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Third-Generation Heir of a Conglomerate RAW novel - Chapter (284)
독식하는 재벌 3세-284화(284/518)
284. 가랑이가 찢어지는 뱁새 (3)
종로에 위치한 조용한 식당.
나를 초대한 대통령실장의 단골집이었다.
손님을 다 내보냈는지 넓은 식당에 우리 말곤 없었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가장 끝에 위치한 방으로 안내받아 들어가기까지 했다.
“김 회장 오셨어요! 식당 분위기가 아주 좋지 않습니까? 제가 아끼는 사람에게만 소개해 주는 식당입니다.”
“분위기가 아주 좋습니다. 고풍스러우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을 살린 인테리어입니다.”
처음부터 기 싸움을 할 필요는 없지.
그냥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식당을 칭찬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간단히 먹고 왔습니다.”
“그럼 술상만 봐 오면 되겠군요. 술상 준비해!”
거칠게 소리치는 대통령실장.
바깥에 있는 직원에게 하는 말이겠지만, 나를 압박하기 위해 더욱 거칠게 말한 느낌을 받았다.
고작 소리를 친다고 내가 겁을 먹을 줄 아나?
권력의 실세 자리인 대통령실장 자리에 앉아 있어서 그런지 자신감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가볍게 한 잔 들이켜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합시다. 좋은 술이니 부드럽게 넘어갈 겁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식당의 분위기는 물론이고 안주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위스키.
나름 고급 위스키긴 하지만, 파전에 위스키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술을 고르는 것만 봐도 대통령실장이 센스가 부족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고, 강압적인 성격의 보유자라는 것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술도 마셨으니 이제 허심탄회하게 말하겠습니다. 미국 쪽이랑 친분이 아주 깊으시다고 알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학교생활을 하고 월가에서도 잠시 몸담았기에 약간의 친분이 있긴 하지만, 그렇게 많이는 아닙니다.”
“사람이 왜 그러십니까? 제가 꼭 이런 말까지 해야 하나요? 국정원에서도 김 회장님을 조사하려고 했는데 미국 쪽에서 견제가 들어왔어요! 미국 정부에서 관리해 주는 사람이 미국과 친분이 없다고 거짓말하면 누가 믿겠습니까?”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지금 저를 사찰하려고 했다는 걸 시인하시는 겁니까? 민간인 사찰은 엄연히 불법적인 행위입니다.”
“대기업 총수가 언제부터 민간인이었다고 그럽니까? 그리고 사찰을 하지도 못했어요. 미국 정부에서 막는데 어떻게 더 진행을 합니까.”
“미국 정치권과 친분이 있음은 숨기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사찰을 하려고 했다니 조금 불쾌하긴 하군요.”
“젊은 분이 뭐 이런 일로 불쾌하니 마니 합니까. 다 국가를 위한 일 아니겠습니까?”
대통령실장의 권세가 하늘 위에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었다.
그런데 한국 재계 1위 그룹 회장을 아랫사람처럼 대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종놈 대하듯 하고 있었다.
“우선은 저를 만나자고 하신 연유를 알고 싶습니다.”
“흠흠, 지금 환율이 미쳐 날뛰고 있지 않습니까? 1,400원을 넘어 버렸고, 여기서 더 올라가면 국가가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미국과 통화 스와프를 진행하고자 하는데 김 회장이 힘을 좀 써 주십사 해서 불렀습니다.”
아쉬운 소리를 하려고 불렀단 얘기다.
그것도 그냥 아쉬운 소리가 아니라 통화 스와프라는 어려운 일 말이다.
통화 스와프는 원화의 가치만큼 달러로 교환하는 협정을 뜻했고.
지금처럼 환율이 급등하고 있을 땐 만병통치약처럼 사용할 수 있는 협정이기도 했다.
통화 스와프 협정이 체결되는 순간, 1,400원이었던 환율이 최소 10% 이상 떨어지게 된다.
이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통화 스와프가 체결되면 주가에도 영향을 주기에 하락하고 있는 코스피 지수에도 막대한 도움이 되는 협정이었다.
“개인의 힘으로 어떻게 국가 간의 협정을 어찌 할 수 있겠습니까? 너무 어려운 부탁이십니다.”
“당연히 김 회장 혼자 나서라는 건 아닙니다. 대한민국 정부 차원에서도 움직일 것이고 약간의 지원 사격만 해 달라는 것이지요.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말입니다.”
이것도 재주라면 재주라고 할 수 있겠다.
말 한마디를 할 때마다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는 재주.
대통령실장이 말을 할 때마다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어려운 일입니다. 괜히 국가 간의 일에 나섰다간 태우그룹이 된서리를 맞게 됩니다. 그리고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뭘 원하는지 잘 알아요. 설마 맨입으로 해 달라고 하겠습니까? 대기업 총수도 장사꾼이라고 하더니 틀린 말이 아니군요. 4대강 사업 한 곳을 태우그룹에게 맡길 테니 좀 나서 주세요.”
선심 쓰듯 말하는 대통령실장.
이 말 또한 상당히 거슬렸다.
물론 청와대와 대통령실장은 국가의 발전과 미래를 위해 고민하고 있다는 건 알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건 곤란했다.
“태우건설은 지금 과부하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더는 수주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공사를 원투데이 합니까? 하청을 주고 수수료만 받아먹으란 말 아닙니까.”
“그런 공사 방식은 태우건설에서 지양하고 있습니다.”
“다른 걸 달라는 말이군요. 젊은 사람이 무슨 말을 이렇게 빙빙 돌리는지, 그냥 속 시원하게 말해 보세요. 뭘 주면 됩니까?”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 무슨 사업이든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권 사업을 받게 되면 정권이 바뀌는 순간 문제가 되기에 자제해야만 했다.
정권이 바뀌어도 문제가 되지 않을 만한 것을 요구해야만 했고, 그런 요구 사항이 태우그룹에 존재하긴 했다.
“인공지능과 자율주행 그리고 전기 자동차 관련 규제 완화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태우그룹이 그런 쪽에도 관심이 있으셨습니까? 이미 시장이 완성된 산업의 규제 완화는 어렵지만, 시작도 하지 않은 산업의 규제 완화야 당연히 가능하지요. 청와대와 여당에서 힘써 드립죠.”
생소한 분야일수록 관심도가 낮기 마련.
내가 언급한 분야는 상용화 단계가 아니기에 관심도가 매우 낮은 산업이었다.
그렇기에 대통령실장이 자신만만하게 확답을 할 수 있었다.
“제가 도움은 될지 모르겠지만, 통화 스와프 협상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냥 노력을 한다고 해서 끝이 아닙니다. 통화 스와프 협상이 잘못되면, 앞서 말한 약속은 없던 일이 되는 겁니다.”
“통화 스와프로 얼마 정도를 예상하고 계십니까?”
“그래도 급한 불을 끄려면 최소 300억 달러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300억 달러면 40조 원이나 되는 규모였다.
미국 연준 입장에서는 그리 큰 돈은 아닐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발할 수 있는 규모의 통화 스와프는 절대 아니었다.
“흠, 만약 400억 달러까지 통화 스와프가 가능하다면 어떠시겠습니까?”
“금액이야 다다익선 아니겠습니까?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태우그룹을 전폭적으로 밀어드립죠.”
“전폭적으로 밀어주시는 것까지는 괜찮습니다. 단지 앞으로 태우그룹은 몇 개의 대형 회사를 더 인수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 정부에서 인수를 방해만 하지 말아 달라는 말씀이시군요. 그 정도 요구라면 당연히 들어드립죠. 바라는 게 너무 적은 것 아닙니까? 정부 차원에서 빅딜 정책을 펼쳐 값싸게 기업을 인수할 수 있도록 도와드릴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아주 달콤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양날의 검과도 같은 제안이었고, 괜히 저런 제안을 받아들였다간 내 손도 같이 다칠 수 있었다.
“괜찮습니다. 한국 기업이 아니라 외국 기업을 인수할 계획입니다.”
“아쉽군요. 요즘 어려운 건 외국 기업뿐만이 아닙니다. 파산하는 한국 기업에도 관심을 좀 기울여 주시면 좋겠군요. 물론 태우그룹의 경영 방침에 간섭하는 건 아니고 그냥 그래 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관심 있게 지켜보겠습니다. 그리고 통화 스와프 체결이 하루속히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주시면 감사할 따름입죠. 제가 술 한 잔 더 따라 드리겠습니다.”
술이 들어가서 그런가?
아니면 내가 통화 스와프에 도움을 약속해서일까?
사람 심기를 건드리던 대통령실장의 말투가 많이 공손하게 바뀌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관계를 이대로 계속 이어 나갈 생각은 없지만.
* * *
대통령실장과의 일정을 끝마치고 강 대위의 사무실로 향했다.
이미 한정훈 사장이 넥타이를 풀어 헤친 채로 소파에서 편하게 쉬고 있었다.
“집에 안 가고 왜 여기서 그러고 있어요?”
“여기가 제일 마음이 편해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회장님께서 대통령실장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는지도 궁금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후우, 정치권에 있는 사람을 만나면 참 피곤해요.”
양복 상의를 집어 던지고, 넥타이를 풀어 헤친 다음 소파에 눕다시피 앉았다.
태우그룹의 회장과 사장이 이런 자세로 쉬고 있다는 걸 누가 상상이나 할까?
하지만 우린 이런 모습이 익숙했기에 아무도 놀라거나 하진 않았다.
“청와대에서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을 위해 움직여 달라고 하더군요.”
“환율도 난리가 났고, 외국인 세력이 쭉 빠지면서 주가까지 급락을 하고 있으니 청와대에서도 난리가 났나 봅니다.”
“통화 스와프만 체결되면 지금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으니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려고 하는 듯하네요.”
“정부의 일을 그룹 총수에게 부탁하는 경우는 처음 봅니다.”
“할아버지 시절에는 종종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하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한 사장이 허리를 세우고 앉았다.
통화 스와프 체결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어렵게 쌓아 올린 미국 VIP와의 친분을 단번에 날려 버릴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서로 원하는 것을 주고받아야겠죠.”
“정부를 위해 굳이 회장님께서 손해를 보실 필요가 있으십니까? 대단한 무언가라도 약속받으셨습니까?”
“태우그룹이 추진하는 사업의 규제 완화와 앞으로 태우그룹의 일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약속 정도를 보상으로 받아 냈죠.”
“그게 전부입니까? 통화 스와프에 비하면 턱도 없이 적은 보상입니다.”
나는 한 사장을 향해 손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다시 편한 자세로 누우라는 뜻의 손짓이었다.
“정부를 상대로 너무 많은 이득을 보려고 하면 뒤탈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조금 손해를 보는 게 장기적으로는 차라리 나아요. 그리고 이번 협상이 우리에게 꼭 나쁜 건 아닙니다.”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데 뭐가 나쁘지 않다는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미국 정부에 우리가 빚을 진다는 이미지를 씌우는 게 꼭 나쁜 게 아니란 뜻입니다. 미국 자동차 회사를 인수할 시기가 오면 도움이 될 겁니다.”
한 사장이 잠시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곤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고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가 먼저 나서서 미국 자동차 기업을 인수하겠다고 한다면, 당연히 미국 정부는 최대한 비싸게 우리에게 팔아치우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죠. 하지만 반대로 미국 정부가 먼저 우리에게 제안한다면, 오히려 더 저렴한 가격으로 인수가 가능하지 않겠어요?”
“우리가 빚을 졌으니 미국 정부가 우리에게 미국 자동차 회사 인수를 요구할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상황이 그렇게 될 거란 확신은 없지만,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긴 하죠.”
희망회로를 돌린다고 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가능성이 완전히 낮은 시나리오는 아니었기에 청와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