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Third-Generation Heir of a Conglomerate RAW novel - Chapter (30)
독식하는 재벌 3세-30화(30/518)
30화. 명동(4)
제도권 은행에서 4천억을 대출받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나 부채율이 높은 태우그룹의 경우 대출이 막혔다고 볼 수 있었고, 그렇기에 사채나 외국에서 차입금을 당겨 와 자금을 유통했다.
그런데 무려 CT은행이 대출을 승인해 주었다.
당연히 내가 뒤에서 수를 부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SAVE 투자회사의 주거래 은행을 CT은행으로 지정했다.
360억 달러를 굴리는 SAVE 투자회사였고, 이는 미국의 5대 은행에서도 큰 규모의 고객이었다.
게다가 대출금 4천억도 내 주머니에서 나왔다.
CT은행은 단지 이름만 빌려주는 대가로 SAVE 투자회사의 주거래 은행이 되었고, 4천억 원을 대출해 준다고 생색까지 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돈을 쓰고 싶진 않았다.
외환위기가 다가오기 전까진 최대한 돈을 아끼려고 했지만, 명동이 하는 짓을 보니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4천억 원이면 그리 큰 금액도 아니기에 시원하게 질러 버렸다.
상황이 급변하자 당황한 쪽은 이 상무였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그는 해서는 안 될 말을 쏟아 내었다.
“한국에서 돈놀이를 하면서 명동과 척을 져도 되겠어? 명동이 움직이면 은행 하나 없애는 건 일도 아니라고!”
“일반 한국 은행이라면 그렇겠지요. 하지만 우리 CT은행은 한국 은행이 아닙니다. 명동에서 권력을 이용해 CT은행을 압박한다면, 국제 분쟁으로 번지게 되겠군요. 미국을 상대로 싸울 생각이라면 그렇게 해 보세요.”
한동구 법인장도 시원시원한 성격이었다.
그는 미국에서 대학원을 나오고, 미국 CT은행 본사에서 일했던 사람이라 미국 시장의 거대함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명동 사채 시장?
한국에서야 알아주지 월가에 비할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
그리고 막말로 SAVE 투자회사 자금만으로도 명동 사채시장을 힘들게 할 수 있었다.
“진짜 명동과 척을 지겠다 이거지? 창원 공장만 돈을 빌린 게 아니라고!”
“이 상무님은 창원 공장을 감시하는 역할이라면서요? 창원 공장의 빚을 다 갚으면 이 상무님의 역할이 사라지는 것 아닙니까? 약속한 대로 창원 공장을 떠나 주세요.”
“두고 보자고! 분명 후회하게 될 거야!”
문을 박차고 나가는 이 상무였다.
도망가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갑자기 4천억 원이나 되는 거금을 갚겠다고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겠지.
이 상무가 사라지자 다시 회의가 이어졌다.
부회장은 한동구 법인장에게 자리를 권한 뒤 여러 질문을 던졌다.
“사장단 회의를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한 법인장님에게 여쭐 것이 있어요. 4천억 대출이 정말 승인되었습니까?”
“본사에서 승인이 된 사안이며, 시중 은행보다 더 저렴한 금리와 5년 만기 대출입니다.”
“매우 좋은 조건이군요. 그런데 전에는 대출 승인이 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4천억이나 되는 거금을 대출해 주는 저의가 무엇입니까?”
태우그룹은 시중 모든 은행에 대출 문의를 한 적이 있었다.
할아버지의 세계화 꿈은 거대했고, 당연히 많은 돈이 필요했다.
하지만 높은 부채율로 인해 시중 은행은 추가 대출을 주저했고, 해외 은행에서도 추가 대출을 해 주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갑자기 대출 승인이 떨어진 게 의심스럽겠지.
한동구 법인장은 의심을 풀기 위해 나와 입을 맞춘 대답을 내놓았다.
“김민재 본부장님의 인맥이 동원되었습니다. 미국 유학 시절 김 본부장님은 월가의 많은 뱅커와 좋은 인연을 맺으셨습니다. 이번 대출의 경우엔 태우그룹이 아니라 김 본부장님에게 대출해 준 것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어허, 역시 핏줄은 핏줄이군.”
부회장의 입에서 속마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금세 깨닫고 헛기침을 하였다.
그사이 이 상무의 편에 섰던 사장 몇 명이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창원 공장의 부채를 더 낮은 금리로 대체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명동과의 관계가 악화될 수 있습니다. 태우그룹과 명동은 오랫동안 좋은 인연을 맺어 왔고, 많은 계열사가 명동에서 자금을 대출받은 상황입니다. 명동에서 일시에 모든 대출을 갚으라고 하면 매우 곤란해집니다.] [CT은행에서 명동에서 빌린 돈만큼 추가로 대출해 줄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차라리 CT은행에서 나온 대출금을 베트남 공장 추가 건설에 사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한동구 법인장은 마지막 질문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번 대출은 오직 창원 공장 대출금 상환에만 쓰여야 합니다. 다른 곳에 사용하게 된다면 대출은 어려워지고, 지금과 같은 낮은 금리를 약속드릴 수가 없습니다.”
“흠, CT은행의 제안은 매우 고맙지만, 명동과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태우그룹은 회장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어 있다.
아무리 부회장 직함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이런 사안을 함부로 결정할 수도 책임질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책임을 져 줘야지.
“명동과의 관계는 제가 해결해 보겠습니다.”
“혹시 김 본부장은 명동과도 인연이 있나요?”
“인연은 만들면 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이 상무가 저지른 짓의 뒤에 명동이 직접 개입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이 상무가 명동의 이름을 빌려 호가호위했겠지요.”
“그 부분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군요. 회장님이 돌아오신 뒤에 상의하기로 하죠. 오늘 사장단 회의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부회장이 결단을 내렸다.
지금처럼 어수선한 상황에서 사장단 회의를 이어 나갈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회의를 빠르게 끝마쳤고, 계열사 사장들은 입을 굳게 다문 채로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텅 빈 회의장에 나와 비서실장 아저씨만이 남았다.
내가 다가서자 입술을 다물며 고개부터 흔드는 실장 아저씨였다.
명동으로 가겠다는 나를 말리고 싶어하는 모습이었다.
“안 됩니다. 명동은 위험합니다.”
“한국에서 기업을 경영하려면 누구든 명동에 한 번은 간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도 언젠가는 가야 할 곳이니 지금 안면을 익혀 두는 것이 좋지 않겠어요?”
“지금은 너무 이릅니다. 회장님이 돌아오시면 같이 자리를 만드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이 상무가 분란을 일으키기 전에 수습하려면 지금밖에 시간이 없어요. 실장 아저씨가 명동과 자리를 마련해 주지 않으시면, 저 혼자서라도 가겠습니다.”
나는 김 실장 아저씨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내 의지가 확실히 전해졌는지 김 실장 아저씨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연락을 넣겠습니다.”
“오랜만에 김 실장님과 드라이브를 할 수 있겠네요.”
자리는 꽤 빠르게 마련되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 이 상무의 사촌 형으로 알려진 사채꾼은 곧장 자신의 거처에서 만나자고 회답을 보내왔다.
나는 김 실장 아저씨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이동했고.
이동하는 동안 김 실장 아저씨로부터 사채꾼의 정체를 대략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명동에는 4명의 큰 손이 있습니다. 현금왕, 백 할매, 광화문 곰 그리고 강 회장이 있습니다. 이 상무의 사촌 형은 광화문 곰이라 불리는 이선일입니다.”
“저도 나름 알아봤어요. 부동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면서요?”
“알려진 정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서울로 들어가려면 광화문 곰의 땅을 밟지 않고는 못 지나갈 정도로 많은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증권시장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한국 증시의 30퍼센트가 그의 돈이라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입니다.”
광화문 곰의 전설은 70년대에 만들어진 이야기였다.
한국 증시의 30퍼센트가 그의 돈이라고?
70년대 한국 증시의 총액은 850억 원에 불과했다.
30퍼센트라고 하면 대략 255억 원 수준.
물론 돈의 가치가 지금과는 차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 봐야 그가 보유한 자산은 SAVE 투자회사의 자금 규모에 한참 모자를 것이 분명했다.
“저를 겁주시려는 것 같은데 제가 누구 손자인지 잊으셨어요? 저는 할아버지를 매일 보며 자랐어요. 아무리 광화문 곰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해도 우리 할아버지만 하겠어요?”
“…… 그건 그렇습니다. 하지만 무시할 사람은 결코 아닙니다. 현금 자산만 놓고 본다면 그는 태우그룹보다 더 많은 돈을 보유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그의 별명답게 광화문 근처의 고택이 곰의 거처였고, 나는 김 실장 아저씨와 함께 고택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수십 명의 경호원이 대기하고 있었고.
얼굴에 칼자국이 길게 나 있는 사람이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김 실장님은 여기서 대기해 주십시오. 회장님이 김민재 본부장과 독대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제가 인사를 시켜 드리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저 혼자 다녀올게요. 잠시 쉬고 계세요.”
“하, 하지만 도련님.”
“괜찮아요.”
나는 김 실장 아저씨를 두고 앞으로 나아갔다.
고택 안에는 또 다른 정문이 하나 있었고, 정문이 열리자 큰 규모의 정원이 나타났고, 그 중심에는 정자 하나가 우뚝 서 있었다.
정자에 다가가자 고택의 주인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곰방대를 물고 있는 영감.
할아버지와 비슷한 연세지만 덩치는 2배는 더 커 보이는 노련한 곰 한 마리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허허, 김 회장 손자가 나를 다 찾아오고. 세월이 참 많이 흘렀어. 반갑네. 광화문 곰이라 불리는 사람이네. 편하게 이 영감이라고 부르게나.”
“반갑습니다. 김태중 회장님의 손자이자 태우그룹 감사팀 본부장을 맡고 있는 김민재입니다.”
“자네 소식은 간간이 들어서 알고 있지. 김 회장이 어찌나 자랑을 하던지. 미국에서도 제일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김 회장이 아주 든든하겠어.”
덕담으로 시작한 대화였다.
이 영감은 내게 맞은편 자리를 권했고, 구수한 향이 피어오르는 녹차 한 잔을 대접했다.
“자네가 왜 찾아왔는지는 대충 들어서 알고 있네. 내 막내 사촌 동생 놈하고 사이가 안 좋다고?”
“사촌 동생분께서 장난질을 좀 많이 치셨습니다. 물론 어르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쯧쯧, 머리가 아둔한 놈이라 공장을 보내 놨더니 사고를 쳤나 보군.”
대화가 통하는 상대인가?
지금까지의 대화만 놓고 본다면, 매우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인물이었다.
하지만 사채꾼으로 지금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 광화문 곰이다.
곰 행세를 하고 있는 늑대.
내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언제든지 내 목을 물어뜯으려고 할 게 분명했다.
“이 상무는 태우자동차를 감시하기 위해 창원 공장에 파견되었다고 스스로 말하였습니다. 이제 그만 그를 거두어 가 주십시오.”
“감시는 개뿔. 그럴 능력이나 되는 놈인가? 돈놀이에는 재주가 없어 보여 어떻게든 먹고살라고 자리를 마련해 준 것일 뿐이네. 그런데 나는 그놈을 거둘 마음이 없네. 죽이든 살리든 자네가 알아서 하게나.”
역시나 호락호락하지 않은 영감이다.
죽이든 살리든 알아서 하라고 했지만, 이 상무를 건드리지 말라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그럼 다른 제안을 드리겠습니다. 저와 손을 잡지 않으시겠습니까?”
“나 같은 영감 손을 잡아서 뭐 하려고? 이쁜 처자 손이나 잡지 않고.”
“저와 손을 잡으신다면, 5년 안에 명동의 주인이 되실 수 있습니다.”
“흐하하하하! 최근 들어 가장 웃긴 이야기군. 현재그룹의 회장도 삼진그룹의 회장도 못 할 약속을 자네가 하는군. …… 명동이 우스워 보이는가?”