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Third-Generation Heir of a Conglomerate RAW novel - Chapter (280)
독식하는 재벌 3세-280화(280/518)
280. 도움을 가장한 협박 (5)
수요일.
시끄러운 태우그룹 본사 앞.
회장실 창가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기획실장과 대화를 나눴다.
“준비는 잘된 것 같군요.”
“어제 오전, 모든 언론사에게 관련 정보를 풀었습니다. 세계 굴지의 금융사 관계자들이 한국을 방문하고 태우증권과 협약식을 맺는다는 내용의 언론 기사도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우리 쪽 정보를 믿지 못하는지 기사를 작성하지 않은 언론사도 있습니다.”
믿지 못한다면 보여 주면 될 일이었다.
나는 창가에서 고개를 돌려 문 쪽으로 걸어 나갔다.
“행사가 이제 시작하겠군요. 손님을 초대해 놓고 주인이 늦을 수는 없죠. 어서 갑시다.”
“언론인들을 안으로 들이고 행사를 시작하겠습니다.”
기획실장이 행사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접객실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오마하의 현인이라 불리는 워렌 버핏이 조촐하게 허기를 달래고 있었다.
“어떻게 한국 햄버거는 입맛에 맞으십니까?”
“같은 브랜드 햄버거라 그런지 아주 입맛에 잘 맞아요.”
수십조 원의 재산을 보유한 워렌 버핏.
하지만 그는 늘 햄버거 체인점의 아침 메뉴를 직접 포장해 먹는 루틴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은 증시가 별로 안 좋은가 봅니다. 가장 저렴한 버거 세트를 드시는 걸 보니까요.”
“허허, 그 소문이 김 회장님 귀에까지 갔나 봅니다. 리먼 사태로 증시가 아주 난리가 났죠. 그런데 어떻게 비싼 메뉴를 먹겠어요?”
수십 조의 자산가와 3달러짜리 햄버거.
게다가 증시가 좋은 날에는 베이컨과 달걀이 들어간 메뉴를 시키고.
증시가 좋지 않은 날에는 달걀이 빠진 조촐한 소시지 버거 세트를 먹는다니.
사실 그렇게 신기한 일은 아니었다.
금융사에 일하는 사람치고 자신만의 루틴이 없는 사람은 드물었고, 온갖 미신이 퍼져 있는 곳이 금융사였으니까.
“가장 바쁜 시기에 한국으로 초청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죄송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 제가 한국에 있는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월가에서 가장 눈이 놓은 사람에게서 조언을 들을 수 있으니 기회를 어찌 놓치겠어요?”
눈이 좋은 사람? 나를 말하는 건가?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면 수긍을 했겠지만, 워렌 버핏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기에 얼른 손을 가로저었다.
“제가 어떻게 감히 조언을 드리겠습니까? 그저 제 생각을 말씀드리는 정도에 불과하지요.”
“허허, 퀀텀 펀드의 조지 대표 같은 사람도 김 회장님을 극찬하더군요. 거의 종교 수준으로 김 회장님을 믿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러니 제게 조언을 해 줄 자격은 충분합니다.”
오랜만에 얼굴이 붉어졌다.
월가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의 입에서 듣는 칭찬이 너무나 달콤했다.
하지만 이 시간은 지속될 수 없었다.
“회장님,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다른 분들도 호텔에서 나와 행사장으로 오고 계십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군요. 제가 먼저 가서 행사장의 분위기를 띄우고 있겠습니다.”
“이 늙은이는 아직 아침 식사를 다 못 해 조금 늦게 가도록 하겠습니다.”
행사장으로 이동했다.
이미 행사는 시작되어 있었고, 한 사장이 대표로 나와 행사를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이미 다양한 질문 공세에 시달렸는지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한 사장이었고, 나를 발견하자마자 목소리를 높였다.
“태우그룹 김민재 회장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마이크를 나에게 떠넘기는 한 사장.
이미 계획된 행사 일정이었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마이크를 잡아 준비한 말을 쏟아 내었다.
“오늘 행사는 한국을 아시아의 금융 허브로 만들기 위한 자리입니다. 한국은 아시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 금융의 중추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나라입니다. 혁신적인 금융 기술과 투명한 규제 환경을 조성하여 선진 금융 시장을 이끌어 나가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고자 합니다.”
대본을 다 읽었지만, 반응은 미지근했다.
너무 추상적인 말이었기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엔 역부족이었나 보다.
그럼 말이 아닌 사람으로 보여 주는 수밖에.
“세계 금융 시장을 선도해 나가는 분들을 모시겠습니다. 먼저 퀀텀 펀드의 조지 대표입니다.”
한국에서는 꽤나 잘 알려진 조지 대표였다.
그가 등장하자 기자들이 열심히 자판을 두들기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와! 조지 대표가 한국에 직접 방문한 걸 왜 이제야 알았지?] [저 사람 어디서 많이 봤는데 누굽니까?] [국가를 상대로 승리한 헤지 펀드의 전설도 모르면서 무슨 기자 생활을 한다고. 이래서 인턴이랑 같이 나오면 될 일도 안 된다니까.]곳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경제 전문 기자 사이에서는 매우 유명한 조지 대표였다.
국가를 상대로 승리했다는 상징성이 있는 그였기에 기자들은 분주하게 속보를 써 내려갔다.
“이어서 핀테크 은행과 CITI그룹을 이끌고 계신 다이먼 회장입니다.”
다이먼도 오늘을 위해 한국으로 날아왔다.
워낙 편한 사이라 가끔씩 그의 위치를 잊어서 그렇지.
그는 어느새 세계 금융 시장을 대표하는 사람 중 한 명이 되어 있었다.
[CITI그룹 총수도 한국에 왔다고? 태우그룹에서 이를 단단히 갈았나 본데?] [그래도 한때는 세계 1위 금융 그룹인 CITI그룹 총수가 한국에 온 걸 보니 진짜 금융 허브 사업이 시작하려나 봅니다.] [월가가 지금 난리가 났는데 어떻게 저 사람들을 다 한국에 불렀지?]기자들의 웅성거림이 더욱 커졌다.
하지만 아직 놀라긴 일렀다.
주인공은 항상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이니까.
“마지막으로 버크셔 해서웨이의 워렌 버핏 대표님을 모시겠습니다.”
[우와아아!]기자들의 입에서 드디어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앞에 나온 사람들을 봤을 때는 웅성거렸지만, 지금은 말을 뱉을 정신도 없기에 환호성이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것이었다.
워렌 버핏의 유명세야 두말할 것도 없었다.
워렌 버핏을 추종하거나 그를 롤모델로 삼는 투자자들이 세계 곳곳에 존재했다.
가치 투자의 교과서 같은 사람이 등장했으니 언론인들이 탄성을 자아 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금융사 대표들이 간단히 인사를 하였고.
곧이어 간담회 형식으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조지 대표와 다이먼은 한국이 아시아 금융 허브에 적합한 이유 몇 가지를 들어 보이며 간담회를 이끌어 나갔다.
[한국이 금융 허브 국가로 적합한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한국 방문의 목적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한국에 미칠 영향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끊임없이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
주로 다이먼이 답을 했고, 그동안 가만히 있던 워렌 버핏이었다.
그러다 행사가 끝날 즈음 드디어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한국은 참 매력적인 국가입니다. 그래서 버크셔 해서웨이의 아시아 지점을 한국에 열 계획입니다.”
“한국을 아시아의 금융 허브로 만드는 계획에 동참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몇몇 기업에 투자할 계획도 세웠습니다.”
기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특종을 노리는 야수의 눈빛으로 대기를 하는 기자들이었다.
“어느 기업에 투자하려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우선은 태우그룹에 투자하려고 합니다. 태우증권, 태우자동차, 그리고 태우IT까지. 기업의 가치가 매우 우수한 회사들이고, 무궁한 성장 원동력을 보유한 회사들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국의 철강회사와 부품 회사들에도 투자할 계획입니다.”
뭐가 더 필요하겠는가?
워렌 버핏이 한국에 버크셔의 지점을 낸다고 발언을 했다.
벌써 인터넷 뉴스로는 이 내용이 속보로 다뤄지고 있을 터.
메인 뉴스에서도 이 내용이 다뤄지는 순간, 국민들의 의심이 사라지게 될 것이었다.
* * *
행사가 끝이 났다.
나는 조지 대표와 다이먼과 인사를 나눴고.
그들은 월가의 상황이 워낙 급박하게 돌아가기에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미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회장님, 워렌 버핏 대표님을 태우호텔로 모셨습니다. 평소보다 20배 이상 경호 인원을 늘렸고, 언론인과 일반인의 접근을 철저히 막았습니다.”
“잘하셨습니다. 내일 점심 약속이 있으니 그사이 무슨 일이 생기지 않도록 철저히 확인해 주세요.”
워렌 버핏은 오늘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리먼 브라더스가 무너지고 월가가 난리 통이 되었지만 오히려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이런 여유를 부린다면 오만하다고 하겠지만, 워렌 버핏이었기에 때를 기다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행사 반응은 어떤가요?”
“아주 난리가 났습니다. 메인 뉴스에서 심도 있게 이번 행사를 보도했고, 인터넷 신문부터 신문사까지 기사를 쏟아 내고 있습니다.”
“언론에서 움직이니 이제 국민 여론이 조금 바뀌겠군요.”
“여러 커뮤니티의 반응을 빅 데이터로 분석해 보니 찬성 여론이 극적으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찬성 여론이 더욱 높아지고 있기도 합니다.”
천민정이 빅 데이터 분석 알고리즘까지 만들어 주었다.
덕분에 태우그룹은 실시간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었고, 따로 여론 조사를 진행하지 않아도 국민 여론을 누구보다 빨리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정부의 부담이 많이 줄겠군요.”
“이번 주 내로 청와대에서 공식 입장을 내놓을 것 같습니다.”
“청와대보다 국민경제당이 먼저 움직일 수도 있겠어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획실장이 관련 뉴스를 확인하곤 보고해 왔다.
“국민경제당에서 당론으로 금융 허브 사업을 지지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참 대단하다니까요. 이슈를 선점할수록 이득이라는 걸 잘 알고 내린 결정일 겁니다.”
“청와대보다 한발 빨리 움직이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청와대의 발표 이후 국민경제당이 움직였다면 정부와 손을 잡았다는 이미지가 생길 수도 있지만, 이렇게 먼저 움직이게 되었으니 그런 부담을 줄일 수 있습니다.”
물론 청와대에서 이미 금융 허브 사업을 공식 발표하긴 했다.
하지만 그 발표를 믿는 사람은 적었기에 청와대의 공식 발표는 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제야 실현 가능성이 생겼으니 먼저 움직이는 쪽이 이슈를 선점할 수 있었다.
“청와대에서 아주 배가 아프겠습니다.”
“배가 아플 게 뭐가 있어요? 지금까지 계속 떨어지기만 하던 지지율이 소폭이나마 반등할 수 있게 되었으니 좋아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렇긴 합니다. 상황을 반전시킬 기회가 꼭 필요한 정부 입장에서는 이번 일은 엄청난 호재로 작용할 것이 분명합니다.”
기획실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 왔다.
이 번호를 아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고, 이번에 새롭게 번호를 추가한 대통령실장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였다.
“김민재입니다.”
[김 회장! 이번 이벤트 아주 좋았습니다. VIP께서도 아주 흡족해하십니다.]“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태우그룹이 가진 자산을 총동원해서 겨우 만들어 낸 이벤트입니다.”
[아주 좋아요. 다 좋은데 조금 아쉽군요. 조금만 더 청와대와 소통이 되었다면, 우리도 이벤트에 참석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너무 태우그룹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지?
어이가 없어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다.
정부의 지지율을 올릴 수 있는 대형 이벤트를 열어 줬더니 자신들이 주인공이 되지 못해 아쉽다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금융사 대표들이 정부와 연관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했습니다. 제가 억지를 부렸으면 이벤트 자체가 취소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냥 아쉬워서 하는 소리지요. 흠흠, 조만간 한전 부지 개발 허가가 떨어질 겁니다. 야당에서도 더는 딴지를 걸지 못하겠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드리자면, 앞으로는 청와대와 조금 더 소통을 해 주세요.]“최선을 다해 노력해 보겠습니다.”
더러워서 알겠다고 말했다.
괜히 일을 키울 필요가 없었다.
만약 노골적으로 태우그룹에 무언가를 바란다면 나도 참지 않겠지만, 아직은 허용 범위 안이었기에 참고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