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Third-Generation Heir of a Conglomerate RAW novel - Chapter (124)
독식하는 재벌 3세-124화(124/518)
124화. 폭풍전야 (3)
러시아 대통령 임명식 날이 되었다.
그전까지 나는 휴양지의 별장에서 지내고 있었기에 처음으로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되었고, 특히 이름을 수도 없이 들어 봤던 사람과도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태우그룹 김민재 부회장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추코트카 주지사 로만입니다. 그분에게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인연이 매우 깊으시다고요?”
영국의 축구 구단주로 더 유명한 로만과의 만남이었다.
그는 러시아 석유 재벌 중 한 명으로 지금은 푸틴을 돕기 위해 주지사직을 맡고 있었다.
아! 그리고 로만은 아직 축구 구단을 인수하기 전이었기에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전이기도 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제가 아무리 그분과 인연이 깊다고 한들 로만 님보다야 못하지 않겠습니까?”
“저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냥 편하게 로만이라고 불러요. 같은 배를 탄 동지끼리 어색하면 되겠어요?”
로만은 생각보다 친근하게 다가왔다.
불안하기 때문이겠지.
푸틴은 올리가르히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로만도 올리가르히에 속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올리가르히를 배신하고 푸틴의 옆에 섰다.
그러니 얼마나 불안하겠나?
푸틴을 추종하는 실로비크와도 관계가 좋을 수가 없었고, 올리가르히 세력에게도 미움을 받고 있으니.
“축구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같이 영국에서 경기를 관람하실까요?”
“오! 축구를 좋아하시나 보군요.”
“작은 구단이지만, 한국에서 축구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같은 구단주시군요. 오랜만에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났어요.”
이래서 할아버지가 축구 구단을 운영하는 건가?
단번에 로만과의 거리가 가까워졌고, 우리는 임명식이 시작하기 직전까지 축구 이야기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임명식이 시작되었군요. 저와 같이 가시지요.”
로만의 안내를 받아 앞으로 이동했다.
그와 나는 가장 앞자리에 배치를 받았기에 임명식에 초대받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고, 그중에는 한국에서 온 관료들의 얼굴도 보였다.
***
임명식은 성대하게 마무리되었다.
강한 러시아를 강조하는 푸틴 대통령의 연설에 눈물까지 흘리는 관료들도 있었지만, 나는 반대로 섬뜩함을 느껴야만 했다.
다시금 악마와 손을 잡았음이 실감이 났기에.
10년 후에 그리고 20년 후에 러시아가 일으킬 전쟁을 생각하면 그와 손을 잡는 건 위험한 일이었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었다.
“오늘 참석해 주어 고맙네. 로만과도 많이 친해졌나 보군. 앞으로 둘이 자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길 바라겠네.”
“이미 같이 축구 경기를 보기로 약속을 잡아 뒀습니다.”
“잘 부탁하겠네.”
푸틴은 한참이나 내 옆에서 이야기를 나누곤 다른 사람에게로 이동했다.
그 모습을 부럽게 바라보는 눈길 때문에 뒤통수가 따끔했다.
대사관과 외교부에서 온 공무원들이 보내오는 눈빛이었다.
나는 굳이 그들에게 아는 척을 하지 않았건만, 틈이 생기자 곧장 내게 달려오는 외교부 관료였다.
“태우그룹에서 초청을 받은 줄 몰랐습니다. 이런 대형 행사에 초청을 받았으면 정부와 상의를 하셨어야죠!”
“러시아 정부와 협의해 일정을 진행했습니다만.”
“태우그룹이 러시아 그룹입니까! 당연히 한국 정부와 상의를 했어야죠.”
뭐지?
지금 나를 타박하는 건가?
내가 태우그룹 후계자임을 모를 리는 없을 터.
그럼 나이가 어리다고 막 나가는 건가?
“다음에 그럴 일이 있으면 상의를 드리죠.”
“당연히 그래야지요. 앞장서세요. 아까 보니 러시아 중요인사와 친한 것 같던데 소개 좀 시켜 주세요.”
너무 당당해서 하마터면 알겠다고 대답할 뻔했다.
장관쯤 되는 건가? 나는 그의 상세 정보를 확인했다.
최종민 차관.
외교부 출신의 엘리트로 최연소 나이로 차관에 오른 능력자였다.
외교부의 황태자라는 별명까지 붙을 정도로 정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었다.
뭐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라 이거군.
내가 굳이 장단을 맞춰 줄 필요가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일정이 빡빡해 지금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 봐야 합니다. 죄송합니다.”
“거참, 비싸게 굴지 말고 같이 좀 다닙시다.”
“원래 이러십니까? 저는 기업가지 차관님의 부하직원이 아닙니다. 예의를 지켜 주세요.”
“내가 도와주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요즘 언론에서 얼마나 시끄러운지 아세요? 정부 관료와 같이 있는 사진 몇 장이 찍히면 이미지 쇄신에 도움이 될 거 아닙니까.”
아직 언론에서 나를 물어뜯고 있나 보군.
그런데 외교부 차관이랑 사진을 찍으면 이미지가 좋아질 거라고?
자신을 과대평가해도 너무 과대평가하는 외교부 차관이었다.
“저 먼저 가 보겠습니다.”
나는 가볍게 묵례를 하곤 자리를 떠났다.
아까운 시간을 저런 사람을 위해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
푸틴의 임명식이 있던 날.
태우그룹 회장실에서는 장수영 태우건설 사장이 김태중 회장과 독대를 하고 있었다.
“회장님을 모신 지 벌써 25년이 넘었습니다. 그런 저를 정말 버리실 생각이십니까?”
“내가 자네를 왜 버리겠는가?”
“김민재 부회장이 태우건설로 보낸 인사 명령서는 저에게 사표를 쓰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흠, 나는 모르는 일일세. 김민재 부회장이 독단적으로 움직였나 보군.”
김태중 회장은 이미 모든 일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손자가 월권행위로 태우건설의 인사이동을 명했다는 것도.
그리고 장수영 사장이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도.
하지만 모르는 척을 했다.
지금까지 손자가 한 일은 한 번도 잘못된 적이 없었기에.
장수영 사장이 자신의 오른팔이었다고는 하지만, 앞으로 태우그룹을 이끌어 갈 손자와 척을 진다면 지켜 줄 수가 없었다.
“월권행위를 막아주십시오. 부회장이 마음대로 인사이동을 지시하면 사장인 제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벌써 태우건설 직원들이 저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내가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네. 자네가 직접 김민재 부회장과 결판을 내게나.”
“어떻게 저에게 이러실 수가 있으십니까? 제가 회장님을 위해 어떤 일까지 했는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건설사는 많은 자금이 흐르기 마련이었고.
출처를 알 수 없는 자금을 만들기에 최적화되어 있기도 했다.
그랬기에 정치 자금이 필요할 때마다 김태중 회장은 장수영 사장에게 부탁을 했었다.
“자네, 지금 나를 협박하는 겐가?”
“제가 어찌 감히 회장님을 협박하겠습니까? 그저 저의 수고를 알아 달라고 드린 말이었습니다.”
“이 사람아,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는가? 민재가 조만간 태우그룹의 총수가 될 터인데 내가 어찌 앞길을 막을 수 있겠느냔 말일세.”
“손자를 살리기 위해 저를 죽이시겠단 말씀이십니까?”
“왜 같이 살 방법은 생각하지 않는 겐가? 서로 조금만 머리를 숙이면 다 같이 살 수 있지 않겠는가?”
김태중 회장은 최대한 성격을 죽이며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호통을 크게 치고 싶었지만, 이미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장수영 사장에게 차마 그렇게 하진 못했다.
“……회장님의 뜻은 잘 알았습니다. 조만간 사표를 제출하겠습니다.”
“어허, 그래도 부회장과 이야기는 해 보고 마무리 지어야 하지 않겠나? 서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소통을 해 보면 답이 나올 걸세.”
“답은 이미 나와 있는 문제입니다. 김민재 부회장은 제가 태우건설에서 나가길 바라고 있습니다.”
장수영 사장이 이를 악물었다.
어금니가 부서지지 않을까 염려스러울 정도로 화를 억누르고 있는 그였다.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말게나.”
“이미 마음을 정했습니다. 저를 너무 탓하진 말아 주십시오.”
갑작스레 장수영 사장이 큰절을 올렸다.
그러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회장실을 빠져나왔다.
“단단히 마음이 상했나 보군. 저러다 무슨 사고라고 치지 않을지 걱정되는군.”
오른팔이 잘려 나간 고통을 느끼는 김 회장이었다.
하지만 이미 잘려 나간 팔이었기에 더는 붙잡진 않았다.
팔을 다시 붙인다고 해도 제 기능을 하진 못할 터이니.
***
러시아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워낙 고된 일정이었기에 오늘만큼은 회사가 아닌 집으로 향했다.
물론 집에 간다고 해서 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할아버지가 나를 기다리고 계셨으니까.
“러시아까지 다녀오느라 고생 많았다.”
“고생한 만큼 좋은 소식을 많이 가지고 왔습니다.”
“선물 보따리를 풀어 보거라. 뉴스에서도 너와 푸틴 대통령이 악수하는 모습을 꽤나 길게 잡아 주더구나.”
한국 기업가 중에서는 유일하게 임명식에 초대를 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미지 상승에 큰 도움이 되는 일은 아니었다.
지금의 러시아는 한국보다 더 어려운 국가였으니까.
“아주 괜찮은 제안을 받았습니다. 러시아 천연자원 개발에 동참해 달라고 하더군요.”
“태우건설에서 아주 좋아할 소식이구나.”
“대규모 공사가 곧 시작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태우자동차와 전자 공장을 러시아에 짓는다면 다양한 혜택을 제공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 내었습니다.”
“천연자원 개발에 대규모 공장까지. 어찌 선물을 받아 온 게 아니라 우리가 선물을 주고 온 것 같구나.”
할아버지가 걱정을 할 정도로 규모가 큰 사업들이었다.
확실히 외환위기 이후 공격적인 투자의 위험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계신 듯했다.
“러시아 경제가 어려우니 지금 투자를 해야 더 많은 이득을 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그렇긴 하다만, 지금 태우그룹의 자금력만으로는 힘들 것 같구나. 그렇다고 부채를 안고 사업을 할 정도로 매력적이지도 않고.”
“그래서 월가의 투자를 받아낼 생각입니다. 태우그룹과 월가 그리고 러시아 정부가 함께하면 위험성이 분산되지 않겠습니까?”
“흠, 그렇다면야 도전해 볼 만한 사업이 되겠구나.”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러다 갑자기 심각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한숨을 내쉬셨다.
“후우, 그런데 장수영 사장에게 못 할 짓을 했더구나.”
“인사이동 명령 말씀이십니까? 태우건설을 위한 인사이동 명령이었습니다.”
“그래도 장수영 사장과 충분한 협의를 거쳤어야지. 부회장이라고 해서 계열사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건 아니란다.”
“다른 계열사의 인사이동은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장수영 사장을 겨냥한 인사이동이 맞나 보구나. 꼭 그런 식으로 불명예를 안기면서 쫓아 내야겠더냐?”
할아버지의 심기가 상당히 불편해 보였다.
오른팔이었던 사람을 쫓아 내었으니 당연히 내가 감수해야 할 일이었다.
“태우건설을 그대로 뒀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막대한 부채로 그룹에게 큰 부담이 되었을 게 분명합니다. 장수영 사장은 스스로 그 책임을 지고 물러섰어야 했습니다.”
“네 덕분에 태우건설이 살아난 건 부정하지 않으마. 하지만 장수영 사장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어.”
“제가 부회장에 오르지 않았다면, 장수영 사장도 태우건설 사장 자리에 계속 남아 있었겠죠. 저를 부회장으로 올린 건 할아버지의 결정이셨습니다.”
할아버지가 천장을 바라보셨다.
내가 너무 공격적으로 나갔나?
여기서 한 템포 쉬어 줘야겠다.
“장수영 사장은 제가 따로 잘 챙기겠습니다. 퇴직금은 물론이고, 원한다면 하청업체 사장 자리까지 마련해 보겠습니다.”
“아니다. 괜히 긁어 부스럼만 생길 것 같구나. 그냥 두거라. 장수영 사장의 문제는 내가 모두 책임지마.”
할아버지가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셨다.
미안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새로운 태우그룹을 만들기 위해선 물갈이가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