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Third-Generation Heir of a Conglomerate RAW novel - Chapter (257)
독식하는 재벌 3세-257화(257/518)
257. 눈에는 눈 (1)
며칠 후.
한 팀장이 오랜만에 한국 땅을 밟았다.
원래라면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끝나면 그를 불러들일 생각이었지만, KIKO 사태로 인해 조금 앞당겨졌다.
“한창 바쁜 시기에 한국으로 불러서 미안하군요.”
“아닙니다. 라잔을 비롯한 전문가들 덕분에 할 일이 많이 줄었습니다. 24시간 쉬지도 않고 자료를 분석하고 있는 그들 덕분에 요즘은 정시에 퇴근하고 있었습니다.”
강 대위의 사무실에서 만난 한 팀장.
확실히 얼굴이 많이 좋아져 있었다.
미국에서 봤을 때만 해도 사람이라기보단 미라나 좀비에 가까운 몰골이었지만, 지금은 혈색을 되찾은 상태였다.
“지금 당장 미국 부동산 버블이 터지진 않을 테고, 그동안 재미난 일 하나를 해 주셔야겠어요.”
“대표님이 시키는 일이라면 뭐든지 성실히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특히나 한국에서 하는 일이라면 더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제가 약속드렸죠?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만 끝나면 태우증권 사장 자리에 앉혀 드리겠다고.”
“당연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약속 때문에 지금까지 과로사를 하지 않고 버티고 있습니다.”
한 팀장의 눈이 불타고 있었다.
고향이라고 볼 수 있는 태우증권으로 금의환향하겠다는 각오가 대단했다.
“태우증권으로 돌아오려면 그래도 한국 금융권에서도 이름을 좀 날려야 하지 않겠어요?”
“기회만 주신다면 확실히 이름을 날려 보겠습니다.”
“한국 금융권에서 KIKO 파생 상품을 팔고 있더군요. 그것도 한국 중소 수출 기업들을 대상으로 말이죠.”
한 팀장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KIKO 상품을 일본 기업에 직접 판 그였고, 그 기업들이 어떤 꼴이 되었는지 잘 알고 있기에 나오는 헛웃음이었다.
“허! 우리가 일본에서 팔았던 파생 상품을 말씀이십니까? 그건 완전히 도박에 가까운 상품입니다. 안정성을 중시하는 은행에서 건드릴 상품이 아닙니다.”
“월가에서는 서브 프라임 파생 상품도 파는데 한국이라고 해서 다르겠어요?”
“그렇긴 합니다. 은행권도 결국은 돈장사를 하는 곳이고, 돈이 된다면 남이 피해를 입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곳이라는 걸 잠시 잊었습니다.”
태우증권 생활보다 월가에서 더 오래 일한 한 팀장이었다.
금융계가 피도 눈물도 없는 곳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지금의 상황을 금방 이해했다.
“KIKO 상품을 처음 만들어 판 사람이 우리 아닙니까? 그러니 정리도 우리가 직접 해야겠죠?”
“어떻게 정리하면 되겠습니까?”
“KIKO 상품을 구입한 중소기업 사장 명단을 드리죠. 그들을 만나 은행권에 KIKO 관련 보험 상품 출시를 압박해 보세요.”
“은행권에도 책임을 지우시겠다는 말씀이시군요.”
KIKO는 일종의 환율 투기 상품이었다.
원달러 환율에 따라 가입자가 수익을 얻거나 손해를 보거나 하는 구조였고.
그 과정에서 은행권은 중간 수수료만 받아먹는 일종의 제삼자와 마찬가지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KIKO 관련 보험 상품이 생긴다면?
환율이 급상승하게 되면, 은행권에서 막대한 보험금을 가입자에게 내놓는 구조로 바뀌게 된다.
쉽게 말해.
지금의 은행권은 딜러의 위치에 있지만.
보험 상품이 출시되는 순간 딜러에서 내려와 도박꾼이 된다는 뜻이었다.
딜러야 도박판의 승자가 누가 되든 상관이 없지만, 도박꾼이 되는 순간 승자 혹은 패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금융권도 선진 금융 기술의 맛을 봐야 하지 않겠어요?”
“월가에서 배운 그 맛을 고스란히 맛보여 주겠습니다. 그리고 KIKO를 우리가 만들었기에 어떻게 공략해야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조만간 태우그룹 산하 중소기업 간담회가 열릴 거예요. 거기서 특별 강사로 초청할 테니 잘 한번 움직여 보세요.”
“조만간 좋은 소식을 보고 올리겠습니다.”
자신만만한 한 팀장.
결코 자만은 아니었다.
KIKO 파생상품을 최초로 만든 사람이었고, 이미 여러 번 적용까지 한 그였기에 가능한 자신감이었다.
* * *
간담회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태우그룹 본사에서 진행된 간담회에는 많은 중소기업 대표가 참석했고.
나는 간담회의 첫인사를 맡아 이번 간담회가 꽤 중요한 자리임을 각인시켜 주었다.
물론 첫인사만 하고는 뒤로 빠졌고, 나머지 일을 한 팀장에게 맡겼다.
4시간 정도가 지났을 무렵.
간담회가 끝났는지 한 팀장으로부터 연락이 왔고, 우린 각자의 차를 타고 강 대위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어떻게, 중소기업 대표들을 잘 구슬렸나요?”
“쉽지 않았습니다. KIKO의 위험성을 잘 설명하긴 했지만, 보험 상품에 가입하는데 드는 자금을 부담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보험 상품 가입 비용과 매월 내는 보험료를 제가 전적으로 부담하기로 했습니다. 그 대신 보험료를 받게 되면 60%를 제가 먹기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역시 한 팀장이었다.
내가 굳이 나서거나 조언하지 않아도 알아서 방법을 찾았다.
그의 능력 자체가 뛰어나기도 했고, 나와 오랜 시간 같이 일을 했기에 내가 원하는 일 처리 방식을 잘 알고 있었다.
“앞으로 몇 차례 더 간담회를 진행할 겁니다. 그들까지 전부 다 설득해서 보험 가입을 권유하세요.”
“모든 비용을 제가 부담하기로 했으니 보험 가입이야 어렵지 않지만, 은행권에서 보험 상품을 출시해야 가입할 수가 있습니다.”
“은행권이야 마다할 이유가 있겠어요? 보험 상품을 만들면 수백 명의 중소기업 사장이 알아서 가입해 주겠다는데.”
“하긴 수수료를 얼마 받자고 KIKO 파생 상품도 만들어 팔았는데 그보다 더 돈이 되는 보험료를 받기 위해서라면 하루아침 사이에도 새로운 보험 상품을 만들어 낼 것 같긴 합니다.”
이제 은행권이 도박판 선수로 참가할 차례가 되었다.
한 팀장이 나서는 순간 은행권이 딜러에서 도박꾼으로 내려오는 건 일도 아니었고.
남은 건 도박판의 판돈을 얼마로 책정하느냐 뿐.
만약 은행권에서 과하게 욕심을 낸다면?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월가의 투자은행들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꼴이 될 터였다.
* * *
신화은행 본점 VIP 응접실.
한 팀장이 여유로운 자세로 소파에 앉아 신화은행 정태섭 부행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태우증권에 계시다가 월가 투자회사에서 10년가량 일하셨군요. 그런데 어쩐 일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정태섭 부행장님과 긴히 이야기드릴 사업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별 중의 별.
은행 부행장을 칭하는 말이었고.
그만큼 은행에서 엄청난 권력을 지니고 있는 자리가 부행장이었다.
은행장 바로 아래 2인자의 자리였고, 금융 상품 개발부터 실질적인 사업을 담당하는 자리기도 했다.
그런 부행장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 팀장 또한 적지 않은 경력을 지니고 있었다.
월가의 투자회사에서 임원급으로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부행장과의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월가의 뱅커였던 분이 사업 이야기를 꺼내시니 관심이 생기는군요.”
“KIKO 파생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KIKO 관련 보험 상품은 판매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파생 상품 보험을 만들자는 말씀이십니까? 흠, 만들지 못할 건 없지만, 누가 가입을 하려고 하겠습니까?”
정태섭 부행장이 콧방귀를 꼈다.
월가에서 선진 금융 기술을 배웠다는 사람이 자신을 찾아왔길래 어렵사리 시간을 냈다.
그런데 고작 파생 상품 관련 보험이라니.
물론 만들어 팔 수 있으면 좋긴 했다. 이중으로 수수료 장사를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누가 그런 보험에 가입하겠는가?
화재 보험 하나를 팔려고 해도 애걸복걸을 해야 하는 판국에.
“저는 입으로만 떠들지 않습니다. 신화은행에서 KIKO 상품을 구입한 중소기업 사장들의 동의서를 받아 왔습니다. 신화은행에서 KIKO 보험 상품을 출시하면 모두 가입하겠다는 동의서입니다.”
“···정말이십니까?”
한 팀장은 가방에서 다량의 동의서를 꺼내 보여 주었다.
동의서를 확인한 부행장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좋습니다! 이번 주 내로 KIKO 보험 상품을 출시할 수 있도록 해 보겠습니다.”
“말이 아주 잘 통하시는 분이시군요. 그리고 보험 상품 출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초안을 만들어 봤습니다.”
한 팀장은 보험 상품 초안까지 내밀었다.
초안의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1. 3년 약정의 보험을 체결한다.
2. 환율이 지금보다 60% 이상 상승하면, KIKO 파생 상품 금액의 10배를 보험금으로 지불한다.
3. 그 대신 보험 가입자는 매달 보험료로 KIKO 파생 상품 금액의 3%를 지불한다.
“흠, 10배나 되는 보험금은 조금 부담스럽군요.”
“매달 보험료로 3%입니다! 신화은행에서 KIKO 파생상품으로 판매한 금액이 5,000억 원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매달 보험료로만 150억 원의 수익이 생기는 겁니다. 그 정도 수익을 얻으려면 보험금이 10배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매달 150억 원의 수익.
부행장이 입맛을 다셨다.
확실히 군침이 도는 금액이긴 했다.
“그래도 10배는 조금 부담스럽군요.”
“환율이 60%나 상승해야 보험 조건이 발동됩니다. 그런 일이 생기실 거라고 보십니까?”
“원달러 환율은 이미 안정권에 들어섰습니다. 오히려 환율이 하락하면 하락했지 상승할 가능성은 없다고 봅니다. 게다가 60%나 상승? IMF가 다시 오지 않는 한 불가능한 수치죠.”
“그런데 뭘 고민하십니까? 이보다 더 안전하면서 거액의 수익을 볼 수 있는 상품이 어디 있겠습니까?”
부행장은 익숙함을 느꼈다.
자신들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KIKO 파생 상품을 판매할 때 했던 말을 되돌려 받고 있었다.
“직원들과 모여 회의를 한 후에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릴 내용이 있습니다. 만약 이 조건대로 보험 상품이 출시되지 않는다면, 제가 대리인 자격으로 있는 회사 모두가 KIKO 파생 상품을 환불 혹은 취소하겠다고 합니다.”
“뭐, 뭐요······?”
5천억 원의 상품이 동시에 환불 처리된다?
이는 은행장을 노리고 있는 정태섭 부행장의 커리어 악영향을 끼치는 일이었다.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제가 바라는 건 많지 않습니다. 보험료의 1%만 수수료로 저에게 주시면 됩니다. 정말 좋은 조건이지 않습니까?”
“하.”
정태섭 부행장이 미소를 지었다.
월가의 놈들이 하이에나가 따로 없다고 하더니.
결국 저놈도 자신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중소기업 사장을 등쳐 먹고 있는 중이었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다른 꿍꿍이가 아니라 거간꾼 행세를 위해 이러는 거라면 이해가 갔다.
“최대한 초안 그대로 보험 상품을 출시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또 새로운 상품을 기획하게 된다면, 꼭 부행장님에게 먼저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흠흠, 굳이 저를 찾아오지 마시고, 실무진에게 연락을 넣어 놓겠습니다. 그편이 더 빠르게 소통이 될 겁니다.”
한 팀장이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정태섭 부행장은 모른 척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소기업이나 등쳐 먹는 하이에나의 손을 잡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한 팀장이 속으로 비웃음을 날렸다.
지금 누가 누굴 벌레 보듯이 보는 거지?
그 높은 콧대가 언제까지 유지되나 보자고.
끝까지 미소를 유지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한 팀장.
그는 뒤돌아 창가를 바라보고 있는 정태섭 부행장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나서야 문밖으로 나갔다.
마치 먹잇감을 기억하겠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