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Third-Generation Heir of a Conglomerate RAW novel - Chapter (275)
독식하는 재벌 3세-275화(275/518)
275. 난 아직 배고프다 (5)
청와대는 참 폐쇄적인 공간이었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국가였기에 어쩔 수 없다곤 하지만, 마치 요새 안에 만들어진 건물처럼 보였다.
세상과 단절된 듯한 청와대.
그렇기에 청와대에 처음 오는 사람은 기가 죽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청와대보다 더 고립된 공간도 많이 가 봤으니까.
미국의 백악관, 러시아의 크렘린까지.
그렇기에 거침없는 걸음으로 간담회 장소로 이동할 수 있었다.
“반갑습니다. 대통령실장 우익준입니다. 드디어 태우그룹 총수 얼굴을 보게 되는군요. 김태중 회장과도 몇 번이나 만나자고 연락을 했는데 그새 회장직을 내려놓고 베트남으로 가 버렸습니다.”
“할아버지의 연세가 적지 않아 그러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제가 회장직을 맡게 되었으니 자주 얼굴을 뵙고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대통령실장 우익준.
이번 정권의 실질적인 2인자라고 불리는 사람이었다.
대통령의 최대 공약인 대운하 사업을 만든 사람이기도 했다.
“미국에 장기간 나갔다가 왔다고 들었습니다. 학교도 미국에서 나왔다지요? 그래서 그런지 한국의 문화를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조만간 한국의 예절 문화를 잘 알려 드리겠습니다.”
“알려 주신다니 잘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아랫사람 대하듯 말을 던지는 우익준 대통령실장이었다.
뭐 그럴 만도 하지. 경선 과정에서 철저히 방관자 노릇을 한 태우그룹이었고.
2인자의 입장에서는 태우그룹이 좋게 보일 리는 없었으니까.
“대통령 각하와 단독 면담이니 조심해 주세요. 괜히 심기를 거스르는 말씀도 삼가 주시고요.”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안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행사장 안으로 들어가자 대통령의 모습이 보였다.
제왕적 권력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대통령.
군사 정권 시절만큼은 아니더라도 여전히 한국의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5년만 지나면 사라질 권력이었기에 그렇게 굽신거릴 필요는 없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태우그룹 김민재입니다.”
“대한민국 최초로 30대의 나이에 회장직에 오른 분을 뵙는군요. 반갑습니다.”
대통령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해 왔다.
확실히 재계의 물을 먹은 사람이라 그런지 비즈니스 마인드가 탑재되어 있는 티가 났다.
“인사가 늦어 죄송합니다. 미국으로 장기간 출장을 가 있느라 인사드릴 시간이 없었습니다.”
“괜찮아요. 앞으로 자주 얼굴을 보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 그보다 시간이 없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산업은행의 리먼 브라더스 인수에 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처음부터 이런 질문이라니.
보통은 아이스 브레이킹용 대화를 최소 몇 마디는 주고받기 마련이었지만, 마음이 급한 건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산업은행이 전력을 다하면 리먼 브라더스를 충분히 인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 추상적인 말을 듣고 싶은 게 아닙니다. 산업은행이 리먼 브라더스를 인수하면 어떻게 되느냐를 알고 싶은 겁니다.”
“그건 산업은행의 역량에 달린 문제 아니겠습니까?”
“최악의 가정을 듣고 싶군요.”
어떻게든 대답을 회피하려고 했지만.
대통령은 내가 도망갈 구멍을 막아섰다.
이렇게 나오면 나도 굳이 도망갈 필요는 없지.
“리먼 브라더스 인수로 인해 산업은행이 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는 순간 대한민국은 IMF를 다시 겪게 됩니다.”
“흠, 그럴 가능성은 몇 %나 된다고 봅니까?”
“최소 30% 이상입니다.”
“허, 그렇게나 높아요? 그럼 왜 산업은행이 리먼 브라더스를 인수한다고 할 때 말리지 않았습니까!”
“성공할 가능성도 그만큼 높기 때문입니다. 리먼 브라더스를 인수하고 안정화시킬 수만 있다면, 산업은행은 단번에 세계에서 순위권에 드는 민간 은행으로 성장할 수도 있습니다.”
희망회로를 과하게 돌리면 나오는 결과였다.
이런 결과가 나올 가능성은 정말 희박했지만,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한국 정부가 산업은행에 전력을 다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었다.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란 말이군요.”
“밑 빠진 독이라고 해도 물이 빠지는 속도보다 더 빨리 많은 양의 물을 부으면 언젠가는 가득 차기 마련입니다.”
“엄청난 투자를 해야 한다는 말로 이해하겠어요. 그래서 얼마나 많은 투자를 하면 리먼 브라더스를 안정화시킬 수 있지요?”
“대운하 4대강 사업을 포기하고 그 자금을 전부 리먼 브라더스에 투입하면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높일 수 있습니다.”
4대강 사업의 사업비는 대략 20조 원.
그 돈에 산업은행의 자금력까지 더해지면 안정화까지는 무리라도 어느 정도 버틸 수는 있었다.
버티는 동안 방법을 찾는다면 안정화가 가능했고.
만약 단순히 버티기만 한다면 산업은행은 리먼 브라더스를 안은 채로 파산하게 되어 있었다.
“4대강 사업비를 전부 투자한다고 해도···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성공할 가능성이 조금 높아지는 것으로 끝입니까?”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다면 성공 가능성이 조금 더 높아질 수 있고, 대한민국의 예산을 많이 투입할수록 가능성은 상승합니다.”
“정말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어야 하는 일이군요.”
고민에 빠진 대통령.
그는 한참이나 턱을 만지고 나서야 다시금 입을 열었다.
“국가의 흥망을 도박판의 판돈으로 내걸 수는 없지요. 리먼 브라더스의 인수는 처음부터 재검토해 봐야겠군요.”
“다른 전문가의 말씀도 들어 보시길 권합니다. 제 말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닙니다.”
“태우그룹을 재계 1위로 만들고, 월가에서도 이름을 드높인 SAVE 투자회사를 만든 사람보다 더한 전문가가 있을까 싶군요. 그리고 재무부에서도 회의적인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기도 했어요.”
이미 결과를 정해 놓고 나를 불렀구나.
재무부를 비롯한 대통령 전속 씽크탱크에서 리먼 브라더스 인수를 반대하고 있었을 터.
마지막 마침표를 찍기 위해 나를 불러 대화를 나눈 듯싶었다.
“아쉽지 않으십니까? 리먼 브라더스 인수에 성공해서 한국 기업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엄청난 업적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실패한다면 최악의 대통령으로 기록되겠지요. 이 자리에 있어 보면 실패를 두려워하게 되어 있어요. 지지율이라는 성적표가 매일 나오니 그렇게 되더군요.”
실패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특히나 정치인의 경우 실패는 곧 지지율 하락을 뜻했고, 지금까지 공들여 쌓아 올린 탑을 단숨에 무너트릴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내가 준비한 선물이 의미가 있었다.
대통령에게는 전혀 부담되지 않지만, 업적을 추가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대통령 각하께서 금융권에 매우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 제가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편하게 말씀해 보세요.”
“지금 아시아의 금융 허브는 홍콩 혹은 일본입니다. 저는 한국을 금융 허브 국가로 만들고 싶습니다.”
대통령이 숨도 멈춘 채 나를 바라봤다.
한국을 금융 허브로 만든다.
이는 지금까지 그 어떤 대통령도 하지 못한 일이었기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주제였다.
“그게 가능하겠어요? AIZ를 인수했으니 AIZ야 아시아 거점을 한국으로 옮길 수는 있겠지만 다른 금융사는 쉽게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당연히 그냥 옮길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정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태우그룹이 보유하고 있는 한전 부지에 거대한 마천루를 만들어 세계적인 금융사들의 아시아 거점으로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금융 허브를 핑계로 놀고 있는 한전 부지를 개발한다.
이는 결코 한전 부지 개발을 위해서만은 아니었고, 금융 시장 개척을 위한 발판이 될 기회기도 했다.
앞으로는 더더욱 금융이 중요한 시대가 될 터.
그러니 아시아 지역만큼은 한국이 허브 역할을 하고.
그 중심에는 태우그룹이 우뚝 설 계획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한국 정부의 규제 완화와 다양한 지원이 꼭 필요했다.
“흠, 고층 빌딩을 만들어 한국을 금융 허브로 만든다? 아무리 대단한 고층 빌딩을 만든다고 해서 글로벌 금융 기업들이 한국으로 넘어오겠어요? 그렇게 쉬운 일이라면 다른 나라도 다 그리했겠지요.”
“제가 보유한 인맥과 자산을 이용하면 충분히 그렇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시아 금융 허브 국가가 되기 위해선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와 투명한 법체계가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고층 빌딩을 지을 수 있는 규제 완화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말은 마지막에 있었다.
규제 완화를 통한 고층 빌딩 건설.
만약 금융 허브로 만들지 못한다고 해도 고층 빌딩은 남으니까.
“금융 허브로 만들 수만 있다면 뭔들 못 해 드리겠어요? 여당에서 적극적으로 규제 완화와 법체계 수정 그리고 다양한 지원 사업까지 법안으로 만들어 드리죠. 하지만 그냥은 못 해 드립니다. 실체화된 무언가라도 보여 주어야 우리도 움직일 명분이 생겨요.”
“월가의 대형 금융사 10곳 이상의 계약서면 되겠습니까? 물론 지금 당장은 10곳 정도에 불과하지만, 빌딩 공사가 끝나기 전까진 최소 30곳 이상을 유치할 자신이 있습니다.”
“흠, 10곳이라면 나쁘지 않군요. 하지만 중소 규모의 금융사 10곳으로는 부족해요.”
“이름만 들어도 다들 알 만한 금융사 10곳의 계약서를 조만간 가지고 오겠습니다.”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문제는 유지였다.
한국으로 이동했다고 한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떠나 버릴 금융사들이었다.
“지금 공사를 시작하면, 내 임기 내로 완공이 되겠어요?”
“규제가 올해 안에만 풀린다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태우건설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라도 임기 내로 공사를 마무리하고, 아시아 금융 허브로 공식 발표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규제 완화가 쉽지 않을 거예요. 여당에서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말이죠.”
대한민국 정치는 원래 그랬다.
여당이고 야당이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었다.
특히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경향이 강해질 터였지만, 우리에겐 국민경제당이라는 카드가 존재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한 곳만 동의를 해 준다면.
국민경제당을 움직여 과반 이상의 찬성표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한국을 아시아 금융의 중심으로 만들겠다는데 누가 반대를 하겠습니까? 그리고 대통령께서는 한국을 금융 중심 국가로 만든 분으로 역사에 길이 남게 되실 겁니다.”
“허허허, 듣기만 해도 아주 좋군요.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그래도 실패한 대통령 소리는 듣지 않겠어요. 최대한 빨리 우리에게 증거를 보여 주세요. 그래야 우리도 움직일 수 있어요.”
표정이 확 바뀐 대통령이었다.
리먼 브라더스 인수 이야기를 할 때만 해도 화가 잔뜩 난 얼굴이었지만.
아시아 금융 허브 이야기에 입술이 살짝 위로 올라가 있었다.
“조만간 제가 직접 미국을 다녀올 계획입니다. 미국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대로 태우그룹 차원에서 공식 발표하겠습니다.”
“아주 좋군요. 하지만 태우그룹이 발표하는 건 안 됩니다. 이런 중차대한 일은 청와대가 나서야 하지 않겠어요?”
처음부터 청와대가 주도한 사업으로 하고 싶다는 건가?
그런 겉치레 정도야 얼마든지 넘겨줄 수 있었다.
오히려 귀찮은 일을 대신해 준다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럼 미국 출장을 다녀오는 대로 모든 자료를 청와대 쪽으로 보내겠습니다.”
“가는 길에 대통령실장 직통 번호를 받아 가세요. 그럼 이만 간담회는 끝내야겠습니다. 다른 회장님도 만나야 해서 시간이 부족하군요. 다음에는 따로 밖에서 만나 길게 얘기를 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기회가 오길 간절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악수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가 밖으로 나오자 대기하고 있던 대통령실장이 얼른 다가왔고.
그에게 직통 번호가 적힌 명함을 받고 나서야 청와대를 나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