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Third-Generation Heir of a Conglomerate RAW novel - Chapter (291)
독식하는 재벌 3세-291화(291/518)
291. 기브 앤 테이크 (5)
장기간 미국 출장을 위해 김포공항을 찾았다.
가장 많은 노선이 있는 인천공항이 아니라 김포공항을 찾은 건 전용기를 이용하기 때문이었다.
“준비가 모두 끝났습니다. 이제 탑승을 하시면 됩니다.”
“확실히 절차가 빠르게 끝나는군요. 10분도 안 걸린 것 같네요.”
강 대위에게 여행용 캐리어 가방을 건네주며 말했다.
아무리 퍼스트 클래스를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인천공항에서 탑승 수속을 밟으려면 최소 30분은 걸리곤 했다.
하지만 이용자가 적은 전용기 터미널의 경우 모든 절차가 한 곳에서 진행되기에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미국 현지의 차량과 경호까지 모두 준비가 끝났습니다. 미국에서 대기하고 있는 직원 모두가 공항에 집결해 있습니다.”
“그렇게까지 하는데 굳이 강 대위까지 같이 미국으로 갈 필요가 있나요? 한국에서 운영하는 회사도 관리해야 하는데 말이죠.”
“태우그룹에서 워낙 시스템을 잘 만들어 준 덕에 제가 없어도 회사는 잘 굴러갑니다. 그리고 회장님의 안전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강 대위도 바람을 좀 쐬고 싶었겠지.
그렇기에 더는 별말 하지 않고 강 대위와 함께 전용기에 탑승했다.
하지만 강 대위의 그런 모습을 꼬집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사장 소리를 듣는 분이 미국까지 경호원으로 나가는 게 말이나 됩니까?”
“그러는 한 사장님도 사장 소리를 듣는 분 아닙니까?”
“나야 상황이 다르지. 앞으로 진행하는 모든 일을 내가 분석해야 하니 당연히 나는 따라가야지.”
한 사장도 나와 함께 미국행을 택했다.
마음 같아서는 그를 한국에 남겨 두고 싶었지만, 미국에서의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기에 한 사장의 도움이 필요했다.
“미국에 도착하기도 전에 힘 빼지 말고, 빨리 자리 잡고 한숨 주무세요. 미국에 도착해서는 쉴 틈도 없을 테니까요.”
“비행기가 뜨기 전에 잠들 자신이 있습니다. 오늘 새벽까지 자료를 분석하고 정리하느라 밤을 새웠습니다.”
“저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두 분이 주무시는 동안 비행기 내부를 관리하고 있겠습니다.”
강 대위는 오랜만에 경호 활동을 해서 그런지 매우 적극적이었다.
벌써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도 피곤에 쩔어 있는 상태라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 * *
워싱턴 공항에 도착했다.
우리는 미리 예약한 호텔로 들어가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가볍게 휴식을 취했다.
완전히 피곤을 털어 냈을 무렵, 데이비드가 호텔을 찾아왔다.
“보스! 이제 출발할 시간입니다.”
“대통령 취임식에 늦을 수는 없죠. 자! 갑시다.”
데이비드, 한 사장 그리고 강 대위까지.
우리는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의 심정으로 대통령 취임식 현장으로 이동했다.
워싱턴 D.C 국회의사당 야외 공원.
200만 명이 넘는 인파가 공원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와 데이비드는 따로 초대를 받았기에 지정석으로 이동했다.
“관심도가 매우 높긴 하군요.”
“최초의 유색인종 대통령이다 보니 관심도가 다른 대통령 취임식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게다가 어제가 마틴 루터킹 목사의 기념일이라 더욱 관심이 뜨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 많은 관심 속에 취임식이 진행되었다.
먼저 바이든 부통령의 취임선서로 시작되는 행사.
지금은 부통령이지만, 내가 회귀하기 직전에는 대통령이었던 사람이었다.
20년 가까이 젊어서 그런지 바이든 부통령의 목소리는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힘이 넘쳤다.
“대통령 취임 선서가 이제 시작됩니다!”
드디어 주인공의 차례였다.
오바마 당선인이 성경에 손을 얹으며 취임선서를 마쳤다.
곧이어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사가 시작되었다.
엄청난 양의 취임사 분량이었지만.
나는 단어 하나까지 집중해서 들었고, 내 나름대로 취임사를 한 줄로 압축할 수 있었다.
희망과 변화.
현재 미국의 위기를 인지하고 대처해야 하며.
절대 희망을 놓지 말며 미국의 발전을 위해 공동체 모두가 노력하자는 내용이었다.
“오바마 대통령다운 취임사군요.”
“희망을 강조하긴 했지만 변화를 위해 투쟁도 불사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집니다.”
“그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조금 있으면 알게 되겠죠.”
“오늘 일정엔 대통령과의 만남은 없습니다.”
“대통령은 아니더라도 내각의 주요인사 한 명이 우리를 찾을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취임식에 참석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겠죠.”
취임사는 막바지에 들어섰다.
그런데 갑자기 오바마 대통령이 나를 바라보며 취임사의 마무리를 진행했다.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국제적인 협력관계 구축이 필요합니다. 해외의 우수한 기업과의 협업과 파산 위기에 처한 회사를 위한 외국 자본의 투자가 있어야지만 지금의 위기를 빠르게 극복할 수 있습니다. 미국 시장은 여전히 기회의 땅입니다. 망설이지 마십시오. 미국 정부가 적극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이 말을 나를 바라보면서 한다고?
나를 바라보지 않고 말했다고 하더라도 나를 염두에 두고 한 발언임은 분명했다.
데이비드도 그런 기색을 읽었는지 나를 향해 조용히 속삭였다.
“미국 자동차 회사를 보스에게 무조건 넘길 생각인 것 같은데요? 취임사에서 대놓고 이런 발언을 하는 걸 보면 말입니다.”
“기다려 보면 알겠죠.”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내가 예상했듯이, 취임식이 끝나는 순간.
비서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우리를 찾아왔고, 데이비드와 평소 친분이 있는지 그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재무부 장관이 보스와 조용히 만나고 싶다고 합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죠. 한 사장과 같이 참석해도 되는지 물어봐 주세요.”
데이비드는 비서관에게 귓속말로 내 뜻을 전했고.
비서관은 잠시 자리를 비운 뒤 다시 찾아와 고개를 끄덕였다.
“한 사장도 같이 참석해도 된다고 합니다. 태우증권이 AIZ를 잡아먹은 덕에 허락이 떨어진 것 같습니다.”
“한 사장도 이제 어디 가서 꿀릴 위치는 아니긴 하죠.”
한 사장과 함께 초대받은 장소로 이동했고.
우린 도착하고 나서야 그 장소가 어딘지 깨달았다.
“회장님, 여긴 미국 연준 이사회 청사가 아닙니까?”
“어쩐지 익숙하다 싶었네요. 설마 연준 청사에서 만나자고 할 줄이야.”
“모든 관심이 취임식에 집중되어 있어서 그런지 내부가 매우 조용합니다.”
쥐 죽은 듯 조용한 연준 청사.
재무부에서 이곳을 약속 장소로 정한 이유가 있었다.
이번 내각의 재무부 장관으로 내정된 사람이 지난 정권에서 뉴욕 연준 총재직을 맡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반갑습니다. 재무장관 내정자 티모시입니다. 지난 정권에서도 한번 뵌 적이 있지요?”
“그때는 인사를 드리지 못했었네요.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태우그룹 김민재 회장입니다.”
보안이 삼엄한 회의실에서 우린 인사를 나눴다.
티모시 재무장관 내정자와는 지난 정부와 진행한 협상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딱히 공격적인 발언을 한 적이 없었기에 존재감이 낮았지만, 재무장관직을 내정 받아서 그런지 이전과는 다른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취임사는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심금을 울리는 취임사였지 않습니까?”
“화합과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전달받은 취임사였습니다. 내객 구성만 봐도 결코 말로만 하는 화합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저를 두고 한 말씀 같군요. 지난 정권에서 연준 총재를 맡았던 제가 재무장관으로 임명되었으니까요.”
보수 정권에서 진보 정권으로 바뀌었다.
보통 정권이 바뀌면 지난 정권 지우기에 나서기 마련이었지만, 지난 정권의 사람을 내각으로 받아들인 오바마 정권이었다.
“티모시 장관 내정자님뿐만 아니라 지난 정권의 사람이 내각에 많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의 경제 위기를 이겨 내기 위해선 여당과 야당이 힘을 합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취임사에서 국제적인 도움을 요청한다는 발언도 있었지요.”
“그 말씀은 혹시 저를 염두에 두고 한 발언이었을까요?”
“그렇다고 봐야겠지요. 파산 직전의 대형 기업을 인수할 능력을 가진 투자자가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그중에서도 가장 능력이 뛰어나신 분이 김민재 회장님이시죠.”
솔직히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차기 내각의 재무장관이 칭찬을 해 주는데 어찌 기분이 나쁘겠는가?
하지만 칭찬에도 대가가 따르기 마련, 바라는 게 많으니 이런 칭찬을 해 주는 게 분명했다.
“과찬이십니다. 아! 그리고 태우증권 한정훈 사장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월가에서 이름 높으신 분을 뵙게 되는군요. AIZ가 빠르게 안정화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 들었습니다. 한 사장님의 능력 덕분 아니겠습니까?”
“저야 김 회장님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흠흠, 인사는 이제 충분한 것 같으니 본론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티모시 장관 내정자가 헛기침을 하며 화제 전환을 시도했다.
나와 한 사장도 자세를 고쳐 앉고는 그의 말을 기다렸다.
“일전에 더는 금융사를 인수하지 않겠지만, 금융사가 아닌 제조업 회사라면 인수할 의사가 있다고 하신 적이 있으시지요?”
“금융사는 AIZ만으로도 벅차기에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안을 하나 드리고자 합니다. 미국 자동차 빅3 중 한 곳을 인수해 주십시오.”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나올 줄이야.
예상은 했던 일이긴 했지만, 티모시 장관 내정자의 분위기를 보아하니 자동차 빅3의 상황이 알려진 것보다 더 심각한 상황인 게 분명했다.
“인수 제안은 감사하지만, 지금 상태의 미국 자동차 회사는 인수할 가치가 없습니다.”
“말씀이 조금 격하시군요.”
“그렇게 들리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미국 자동차 회사를 인수한다는 건 지금까지 쌓인 적자와 앞으로 쌓일 적자를 태우그룹에서 부담해야 한다는 뜻인데 그렇게 된다면 태우그룹도 무사할 수가 없습니다.”
티모시 장관 내정자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지금의 미국 자동차 회사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잘 알고 있기에 나오는 반응이었다.
“만약 자동차 회사를 인수하신다면 미국 정부에서 부채 일부를 탕감해 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부채 탕감에 더불어 잡 뱅크 제도와 강성 노조 그리고 공장 이전 문제 등도 해결이 되어야지만 합니다.”
“표를 준 유권자에게 칼을 꽂으라는 말씀이시군요.”
“디트로이트를 비롯한 러스트 벨트 쪽의 시민들이 좋아하진 않겠지요.”
러스트 벨트.
미국을 대표하는 공업지대를 뜻하는 명칭이었고, 자동차, 철강 산업이 발전한 장소였다.
공업지대란 뜻은 노동조합의 힘이 강한 지역이란 뜻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노동조합은 오바마 정권을 지지했기에 티모시 장관 내정자의 말대로 내가 원하는 조건을 들어준다면, 지지자에게 칼을 꽂는 형국이 될 수도 있었다.
“VIP에게 너무 부담되는 조건입니다. 김 회장님이 말씀하신 방법 말고도 미국 자동차 회사의 파산을 막을 방법은 존재합니다.”
“물론 미국 정부에서 막대한 구제금융을 쏟아붓는다면 미국 자동차 회사의 파산을 막을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단순히 파산을 막는 것이 아니라 미국 자동차 회사를 재건하기 위해선 악순환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 내야만 하고, 대통령 지지율이 높은 지금이 적기입니다.”
티모시 장관 내정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오바마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조건이었기 때문이었다.
“재무부와 연준 그리고 관련된 모든 부서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대답을 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연히 기다려 드려야지요.”
“그런데 반대 목소리도 적지 않을 겁니다. 특히나 미국 기업이 한국 기업에게 매각된다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들이 꽤나 있습니다. 그리고 태우그룹이 자동차 회사를 인수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질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미국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자동차 산업.
태우그룹이 미국 자동차 회사를 인수하는 건 미국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일 수도 있었다.
“회의에 제가 참석할 수 있게 해 주신다면 그 문제는 제가 해결할 수 있습니다.”
“흠, 알겠습니다. 조만간 자리를 마련해 보겠습니다.”
1차 회담은 여기서 끝이었다.
처음부터 끝장을 볼 생각은 없었고, 오늘은 그저 서로 간을 보는 시간에 불과했다.
처음 맛보는 이번 미국 정권의 간은 꽤나 짭조름한 게 맛이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