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Third-Generation Heir of a Conglomerate RAW novel - Chapter (282)
독식하는 재벌 3세-282화(282/518)
282. 가랑이가 찢어지는 뱁새 (1)
한국 5대 금융사인 신화은행.
자산 규모가 200조 원을 넘는 대형 은행이었고, 일종의 금융 왕국을 형성한 은행이 신화은행이었다.
그런 금융 왕국의 2인자 정태섭 부행장.
신화은행을 넘어 한국 금융 시장에서도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정태섭 부행장과 태우증권 한정훈 사장이 만남을 가지고 있었다.
“다시 뵈니 정말 반갑습니다. 이제 태우증권 사장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허허, 태우증권에서 월가에 있는 분을 사장으로 모셔 올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어떻게 요즘도 중소기업과 비즈니스를 하시고 계십니까?”
노골적인 비웃음.
KIKO 관련 보험을 판매하러 다니던 한 사장을 무시하는 듯한 말투.
태우증권 사장 명함을 달았지만, 자신과는 급이 다르다는 걸 표현하고 있는 정태섭 부행장이었다.
“여전히 중소기업과 좋은 비즈니스 관계를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좋은 사업을 소개해 주려고 찾아왔나요? 태우증권 사장이 추천하는 사업이라면 내 귀 기울여 들어 드리리다.”
한 사장을 방문 판매원처럼 대하는 정태섭 부행장이었다.
울컥할 만도 했지만 한 사장은 오히려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새로운 사업을 추천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추진하고 있던 사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KIKO 상품을 기억하십니까? 요즘 환율이 많이 올라 KIKO 상품의 수익이 좋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리먼 사태로 환율이 많이 치솟긴 했지요. 하지만 일시적인 상황으로 보고 있어요. 리먼 사태가 진정되면 다시 환율이 떨어지지 않겠어요?”
한 사장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신화은행 2인자라는 사람이 이렇게 느슨한 마인드라니.
리먼 사태가 빠르게 진정되면 다시 환율이 떨어질 거라고?
마인드가 느슨할 뿐만 아니라 흐름을 읽는 눈마저 흐릿한 사람이었다.
“월가에서 분석하기엔 환율이 1,400원까지 상승할 거라고 보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KIKO에 가입한 중소기업 사장님들이 조 단위의 손실을 보게 됩니다.”
“그런 일이야 일어나겠습니까? 일어난다고 해도 개인의 선택에 의한 일이니 은행에서 어떻게 할 도리가 없지요.”
“신화은행은 이미 도리를 다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 사장님들을 위해 KIKO 관련 보험 상품을 출시하고 많은 계약을 체결하지 않으셨습니까?”
정태섭 부행장이 눈을 크게 뜨며 생각에 잠겼다.
KIKO 보험 상품을 판매한 건 기억하고 있었다.
지난달에도 KIKO 보험으로 짭짤한 수익을 올렸으니 어찌 모르겠는가?
그런데 한 번도 KIKO 보험의 조건이 충족되어 보험금을 내어 줘야 한다는 생각은 하질 못하고 있었다.
“중소기업을 위해 KIKO 보험을 출시하긴 했지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지금 왜 꺼내시는 겁니까?”
“올해 안에 중소기업 사장님들이 보험금을 지급받기 위해 찾아올 거란 이야기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5조 원이나 되는 현금을 지급하시려면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잠시 기다려 주세요. 관련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눠 봐야겠군요.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정태섭 부행장은 참 예의가 없는 사람이었다.
손님을 홀로 두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런 예의 없는 모습에도 한 사장은 오히려 즐거운지 다리를 꼬고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는 동안 정태섭 부행장은 담당자를 찾았다.
KIKO의 전체적인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은 양성수 차장.
정태섭 부행장의 학교 후배였기에 공을 들여 키우고 있는 임원 후보이기도 했다.
“양 차장! KIKO 관련 보험 상품의 조건이 충족될 가능성이 몇 퍼센트나 되지?”
“선배님,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KIKO 보험의 조건이 충족되려면 환율이 1,400원까지 올라야 합니다. 요즘 환율이 올라서 걱정하시나 본데 이제 겨우 1,000원입니다. 여기서 40%나 더 올라야 합니다. 정말 경제 위기가 심하게 찾아와도 겨우 1,200원이 한계입니다.”
“휴우, 그렇겠지? 환율이 1,400원이 되는 일은 없겠지?”
“선배님답지 않게 왜 그러십니까? 환율이 무슨 동전 주식도 아니고 단번에 40%나 어떻게 오르겠습니까?”
정태섭 부행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끼는 후배의 확신에 찬 목소리에 불안감이 사라졌다.
“이상한 사람이 찾아와서 환율이 1,400원까지 오를 수도 있다고 하니 걱정이 되어서 자네를 찾았네.”
“걱정 마십시오. 달러는 계속해서 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 뜻은 원화가 강세가 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잠시 환율이 오르긴 했지만, 달러 약세가 지속되면 환율은 다시 900원대로 내려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양 차장은 정 부행장을 안심시키기 위해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기에 사무실에 있던 다른 직원도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수밖에 없었고.
그중에는 양 차장에 밀려 만년 과장직을 달고 있는 박대훈 과장도 있었다.
“말씀 중에 죄송한데. 달러 약세를 원화 강세로 해석하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현재 시장의 상황을 보면 환율이 지금보다 더 상승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박 과장! 지금 어디라고 함부로 입을 놀리는 거야! 동기라고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어.”
양 차장이 버럭 화를 냈다.
하지만 박 과장은 말을 멈추긴커녕 더 빠르고 큰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달러 기근 현상이 시작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수출 업체들이 달러를 풀지 않고 있고 오히려 더 매입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해외 주식형 펀드가 전부 반토막이 났습니다. 그로 인해 막대한 달러 손실을 보았습니다. 이로 인해 달러 부족 현상이 발생해 환율이 크게 치솟을 수 있습니다.”
“좀 조용히 하라니까! 그런 생각은 그냥 마음속으로나 하라고!”
박 과장의 입을 막기 위해 소리를 지르는 양 차장이었다.
그의 목소리가 너무 컸기에 접객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한정훈 사장이 밖으로 나와 상황을 구경하기에 이르렀다.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면 올해 안에 환율이 1,500원까지 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 KIKO 보험 상품으로 5조 원 이상의 보험금을 지급해야 합니다.”
“박 과장이라고 했나? 자네 생각에 환율이 1,400원까지 오를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보는가?”
“1,500원까지 오를 가능성은 20% 정도라고 보지만, 1,400원까지 오를 확률은 70% 이상입니다.”
한정훈 사장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박 과장을 바라봤다.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 환율의 흐름을 정확히 꿰고 있는 사람.
그런데 고작 과장에 불과하다고? 능력에 비해 정치력이 부족해 진급을 못 했나 보군.
인사팀에 얘기해서 스카웃 제안을 하라고 해야겠어.
한 사장이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정태섭 부행장은 다시 불안감이 치솟아 올랐다.
“환율이 1,400원까지 오를 확률이 70% 이상이라고 했나? 시기는 언제로 보는가?”
“빠르면 당장 다음 달이 될 수도 있고, 아무리 늦어도 11월 달 안에는 그렇게 될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당장 다음 달이 될 수도 있다?”
“선배님! 박 과장 말을 믿으실 필요 없습니다. 우리 부서에서 실적이 제일 안 좋은 직원입니다.”
박 과장은 실적이 좋을 수가 없었다.
실적이 날 만한 사업은 양 차장과 그의 라인 사람들이 독차지했고.
실적이 나쁠 수밖에 없는 사업을 박 과장에게 던져 주었으니까.
“일단 알겠네. 다들 일들 보게나.”
정태섭 부행장이 몸을 돌렸고.
한 사장도 얼른 몸을 돌려 다시 접객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소파에 앉아 깍지를 끼고 앉아 있자 정태섭 부행장이 돌아왔다.
“늦어서 죄송하군요.”
“아닙니다. 그런데 밖이 시끄럽던데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흠흠, 별일 아닙니다. 그보다 KIKO 보험 상품에 가입한 중소기업 사장님들과 정확히 어떤 관계이십니까?”
“제가 그들의 대리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보험 상품의 지분 60%가 제 몫이기도 합니다.”
정태섭 부행장은 머리를 굴렸다.
60%의 지분이라면 무려 3조 원에 해당하는 보험금이 한 사장의 몫이었다.
아무리 자산이 200조 원이 넘는다고 한들, 3조 원의 손실은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회사는 무너지지 않아도 자신의 목은 날아가기 충분한 액수였다.
“담당자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환율이 1,400원까지 올라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요즘 환율 문제로 피해를 보고 있는 중소기업 사장님들을 위해 KIKO 보험 상품을 해지하는 조건으로 지금까지 납부한 보험료를 전액 돌려주려고 합니다.”
“보험금 지급이 아니라 보험료를 되돌려 주신다는 말씀이시군요.”
한 사장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날렸다.
완전 날강도도 이런 날강도가 없었다.
5조 원의 보험금을 천억 원도 안 되는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을 날강도 말고 뭐라고 부르겠는가?
“그렇게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아직 얘기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보험료를 전액 돌려주는 것과 더불어 해지 조건으로 5천억 원을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이는 신화은행이 중소기업 발전을 위해 사용하는 기금입니다.”
“아직 이야기를 나눌 준비가 되시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럼 다음 달에 다시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한 사장은 두말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 버렸다.
아직도 환율이 1,400원 이상 오를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하는 정태섭 부행장이었기에 한 사장을 붙잡지 않았다.
이는 그의 결정적인 실책이었고, 지금의 행동을 평생 후회하게 될 터였다.
* * *
며칠 후.
한 사장이 회장실을 찾아왔다.
“회장님, 금융사를 다 돌고 왔습니다. 하나같이 환율이 1,400원까지는 절대 오르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리먼 사태가 얼마나 큰지 몸소 느끼지 못해서 그런 것이겠죠. 우리야 월가에서 지내며 상황을 체험해 봤으니 아는 것이겠고요.”
“아! 그리고 새로운 소식이 하나 들어왔습니다. 일본의 노무라 증권이 파산한 리먼 브라더스의 자산을 대거 매입한다는 소식입니다.”
일본의 노무라 증권은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금융사였다.
엄청난 자본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리먼 브라더스의 자산 일부를 매입한다고 해서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노무라 증권의 자본력은 워낙 유명하지 않습니까. 충분히 가능한 일이죠.”
“리먼 브라더스의 아시아 사업부 전체를 매입하고 유럽 사업부까지 인수한다고 합니다.”
“유럽 사업부까지 인수한다니, 돈을 아주 많이 썼겠군요.”
“아마 우리가 AIZ를 인수한 것을 보고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하는 것 같습니다. 견제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견제는 굳이 할 필요 없어요. 그냥 뱁새 가랑이가 찢어지는 걸 구경하기만 하면 됩니다.”
노무라 증권에게는 최악의 10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리먼 브라더스의 아시아, 유럽 사업부를 인수하면서 매년 조 단위의 적자를 보게 될 테니까.
“그리고 우리 쪽에게도 연락이 왔었습니다. 리먼 브라더스 인수를 위해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파생상품 보험 일부를 매입하고 싶다는 연락이었습니다.”
“적당한 가격에 판매하세요.”
“그래도 되겠습니까? 우리가 보유한 보험을 노무라 증권에게 넘겨 버리면, 노무라 증권은 더 많은 사업부를 인수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하라고 하는 일이죠. 더 많은 사업부를 인수해야 더 많은 적자를 볼 테니까요. 산업은행에 넘겨주고 남은 보험 증서를 전부 넘기세요.”
노무라 증권에 악감정은 없었다.
별 쓸모도 없는 리먼 브라더스와 체결한 보험을 사겠다고 하니 그저 파는 것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