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Third-Generation Heir of a Conglomerate RAW novel - Chapter (16)
독식하는 재벌 3세-16화(16/518)
16화. 칼춤(2)
김태중 회장은 새해 첫날부터 비행기에 올랐다.
베트남 하노이에 신축한 공장을 답사하기 위함이었고, 그의 옆에는 언제나처럼 김 실장이 보좌하고 있었다.
“김 실장, 우리 손자 녀석 참 기특하지 않은가?”
“공장부터 시작하고 싶다고 할지는 정말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올라와야 임원들이 무시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는 게지.”
태우그룹은 왕권 국가의 체제와 비슷했다.
핵심 정보를 김태중 회장이 독점하고 있었고, 중요 결정 또한 김 회장에 의해 정해졌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임원진의 힘이 약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지만 다음 회장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었다.
“사실 도련님의 경력이라면 핵심 부서에서 시작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건 물론이고, 월가의 투자회사에서 인턴 생활까지 했으니 웬만한 직원보다 더 스펙이 좋습니다.”
“일반 직원을 대상으로 하면 그렇겠지. 하지만 민재는 직원이 아니라 기업 오너가 될 아이야. 단순히 스펙만 좋다고 해서 오너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지.”
“그래서 조금 걱정은 됩니다. 민재 도련님이 너무 착하신 것 같습니다.”
“나도 그게 걱정이네. 좋은 것만 보고 자란 아이라 정글 같은 회사 생활에 잘 적응할지 모르겠네.”
아직 자신의 손자가 어떤 지옥을 견뎠는지 모르는 김 회장이었다.
그에게 손자는 그저 똑똑하고 착한 아이였고, 또래보다 조금 더 능력이 있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험한 공장 생활을 잘 견디기만 하신다면, 독심이 좀 길러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공장부터 시작하겠다는 걸 말리지 않았다네. 그런데 민재가 어느 공장을 가겠다고 하던가?”
“창원 공장을 갈 생각 같았습니다.”
“가까운 부평 쪽이 아니라 굳이 멀리 있는 창원 공장에 가려고 한다고?”
“그리고 창원 공장에서도 조금 떨어져 있는 작은 부품 생산 공장에 간다고 합니다.”
“메인 공장도 아니고 직원이 100명도 안 되는 작은 공장이라. 진짜 밑바닥을 제대로 배울 생각인가 보군.”
태우자동차는 대형 공장을 여럿 보유하고 있었다.
크게 보면, 준중형차를 생산하는 부평 공장, 소형차를 생산하는 창원 공장의 경우 협력업체로부터 부품을 공급받아 조립하는 공장이었다.
하지만 일부 부품은 자체 생산하기도 했고.
공장의 규모는 조립차 공장보다 작았고, 수익보다는 안정적인 완성차 생산을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장이었다.
“태우그룹에 속해 있다고는 하지만 중소기업처럼 운영되고 있는 공장입니다. 직접 현장을 경험하기 적당한 곳이긴 합니다.”
“민재가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그래도 부품 공장에 너무 오래 있게 하진 말게나.”
“도련님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본사에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그리고 너무 과하게 보호하진 말게나. 서로 부대끼고 지내야 태우그룹에 더 잘 스며들지 않겠나?”
“최소한의 보고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김민재를 걱정하는 김 회장과 실장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걱정해야 할 사람은 김민재가 아니라 공장의 임원들이었다.
* * *
“반갑습니다. 이번에 창원 부품 공장으로 입사하게 된 김민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1월 중순 나는 태우그룹에 입사하게 되었다.
2월에 시작되는 상반기 공채 시즌이었지만, 회장 손자인 내겐 공채 시즌이 따로 없었다.
당연히 사원으로 입사한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입사와 동시에 공장장을 비롯한 주요 임원들이 나를 맞이하기 위해 공장장실에서 사열과도 같은 대기를 하고 있었다.
“김민재 차장님 오셨습니까? 우리 공장으로 출근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서우태 공장장님 이야기는 할아버지에게 자주 들었습니다. 창원 공장을 세운 1등 공신 중 한 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회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허허허, 이거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공장장실의 분위기는 어색함 그 자체였다.
차장 직급으로 입사했긴 하지만 나는 신입이었다.
심지어 이제 23살밖에 되지 않은 핏덩어리와도 같은 신입.
하지만 임원들은 전부 내 눈치를 보며 억지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할아버지께서 현장의 중요성을 강조하셨고, 창원 부품 공장이야말로 현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많은 가르침 부탁드리겠습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공장장실로 찾아오셔도 됩니다. 그런데 조금 어색하군요.”
서 공장장이 말끝을 흐렸다.
언제까지 나를 김 차장님이라고 부르긴 그러니 편하게 말해도 되는지 운을 띄운 것이다.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흠흠, 그럼 김 차장이라고 해도 되겠죠?”
“더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그건 차차 하기로 하죠. 우선은 생산관리팀에 자리를 만들어 뒀어요. 며칠 동안은 따로 업무를 배정하지는 않을 테니 사무실 직원과 현장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공장과 친해지세요.”
“배려 감사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찾아서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허허, 그러지 않아도 돼요. 그냥 공장이 내 집이다 생각하고 마음 편히 있으세요. 양 대리가 공장 안내를 해 주게나. 우리 같은 노땅보다야 젊은 사람끼리 더 마음이 맞지 않겠나?”
20대 후반의 양 대리가 앞으로 나섰고.
나는 그를 따라 공장장실을 빠져나가 문을 닫았다.
그런데 문을 닫는 그 짧은 순간 표정이 확 바뀌는 임원의 얼굴을 보고야 말았다.
그들의 얼굴 옆에 떠올라 있는 상세 정보를 보니 저들의 얼굴이 바뀌는 이유가 이해가 갔다.
* * *
공장장실에 남아 있는 7명의 주요 임원.
그들은 회장 손자의 갑작스런 입사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에휴, 조용한 공장에 이게 웬 날벼락인지 모르겠습니다.] [사단장이 온 것도 아니고, 지난주부터 전 직원을 동원해 공장 구석구석을 청소했습니다.] [얼마나 있다가 가는지 아십니까? 공장 내부의 일을 매일 회장님에게 보고하지 않겠습니까?] [왜 하필 우리 공장입니까? 창원 1공장이나 부평 공장같이 큰 곳을 놔두고 구멍가게나 다름없는 우리 공장에 왜 왔답니까?]임원들의 하소연이 이어졌다.
그들을 다독이는 역할은 공장을 책임지고 있는 공장장이 맡았다.
“다들 너무 염려하지 마. 우리 공장을 시작으로 전국에 있는 공장을 뺑뺑이 시키고 본사로 불러들이려고 하는 것 같은데. 길어 봐야 3개월 짧으면 바로 다음 달이면 다른 공장으로 가지 않겠어?”
“무슨 문제가 생기지는 않겠습니까?”
“고작 23살이 뭘 할 수 있겠어? 저 나이에 장부를 보겠어? 생산 라인을 검사하겠어? 그냥 구경이나 하다 가는 거지.”
어느 공장이든 크고 작은 문제가 존재했다.
창원 부품 공장도 마찬가지였고, 회장 손자에게 들키지 않을까 걱정하는 임원도 있었다.
“자자! 너무 걱정 말고 그냥 하던 대로만 해. 양 대리가 전담 마크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매일같이 술을 이빠이 먹여서 다른 생각 못 하도록 하면 되지 않겠어?
“그럼 회식 일정을 제가 짜 보겠습니다. 오늘은 총무팀 내일은 금형팀 그리고 현장까지 이렇게 한 달 내내 회식 자리를 만들겠습니다.”
“회식비는 내 카드로 쏠 테니까. 돼지고기든 소고기든 왕창 먹이기만 하라고.”
나름의 계획을 세우는 임원진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계획을 세우기도 전에 벌써 움직이기 시작한 김민재였다.
* * *
양 대리와 함께 나는 공장 곳곳을 돌아다녔다.
회장 손자에다 차장 직급까지 달고 있으니 양 대리는 나를 상전 모시듯 예의를 지켰다.
“여기까지가 생산 공장입니다. 완성차 공장에 비하면 확실히 규모가 작습니다. 그리고 금형 판넬을 24시간 찍어 내서 소음도 상당합니다.”
“많이 시끄럽긴 하네요.”
“귀마개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고막이 상하곤 합니다.”
“그런데 공장 옆에는 뭐가 있나요?”
“아! 저긴 쓰레기장입니다. 프레스 기계로 찍고 나서 남은 짜투리 판넬이 쌓여 있습니다.”
쓰레기장에 가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나?
그런데 나는 굳이 쓰레기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고, 대형 트럭에 짜투리 판넬이 실리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짜투리 판넬을 고철장으로 보내나 보죠?”
“계약을 맺고 짜투리 판넬을 고철장에 처리하고 있습니다.”
마치 못 올 곳을 온 듯 내 팔을 잡아끄는 양 대리였다.
쓰레기장이 위험하니 나를 다른 곳으로 안내하려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미 여기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삥땅.
짜투리 판넬이라고 해서 돈이 안 될까?
일반 고철과 달리 자동차에 들어가는 판넬은 비싼 값에 거래된다.
이걸 헐값에 고철장에 넘기는 대신 공장 임원들이 뒷돈을 챙기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횡령으로 볼 수도 있는 행위.
나는 진작 이들의 횡령 혐의를 알고 있었다.
전생에 이런 횡령 혐의를 국세청, 경찰, 검찰에서 샅샅이 뒤졌었다.
그리고 창원 부품 공장에서는 이런 횡령 혐의가 10개가 넘는다는 게 밝혀졌다.
내가 회사 생활의 시작을 여기로 한 이유였다.
썩은 곳이 많아야 칼춤도 제대로 출 수 있지 않겠나.
“현장은 힘든 일이 참 많네요. 고철 처리는 생산부서에서 담당하고 있나요?”
“총무팀에서 담당하고 있습니다.”
“총무팀에서 고생이 많네요. 총무팀 사무실은 몇 층이죠?”
“3층에 있습니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공장의 구조는 간단했다.
사무실이 있는 건물 하나와 프레스 기기가 있는 공장이 2곳.
그리고 금형을 수리하는 간이 공장이 한 곳이었다.
사무실 1층은 생산팀이, 2층은 기술팀이 자리했고.
3층에는 공장장실과 함께 총무팀이 자리하고 있었다.
회계를 담당하는 총무팀이 공장장의 비서 역할까지 하도록 만들어진 구조였다.
“여기가 총무팀입니다. 부장님부터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나는 총무팀의 모든 인원과 악수를 나눴다.
그러는 한편 얼굴을 통해 상세 정보를 확인했다.
역시.
하나같이 특이사항에 횡령에 관련된 단어들이 적혀 있었다.
직급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들 횡령과 관련이 있었다.
특히나 총무팀 이 부장의 경우엔 가담한 횡령이 무려 8가지나 되었다.
“반갑습니다. 안 그래도 오늘 총무팀과 회식 자리를 마련해 뒀습니다. 시간이 되시면 참석 부탁드립니다.”
“당연히 참석해야죠. 오늘은 제가 쏘겠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남자가 쪼잔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제 카드로 시원하게 쏠 테니 관리직 직원 전부 불러 주세요.”
“역시 시원시원하십니다! 그럼 당직 인원만 빼고 전부 부르겠습니다.”
“이 동네에서 가장 비싼 집으로 예약해 주세요. 술도 든든히 준비해 주시고요.”
나는 호탕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곤 총무팀을 시작으로 관리직 전원과 악수를 나누며 돌아다닌 후 몰래 회사를 빠져나와 손바닥보다 더 큰 검은색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오늘 바로 시작해 주세요. 들키면 시끄러워지니 조심히 움직이세요.”
전화를 끊은 뒤 나는 공장으로 돌아갔고.
억지로 얼굴 근육을 움직여 순진한 척을 하며 직원들과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이런 연기는 회식 때까지 지속되었다.
“오늘 다 마시고 죽자고요! 공장장님 제가 한 잔 드리겠습니다.”
“우리 김 차장이 사회생활을 제대로 배웠구만!”
복숭아나무 밑에서 도원결의를 하는 것처럼.
나는 공장장을 비롯한 모든 임원과 회식 자리 위에서 아주 화기애애하게 서로의 잔을 채워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