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Third-Generation Heir of a Conglomerate RAW novel - Chapter (290)
독식하는 재벌 3세-290화(290/518)
290. 기브 앤 테이크 (4)
현진해운 회장 추영희 여사.
그녀는 지금 매우 심각한 상황에 빠져 있었다.
조 회장이 사망하고 나자 여기저기서 경영권을 강탈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고, 현진해운의 경영난도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추 회장과의 만남은 상당히 빠르게 진행되었다.
“반갑습니다. 태우그룹 김민재입니다.”
“김 회장님이 저를 보자고 하실 줄은 정말 예상도 못 했어요. 마치 하늘에서 동아줄이 떨어진 기분이었어요.”
할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이런 모습이셨을까?
전형적인 재벌가 안주인 모습을 하고 있는 추 여사였다.
그런데 내가 동아줄이라고? 나는 현진해운의 동아줄이 되어 줄 생각은 없었다.
“요즘 현진그룹이 많이 시끄럽다는 이야기는 전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경영권 분쟁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저도 양심이 있지 김 회장님에게 경영권 방어를 부탁드릴 생각은 없었어요. 저를 보자고 한 이유는 현진해운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인수하고 싶으셔서가 아닌가요?”
괜히 지금까지 현진해운 회장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경영 능력은 부족하지만, 그것을 제외한 능력은 꽤나 뛰어난 추 회장이었다.
“현진해운의 자산이 외국으로 팔려 나가는 것보다야 국내 기업에게 판매하는 것이 국익을 위해서도 더 좋지 않을까 해서 만남을 요청했습니다.”
“제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긴 부끄럽지만, 현진해운의 상황이 정말 힘들어요. 아주버님이 노골적으로 현진해운을 노리고 있어 지금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자금이 필요해요.”
현진그룹의 가계도는 이러했다.
현진그룹 창업주의 장남이자 현진그룹의 총수로 있는 조영호 회장.
그리고 현진해운을 차지한 3남과 그의 부인 추영희 여사.
조영호 회장도 충분한 명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현진그룹의 총수로서 경영난에 빠진 현진해운을 인수하겠다는 것만큼 확실한 명분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추영희 여사 입장에서는 남편의 재산을 아주버님에게 빼앗기는 셈이니 어떻게든 막아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자금 융통을 위해 대형 선박과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을 매각한다는 이야기가 사실이십니까?”
“어떻게든 현진해운을 지키려면 그 방법밖에 없어요. 이대로 아주버님에게 회사를 빼앗길 수는 없으니까요.”
“그럼 제가 한 가지 제안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제안이라는 말이 나오자 눈빛이 돌변하는 추 회장이었다.
이전까지는 비련의 여주인공 같은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썩은 살점이라도 얻으려고 하는 하이에나와 같은 모습이었다.
“대형 선박과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의 가치 10%에 해당하는 돈을 융통해 드리겠습니다.”
“고작 10%인가요?”
“그 정도면 경영권을 지키기에 충분한 금액일 겁니다.”
“10%에 해당하는 돈을 융통해 주는 대가로 현진해운은 뭘 내어 드려야 하죠?”
“만약 현진해운이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파산할 경우 대형 선박과 자산 모두를 태우그룹에게 넘기는 조건입니다.”
양심이 없는 조건이었다.
도박장 앞에 있는 전당포에서도 물건의 가치 30%에 해당하는 돈을 빌려준다.
그런데 고작 10%만 주겠다는 건 날강도나 다름없는 조건이었다.
“너무 과한 조건이군요.”
“현진해운이 망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계약 만기는 20년이며 그동안 한 푼의 이자도 받지 않겠습니다. 20년 안에 돈을 돌려주시기만 하면, 무이자로 거금을 융통하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어느 전당포가 수천억이 넘는 자금을 융통해 주겠는가?
요즘 들어서는 은행에서도 해운사에 대출을 해 주지 않고 있었다.
이는 해운사가 수십 년 동안 바보 같은 행위를 반복했기 때문이었다.
선박이 비쌀 때는 선박을 사들이고 선박이 쌀 때는 선박을 팔아 치우는데 어찌 믿고 돈을 빌려주겠는가.
“그래도 조금만 더 융통을 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럼 대형 선박을 제외한 부동산 자산에 한해서는 100%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그 정도 금액이면 현진해운 경영권 방어에는 충분하고도 남을 겁니다.”
“정말 20년 안에 갚기만 하면 되는 건가요?”
“태우그룹의 이름을 걸고 약속드립니다. 그리고 대형 로펌의 참관 아래 계약서도 작성하겠습니다. 원하신다면 언론에 공표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음, 조건을 받아들이겠어요. 현진해운은 절대 망할 일이 없는 회사니까요.”
추 회장이 자신감 넘치게 목소리를 높였다.
자신감의 원천은 결국 대마불사였다.
세계 7위 해운사를 설마 정부가 망하게 두진 않을 것이라는 데에서 오는 믿음.
아직도 대마불사가 통할 것이라고 생각하다니.
IMF 시절 무수히 많은 대기업이 구제를 받지 못하고 파산했고.
미국의 경우 리먼 브라더스라는 대형 금융사도 지원을 받지 못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현진해운이라고 다를까?
대한민국에는 150개가 넘는 해운사가 있었고, 현재그룹의 해운사가 버티고 있는 한 현진해운은 대마불사라는 이득을 절대 볼 수 없었다.
* * *
현진해운 추 회장과의 만남을 마치고.
나는 항상 그랬듯 회사가 아닌 강 대위의 사무실을 찾았다.
그리고 역시나 한 사장이 미리 자리를 깔고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회장님, 현진해운과의 일은 어떻게 되셨습니까?”
“기획실장으로부터 전해 들었나 보네요. 현진해운의 자산을 보증으로 해서 자금을 빌려주기로 했습니다.”
나는 자세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세부 조건은 어떻게 되고, 현진해운이 파산하지 않으면 단 한 푼의 이득도 보지 못한다는 이야기까지 전부 해 주었다.
“현진해운에 너무 유리한 조건 아닙니까? 지금이야 고유가 시대에다 경기도 좋지 않아 해운사의 적자가 쌓이고 있지만, 조금만 경기가 좋아지면 금방 회복될 수도 있습니다.”
“리먼 사태가 그렇게 빨리 회복될 거라고 보십니까?”
“······그건 아닙니다. 최소 5년 최대 10년은 갈 거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럼 된 거 아닙니까? 아무리 늦어도 10년 안에는 현진해운은 파산을 하게 될 겁니다.”
현진해운의 파산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지금부터 아무리 경영을 잘한다고 한들 이미 쌓여 있는 부채를 해결할 방도가 없었고.
정부에서 지원을 해 줄 수도 없는 상황이기에 현진해운은 아무리 늦어도 5년 안에는 사라질 운명이었다.
“현진해운이 파산하면 한국의 해운업계가 꽤 힘들어지겠습니다. 150개가 넘는 해운사가 있다고는 하지만, 현진해운과 함께 파산할 해운사가 못해도 절반은 넘어 보입니다.”
“그러니 선박을 비롯한 자산을 태우그룹이 흡수해야죠. 한국 해운업계가 망하면 이득을 볼 곳은 중국과 일본의 해운사들 아니겠습니까?”
“태우그룹에서도 해운사를 운영할 생각이십니까?”
“못할 건 없죠. 대형 선박 1~2재로 운영하는 해운사도 있는데 현진해운의 대형 선박을 전부 인수하면 순식간에 한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해운사로 성장할 수 있어요.”
태우그룹 같은 수출 중심 회사 입장에서 해운사는 정말 중요했다.
그랬기에 현재그룹이 해운사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태우그룹 차원에서 꼭 도움이 되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호황일 때야 1조 원이 넘는 영업 이익을 내는 곳이 해운사지만, 반대로 불황일 때는 엄청난 적자를 보는 곳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불황인 지금 헐값에 선박을 구매해야 하는 거죠. 그래야 앞으로 다가올 호황에서 큰 수익을 올릴 수 있겠죠. 그리고 태우상사가 조만간 엄청난 양의 지하자원을 생산하기 시작할 겁니다.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해운사를 만들 필요가 있어요.”
이렇게까지 설명을 했지만 여전히 표정이 좋지 않은 한 사장이었다.
모든 것을 숫자로 이해하는 한 사장이었기에 현진해운의 적자가 눈앞에 아른거리고 있나 보다.
“지금 당장 해운사를 만든다는 것도 아닙니다. 5년 후에 현진해운이 파산하게 되면 그때부터 시작할 겁니다. 5년 동안 불황 사이클을 현진해운이 대신 감당하고 우린 호황 사이클에 들어가게 되는 거죠.”
“계산해 보니 그렇게 손해를 보는 일은 아닌 것 같긴 합니다. 태우그룹은 매년 엄청난 성장을 하고 있고, 5년이 지난 시기라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양의 제품을 수출하게 될 터이니 해운사의 기본 매출이 보장됩니다. 그러면 현진해운같이 막대한 적자를 보진 않겠습니다.”
한 사장이 이제야 표정을 풀었다.
태우그룹의 성장력을 감안하면, 현진해운의 대형 선박을 충분히 가동할 수 있다는 계산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조만간 조선소에서 대금을 지불하지 못해 경매로 나오는 대형 선박이 생길 겁니다.”
“지금 보유한 선박도 제대로 가용하지 못하니 신형 선박을 인양하는 것이 부담스럽긴 하겠습니다.”
“그런 대형 선박을 아무도 인수하지 않으려고 할 테니 경매로 나온 대형 선박을 반값으로도 인수할 수 있게 될 겁니다.”
“혹시 태우그룹에서 경매로 나온 대형 선박을 인수하실 생각이십니까?”
“지금 당장은 아니고 2~3년이 지나 가격이 많이 떨어지면 인수해도 괜찮지 않겠어요?”
다시 생각에 잠기는 한 사장.
그는 휴대폰 계산기까지 꺼내 숫자놀음을 한참이나 한 다음에야 대답을 했다.
“대형 선박의 가격이 45% 이하로 떨어지면 손해는 보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해운사는 태우상사에게 전적으로 맡길 생각입니다. 태우증권에서는 경매 부분만 신경을 좀 써 주세요.”
“그렇게 하긴 하겠지만, 해운업계가 다시 호황 사이클이 찾아온다고 한들 예전만큼 조 단위의 수익을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예전보다 더 큰 호황이 올 겁니다.”
지금 상황에서 누가 황금빛 미래를 예상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대형 선박이 없어 수출을 못 하는 상황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었다.
납품일을 맞추기 위해 2~3배의 웃돈을 주고 대형 선박을 구하는 경우가 찾아오는 날이 올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오지 않아도 상관은 없긴 했다.
태우그룹이 지금처럼만 계속 성장할 수만 있어도 최소 본전은 칠 수 있었으니까.
* * *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2008년.
드디어 길었던 2008년이 지나가고 2009년의 새해가 떠올랐다.
2009년의 새해보다 더 반가운 건, 드디어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돌아오신 할아버지였다.
“드디어 돌아오신 겁니까? 너무 오래 기다렸습니다!”
“너무 좋아하지 말거라. 새해만 같이 보내고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퉁명스러운 할아버지의 말투.
하지만 오랜만에 손자를 만났기에 미소를 숨길 수가 없으셨다.
“조금만 더 한국에 남아 계시면 안 되시겠습니까?”
“할애비랑 그렇게 같이 있고 싶으냐?”
“······.”
“왜 대답이 없느냐? 혹시 나를 한국에 남겨두고 네가 해외로 나갈 생각이더냐?”
“미국으로 장기 출장을 또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 고얀 놈! 할애비에게 다시 태우그룹을 맡기고 미국에서 탱자탱자 놀 생각이구나!”
할아버지가 역정을 내는 듯 보였지만.
여전히 미소를 숨기지 못하시는 걸 보니 딱히 화가 나신 건 아닌 듯했다.
“미국 백악관으로부터 대통령 취임식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미국 자동차 회사 한 곳을 인수 제안받을 것 같습니다.”
“정말 미국 자동차 회사를 인수할 생각이더냐?”
“제가 정한 조건을 맞춰 준다면 그리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제 조건이 워낙 깐깐해서 미국 정부가 그 조건을 충족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꽤 오랜 시간 협상이 진행될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가 헛웃음을 지으셨다.
한국 자동차 회사도 아니고 미국 빅3 자동차 회사 한 곳을 손자가 인수하겠다고 하니 헛웃음이 나오시는 거겠지.
“AIZ도 인수했는데 미국 자동차 회사를 인수하지 못할 건 또 없지. 그래 네 마음대로 한번 해 보거라.”
“그럼 태우그룹을 맡아 주시는 겁니까?”
“이미 네가 시스템을 다 만들어 두었을 텐데 나야 그냥 회장실에서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니겠느냐? 걱정 말고 다녀오너라.”
여전히 할아버지는 태산이었다.
나를 자유의 몸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존재.
나는 두 팔을 가득 벌려 할아버지를 꼭 끌어안으며, 미국 장기 출장을 머릿속으로 계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