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Third-Generation Heir of a Conglomerate RAW novel - Chapter (220)
독식하는 재벌 3세-220화(220/518)
220. 선택의 시간 (4)
한-러 자원협력위가 열렸다.
이번 협력위는 이전처럼 뜬구름만 잡는 회담이 아닌, 보다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사업을 중점으로 둔 회담이라고 언론에서 알려 왔다.
그도 그럴 것이 참석한 인원의 이름이 대단했다.
러시아 측에서는 장관, 에너지 기업 회장 등 실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참석했고.
한국 측에서도 그에 대응하기 위해 산업부 장관과 한전 사장 그리고 태우그룹 김태중 회장이 협력위에 참석했다.
그렇게 시작된 협력위.
모든 만남이 그렇듯 처음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회담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본론으로 넘어가자 서로의 이해관계가 부딪혔다.
“러시아에 매장된 석유만 800억 배럴가량이 되고, 천연가스도 1,600톤이 넘습니다! 한국처럼 지하자원이 없는 나라에 기회를 주겠다고 하는데, 왜 이리 소극적으로 나섭니까!”
“소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고 결정해야 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일본이나 중국으로 개발권을 넘길 수도 있습니다!”
“개발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무조건 참여는 하지만, 어느 규모로 시작을 해야 할지 논의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러시아 측에서는 강하게 나왔다.
산업부 장관도 강하게 맞대응을 하려고 했지만, 한국전력 이상우 사장이 장관을 만류했다.
한전의 미래가 달린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매년 적자폭이 늘어나고 있기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했고, 러시아 극동 지역 개발은 돌파구가 되기 충분한 곳이었다.
“자, 자! 너무 싸우지들 마시고, 상생 방안을 찾아봅시다. 어렵게 모신 손님 앞에서 추태를 부려서야 되겠습니까.”
“김태중 회장님께서는 어떤 묘안을 가지고 계십니까?”
김태중 회장에게 이목이 집중되었다.
산업부 장관이라고 하더라도 김태중 회장에게는 목소리를 높이지 못했다.
한때는 대통령의 스승이라고 불렸던 재계의 거인이기에 예의를 지켜야만 했다.
“먼 길을 오신 손님을 빈손으로 내보낼 순 없지 않겠습니까? 러시아 극동 지역 개발에 참여할지 아닐지 확답은 해 주어야겠지요.”
“한전은 당연히 참여할 계획입니다. 단지 한전의 자금력만으로는 부족한 사업이기에 투자금 모을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태우그룹에서도 참여하겠습니다. 그리고 태우그룹이 앞장서서 한국의 금융사는 물론이고, 미국 월가에서도 돈을 끌어다 오겠습니다.”
“태우그룹이 앞장서 주신다면, 무조건 뒤따라가겠습니다!”
통역을 통해 김태중 회장과 한전 이상우 사장의 의견을 전달받고 있는 러시아 측.
내용이 긍정적으로 흘러가자 미소를 지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확답만 해 주신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MOU를 체결하고 한국에 법인 혹은 지부를 설립해 원활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하겠습니다.”
“러시아에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오는데 산업부 장관님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흠흠, 한국 정부도 러시아와 에너지 협력 관계를 긴밀히 하는 방향으로 가길 원하고 있습니다.”
순풍을 탄 듯 대화가 이어졌다.
러시아 측에서는 극동 지역에 매장된 석유, 천연가스 그리고 광물의 정보를 오픈하며 적극적으로 어필을 했다.
한국 측에서는 입이 떡 벌어질 내용이었고.
한전의 이상구 사장은 당장이라도 러시아로 달려가 극동 지역을 개발할 기세를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순풍이 부는 건 여기까지.
러시아 측에서 조금은 무리한 조건을 내걸었다.
“한국에 지부를 세울 러시아 에너지 회사의 수가 상당합니다. 특히나 국영 기업인 가스프롬까지 한국에 지부를 설립할 계획입니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 서울에 자리를 잡았으면 합니다.”
“당연히 그렇게 하셔야죠. 한전에서 적극 나서 괜찮은 장소를 찾아보겠습니다.”
“제가 얘기를 들어보니 한전이 곧 외곽으로 이전된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그곳에 터를 잡고 싶습니다.”
“한전 본사에 지부를 세우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한전 본사 이전 문제는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습니다.”
갑작스런 조건에 당황하는 이상우 사장.
그 모습을 보면서도 러시아 측에서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헐값에 부지를 달라는 건 절대 아닙니다. 지금 가격의 2배를 드리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부지 문제는 저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정부의 허락이 필요하고, 정치권과 국민 여론이 이전을 받아들여야지만 처분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는 게 어떻겠어요?”
김태중 회장이 타이밍 좋게 끼어들었다.
모두가 그에게 집중했고, 김태중 회장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 들었다.
“한전 부지 이전 문제야 정치권에서 해결할 문제지만, 마냥 해결해 달라고 던져 놓아서는 해결이 안 될 문제기도 하지요. 그러니 한전 부지를 경매 입찰을 통해 한국 기업에게 판매하고, 부지를 구입한 기업은 러시아 에너지 회사의 법인 혹은 지부가 들어올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하자는 초안을 만들어 정치권에 넘기면 고민이 짧아지지 않겠어요?”
“경매 입찰을 통해 부지를 판매한다면 판매 금액이 높아지긴 하겠지만, 한전 본사를 이전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지 않습니까. 한전은 다른 지역으로 이전할 생각이 없습니다.”
한전이 이전한다면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옮겨 갈 가능성이 높았다.
정부는 물론이고 정치권에서도 지역 균등 발전을 원하고 있었기에 이전이 성사되는 순간 서울에서 떠나야만 했다.
그런데 누가 서울을 떠나고 싶어 하겠나?
한전을 다니는 직원 대부분이 서울에 터전을 잡아 두었을 터.
지역으로 이전한다고 하면 가정 전체가 이사를 준비하거나 회사를 그만두는 것 중에 선택을 해야 했다.
그러니 이상우 사장 입장에서는 한전 본사 이전을 막고 싶어 했다.
“어허! 국가 발전보다 무엇이 더 중하단 말입니까! 한전이 서울에 꼭 남아 있어야 국가가 발전할 수 있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조금의 불편함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아직 국민적인 여론도 형성되어 있지 않고, 한전 직원의 의사도 확인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확인해 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다른 부지를 알아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빌딩 전체를 임대할 수 있는 곳을 한전에서 알아봐 드리겠습니다.”
“지금 러시아의 자존심인 에너지 기업들보고 세를 들어 살라는 말씀이십니까? 이는 러시아를 업신여긴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러시아 측 인사가 강하게 말을 뱉었다.
얼굴까지 붉히며 자존심 상했다는 걸 표현하고 있었기에 이상우 사장은 입을 닫아야만 했다.
“우선은 한국과 러시아의 에너지 개발 협력을 큰 틀에서 합의하고, 한전 부지 문제는 정치권에 공을 돌리는 것으로 하지요. 장관님과 이상우 사장님의 생각은 어떠한지요.”
“정부와 산업부에서는 동의합니다.”
“……한전에서도 동의하겠습니다. 하지만 국민 여론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절대 이전할 수 없습니다.”
“그 문제는 정치권에서 알아서 하겠지요.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대한민국의 발전이 가장 중요합니다. 어떤 선택이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는지 대승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한전에서 이렇게 소극적으로 나오면 태우그룹에서도 이번 사업을 처음부터 재검토할 수밖에 없습니다!”
김태중 회장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그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이상우 사장은 마치 죄인처럼 김태중 회장의 뒷모습을 고개를 숙인 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 *
할아버지가 굳은 얼굴로 회사로 돌아오셨다.
나는 얼른 회장실로 달려가 상황을 여쭈어보았다.
“회담이 원하는 대로 진행되지 않았습니까?”
“아우, 나이를 먹으니 얼굴 근육을 내 마음대로 움직이기도 힘들구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오느라 구안와사가 올 것 같구나.”
입 근육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는 할아버지.
그러곤 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다 연기셨어요?”
“빼꼼한 놈들을 속여 먹으려면 이 정도 연기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 러시아 측에서 너무 성급하게 한전 부지를 달라고 하기에 괜히 심각한 척 연기를 하며 상황을 이끌어 갔단다.”
“한전에서는 절대 본사를 이전하지 않겠다고 나오죠?”
“어느 기업이 서울을 떠나고 싶어 하겠느냐. 한전도 마찬가지겠지. 그래도 한전은 공기업이니 정치권에서 원하면 이전을 해야만 하지 않겠느냐.”
“이제 정치권이 움직일 차례군요. 최재석 의원과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보겠습니다.”
국가 균등 발전.
이것만 강조해도 최재석 의원을 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었다.
국가 발전을 위해서라면 무리한 일도 하겠다고 약속한 최재석 의원이었고, 그를 통하면 정치권의 핵이라 불리는 국민경제당을 움직일 수 있었다.
“정치권을 움직인다고 해도 한전 부지가 이전되려면 몇 년은 더 걸릴지 모른단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러시아와의 에너지 협력 사업이 성공할지도 의문이구나.”
“사업이야 성공할 수도 있고, 좌초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 과정에서 한전 부지만 사들이기만 하면 우리야 사업의 결과는 크게 중요하지 않죠.”
“이런 몹쓸 놈! 어디서 그런 못된 짓을 배웠는지.”
나는 빤히 할아버지를 바라봤다.
내가 누굴 보고 이런 걸 배웠겠는가?
“한전이 이전하기 전에 우선 한전 부지의 권리부터 확보하는 데 중점을 두겠습니다. 이전이야 천천히 해도 되지만, 우선은 우리 땅으로 만들어 둬야 마음이 편하지 않겠습니까.”
“한전에서 부지를 판다고 해도 끝나는 게 아니다. 공개 입찰이 들어가면 다른 기업에서도 그 땅을 노릴 것이 아니겠느냐.”
“한전 부지를 살 수 있는 기업이 몇 곳이나 되겠습니까? 사전에 잘 조율하면 됩니다. 그리고 조율이 안 되면 다른 기업이 따라올 수 없는 금액으로 찍어 누르면 그만이기도 하죠.”
“에잇, 너랑 얘기하면 지금까지 내가 쌓아 온 경제관념이 흔들리는구나. 그만 나불거리고 최재석 의원이나 만나고 오거라.”
말씀은 그리하셔도 할아버지도 한전 부지에 욕심을 내고 계셨다.
그렇기에 얼른 최재석 의원을 만나 한전 본사 이전을 정치권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길 원하셨다.
할아버지가 원하시는 대로 해 드려야지.
나는 얼른 최재석 의원과 약속을 잡았고, 강 대위의 도움을 받아 조용한 곳에서 해가 지기 전에 최재석 의원을 만날 수 있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아주 바쁘게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IIT 한국 캠퍼스 유치 문제는 빠르면 올해 안에 가능할 것 같습니다. 여당과 야당에서 모두 긍정적으로 나오고 있고, 국민 여론도 그렇게 나쁘지 않은 상황입니다.”
“수도 이전 문제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서 IIT 한국 유치 문제는 조용히 묻어가는 것 같군요.”
정치권은 표가 되는 일에 집중하기 마련이었다.
물론 IIT 한국 유치도 교육 문제였기에 쉽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었지만, 내가 사전 작업을 열심히 해 두었기에 크게 문제 되지 않고 있었다.
“수도 이전 문제 때문에 여의도가 너무 시끄럽습니다. 여당이고 야당이고 타협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헌법 재판소 판결이 나오면 최재석 의원님이 만든 타협안을 다시 찾게 될 겁니다.”
“안 그래도 벌써 제가 만든 타협안을 다시 논의하자는 이야기가 조용히 나오고 있긴 합니다.”
“혹시 타협안에 한 가지 내용만 더 추가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내용을 말씀이십니까?”
“수도 이전 문제는 결국 지역 균등 발전을 위해서 아니겠습니까? 지역 균등 발전을 위해선 행정 부처뿐만 아니라 한전과 같은 공기업의 본사도 지역으로 이전해야 더 좋지 않겠습니까?”
완벽한 명분이었다.
공기업의 본사가 굳이 서울에 있을 필요는 없었고.
회귀 전에도 이런 이유로 공기업 여러 곳이 지역으로 본사를 이전하기도 했었다.
그렇기에 최재석 의원도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의견에 공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