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Third-Generation Heir of a Conglomerate RAW novel - Chapter (25)
독식하는 재벌 3세-25화(25/518)
25화. 남의 돈(2)
다음 날.
태우그룹 감사팀 게시판에는 본부장의 이름으로 또 한 장의 종이가 내걸렸다.
혹시나 승진 관련 자료일까 다가가 보던 직원들은 승진보다 더 충격적인 내용에 너 나 할 것 없이 눈을 비볐다.
“성과금 제도? 저게 뭐야?”
“횡령을 잡아내면 10퍼센트를 보너스로 준다는 거잖아. 정확히는 환수금의 10퍼센트니까 그렇게 크진 않겠지만.”
“창원 부품 공장 이야기 못 들었어? 횡령금이 최소 50억이라잖아. 50억의 10퍼센트면 얼마야? 5억?!”
감사팀은 조용한 곳이었다.
태우그룹 내부 일을 감사하는 곳이니 모든 일을 비밀리에 처리해야만 했다.
하지만 종이 한 장에 감사팀 직원의 입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내부 고발도 확실히 보호해 주겠다는데? 저게 말이 되는 소리야?”
“저 말을 믿으면 바보지. 내부 고발자의 말로는 파멸밖에 더 있냐?”
“그런데 사실 내부 고발은 아니지 않아? 감사팀 내부 비리를 본부장에게 보고하는 거면.”
“하긴 태우그룹 차기 회장이 되실 분의 라인에 들어갈 기회긴 하겠네.”
“그리고 보상도 빵빵하지 않냐? 감사팀 내부 비리를 고발할 경우엔 성과금 30퍼센트에 인사고과에서 무조건 최우수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한참이나 웅성거림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감사팀을 장악하고 있는 정 부장이 등장하는 순간 웅성거림이 멈추었다.
“이건 뭐야? 우릴 범죄자로 보는 거야 뭐야. 감사팀 내부 비리라니! 오늘은 진짜 못 참아!”
“정 부장님 참으세요. 어제도 본부장실로 쳐들어갔는데 오늘까지 그러시면 어쩌십니까.”
“이딴 게 게시판에 붙어 있는데 그럼 어떻게 참아!”
“휴우. 오늘은 제가 가서 따지고 오겠습니다. 정 부장님도 잘 아시잖아요. 제가 한번 따지고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지.”
“흠흠, 우 차장이 나선다면야.”
정 부장이 한발 뒤로 물러섰다.
우 차장의 아가리가 얼마나 독한지 정 부장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번 물어뜯으면 상대가 포기하기 전까진 절대 놓지 않는다고 해서 ‘독사’라고 불리는 사람이 우 차장이었다.
* * *
‘이제 슬슬 올 때가 됐는데.’
게시판에 성과금 제도 관련 내용을 붙인 건 분란을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서로를 의심하라고 만든 수였고, 당연히 정 부장이 난리를 칠 걸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본부장실을 찾아온 건 우 차장이었다.
이건 내 예상 밖이긴 한데. 오히려 좋아!
“성과금 제도 때문에 오셨나요?”
“분명 의도는 좋은 제도지만, 감사팀 분열을 촉발하는 제도기도 합니다. 재고 부탁드립니다.”
“튼튼한 감사팀이라는 성벽이 성과금 제도 때문에 무너질 수 있다는 거군요.”
“감사팀은 언제나 견고한 성벽으로 남아야 합니다. 그래야 태우그룹을 지킬 수 있습니다.”
감사팀이 태우그룹을 지킨다?
뭐 제대로 돌아간다면 틀린 말은 아니겠다만,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지금 감사팀은 태우그룹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비리를 저지른 자신의 편만 지키는 성벽이었다.
“태우그룹은 성벽 하나 사라진다고 해서 무너지지 않아요. 그리고 성벽이 무너지면 그 자리에 더 큰 성벽을 세울 기회가 생기지 않겠어요?”
“무슨 말씀이신지?”
“감사팀에는 임원이 없죠? 부장이 최고 직급이죠?”
“본부장님을 제외하면, 10년 넘게 부장이 최고 직급이었습니다.”
감사팀은 임원을 두지 않는다.
막강한 힘을 가졌는데 직급까지 높아져 버리면, 회사를 좌지우지할 권력이 생겨 버리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직급을 낮추는 곳이 감사팀이었다.
군대에서 헌병이 그러하듯이.
“나는 감사팀의 힘을 더 강하게 만들 겁니다. 임원 승진 하려면 다른 부서로 인사 이동해서 임원을 다는 관행은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죠.”
“감사팀의 구조를 개혁하실 계획이십니까?”
“우 차장도 이사 명함은 한번 파 봐야 하지 않겠어요?”
“가능하겠습니까? 다른 부서에서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
이번엔 반대하지 않는 우 차장이었다.
승진 기회가 생기는 일인데 반대할 리가 없지.
“그래서 전제 조건이 붙는 거죠.”
“감사팀이 한 번 무너져 내리는 것이 전제 조건입니까?”
“뭐 그냥 그렇다는 거죠. 없는 죄를 만들거나 하지는 않을 겁니다. 이제 그만 나가 보세요.”
우 차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본부장실을 나갔다.
얼굴만 봐도 내가 의심의 씨앗을 제대로 심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성과금 제도, 내부 고발 그리고 임원 승진까지.
이 모든 건 비리라는 유대감을 가진 감사팀을 분열시키기 위한 나의 노력이었다.
“윤 차장 불러 주세요.”
비서를 통해 윤 차장을 불렀다.
회사에서 밤을 지샜는지 눈이 충혈되어 있는 윤 차장이 본부장실로 들어섰다.
“어떻게 일은 잘되어 가고 있나요?”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은 무언가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강 대위가 가지고 있던 자료가 꽤 도움이 되었나 보군요.”
나는 윤 차장에게 강 대위를 소개해 주었다.
하는 일이 비슷한 둘이었다.
단지 윤 차장은 그룹 내에서 감사 업무를 진행했고, 강 대위는 외부에서 움직였다.
내부에 있으면 그만큼 내부 자료를 얻기 쉬웠고.
외부에 있으면 회사 눈치 보지 않고 일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러니 윤 차장과 강 대위가 같이 움직이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었다.
“정말 많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창원 공장의 비리가 정말 심각하다는 걸 하루 만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심각하죠?”
“창원 부품 공장에서 일어났던 일이 창원 공장에서도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협력업체에게 뒷돈을 받고 계약을 하는 건 당연하고, 부품을 과다 구매해서 페이백을 받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심각한 건 채용비리였습니다.”
대기업 공장 중에 채용 비리가 없는 곳이 있을까?
학업 성적도 자격증도 없이 단지 뇌물만 주면 고연봉 직장을 얻을 수 있다는데 누가 지갑을 열지 않겠나.
“채용 비리가 심각한 건 금액 때문인가요?”
“최소 2천만 원부터 시작한다고 합니다. 성적 같은 조건이 맞지 않는 경우엔 최대 4천만 원까지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1년에 50명만 그런 식으로 채용해도 10억 원이 넘겠군요.”
“단순히 돈만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게 채용된 이들은 파벌처럼 움직입니다.”
“뇌물이라는 약점이 잡혔으니 말 잘 듣는 개가 되었나 보네요.”
“그들은 이 상무의 친위대처럼 행동하고 있으며, 노조까지 좌지우지하고 있습니다.”
“노조 간부까지 이 상무와 한편인가요?”
“이 상무는 채용 비리로 받은 뇌물 절반을 노조 간부들에게 뿌리는 것 같습니다.”
이 상무는 참 대단한 사람이다.
노조까지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여러 겹의 방패를 두르고 있다.
더 대단한 게 뭔지 아나?
전생에 작성한 살생부 명단에 이 상무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전생에는 창원 공장 공장장이 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알고 있었다.
경찰과 검찰이 그렇게 발표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공장장은 그저 허수아비에 불과했고, 이 상무가 뒤에서 모든 것을 조종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생에서 아무런 조사도 받지 않았다?
명동 사채 시장의 4인방이라는 사촌의 힘까지 사용했다는 뜻이다.
아무리 피가 섞인 사촌지간이라고 해도 그냥 도와줬을 리가 없다.
창원 공장에서 나오는 돈 일부를 상납하고 있거나, 아니면 이 상무를 조종하고 있거나.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창원 공장 공장장은 뭘 하고 있었나 모르겠네요. 그래도 창립 멤버 중 한 명인데.”
“박권흠 공장장은 이빨 빠진 호랑이입니다. 서류를 보는 시간보다 공장에서 키우는 개를 보살피는 시간이 더 많다고 합니다.”
“우선 박 공장장부터 만나 봐야겠군요. 적당한 이유를 만들어서 약속을 잡아 주세요.”
“제가 움직이면 감사팀에서 알게 됩니다.”
“상관없어요. 이번 만남은 진짜 다른 이유는 없으니까요. 그냥 순수한 제 호기심 때문입니다. 사람이 얼마나 망가질 수 있는지 보고 싶어서요.”
* * *
이틀 후.
박 공장장이 서울로 올라왔다.
나는 그를 대접하기 위해 유명 호텔 중식당을 예약해 두었고, 감사팀 본부장이 아닌 회장 손자로서 그를 대했다.
“할아버지에게 정말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제 기저귀까지 갈아 주신 분이시라고.”
“허허, 회장님은 뭐 그런 말씀까지 다 하셨나 모르겠어. 뭐 틀린 말은 아니긴 하지. 내가 자네 똥 기저귀도 갈아 주고 업고 다니기까지 했었지.”
한때는 할아버지의 옆을 차지했던 박 공장장이었다.
그랬던 사람이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내 어린 시절을 알고 있었다.
그가 내 얼굴을 보며 추억을 되새기고 있을 때, 나는 상세 정보를 확인했다.
‘확실히 할아버지가 옆에 두신 이유가 있었어.’
상당히 뛰어난 업무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박 공장장이었다.
모든 능력이 그렇겠지만, 업무 능력 또한 사용하지 않으면 감소하기 마련이었다.
공장에서 허수아비처럼 지내고 있었으니 박 공장장의 업무 능력도 많이 감소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수한 업무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 사람이 왜 이 상무 같은 사람을 못 본 척하고 있을까?
“창원에 내려갔을 때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예상치 못한 사건이 터져서 시간이 나지 않았습니다.”
“서 공장장 사건 말인가? 참 그 사람도 욕심이 많은 사람이야. 앵간히 했어야지.”
“그럼 말리시지 그러셨습니까?”
“…… 내가 말한다고 듣기야 하겠나?”
의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박 공장장의 목소리였다.
나는 할아버지에게서 박 공장장의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 누구보다 열정적인 사람, 논과 밭뿐이었던 창원에 내려가 창원 공장을 만들었던 사람.
할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열정이 가득했던 사람인데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은 껍데기만 남아 있었다.
“공장장님, 제가 감사팀에 들어가서 보니 창원 공장이 참 이상했습니다.”
“그래서 자네가 바꿀 생각인가? 불가능한 일에 괜히 시간 투자하지 말게나.”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자네가 회장 자리에 앉는다면 모를까. 그 전에는 아무 소용 없는 일이야.”
분명 무언가 있다.
박 공장장이 껍데기만 남게 된 사연이 더욱 궁금해졌고, 나는 의심되는 사람이 한 명 떠올랐다.
“혹시 할아버지 때문에 그러십니까?”
“회장님이라고 창원 공장 상황을 모를까? 창원 공장이 이렇게 된 건 회장님의 무관심 때문이라고 봐야겠지.”
역시나 우리 할아버지가 문제였던가?
그룹을 키우는 데는 최고의 능력을 가진 할아버지셨지만, 관리 능력은 다소 부족한 분이시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왜 창원 공장에 관심을 두지 않으시나요?”
“참 오래된 이야기지. 벌써 10년 전인가? 회장님은 창원 공장을 정말 만드시고 싶어 하셨다네. 그런데 공장 하나 만드는 데 한두 푼이 들겠나? 은행에서는 돈을 안 빌려주겠다고 하지 그렇다고 그룹에 쌓인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사채에 손을 대셨습니까?”
“창원 공장은 명동 사채꾼들의 돈으로 지어졌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
이제야 상황이 그려졌다.
사채꾼의 사촌인 이 상무가 창원 공장을 지배하고 있는 이유도.
“창원 공장의 차입금을 다 갚기 전까진 할아버지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내가 몇 번이나 차입금을 갚자고 말씀드렸었다네. 그런데 회장님은 돈이 생기면 새로운 공장을 짓거나 해외법인을 만드셨지.”
박 공장장의 무기력함은 결국 할아버지 때문이었다.
그에게는 자식과도 같은 창원 공장을 사채꾼에게 빼앗긴 셈이었다.
그러니 어떻게 의욕이 생기겠나? 지금까지 창원 공장에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