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Third-Generation Heir of a Conglomerate RAW novel - Chapter (123)
독식하는 재벌 3세-123화(123/518)
123화. 폭풍전야 (2)
푸틴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태우그룹 후계자이며, SAVE 투자회사 대표란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고, 그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는 걸 은연중에 내비치고 있었다.
“이번은 태우그룹을 대표해서 러시아로 왔습니다.”
“사진으로는 여러 번 봤지만, 실제로 보니 감회가 새롭군요. 고마웠습니다. 덕분에 제가 이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어요.”
푸틴이 악수를 청해 왔다.
무소속일 때부터 지원해 준 나를 진심으로 고맙게 여기고 있는 그였다.
“도움이 되었다면 제가 더 감사합니다.”
“당연히 도움이 되고 말고요. 덕분에 입에 풀칠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나도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 푸틴은 갑자기 악력을 높여 내 손가락을 부서트릴 듯이 짓눌렀다.
자신의 권위를 알리려는 속셈인가?
예전에는 도움을 받는 입장이었지만, 이젠 달라졌다는 걸 악수를 통해 알려 오는 푸틴이었다.
“오늘 일정은 다 비워 두었어요. 멀리서 온 친구들과 밤새 술을 마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푸틴은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은 채 술잔을 들었고.
눈치 빠른 데이비드가 얼른 위스키병을 열어 잔에 술을 채워 넣었다.
그렇게 우린 서로의 술잔에 술을 채워 주며 3병이 넘는 위스키를 비워 갔다.
“아! 머리야.”
위스키는 참 독한 술이었다.
술이라면 나도 자신이 있었지만, 3병이 넘어가는 순간 정신을 잃었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극심한 두통과 함께 눈을 떴다.
“일어났는가? 따뜻한 차를 마시면 좀 괜찮아질 걸세.”
“네, 감사합니다.”
푸틴이 직접 차를 우려내 주었다.
향긋한 홍차의 냄새를 맡자 두통이 사그라들었다.
그런데 홍차?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푸틴과 홍차에 관련된 안 좋은 소문이 떠올랐다.
정적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독이 든 홍차를 사용했다는 소문.
“왜 안 마시는가? 설마 내가 독이라도 넣었겠는가?”
“그럴 리가요.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밤새 술자리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푸틴의 말투가 한결 편해진 걸 보니 좋은 이야기가 오갔나 보다.
“아름답지 않은가?”
“정말 아름다운 자연입니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장소에 제가 와 있네요.”
“러시아는 참 많은 것을 가진 나라지. 그런데 소수의 사람이 그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있었다네.”
“올리가르히 말씀이십니까?”
“러시아를 좀먹는 벌레 같은 놈들이지. 나는 그들이 쥐고 있는 것들을 모조리 뺏을 걸세.”
솔직히 헛웃음이 나왔다.
올리가르히가 러시아의 경제를 손아귀에 쥐고 있는 것은 맞았다.
그걸 푸틴이 빼앗으면 뭐가 달라질까?
지금의 러시아보다야 더 낫긴 하겠지만, 대부분의 부가 소수의 사람에게 집중되는 건 달라지지 않는다.
“대통령께서 원하시는 러시아가 되길 진정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경제 관료들은 올리가르히가 필요악이라고 하더군. 그들이 사라지면, 제대로 경제를 굴릴 사람이 없어 러시아가 더욱 어려워질 거라고. 올리가르히에게 얼마나 받아 처먹었으면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한단 말인가?”
“경제 관료들은 변화를 두려워하기 마련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자네가 날 좀 도와줘야겠네.”
드디어 본론을 꺼내기 시작하는 푸틴이었다.
밤새 이어진 술자리는 지금을 위한 준비 작업에 불과했다.
내가 무소속이었던 그에게 막대한 후원금을 준 이유도 지금을 위해서였다.
“태우그룹 차원에서 러시아 진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주 반가운 소리군. 지금 러시아는 고립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네.”
“태우자동차와 태우전자 공장을 러시아에 지을 계획을 세워 두었습니다.”
“모든 편의를 내가 봐줄 수 있네. 부족한 일자리를 채울 수만 있다면 뭔들 못 하겠는가?”
러시아 경제는 여전히 최악이었다.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지 2년도 지나지 않았기에 외국 회사들이 러시아 진출을 꺼려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규모 공장을 지어 준다니 얼마나 반갑겠는가?
“태우자동차의 경우 유럽 판매량이 크게 늘고 있어 새로운 생산 기지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안정적으로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는 환경만 조성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공사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흠, 결국 올리가르히를 빨리 정리해야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겠군.”
푸틴은 홍차로 입속을 적셨다.
나도 그를 따라 홍차를 마셨고, 어서 그가 다음 말을 이어가길 기다렸다.
“올리가르히를 정리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네. 문제는 그들이 운영하던 사업장을 관리할 사람이 없다는 게지.”
“국영 회사의 경우엔 어떻게든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물론 우수한 경영자가 있다면 더 잘 돌아가긴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망하지는 않습니다.”
“러시아 재건을 위해선 올리가르히를 대신해 국영 기업을 잘 경영해 줄 사람이 필요하네.”
나는 애써 관심 없는 척을 했다.
여기서 괜히 나섰다간 속물로 찍힐 수도 있으니까.
“제가 무얼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러시아가 가장 강한 힘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거대한 영토와 강인한 정신력 아니겠습니까?”
“거대한 영토에서 나오는 에너지 자원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가장 강한 힘일세.”
러시아의 천연자원은 설명이 필요 없었다.
석유, 천연가스 등. 러시아에서 생산되는 천연자원이 유럽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천연자원 개발을 도와 달라는 말씀이십니까? 하지만 가스프롬이 이미 많은 자원을 개발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천연자원은 올리가르히의 배를 불리는 용도로만 사용되고 있지. 나는 지금의 구조를 부수려고 하네.”
푸틴이 나에게 무얼 주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걸까?
혹시 가스프롬을 나에게 주려는 건 아닐 테고.
“어떤 방식으로 구조를 변경하시려고 하십니까?”
“가스프롬과 외국의 자본을 합쳐 거대 에너지 회사를 만들려고 하네. 자네가 한 축을 맡아 주게나.”
“러시아 천연자원 개발 사업에 참여해 달라는 말씀이십니까?”
“지분의 51%는 러시아 정부가 가지겠지만, 나머지 지분은 투자금에 따라 전부 자네에게 줄 수도 있네. 올리가르히를 찍어 누를 자금을 투자한다면 말일세.”
쉽게 말해 가스프롬의 대주주가 되어 달란 뜻이었다.
올리가르히를 밀어 낸 자리를 내가 채워 달라는 뜻이기도 했다.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겠군요.”
“절대 손해를 보지는 않을 걸세.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손해를 보더라도 당연히 함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SAVE 투자회사의 자금을 투입하면 충분히 올리가르히를 대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내가 뜸을 들였다.
솔직히 자금을 투입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올리가르히가 돈이 많다고는 하지만, 결국엔 러시아라는 우물 속 개구리였다.
이번 일은 돈이 문제가 아니라 정치, 외교가 문제였고, 푸틴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미국의 반대를 우려하는 겐가?”
“아무래도 그렇습니다. 월가의 막대한 자금이 러시아로 흐르게 되면, 미국 정부에서 제재를 가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이끄는 정권은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것이네. IMF를 통해 미국이 얼마나 흉악스러운 놈들인지 정확히 알게 되었네. 그러니 겉으로라도 좋은 관계인 척 연기를 해야 하지 않겠나?”
러시아는 IMF의 도움을 받지 못해 파산했었다.
IMF의 결정이 있기 전에 백악관에서는 많은 수의 경제 관료가 러시아를 방문했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고, 결국 IMF로부터 외면받게 되었다.
물론 책임 전가에 불과했다.
국가를 제대로 운영했다면 경제 위기가 오지도 않았겠지.
올리가르히의 금고에 쌓여 있던 재산이 뿌려지기만 했어도 국가 파산이라는 불명예가 생기진 않았을 거고.
그런 경험을 통해 푸틴의 정책관이 확립이 된 듯 보였다.
올리가르히 숙청과 미국과의 관계 재설정.
“미국의 문제라면 제 선에서도 노력을 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묻고 싶습니다. 투자금은 천연자원 개발을 위해 사용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사전 작업을 위해 필요한 자금입니까?”
“둘 다라고 볼 수 있지. 올리가르히를 먼저 쳐 내야 제대로 된 사업을 할 수 있지 않겠나? 그러기 위해선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법일세.”
결국 내 돈으로 올리가르히를 찍어 누르겠다는 뜻이었다.
올리가르히가 보유한 막대한 자금력을 밟을 수만 있다면, 그들을 숙청하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실패한다면?
막대한 돈을 투자하더라도 한 푼도 건질 수 없게 되는 셈이었다.
“초기 투자금으로 100억 달러 정도면 되겠습니까?”
“그렇게나 많이 투자할 수 있단 말인가? 혹시 월가와 컨소시엄을 만들어 투자할 생각인가? 그렇다고 해도 상관이 없긴 하네.”
“아닙니다. SAVE 투자회사에서 단독으로 움직일 생각입니다.”
“자네는 내 생각보다 훨씬 통이 큰 사람이었군.”
푸틴의 제안은 도박에 가까웠다.
그것도 이기면 모든 것을 얻고 지면 모든 것을 잃는 도박.
하지만 나는 도박의 결과를 알고 있으니 배팅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투자를 할 때는 확실하게 해야 아쉬움이 생기지 않습니다. 제가 월가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기도 합니다.”
“내겐 자네 같은 사람이 필요했네! 이번 일만 잘 끝나면 천연자원 회사의 지분을 확실히 챙겨 주겠네.”
천연자원 회사의 지분은 푸틴의 소유도 러시아 정부의 소유도 아니었다.
러시아의 천연자원 회사는 올리가르히가 꽉 쥐고 있었다.
그러니 올리가르히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을 뺏어 내게 준다는 말이었고, 내가 지원하는 자금은 군자금인 셈이었다.
“한 가지만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무엇이든지 말해 보게나.”
“러시아에서 생산되는 천연자원 수출의 경우엔 회사의 방침에 따라야겠지만, 한국으로 수출하는 물량만큼은 저에게 전권을 주셨으면 합니다.”
“그 정도야 당연히 해 주어야겠지. 원한다면 유럽으로 판매하는 천연가스의 전권도 자네에게 줄 수 있네.”
아주 먹음직스러운 제안이었다.
하지만 독이 들어 있는 음식이기도 했다.
유럽과의 관계가 안 좋아질 경우, 책임의 화살이 우리에게 넘어올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날이 올 것임을 알고 있었다.
악마와 손을 잡는 건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악마 대신 모든 책임을 떠안긴 싫었다.
“한국으로 만족하겠습니다. 한 사람이 너무 많은 권한을 보유하고 있으면, 결국엔 사이가 틀어지기 마련입니다.”
“확실히 자넨 올리가르히 같은 배부른 돼지들과는 생각 자체가 다르군.”
“태우그룹은 러시아에 많은 투자를 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잘못되면 태우그룹이 무너질 수도 있는 규모의 투자입니다. 그러니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서라도 러시아가 경제 성장을 이루어 내야만 합니다.”
“러시아와 태우그룹이 한배를 탔다는 말이군.
푸틴은 주전자를 집어 잔을 다시 채웠다.
차갑게 식은 홍차를 들어 올린 그는 내게 건배 제안을 했다.
“배부른 돼지를 위하여!”
올리가르히를 도살해 나눠 먹자는 말이겠지.
고기가 러시아 국민들의 밥상까지 갈지는 모르겠다만, 태우그룹을 살찌우는 역할을 해 줄 것임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