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Third-Generation Heir of a Conglomerate RAW novel - Chapter (283)
독식하는 재벌 3세-283화(283/518)
283. 가랑이가 찢어지는 뱁새 (2)
환율은 하루가 다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900원이었던 환율이 한 달 사이 1,000원을 돌파했고, 다시 한 달이 지나자 1,400원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가장 신난 사람은 역시나 한정훈 사장이었다.
“회장님! 환율이 드디어 1,400원을 돌파했습니다. 드디어 갑과 을의 위치가 역전되었습니다. 금융사 대표들이 태우증권으로 찾아오겠다고 연락이 왔었습니다.”
“한 사장이 언제는 을의 위치였던 적이 있나요? 호구 같은 고객에서 진상 고객으로 바뀌게 되었을 뿐이죠.”
“하긴 손님이 왕이니 제가 을인 적은 없긴 합니다. 금융사 대표들이 아주 안달이 나서 지금이라도 당장 태우증권을 방문하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다 합쳐서 15조 원을 상회하는 보험금.
평상시라면 눈물을 머금고 15조 원의 보험금을 줬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세계 경제 위기였기에 안달이 난 금융사 대표들이었다.
“시간을 길게 끌어서 좋을 거 없죠. 괜히 정부에서 부담을 느껴 압박을 가하기 전에 끝장을 보세요. 저도 그 자리에 같이 참석하죠.”
“회장님이 굳이 같이 가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닭 잡는 일에 소 잡는 칼이 나서는 건 낭비입니다.”
“망나니 노릇은 한 사장이 할 겁니다. 저는 그냥 뒤에서 가만히 앉아 한마디씩 거들기만 할 생각이에요. 그렇게만 해도 상당한 압박을 받지 않겠어요?”
“금융사 대표들의 오금이 저릿저릿하겠습니다. 그럼 오늘 중으로 금융사 대표들을 태우증권으로 소집하겠습니다.”
엉덩이가 무겁기로 유명한 금융사 대표들.
그들은 항상 기업을 상대로 돈을 빌려주는 위치에 있었기에 웬만해서는 기업을 직접 방문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연락을 넣자마자 금융사 대표들이 앞다투어 태우증권으로 도착했고,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회의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태우그룹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정훈 사장에게 간략한 내용은 전해 들었습니다. 환율 급등으로 인해 KIKO 보험의 보험금을 주셔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변해 버렸습니다. 월가의 투자회사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지듯이 한국의 금융사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시국일수록 힘을 합쳐 이겨 내야 합니다.”
신화은행 정태섭 부행장이 5대 은행을 대표해 목소리를 높였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보험 상품 해지를 요청해 왔다.
“우선은 이야기를 들어 봐야겠군요. 한정훈 사장이 회의를 진행해 줄 겁니다.”
나는 한발 물러났다.
내가 직접 입을 여는 것보다 뒤에서 째려보고 있는 것이 압박을 주기 더욱 좋았고, 나는 한 사장이 날뛸 수 있는 공간만 만들어 주면 되었다.
“태우증권 한정훈입니다. 우선 보험 계약 해지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려 드립니다. 아시다시피 태우증권이 지분의 60%를 보유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나머지 지분은 중소기업 사장님들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할 수는 없습니다.”
“중소기업 사장님들은 우리가 설득을 할 테니. 태우증권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을 포기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억지나 다름없는 요구를 해 오는 정태섭 부행장이었다.
한정훈 사장은 대답 대신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고, 나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헛웃음을 지었다.
“허! 지분을 그냥 포기해 달라는 말은 살아생전 처음 들어 보는군요. 그것도 가장 계산적으로 움직이는 은행권 분에게서 그런 말을 들을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물론 그냥 포기해 달라는 건 절대 아닙니다. 지금까지 납부한 보험료를 전부 돌려드리고, 보험금의 20%까지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9조의 보험금 대신 1조 8천억 원을 주신다는 말씀이시군요. 7조 2천억 원을 디스카운트해 달라고 하는 경우가 다 있군요. 은행 대출은 금리 1% 낮추려면 별짓을 다 해야 하는데, 은행은 80%를 그냥 낮춰 달라고 하는군요. 이는 경우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대놓고 경우 없는 사람으로 몰아세웠다.
정태섭 부행장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지만, 그래도 소리를 지르거나 하는 추태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의 요구가 많이 과하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 위기를 이겨 내기 위해선 힘을 합쳐야만 합니다.”
“힘을 합쳐야 한다고 했지만, 태우증권이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는 구조입니다. 은행권에서도 성의를 보이셔야 우리 회장님도 납득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한 사장이 나를 핑계 삼아 강한 어조로 말을 뱉었다.
이래서 내가 굳이 회의실까지 따라 들어온 것이었고, 금융사 대표들은 눈알만 빠르게 굴리고 있었다.
“앞으로 태우증권 그리고 AIZ와 많은 사업을 같이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이번 한 번만 양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협업을 하자고 하시는 분이 왜 우리를 먼저 공격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코코아뱅크의 대주주가 태우그룹인 걸 알면서도 규제를 하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이는 명백히 태우그룹을 공격하는 행위입니다. 뒤로는 공격을 하고 앞으로는 양보를 해 달라고 하면 어느 누가 그런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솔직히 9조 원을 다 받을 생각은 없었다.
정부의 눈치도 봐야 하니 일부는 돈으로 받고, 나머지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무언가로 받을 생각이었다.
가장 먼저 코코아뱅크 규제 철회.
인터넷 뱅킹과 어플을 이용한 금융 서비스를 장악하고 있는 코코아뱅크.
10년 안에 5대 은행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정도로 무섭게 성장하고 있었고, 더는 은행권에서 견제가 들어오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었다.
“코코아뱅크 규제 문제는 지금 바로 철회하겠습니다. 코코아뱅크가 태우그룹과 그렇게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 미처 파악하지 못했었습니다.”
“모르고 한 일이라고 하니 그 문제는 더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한 사장님이 계속 회의를 진행하시죠. 저는 이만 자리를 비우겠습니다.”
이젠 본격적인 협상의 시간이었다.
1차 목적인 코코아뱅크 규제 철회를 얻어 내었으니 나는 뒤로 빠져 있어도 되었다.
괜히 내가 나서는 것보다 한 사장이 물고 뜯어야 더 많은 것을 얻어 낼 수 있었으니까.
* * *
다음 날.
나는 한 사장과 기획실장과 함께 한전 부지 공사 현장을 찾았다.
“이제야 공사 현장다워 보이네요.”
“태우건설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공사 장비를 투입해 최대한 빠르게 작업에 임하고 있습니다.”
“한 사장은 마음에 드세요? 빌딩이 완공되면 태우증권은 신사옥이 아니라 이곳에서 근무하게 될 겁니다.”
“건설 장비들이 땅만 계속해서 파고 있어 실감이 잘 나지 않습니다.”
태생부터 금융권에서만 일했던 한 사장이었다.
나와 기획실장이 감격에 겨워하는 것과 달리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기도 했다.
“실감이 나려면 최소 몇 년은 지나야 할 겁니다. 앞으로 최소 1~2년은 계속해서 땅만 팔 테니까요.”
“그렇게나 오랫동안 땅만 팝니까? 확실히 고층 빌딩을 짓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실감이 날 만한 곳으로 이동합시다.”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판교로 이동했다.
몇 년 사이 완전히 달라진 판교의 모습이 도로에서부터 느껴졌다.
깔끔하게 정돈된 아스팔트 도로, 그리고 곳곳에 올라가고 있는 고층 빌딩까지.
그리고 그 중심에는 태우그룹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IIT 한국 캠퍼스가 자리 잡고 있었다.
“와우! 벌써 캠퍼스가 완공되었습니까?”
“캠퍼스 건물이 10층짜리 6개라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한 사장님의 마음에 드십니까?”
“제 마음에 들어서 뭘 하겠습니까? 회장님 마음에 드셔야지요.”
만담을 나누는 기획실장과 한 사장.
나는 그들의 목소리를 흘려들으며 IIT 한국 캠퍼스의 전경을 바라봤다.
신축 건물이라 깔끔하긴 하지만, 공대라는 특성 때문이지 조금은 딱딱하게 느껴지는 건물과 전경이었다.
“외부 공사는 완전히 마무리되었나 보군요.”
“내부 인테리어 공사도 거의 끝이 났고, 실험 장비도 속속들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당장 내년에 개강해야 하니 그 전에 모든 준비를 마쳐야 합니다.”
“완벽하게 준비하겠습니다.”
“기숙사도 한번 보고 싶군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학교 후문 쪽에 위치한 기숙사.
3개의 비슷한 건물이 아파트처럼 세워져 있었지만, 밖에서 보는 모습과 실내는 확연히 달랐다.
“호텔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시설이군요.”
“학생 전원이 기숙사 생활이 가능하며, 2인실과 4인실로 되어 있습니다. 각 방에는 화장실과 샤워 시설이 포함되어 있고, 헬스장, 탁구장, PC실 같은 여가 시설도 완벽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우리는 기숙사를 한 바퀴 둘러보았고.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한 사장이 나지막이 한마디를 내뱉었다.
“이게 다 무료라니.”
“기숙사비는 물론이고 등록금까지 전액 태우그룹에서 지원하죠. 왜요, 배 아프세요?”
“과학 기술원도 학비가 무료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시설의 질을 생각하면 여기가 훨씬 뛰어난 것 같습니다.”
“단순히 시설만 뛰어난 게 아니죠. 교수진도 한국 대학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는 분들로 모셨어요.”
내가 IIT를 만든 이유 중 하나였다.
IIT를 통해 인재 영입이 1차 목표였고, 2차 목표는 태우그룹과 협업을 진행하는 개발진을 교수로 채용시켜 발을 묶어 두기 위함이기도 했다.
“인공지능과 배터리 업계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개발진을 대거 교수로 채용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데이비드가 지금도 열심히 교수진을 영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내년이 되면 정말 호화로운 교수진이 꾸며져 있을 겁니다.”
이제야 첫걸음을 내딛는 기분이었다.
언제까지나 내 기억과 능력에 의존할 수는 없었다.
내가 없어도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필요했고, IIT 한국 캠퍼스가 그 역할의 일부를 해 줄 거라 믿었다.
“요즘 증권사 쪽에서도 IT 인력을 대거 채용하고 있습니다. 태우증권도 IIT 한국 캠퍼스 덕을 좀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거야 태우증권이 하기 달렸지요. 태우그룹과 관련된 회사로 입사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어디를 가라고 정해 줄 순 없으니까요.”
IIT 한국 캠퍼스 입학 조건은 단 하나.
태우그룹과 관련된 회사에 5년 이상 근무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어떻게 들으면 독소 조항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관련된 회사의 이름을 들으면 결코 학생들에게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입사할 수 있는 회사를 살펴보면.
당연히 태우그룹의 모든 계열사는 포함되었고.
그리고 애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위튜브 등의 해외 기업과 태우그룹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의 IT 기업도 포함되어 있었다.
공대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입사하고 싶은 회사들이었기에 절대 독소조항이 아니었다.
“회장님, 회사로 돌아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캠퍼스를 구경하던 중.
갑자기 기획실장이 휴대폰을 확인하고는 다급히 말했다.
“파란 기와집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금융 허브 사업을 같이 진행을 했다고 이젠 시도 때도 없이 연락이 오는군요.”
파란 기와집은 청와대를 의미했고.
청와대에서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다만 이 시간이 연락이 왔다는 건, 태우그룹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뜻일 가능성이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