룹을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장경준 회장이 현재증권 회장을 좌천시켰습니다. 현재증권 회장은 장영준 회장의 심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단독 회장으로 올라서기 위해 심복 제거 작업에 들어갔나 보군요.”
“장 회장님이 후계자로 육남인 장영준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가만히 있다가는 동생에게 그룹 총수 자리를 넘겨주게 생겼으니 움직일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장 회장님은 육남인 장영준을 참 아꼈다.
뛰어난 경영능력을 보여 주었기에 장영준을 아끼는 건 이해가 간다만.
장남 입장에서는 당연히 억울할 만한 일이었다.
경영 능력만 놓고 본다면 장경준의 능력은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어떻게 본다면 장경준이 더러운 짓을 다 처리해 주었기에 장영준이 경영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이기도 했다.
“회장님 대신 감옥까지 갔다 왔는데 찬밥 신세가 될 처지가 되었으니 당연히 울화통이 터지겠죠.”
“하지만 이미 장 회장님은 장남에게는 현재자동차를 육남인 장영준에게는 현대 건설, 전자, 증권을 상속하기로 예정한 상태입니다.”
“현재증권 회장을 좌천시켰다고 했죠? 그럼 현재증권을 먹고 싶은가 보네요. 현재자동차 하나로는 성에 차지 않겠죠.”
기획실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봐도 장남에게 현재자동차만을 상속해 주는 건 너무한 처사였다.
“현재자동차의 매출이 크다고는 하지만, 현재 전자의 경우 CL반도체까지 인수를 했고, 현재건설이야 우리에게 도급 순위가 밀렸다고는 하지만 2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게다가 캐쉬카우인 현재증권까지 육남에게 상속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아 보입니다.”
“실장님이 보시기엔 현재자동차가 다른 3개의 계열사보다 부족해 보이시나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10년만 지나도 이런 평가는 뒤집히게 된다.
현재자동차를 가진 사람이 승자가 된다는 걸 누가 알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